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그러나, 고단한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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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드
작품등록일 :
2024.05.09 14:51
최근연재일 :
2024.06.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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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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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8. 악을 선으로 (4)

DUMMY

돌처럼 얼어붙은 건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유스티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데르윈 옆에 섰다.

그러고는 건과 데르윈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는 유스티나.


“인사해. 내가 말했던, 친오빠같은 메슈바가 바로 이 오빠야.”

“······!”


허나 그 말은 건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분노로 몰아넣었던 까닭일까.

뻘겋게 물든 페스카즈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던 건이 피식 웃었다.


‘저 자식이······. 당신의 오빠라고?’


저자가 데르윈만 아니었더라도.

저자가 들고 있는 검이 페스카즈만 아니었더라도.

아니, 하다못해 저 검에 붉은 피가 묻지만 않았더라도······!


건은 이렇게까지 격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깊은 의미를 지닌 저 칼을, 인간도 아닌 메슈바가.

그것도 부정한 피를 묻힌 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그 사실은, 건의 정신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이미 눈이 반쯤 돌아간 건이 차갑게 내뱉었다.


“······그런 거였습니까?”

“······?”

“나캄에 날 끌어드리기 위해서······. 이 사단을 낸 거였습니까?”

“······!”


그러자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 유스티나가 다급히 입을 열었으나, 건은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지, 지금 무슨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아니야! 네가 나캄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냥 네 머릿속에 있는 메슈바를 조금 바꿔주-”

“듣기 싫습니다! 이제 알겠군요. 당신이 왜 날 도와줬는지!”


분을 참지 못한 건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결국, 날 포섭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벌인 거였어!’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왜 이 수상한 건물이 저들의 아지트인지.

왜 지하실에 미다스 스타디움에나 있을 법한 각종 무기들과 스파링장이 있는 것인지.

왜 저들이 자신을 ‘신입’이라 부르는지.


그 이유는, 바로 저들 모두가 크리마타의 청부살인집단, ‘나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건은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가 유스티나에게 느낀 배신감에 비하면 이는 약과였다.


이를 악무는 건.


‘유스티나······. 당신마저 데르윈과 한속통이었다니!’


받은 충격의 여파가 생각보다 컸는지,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속과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

건이 흐릿해지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들며 물었다.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였다.


“설마 유스티나 당신······. 인간이라는 것도 거짓입니까.”


건이 대답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유스티나를 쳐다보았으나, 대답은 그녀가 아닌 데르윈에게서 들려왔다.


“······무슨 오해가 있는 거 같군. 유스티나는 인간이다. 내가 보증하지.”


유스티나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자, 곧바로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말하는 데르윈.

하지만 건에게 그의 음성은 그저 소음에 불과했던 까닭일까.


서로를 감싸고 도는 그들을 아니꼬운 눈빛으로 노려보던 건이 툭 내뱉었다.

증오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짐승만도 못한 새끼의 보증 따위 필요 없어. 내가 필요한 건 유스티나의 대답이니까, 방해하지 말고 저리 꺼져!”

“······!”


건의 그 가시돋힌 말이 공간에 울려퍼지자.


스릉-


지하실의 공기가 곧바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 자식이 보자보자하니까······.”


어느새 단도를 거꾸로 쥔 필립이 으르렁거리자, 그를 필두로 나머지 메슈바들이 일제히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건의 양 옆과 뒤를 선점하고 자세를 낮춘 채 그를 천천히 압박해가는 그들.

과연 크리마타를 대표하는 청부살인집단다웠다.


건 역시 숨통을 서서히 죄어오는 메슈바들을 느끼고는 몸을 돌렸으나.


“우리는 인세니레 메슈바들이 아니다. 나캄이 만들어진 이유를 기억하라. 나캄을 한낮 의미없는 살인자들의 집단으로 만들고 싶은가?”

“······!”


들려오는 데르윈의 음성에 메슈바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에 우뚝 섰다.

데르윈이 다시 몸을 돌리는 건에게 말했다.


“아쉽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미련한 놈이었나.”

“······뭐?”

“네 눈빛을 보아하니, 넌 이미 유스티나가 인간임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를 부정하고 있군.”


건을 빤히 노려보는 데르윈.


그러자.


- 넌 데우스님께서 네 어미 독수리이자 보호자 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구나.


“······!”


갑작스레 떠오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데르윈의 말에서 타고스의 음성이 느껴지는 것인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데르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믿거나 말거나, 난 진실을 전했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네 자유. 나캄 입단 역시 마찬가지다. 나캄은 출입(出入)을 강요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모두 네 선택이니, 함께할 생각이 없으면 소란은 그쯤 피우고 나가라.”


그 말을 끝으로 데르윈은 입을 꾹 다물었다.


허나.


“하!”


