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악을 선으로 (5)

타닥- 타닥-
“······.”
타고스의 처소.
따스하게 타들어가는 장작 가운데, 느긋이 차를 마시던 타고스가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건이 늦는군.’
그때.
쾅-
분노가 가득한 힘에 문이 폭발하듯 열리자, 타고스가 그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건을 잠잠히 쳐다보았다.
“영병! 사과하라고? 그 빌어먹을 상황에서? 웃기고 자빠졌네!”
꽝-
꽝-
한껏 솟아오른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던 것일까.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건이 타고스도 발견하지 못하고 벽을 수차례 두드리며 으르렁거렸다.
만약 그 사나운 모습을 뮐러가 봤다면 눈살을 찌푸리고는 곧바로 건의 뒤통수를 후려쳤을 것이나, 타고스는 인내심있게 기다려주었다.
그의 분노가 사그라들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건이 한참을 부들거리며 분을 삭이길 얼마.
마침내 건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타고스와 눈을 마주치고는 순간 멈칫하는 건.
건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젠장!’
탁자에 앉아 자신을 관망하고만 있는 타고스를 보자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꿀꺽-
건이 마른침을 삼켰다.
‘큰일났다······!’
머릿 속에서 무수한 시나리오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 지금 쓸모없는 이야기라 했느냐?
그때처럼, 또다시 호통을 치며 자신을 나무랄까.
- 서쪽 놈들은 빈민가 메슈바들을 벌레 보듯 바라보고 대한다. ······지금 네가 저들을 대하는 것처럼.
아니면, 뮐러처럼 예리한 몇마디 말로 자신을 옥죄어올까.
아니면······.
- 나에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싫으면, 지금 이 집에서 나가거라.
지금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건이었다.
허나 타고스는 그저 조용히 건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고요 속의 대화를 하길 얼마.
그 끔찍한 시간을 더는 견디지 못한 건이 결국 쭈뼛거리며 물었다.
“저기······.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 건이 타고스의 눈치를 살피자, 타고스가 몸을 탁자로 돌이키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날이 너무 늦었구나. 그만 들어와 쉬거라.”
“······?”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대답.
건의 눈썹이 실룩였다.
‘······뭐지?’
빈말같지는 않았다.
타고스가 차의 마지막 한 모금까지 들이키는 것을 볼 때, 그는 정말 잠자리에 들 채비를 하는 듯 보였으니까.
하지만, 왜?
대체 왜 묻지 않는 것인가.
왜 이렇게 늦었는지.
왜 그리도 분노에 가득 차 있는지.
왜 이런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대체 왜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는 것인가.
의아한 건이었다.
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으로 걸어가는 타고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정말 궁금하지 않으신 건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벽에 세워둔 폴암의 날을 한 번 쓸어보며 상태를 점검하고는, 이내 벽에 다시 세워놓는 타고스.
그러자 무엇이 떠오른 것일까.
폴암을 바라보던 건의 눈이 깊어졌다.
- 너는 여기 배에 남아라. 넌 짐밖에 안 된다.
- 오~ 쟤 또 주제파악 못하고 덤비는 거 봐. 얼마나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
머릿속을 한차례 긁고가는 가슴아픈 기억들.
건이 시선을 돌렸다.
타고스의 떡 벌어진 등판을 향해.
- 타고스 저놈, 트리가나 리반, 디안나 정도가 아니면 못 이긴다. 타고스를 잡으려면 3차 변이자 서넛은 와야 해.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도 단단해보이는 그의 뒷모습.
흡사 견고한 방패와도 같은 그 모습을 쳐다보던 건이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실내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건의 목소리.
작지만 뚜렷한 그 음성에 타고스가 멈칫했다.
허나 타고스가 건의 시선을 외면하고는 이내 다시 움직임을 이어가자, 건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물었다.
아까 전보다 한결 커진 목소리였다.
“타고스님.”
“······.”
“저에게도 검술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마침내 타고스가 몸을 돌렸다.
입을 꾹 다문 채 건을 지그시 바라보는 타고스.
그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굳어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
타고스의 목소리에 깃든 무언의 중압감.
그 기세에 눌린 건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왜······.
저자의 음성에서 노여움이 느껴지는 것일까.
깊고도 짙은 진노가.
건이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물었다.
“검술······. 알려주실 수 있으시냐고 물었습니다.”
“······.”
그러자 타고스가 숨을 깊게 내쉬고는 탁자로 가 앉았다.
“······일단 이리 와서 앉아라.”
건이 자리에 앉자 찻잔을 집어드는 타고스.
쪼르르르륵-
따스한 물이 찻잔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실내에 고요하게 울려퍼졌다.
건이 찻잔을 받아드는 것을 확인한 타고스가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그 알 수 없는 분위기에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일까.
건도 타고스의 눈치를 보며 차를 홀짝홀짝 들이켰다.
