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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드
작품등록일 :
2024.05.09 14:51
최근연재일 :
2024.06.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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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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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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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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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프롤로그

DUMMY

그 날은, 칠흑과도 같은 밤이었다.


만연한 기운 가운데


최초의 메슈바가 탄생하였고




그 괴물의 압도적인 힘에


가장 강대했던 인간마저 무릎 꿇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데우스를 향한 그들의 굳건했던 신앙은


금이 가 점차 무너져갔고




마침내 인간은


그들의 신을 버렸다.




견고했던 질서가 흔들림에 따라


혼란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를 바라보던 데우스의 심정도 갈기갈기 찢어졌으리라.


- 안티스타시의 역사가 필스티온의 저서, ‘아기아’ 276p




「령(靈)과 혼(魂)이 하나가 될 때, 아마겟돈(Armageddon)이 머지않은 줄 알라.」 - 오래된 예언.




*




“프라데인······. 프라데인······.”


인간의 나라, 안티스타시의 어느 해안가에 자리한 마을.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이 조그마한 곳의 어느 집에서, 한 소녀가 역사서를 이리저리 넘기고 있었다.


무언가 안 풀리는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녀의 눈은 열정적으로 반짝였으나, 얼굴은 어딘가 뾰로통했다.

게다가 뭐가 그리 답답한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배배 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호기심 많은 소녀를 ‘류 화’라고 불렀다.


‘왜? 대체 왜 이유를 말 안 해주는 거야? 프라데인이 잡혀갔다. ······끝? 장난해?’


보통 결과보다는 원인이 중요한 법.

화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프로도시아의 딸이자 단 하나뿐인 황녀였던 프라데인이 태어났으나, 크리마타 메슈바에게 납치되었다.}


단 두 줄.

역사서에 적힌 프라데인에 대한 정보는, 단 두 줄이었다.


자그마치 한 나라의 황녀가 납치된 사건이다.

두 페이지에 걸쳐 서술해도 모자랄 판에, 고작 두 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덕분에 오기가 생긴 그녀는 결심했다.

‘프라데인’이라는 단어가 나온 부분을 찾아보기로.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책 어딘가에는 나오겠지.’


그렇게 다짐한 지가 벌써 한 시간째.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단어에, 그녀는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름을 느꼈다.


결국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얼마간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기던 화는, 마침내 역사서를 덮어버렸다.


‘으휴······. 기대한 내가 바보지 바보야.’


쾅-


감정이 실린 힘에 책이 펄럭였다.


역사서를 저 멀리 던져버린 그녀의 손이 비블리온으로 향했다.

물론 손을 뻗기 전에, 주위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는 화였다.


고개를 빳빳이 든 화가 얼마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족들은 현재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집을 비웠으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머니를 몇 번 본 적이 있었으니까.


화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지금 그녀가 보려 하는 책이 바로 외경이었기 때문이다.


외경(外經).


비블리온의 일부임에도, 무언의 이유로 공인을 받지 못한 지식.

인간들에게 널리 퍼져있으나, 사실상 금서로 취급되는 책.

열람 자체가 불가(不可)한 문헌.


이것이 바로 외경에 대한 안티스타시의 인식이었다.

사람들은 외경을 언급하는 것 자체도 꺼렸지만, 이제 갓 성인이 된 화는 생각이 달랐다.


‘외경이라고 해도······. 결국 똑같은 비블리온인데.’


그녀의 눈에는 외경이나 비블리온이나, 똑같은 신앙서적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일까.


화에게 있어 외경은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책이자, 언젠가는 반드시 봐야 할 신비의 서적이었다.


덕분에 화는 책장 뒤에 숨겨진 작은 창고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도.

그 창고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던 외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도.

설레는 마음을 꾹 누른 채 낡은 책의 표지를 넘겼을 때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화는 비로소 자신의 오랜 꿈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며 기뻐했으나, 그녀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책의 글자들은 그녀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고, 벌레가 뜯어 먹기라도 한 건지 페이지도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는 법.

그때부터 외경을 읽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글자의 지워진 부분을 잉크로 다시 채워 넣거나, 색채가 번진 부분은 전체적인 모양을 토대로 유추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일주일을 고생한 끝에, 마침내 그녀는 중요해 보이는 단어 하나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아가토스.


그 단어가 물건을 지칭하는 것인지, 장소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이름을 지칭하는 것인지 화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이 단어가 외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라는 것은 확실했다.

외경의 모든 페이지에 이 단어가 한 번 이상은 언급되었던 까닭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녀가 이 요상한 단어를 읽어낸 시점이 불과 하루 전이라는 것.


그리고 오늘, 화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던 참이다.


“후우······.”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화가 심호흡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알아내고 말겠어!’


조심스럽게 표지를 넘기는 그녀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래서······. 호호호······!”

“그러게 말이에······.”

“······!”


그렇게 머리를 싸매가며 글자 복원에 몰두하길 얼마.

밖에서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오자, 화가 다급하게 외경을 창고에 쑤셔 넣었다.


끼익-


“비블리온 읽고 있니?”


그녀가 비블리온을 피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이제 읽으려고요.”


배시시 웃으며 들어오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화.

자신과 비블리온을 교차하는 어머니의 시선에, 그녀는 심장이 점차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봤나?’


그런 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가 그녀의 곁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화야. 네가 비블리온을 읽는 것은 좋지만······.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화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비블리온을 읽는다는 건, 데우스님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얻는 것과 같아. 근데, 그러면 문제가 생길 거 같지 않니?”

“······?”


화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


“우리 딸이 읽은 지식은 머릿속에 쌓이겠지? 근데, 그렇게 되면 막상 그 지식을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단다.”

“그럼······. 어떻게 하죠?”

“비블리온을 읽는 것도 좋지만, 데우스님과 관계성을 맺어야지. 그래서 엄마는 우리 딸이 너만의 데우스님과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단다. 네가 데우스님과 깊은 관계성을 맺을 수 있도록.”

“······.”


어머니의 말이 마치 외계어처럼 들린 탓일까.

화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었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데, 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그럼, 비블리온을 읽지 말라는 것인가?

인간 따위가 어떻게 신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인가?


화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복잡해지는 것을 본 그녀의 어머니가 얕게 웃었다.


“아마 지금은 이해가 안 될 거야. 시간이 해결해줄 테니,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네.”


그때.


쿵-


“······!”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바닥이 흔들렸다.

그 소리는 하나의 신호였다.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전조.


“······?”


화가 어머니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는, 이내 재빨리 닫는 그녀의 어머니.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소리.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배의 그림자.


침입자였다.


‘메슈바다······! 이 기운은 메슈바가 틀림없어! 하필 건과 그이가 없을 때!’


문을 걸어 잠그는 그녀의 머리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무, 무슨 일이에요?”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진 것을 본 화가 다급하게 물었지만, 어머니는 대답 대신 화를 꼭 끌어안았다.


“잘 들어, 딸! 무슨 일이 있어도 입도 뻥끗하면 안 된다! 알겠지?”

“엄마······!”


그녀의 품에 안긴 화가 울먹거렸다.


짧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비명과 고함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쾅- 쾅-


“문 열어!”


마침내 문이 거칠게 흔들리자.


“데우스님이시여······! 화만은······!”


그녀가 입을 앙다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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