마치 나캄이 대단한 조직이라도 되는 것마냥 폼을 잡는 데르윈의 모습이 같잖았던 탓일까.

아니면, 자신의 불쾌한 기억을 건드린 그가 견딜 수 없이 미웠던 까닭일까.


건이 코웃음을 치고는 비꼬듯 말했다.


“큭큭······! 말 하나는 기깔나게 하네. 왜? 그렇게 말하면 니들이 뭐라도 된 거 같아?”

“······.”

“천만에. 네놈들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의미부여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희 메슈바들은, 더럽고 불순한 존재들에 지나지 않아. 하루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음식물 찌꺼기에 지나지 않은 놈들이라고! 아, 음식물 찌꺼기도 아까우려나?”


단어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모욕적이고도 신랄한 조롱들.

말을 쏟아낼수록 건은 메슈바들의 기세가 이제 사나움을 넘어 짙은 살기로 가득 차가는 것을 느꼈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엎어진 물, 수습하기에는 늦었으니까.


페스카즈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건이 시선을 돌려 데르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건의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던 데르윈도 그를 마주보자, 건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그 검······. 들고 있으면 네가 고결한 인간이라도 된 거 같지? 웃기지 마. 넌 그냥 인간들의 무기를 마치 제것인냥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스스로를 다른 존재라 외치며 자위하는······. 하찮고도 구역질나는 메슈바일 뿐이야.”

“······!”


데르윈을 향한 혐오와 경멸, 그리고 증오.

이루말할 수 없는 그 지독한 감정들을 꾹꾹 눌러담은 문장들이 데르윈에게는 꽤나 아팠던 것일까.

줄곧 건의 어떤 말에도 요동하지 않던 데르윈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리자.


“······넌 지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거다.”


마침내 참지 못한 가필드가 위협적인 발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메슈바들도 일제히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자, 이를 느낀 건도 온 신경을 뒤에 집중했다.

죽음을 각오한 채 주먹을 꽉 쥐며.


‘······어디 들어와 봐라. 나도 곱게는 안뒤질 테니까!’


하지만, 유스티나의 분노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너······. 말을 정말 못되게 하는구나!”

“······?”


긴장감이 극에 달한 실내를 뚫고 들어오는 그녀의 또렷한 목소리.

그 날카로운 음성에 메슈바들이 또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이에 건도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리니, 어느새 데르윈를 밀치고 나와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스티나가 보였다.


“나에게 이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알면서······! 어떻게 그런 무례하고도 몰상식한 말을 할 수 있어!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


건의 행동에 크게 놀랐던 것인지,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말을 잇지 못하는 유스티나.


항상 상냥하고도 부드러운 태도를 잃지 않았던 유스티나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돌변해 건을 날카롭게 쏘아보자, 건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필립도 휫바람을 불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쯧, 머저리같은 새끼. 넌 이제 큰일났다. 유스티나가 화나면 아무도 못막는데.”


허나 유스티나는 필립을 깔끔히 무시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네가 이렇게 속이 꼬여있고 못된 놈이라는 걸 알았다면, 데려오지 않았을 거야.”

“······!”


그 말에 또다시 울컥한 건이 외쳤으나.


“지금······.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몰라!”


유스티나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네가 얼마나 큰 사건을 겪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메슈바들을 왜 싫어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고 입도 뻥긋 하지 않는데!”

“······!”

“그리고 네 과거? 네가 겪은 아픔?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착각하지 마. 너만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비참한 거 같아? 다 똑같아!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는 말 못할 상처를 지니고 산다고!”


- 그들이 겉으로는 거칠고 험악해 보여도,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삶에 대한 절망과 좌절. 그리고 낙담이 새긴 무수한 상처들이 쌓여있다.


“······!”


“넌 모르겠지만······. 너보다 더한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수두룩한 곳이 크리마타야!”


- 그 덕에 대부분의 빈민가 메슈바들은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간다. 마음이 죽어버린 상태로 말이야.


“······.”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까는 건.


‘젠장······.’


기분이 더러웠다.


마음같아서는 아득바득 우겨대고 싶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마 유스티나의 말과 교차하며 들려오는 뮐러의 말이 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건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차가운 바닥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


유스티나의 지친 음성이 들려왔다.


“근데······. 그들이 다 너처럼 충동적이고 과격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고.”

“······!”


지하실에 조용하게 울려퍼지는, 유스티나의 씁쓸하고도 허탈한 목소리.


감정이 벅차오른 것일까.

그 말을 끝으로 유스티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동시에 정곡을 찔린 건 역시 질린 듯 입을 꾹 다물자.


“······.”


실내에 들리는 것은 오직 숨소리뿐이었다.


그 숨막히는 적막이 얼마간 흐른 후.


유스티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허무함이 가득 배어있는 음성이었다.


