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악을 선으로 (7)

“데우스는. 아니, 데우스님은 우리 인간들의 신 아닙니까. 대체 왜 인간들의 신이 인간을 괴롭히고 못살게구는 메슈바들을 안타까워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신 거 같습니다만.”
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그 니느웨라는 도시는 사내의 조국을 오래 전부터 괴롭히던 도시였다. 메슈바가 통치하던 도시였지.
메슈바가 통치하던 도시.
그 말인즉슨, 니느웨에 거주하던 자들 대부분이 메슈바라는 뜻 아닌가.
그런 패역한 도시를, 대체 왜 데우스가 신경쓴다는 것인가.
건으로써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데우스를 믿는 메슈바와, 그들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데우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자 타고스가 입을 열었으나, 무엇이 떠오른 것일까.
“메슈바들은 본래······.”
“······?”
말끝을 흐리며 입을 꾹 다무는 타고스.
건이 그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타고스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묵묵히 정적을 유지하던 타고스가 마침내 입을 열자.
슬픔에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지금 네게 알려준다 한들, 건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대신 네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바로 우리도 아가토스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데우스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은혜를 덧입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건이 진절머리가 난 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아가토스입니까.’
저자와 대화를 하기만 하면, 주제가 무엇이든간에 그 끝은 항상 아가토스였다.
대체 아가토스라는 자가 누구길래.
그 아가토스라는 놈이 얼마나 대단한 희생을 했기에.
도대체 어떠한 어마무시한 업적을 세웠기에······.
저자는 아가토스에게 이렇게도 광적으로 집착한다는 것인가.
건이 못마땅한 듯 물었으나.
“도대체 그 아가토스님이 뭐가-”
“건아.”
언제나 그랬듯 건의 입을 꾹 닫게 만드는, 건을 부르는 타고스의 음성이 들려오자, 건이 그를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대체.’
그런 그에게 타고스가 물었다.
씁쓸함과 괴로움이 한가득 묻어있는 음성이었다.
“만약 우리가 니느웨 메슈바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자들. 아니, 그들과 똑같은 자들이라면······. 너는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느냐.”
“······!”
건의 가슴을 강타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
순식간에 얼굴이 뻘개진 건이 말했다.
“지금······. 제가 메슈바라는 말씀이십니까.”
타고스가 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깃든 짙은 죄책감과 절망, 그리고 후회를 알아챈 것일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끔찍한 감정에 순간 가슴이 섬뜩해진 건이 슬며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타고스가 말했다.
“전에 우리가 대화했을 때. 아가토스님께서 자신을 죽이려 드는 자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했던 내 말······.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건이 주저하며 대답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 건아. 너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너에게 침을 뱉으며 모욕하고. 수천 번을 까무러칠 고문을 가하며······. 심지어 너의 심장에 칼을 꽂는 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 ······!
- 데우스님께서는······. 아가토스님께서는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셨다.
그때 나눴던 대화 전부가 기억나진 않지만, 그 부분만큼은 건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강렬한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을 죽이려 드는 자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타고스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목젖까지 실룩거려가며 힘들게 침을 삼키는 타고스.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것일까.
타고스가 본인도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를 던지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건도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고 기다려 주었다.
타고스가 다시 말을 꺼내기까지.
그리고 마침내 타고스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음성은 더할 나위 없이 침통했다.
“아가토스님을······. 누가 죽였는지 아느냐.”
“······.”
“우리다.”
“······!”
“우리 모두가······. 그분을 죽였다.”
“그, 그게 무슨!”
미세하게 경련하는 타고스의 음성.
크게 당황한 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는 그분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메슈바라면 몰라도, 제가 데우스님의 아들이라는 분을 대체 왜, 무, 무슨 이유로 죽인다는 말입니까!”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발작하듯 외치는 건이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자신이 메슈바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감히 데우스의 아들을 죽였다니.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비록 자신이 데우스를 미워하고 배척한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감히 데우스의 아들을 시해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했다.
게다가 아가토스의 얼굴은 고사하고 만나본 적도 없는 건이다.
하물며 음성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자를, 자신이 어떻게 죽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저 눈.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타고스의 저 깊고도 짙은 눈.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 진실된 눈빛이, 타고스의 말이 사실이라 말하고 있었기에.
건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아가토스를 죽인 살인자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정말 자신이 그 ‘아가토스’라는 자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끔찍한 생각이 듦과 동시에 와락 겁이 났기에.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죽을 힘을 다해 부정하는 건이었다.
그러자 타고스가 쓰게 웃고는 말했다.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나도 네 나이 때는 너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허나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패역한 니느웨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더 극악무도한 자들일 수도 있지. 자그마치 신의 아들을 죽인 신살자(神殺者)들이니······.”
그 말에 건이 외쳤다.
“그, 그건 모순된 말이잖습니까! 신의 아들이라면 분명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런 자가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고 우리 인간들한테 죽어버리다니요! 그리고 데우스도 이상합니다! 마, 만약 우리가 아가토스님을 죽였다 해도, 자신의 아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데우스가 왜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는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그리고 우리가 죽였다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비블리온의 말씀들.
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자들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무엇을 느낀 것일까.
건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하고 있었다.
비블리온이.
비블리온의 말씀들이.
비블리온의 구절 하나하나가, 타고스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인격(人格)적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건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왜······.”
“······.”
“데우스가. 아가토스가 왜 이렇게까지 한다는 말입니까.”
“······.”
“우, 우리가 뭐길래. 우리가 데우스님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길래······. 이렇게까지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비블리온이 또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사랑을 가득 담은 눈길로 자신을 쓸어보며.
“데우스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가토스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타고스가 건을 불렀다.
“건아.”
“······.”
“데우스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이렇게까지 오래 참으시고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이유는······. 바로 데우스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줄 정도로 말이다.”
“······!”
사랑.
그 낯설고도 어려운 단어가 또다시 건을 강타하자.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건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건의 입이 떡 벌어진 것을 본 것일까.
타고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신의 아들을 죽인 대죄를 저지른 우리들도. 살인자와 다를 바 없는 우리 인간들도, 데우스님의 긍휼과 은혜 그리고 사랑을 덧입었거늘······. 하물며 메슈바는 어떻겠느냐.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우리는, 니느웨처럼 진작에 멸망당해 죽었어야 하는 자들이다. 허나 데우스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는 것도 마다하셨던 것처럼, 그 크신 은혜를 받은 우리도 마땅히 메슈바들을 긍휼히 여겨야 하지 않겠느냐, 건아.”
말을 마친 타고스가 건을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마치 니느웨를 바라보는 데우스의 시선과 매우 닮아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허나······.
그 충격적인 말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저, 저를 세뇌시키지 마십시오! 저는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죽여도 당신이 죽인 것이지, 난······. 난 아가토스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납득을 할 수 없는 말과, 이해가 가지 않는 타고스의 태도.
이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결국, 또 돌고 돌아 사랑이다.
아가토스의 사랑이란.
데우스의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형태의 사랑이기에.
얼마나 거대한 사랑이기에, 자신을 죽인 자들마저 처벌하지 않고 그대로 냅뒀다는 것인가.
납득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타고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시 평정심을 찾은 듯한 음성이었다.
“······대화가 깊어지다보니 너무 깊은 곳까지 갔구나. 다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며 차차 이해하게 될 것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작은 신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타고스.
슬쩍 눈을 뜬 건이 바닥에 눕는 그를 지켜보았다.
“이만 잠자리에 들자꾸나. 날이 너무 늦었다.”
그렇게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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