그렇게 어딘가 불편한 티타임이 이어지길 얼마.
마침내 건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으나.
“그······. 타고스님, 검술-”
“할 수 없다.”
“······!”
타고스는 고개를 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 날카로운 반응에 꿈틀해 묻는 건.
“왜 할 수 없으시다는 겁니까? 타고스님 정도의 실력이시라면 충분히 가르-”
“메슈바의 심정을 지닌 자에게 검을 쥐어줄 수는 없다. 아울러 쉽게 분노에 사로잡히고 역정을 내는 자에게는 더더욱!”
“······!”
기가 막히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던가.
듣기 싫다는 듯 건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단호한 음성에, 말문이 막힌 건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지, 지금 뭐라고······!’
순간 사고가 정지하며 맥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타고스가 자신의 청을 거절해서도, 그의 성을 내는 듯한 태도 때문도 아니었다.
메슈바의 심정을 지닌 자.
그 짧고도 강렬한 문장이, 건의 모든 사고 회로를 망가뜨리며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놓고 있었다.
점차 거세어지는 건의 숨소리를 느낀 것일까.
타고스가 건을 바라보며 엄중하게 물었다.
“왜 검술을 배우려는 것이냐?”
“······!”
그 말에 잘게 구겨진 얼굴로 타고스를 응시하는 건.
그의 독백이 속에서 울려퍼졌다.
‘······끝까지 가보자는 건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한 질문이었다.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질문이자, 수많은 의도가 담겨있는······.
쓰디 쓴 독주와도 같은 질문.
지금 타고스는,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건은 그의 질문이 달갑지 않았다.
알고 있었기에.
어중간한 대답으로는 타고스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거북하면서도 불쾌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린(逆鱗)을 건드려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충 얼버무리고 싶었던 건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통찰력을 지닌 자.
강철이라도 꿰뚫을 것만 같은 타고스의 눈빛을 시험할 용기 따위는 건에게 없었고.
‘후우······.’
마침내 건은 수백, 수천개로 찢어놓았던 기억의 파편들을 다시 짜맞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 아니. 너는 여기 배에 남아라. 넌 짐밖에 안 된다.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그의 아픈 기억들.
건이 어렵게 입을 뗐다.
“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고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묻겠다. 왜 검술을 배우려 하는 것이냐.”
- 아, 아까 오만 화소까지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삼만 화소로 저를 사주십시오!
- 글쎄. 너가 그만한 가치가 될까?
꾸우욱-
건이 쥔 주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타고스는 침묵할 뿐이었고.
- 여기까지 온 네 의지, 대단한 집념임은 인정해주지. 그러나 그 집념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노예야.
“힘이······. 저의 의지를 관철시킬 힘이 필요합니다.”
“······.”
건의 음성은 무거워져만 갔다.
- 이년은, 너보다 더한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아갈 거야. 하루하루 원치 않는 남자에게 범해지면서. 그때쯤이면, 아마 크실라의 노예였던 시절을 그리워 하겠지?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죽어버렸으면.
- 이이······! 이 개자식이!
“류 화를······. 동생을 지킬 힘이 필요합니다.”
“······.”
두 눈을 꾹 감는 건.
그의 음성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놈!
- 오~ 쟤 또 주제파악 못하고 덤비는 거 봐. 얼마나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스스로를······. 제 자신을 지킬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 이 악마 같은 놈들! 난 너희에게 내 모든 것을 잃었어! 가족 모두를 앗아간 너희에게 놀아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피하고 싶었던 기억의 조각이 떠오르자.
“······.”
건은 말을 잃었다.
‘아버지······.’
어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남은 한 조각마저 잃어버렸을 때의 그 참담하고도 비참한 기분을······.
그렇게 두 눈을 감은 건이 눈물을 삼키고만 있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타고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건의 상한 심령을 어루어 만지는, 하지만 너무나 뼈아픈 음성이었다.
“건아.”
“······.”
“네가 검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네가 힘을 얻길 원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너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네 모든 것을 앗아간 메슈바들에게 복수하려 함이 아니더냐.”
건이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었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사실은 건도 인정하고 있었던.
그래서 숨기고 숨기며 애써 부정해왔던 동기.
그 저주와도 같은 건의 염원이, 기어이 타고스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타고스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감정이 북받쳐 쓸데 없는 기억까지 떠오른 탓일까.
고개를 든 건이 쥐어짜듯 물었다.
“그래서······. 제가 틀렸다는 말씀이십니까.”
“······.”
“저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자들에게 똑같이 복수하고 싶다는 것이······. 그게 그렇게도 잘못된 생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툭-
- ······원래 안티스타시 인간들은 다 그러니?
“대체 어디가······. 저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도 못마땅하시기에.”
- 안티스타시 출신은 그래도 뭔가 다를 줄 알았어. 그래서 나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너도 나랑 다르지 않구나. 실망이다.
