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개화(開化) (2)

한 시간 전.
툭-
“······.”
건이 그와 어깨를 부딪치고 멀어져가는 메슈바를 노려보았다.
일순간 사나워진 건의 눈을 본 것일까.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타고스가 나지막이 타일렀다.
“그럴 땐 먼저 사과를 하는 거다, 건아.”
그러자 건이 콧방귀를 뀌고는 대꾸했다.
“흥, 제가 왜 사과를 합니까? 방금은 저자가 와서 부딪힌 거 아닙니까. 오히려 제가 먼저 사과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사과는 무슨.”
“······.”
그 말에 고개를 젓고는 발걸음을 옮기는 타고스.
이를 못 본 척한 건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보다, 어디로 가는지 안 알려주실 겁니까?”
사방에서 코를 찌르는 온갖 오물 냄새가 꽤나 고약했던 탓일까.
건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가 타고스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타고스는 멀쩡했다.
마치 이곳에 한두 번 온 게 아니라는 듯이.
타고스가 말했다.
“여간 집요한 게 아니구나.”
“······.”
“우리는 지금 메슈바를 만나러 간다.”
“메슈바? 메슈바는 갑자기 왜······?”
‘메슈바’라는 말에 또다시 기분이 팍 상한 건이 말끝을 흐리자, 타고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왜냐니? 그야 도와주러 가지.”
“······!”
도와준다.
그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건이 자리에 우뚝 섰다.
‘······뭐라고?’
이건 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린가.
메슈바를 도와주러 간다고?
그것도 메슈바도 아닌 인간이?
건이 물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꾹 억누른 목소리였다.
“······그럼 혼자 가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타고스.
“네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 왜 그러느냐?”
허나.
“······뭘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가서 알-”
“그들의 추악한 민낯?”
“······.”
- 나캄에 날 끌어드리기 위해서······. 이 사단을 낸 거였습니까?
무엇이 떠오른 것일까.
“자신이 받은 은혜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는 놈들입니다.”
건의 음성은 점차 거세져만 갔다.
“남이 베푸는 호의와 친절을 이용해서 그들을 속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서······! 결국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내고야 마는, 파렴치한 자들이 메슈바 아닙니까! 그런 쓰레기같은 놈들에게 제가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새 목에 핏대가 선 건이 씩씩거리자, 타고스가 조용하게 말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
건의 얼굴이 실룩였다.
‘비블리온······.’
“어제 내가 그리 일렀거늘······. 내 말을 하나도 새겨듣지 않았구나.”
차분하고도 엄중한 타고스의 음성.
“건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내면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말이다.”
“······.”
“감정이 앞서는 자는 언젠가 그 감정에 휩쓸려 넘어지기 마련. 너는 네 내면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타고스가 대꾸하지 않는 그를 진중하게 바라보았다.
“새겨들어라, 건아. 네가 네 속에 도사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그릇된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
타고스의 말에서 악의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타고스의 훈육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그러나 착잡한 음성이었다.
“압니다.”
“······.”
“근데······. 잘 안되는 걸 어떡합니까.”
건도 알고 있었다.
‘메슈바’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하면 자신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것을.
그도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메슈바’라는 단어는 건에게 있어 마치 기폭제와도 같았다.
그 단어가 들리기만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와 관련된 지독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에서 펼쳐졌고.
그 끔찍한 한 편의 영화가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자신의 이성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건은 손을 놔버렸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짓을.
그러자 타고스가 말했다.
“숫자를 세거라.”
“······?”
“또다시 감정이 올라와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세보거라. 심호흡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말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 말에 건이 생각에 잠겼다.
그가 보기에는 난해한 해결책이었기 때문.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세라고?’
솔직히 효과가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이 사그라든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한 노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는 건이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지 뭐.’
고개를 끄덕이는 건을 본 타고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타고스의 조언과는 별개로 메슈바에 대한 건의 감정은 변함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중충한 날씨 덕에 괜히 심술이 난 것일까.
건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타고스에게 으름장을 놓듯 말하는 건.
“그래도 저는 못 가겠습니다. 혼자 가십시오. 그놈들을 돕고 오실 때까지 저는 타고스님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 말을 끝으로 건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 타고스가 그의 뒷모습을 잠잠히 바라보았다.
‘허허허······. 첩첩산중이로군. 어떻게 해야하나.’
상상 이상이었다.
건 저놈이 마음에 굳게 둘러쌓은,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마음의 벽.
너무나도 높고 견고했다.
그래서일까.
타고스는 마음만 먹으면 건이 자신을 억지로 따라오게 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건을 강제로 데려간다 한들,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고집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건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타고스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쩔 수 없나. 데우스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시간이 더 필요하겠어······.”
*
팍-
건이 찬 돌멩이가 저 멀리 튀어 나갔다.
그가 타고스가 보이는 모퉁이를 돈 직후였다.