“······원래 안티스타시 인간들은 다 그러니?”

“······.”


건이 말이 없자, 이내 체념한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유스티나.


“난 비록 크리마타에서 자란 인간이지만······. 안티스타시 출신은 그래도 뭔가 다를 줄 알았어. 그래서 나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너도 나랑 다르지 않구나.”

“······!”

“실망이다.”


-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믿음으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


“······.”


실망.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건의 가슴을 후벼팠던 까닭일까.

아니면, 비블리온의 말씀과 정확히 반대되는 길을 걷고있는 자신의 모습에 문득 자괴감이 든 까닭일까.


고통스럽게 침을 삼키는 건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만약 네 모습이 내가 생각해오던 안티스타시 인간들의 모습이라면, 난 인간 안 할래.”

“······!”

“차라리 메슈바로 남겠어.”


그 말을 끝으로 유스티나가 건을 슬픔에 젖은 눈빛으로 쳐다보자.


‘······메슈바로 남겠다고?’


건은 순간 숨이 멎는 거 같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인간과 적대적인 종족을 적대하고 밀어내는, 지극히 당연한 일?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긴 극악무도한 존재들을 배척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준 일?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기에······.


저 여자는 자신에게 ‘실망’이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까지 나무라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건이었다.




“······전 이만 가야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줄곧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던 건이 강철 문으로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턱-


“사과 해.”

“······?”

“지금 당장 사과해! 지금 네가 말했던 모든 말에 대해서!”


유스티나가 그의 어깨를 붙잡자, 또다시 욱한 건이 그녀의 팔을 뿌리치며 거칠게 외쳤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너, 너 진짜 끝까지······!”


건이 씩씩거리는 유스티나를 뒤로한 채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가 걸음을 다시 멈추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유스티나가 봐줬으니 망정이지, 다른 놈이었으면 진작에 피떡이 돼서 바닥을 나뒹굴고 있을 테니까.”

“······!”


건이 몇걸음 옮기지 않았을 때, 마치 그가 들으라는 듯이 엄포를 놓는 필립.

순간 피가 거꾸로 솟은 건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닥쳐! 여자 따위는 가볍게 이기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가필드가 휫바람을 불고는 중얼거렸다.


“오~ 쟤 또 주제파악 못하고 덤비는 거 봐. 얼마나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


노골적인 무시와 조롱으로 가득 찬 그들의 말투.

이에 도끼눈을 뜬 건이 뭐라 대꾸하려 했으나, 뒤이어 들려오는 유스티나의 음성에 건의 입은 도로 닫혔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


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 유스티나.

그러자 건이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흥, 제가 당신 정도는-”

“그럼 해 봐.”

“······!”

“대신, 내가 이기면 사과 해. 당장!”


무언의 노림수가 깃든 그녀의 제안.

하지만 유스티나의 말이 건에게는 그저 어줍잖은 객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탓일까.

건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후회하지나 마십시오!”


이에 유스티나가 곧바로 자세를 잡으며 손짓하자, 건이 그녀에게 달려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너 따위는 가볍게······!’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인간 여자.


지는 게 더 어려웠다.


그렇게 호기롭게 달려간 건이 주먹을 휘둘렀으나.


턱-


“······!”


유스티나는 그의 주먹을 가볍게 받아내는 것도 모자라 다른 한 손으로 건의 소매를 붙잡고는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허공에 붕 뜨는 건의 몸.


후웅- 콰앙-


건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크윽······.”


등뼈가 아작나는 듯한 고통이 몰려오자, 건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게 무슨······.’


찰나에 벌어진 어안이 벙벙해진 상황.


건이 바보처럼 눈을 깜빡였다.

코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하지만 유스티나는 틈을 주지 않았다.

건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의 위에 올라탄 그녀가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사과 해! 어서!”


그러나 그 한 방으로 자존심도 같이 짓뭉게진 까닭일까.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독기와 반발심뿐이었던 건은,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나쁜 새끼.”


히죽이는 건의 눈에 가득한 오기를 알아챈 것일까.

유스티나가 기어이 욕설을 내뱉고는 건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에게 차갑게 말하는 그녀.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가. 그리고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 너 같은 놈,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니까.”


그러자 건에게 메슈바들의 통쾌한 눈빛이 쏟아졌다.

이를 건도 느낀 것일까.


건이 그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고는 강철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물든 얼굴을 어떻게든 가리려 노력하며.




*




털썩-


건이 떠난 직후.

유스티나가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자, 말없이 다가온 필립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하지만 그의 손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작게 흐느끼는 유스티나.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데르윈이 그녀의 어깨를 꼭 붙잡고는 말했다.


“그 녀석, 속에 상처가 많은 놈이다. 들개한테 재수없게 물렸다 생각하고 털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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