“도대체 저의 어느 부분이 인간과 그리도 다르기에······!”
- 만약 네 모습이 내가 생각해오던 안티스타시 인간들의 모습이라면, 난 인간 안 할래. 차라리 메슈바로 남겠어.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메슈바들에게 제가 분노하고 복수를 바라는 것이,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이기에······! 감히 저에게 메슈바의 심정을 지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투둑-
건의 볼을 타고 흐른 뜨거운 눈물이 탁자를 적셨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따지고 보면 너무나 옳은 말 아니던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하였다.
윤리와 양심은 개나 줘버리고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쫓으며 사는 악한 자들.
자신의 전부였던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가족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
그들에게 자신이 겪은 아픔과 괴로움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겠다는 것이.
그들이 죗값을 치루게 해주겠다는 것이······!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건이었다.
허나.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자들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자들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타고스가 건에게 대답하듯 비블리온을 읊자.
‘또······. 또 비블리온!’
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분명 보통 같았으면 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제압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읊는 비블리온의 구절에는, 자신의 입을 다물게 하는 무언의 강력한 힘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補藥)이라 하더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사약(賜藥)이라 하던가.
메슈바를 향한 증오와 분노가 너무나도 깊었던 건에게 비블리온의 구절들은 다른 때와 달리 보약이 아닌 사약으로 다가왔고.
건은 진정하기는커녕, 더 짙은 감정의 늪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눈시울이 뻘겋게 물든 건이 악을 쓰듯 고함쳤다.
“그럼, 그럼 우리들은······! 우리 인간들은! 바보같이 항상 당하고만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타고스의 처소에 울려퍼지는 건의 울분 섞인 외침.
“메슈바들이 침략해오면 그저 당하기만 하고······! 그들이 우리 인간들을 죽일 때, 복수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호구잡힌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 한맺힌 절규를 마지막으로 건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 한 번 대답할 수 있으면 대답해보라는 듯이 타고스를 노려보며.
하지만 타고스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어느새부터인가 사라져버린, 건의 두 눈의 초점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건의 숨결이 마침내 일정해졌을 때.
타고스가 입을 열었다.
“페트루스가 나아와 이르되, 주(主)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
“아가토스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마치 건을 꿰뚫어보고 말하는 듯한 비블리온의 구절들.
그 예리함에 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고,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
건이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떻게······!’
독심술이라도 쓴다는 것인가.
아니면, 저 종이쪼가리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인가.
대체······.
대체 어찌 이리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저 비블리온이라는 기묘한 서적은, 도대체가 어디까지 꿰뚫어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한계가 존재하긴 한 것인가.
‘비블리온이······. 원래 이런 책이었나.’
그렇게 건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탁자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
“건아.”
자신을 부르는 타고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드는 건.
그가 타고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타고스가 말했다.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심정이자, 네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
“오른편 빰을 맞거든 왼편도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너를 고발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와 기꺼이 동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
“······.”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이······. 우리가 마땅히 보여야 할 본이자, 네가 바라보고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다.”
그 말을 끝으로 건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타고스.
그의 눈을 피한 건이 목덜미를 문질렀다.
두근- 두근-
‘맥박이······.’
조금씩 뛰기 시작하는 심장.
가슴은 말하고 있었다.
타고스의 말이 정답이라고.
허나 이성은 그와 반대였던 까닭일까.
건의 표정은 혼란스러웠다.
‘말이야 누가 못합니까. 근데······. 그게 현실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던가.
타고스가 말한 비블리온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모두 주옥같은 문장들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오히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게 바로 현실 아닌가.
그 디스토피아에서, 과연 이를 지키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아니, 지키려고 하는 자가 있기는 할까.
들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긴 하나, 막상 현실에서는 효력이 없는 지극히 이론적인 구절들.
타고스는, 지금 그러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건이 타고스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아가토스라는 놈. 대체 그놈이 뭐길래······. 타고스님이 저렇게나 연연하는 거지.’
타고스와 대화하기만 하면 항상 언급되는 ‘아가토스’라는 자.
자꾸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는 그도 슬슬 마음에 들지 않는 건이었다.
그렇게 타고스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던 와중, 문득 이상함을 감지한 것일까.
한참을 침묵하던 건이 입을 열었다.
“비블리온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이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제가 미워하고 혐오하는 자는 우리와 같은 형제가 아니라, 메슈바란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메슈바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까 타고스는 분명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이라고 했었다.
그 말인즉슨, 비블리온은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용서하라는 말 아닌가.
근데 왜······.
타고스는 인간 뿐만 아니라 메슈바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것처럼 들리는 것일까.
‘저자에게는 메슈바가 인간이라도 된다는 건가.’
건이 못마땅한 듯 바닥을 툭툭 차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고스가 눈을 감았다.
“한 사내가 있었다. ‘니느웨’라는 도시의 멸망을 간절히 바라던, 한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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