“쳇! 진짜 너무하시네. 뭐? 메슈바를 도와주러 가? 어이가 없어서 원.”
타고스의 말이 기가 찼던 건이 투덜거렸다.
백번 양보해서, 타고스가 뮐러처럼 메슈바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들을 돕는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대체 그들이 뭐가 부족해서 도와준다는 말인가.
전부터 심심치 않게 느꼈지만, 갈수록 더해가는 타고스의 메슈바 사랑이 무척이나 못마땅한 건이었다.
‘정 돕고 싶으면 다른 어려운 인간들이나 도울 것이지, 뭔 메슈바를 돕겠다고.’
그렇게 건이 속으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쏟아내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을 때.
“어이.”
“······?”
웬 메슈바 하나가 건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난데없이 등장한 그를 말없이 쳐다보는 건.
‘뭐야 이놈은.’
앳된 얼굴로 보아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것은 틀림없었으나, 몸에 자잘한 흉터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곱게 자라온 놈인 거 같지는 않았다.
메슈바가 짝다리를 짚고는 말했다.
“메슈바를 때렸으면, 그 대가는 치러야겠지?”
“······!”
‘메슈바’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는 메슈바.
건의 얼굴이 굳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저놈, 아까 자신과 어깨를 부딪친 놈이다.
자신에게 일부러 어깨를 들이밀고는 멀어져간 놈.
그 상황을 생각하니 또 분노가 치민 것일까.
어차피 타고스도 없겠다, 건이 씩 웃고는 툭 내뱉었다.
“어쩌라고? 이 빌어먹을 ‘메슈바’ 개자식아.”
그와 똑같이 메슈바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는 건.
그러자 메슈바가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이 새끼 이거 단단히 미친놈이네? 호구 하나 잘 잡았어.”
배까지 부여잡고 웃어 재낀 놈이 이내 몸을 풀듯 고개를 까딱거리자, 건이 자세를 잡았다.
‘제기랄······. 내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길래 이제는 하다하다 이런 구더기같은 놈들까지 꼬이냐.’
딱 봐도 견적이 나왔다.
저놈은 빈민가에 굴러다니는 불량배 중 하나일 것이다.
오늘도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어디 먹잇감이 없나 찾아보던 차에 마침 자신이 걸린 것일 터.
아마 인간인 자신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염병할 놈이······. 내가 호구로 보여?’
자세를 낮춘 건이 손을 까딱였다.
“들어와.”
상대는 혼자.
무기는 쥐고 있지 않다.
왜소한 체격으로 봤을 때, 아마 자신은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싫은데?”
“······?”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풀던 놈이 움직이지 않고 히죽이자, 건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곧이어 크게 외치는 메슈바.
“애들아, 나와라!”
그 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난 메슈바들이 건을 빠르게 에워쌌다.
대충 열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수였다.
“아우~ 빨리 좀 부르지. 몸 쑤셔서 죽는 줄 알았잖아.”
“여~ 반갑다, 인간?”
크게 당황한 건이 자신을 포위한 놈들을 하나하나 쳐다보자, 그들을 부른 놈이 씩 웃었다.
어느새 메슈바들에게서 받아든 나무 몽둥이를 손에 쥔 채였다.
“내가 등신이냐? 단둘이 싸우면 질 게 뻔한데.”
“······!”
그 말에 비로소 상황 파악이 끝난 것일까.
건의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뿔사······!’
어쩐지 너무 쉽다 했더니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길 얼마.
마침내 건이 체념한 듯 말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눈을 내리깐 채 주먹을 쥔 손을 푸는 건.
갑자기 180도 바뀐 그가 이상했던 것인지, 대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태도가 이렇게 빨리 바뀐다고? 역시 인간이란 새끼들은 비굴하다니까.”
그 말에 건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놈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뭐, 상관없나?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가진 거 다 내놔. 보다시피 친구들이 배가 좀 고파서 말이야? 그리고 너는 좀 맞아야겠다. 그 버릇없는 말투 좀 고쳐야겠어. 혹시 몰라? 지금 얌전히 항복하면 조금 감형해줄지?”
그 말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건이 얌전히 두 손을 들고 주저앉았다.
그러자 명령하는 대장.
“그래. 진작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야, 가서 뭐 있는지 좀 뒤져봐!”
“오케이~”
메슈바 둘이 껄렁거리며 건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건 코앞에 도착한 그들이 건의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한 순간.
빡-
“커헉!”
번개같이 휘두른 건의 주먹에 턱을 가격당한 메슈바가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본 남은 한 놈이 건에게 급하게 주먹을 내질렀으나.
“이, 이 개새끼가!”
뒤로 누우며 공격을 피한 건이 왼발을 쭉 뻗었다.
쇄액- 쩍-
“캌!”
공기를 가르고 뻗어나간 그의 발이 메슈바의 목젖에 정확히 꽂혔다.
이에 숨이 턱 막힌 메슈바가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 찍었다.
빠악- 털썩-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메슈바.
건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덤벼 이 개자식들아!”
드디어.
드디어 한 방 먹였다.
그토록 증오했던 놈들에게.
사지를 반으로 찢어놔도 시원찮을 개새끼들에게······!
드디어 한 방 먹였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주먹에 엎어진 놈들을 보며, 건은 속이 상쾌하다 못해 시원함으로 타들어가는 거 같았다.
동시에 극도의 흥분과 쾌락이 건을 감싸며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과도하게 분비된 탓일까.
건은 환각을 보기 시작했다.
건에게 있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불량배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크실라였고.
- 안타깝군. 그 어리석은 충성심이. ······고통 없이 보내주마.
자신의 어머니를 욕보였던 토리스였으며.
- 햐······! 여자를 본 지가 얼마 만이냐? 얌전히 협조하면······. 곱게 보내줄 수도 있는데.
자신의 동생을 디안나에게 팔아넘긴 노예상들이었다.
- 먼저 여자 노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상등품입니다. 정신력 또한 뛰어난 자지요.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자신을 끌고 온 자들의 모습이 일렁이자,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한 건이 먼저 달려들었다.
자신이 수적으로 열세라는 것도 잊은 채.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들! 내가 다 죽여버리겠어!”
폭주하는 불도저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건.
생각보다 격렬한 저항에 당황한 메슈바들이 주춤거렸다.
“뭐, 뭐해! 잡아!”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꽤나 선전하는 건이었다.
뻑-
“크악!”
건의 날라차기에 메슈바 둘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빈틈을 노리던 한 놈이 건의 뒤에서 팔뚝으로 건의 목을 졸랐지만.
“이거 안 놔!”
쩍-
“크악!”
이내 건이 휘두른 팔꿈치에 눈이 찍혀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지는 메슈바.
“이, 이 새끼 기절시켜!”
또다시 다른 두 명을 때려눕히는 건의 얼굴을 한놈이 잡아 쥐었으나, 건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빨로 놈의 손을 물어뜯자.
뚜두둑-
“끄아아악!”
살점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고통에 메슈바가 뼈가 드러난 자신의 손을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물론 패거리들도 건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건이 한 명을 때려 눕힐 때마다 그에게도 온갖 주먹과 발길질이 작렬했으나, 이미 몸이 한껏 달아오른 건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이 부모님의 원수들······! 오늘 끝을 보자!”
건의 기세는 사그라들기는커녕 격렬해져만 갔다.
“으아아아아아!”
입 주위가 피로 뻘겋게 물든 건이 괴성과 함께 또다시 달려들었다.
이미 한참 전에 초점이 사라진 눈을 번뜩이며.
그래서일까.
“저, 저새끼 왜 저래?”
“씨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건이 한 마리의 들짐승처럼 난폭하게 달려들자, 그 모습을 메슈바들이 질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허나 수적 열세는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던가.
또다시 메슈바 두어 명이 바닥을 나뒹굴 때 즈음, 메슈바 하나가 미쳐 날뛰는 건의 뒤에서 몸을 던졌다.
뒤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 알아챌 수 없는 완벽한 사각에서 날아온 공격이었다.
퍽-
“컼······!”
그에게 받혀 허리가 꺾인 건이 머리부터 바닥에 꽂히며 쓰러졌다.
“이런 개새끼가······!”
건은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놈을 주먹으로 마구 가격했으나.
“뭐해! 기절시켜!”
건의 시선이 돌아가기 무섭게 몽둥이가 그의 머리로 쇄도했다.
후우웅- 빠악-
“······!”
둔기에 실린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건의 머리에 부딪히자마자 그대로 박살나며 파편을 흩뿌리는 몽둥이.
그와 동시에 뒷머리에서 시작해 전신을 휘감는 끔찍한 고통에, 건이 몸을 배배 꼬았다.
털썩-
정신이 급속도로 혼미해진 건이 천천히 무너졌다.
“이 새······. 다져······.”
다닥다닥 끊기는 음성.
건은 자신이 정신을 잃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입술을 꽉 깨무는 건.
‘제기랄······!’
유스티나한테 깨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런 젖비린내 나는 놈들한테까지 흠씬 두드려맞다니······.
남아있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렸다.
‘분하다······! 이 정도로 차이가 크다니!’
자신은 분명히 보았다.
건을 넘어뜨린 놈은, 기가 막히게도 자신의 발에 턱을 맞고 쓰러진 메슈바였다.
분명 인간이라면 기절하고도 남았을 타격을 줬는데도 곧바로 일어나 반격하는 그를 보며, 건은 새삼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너무나도 약했다.
메슈바에 비하면 절망적일 정도로.
그래서일까.
문득 저주와도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메슈바였더라면······!’
자신이 안티스타시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나약하고도 연약한 신체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인간이 아니라 메슈바였더라면······.
이런 애새끼들은 고사하고 유스티나도 손쉽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에 불과했고.
건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한없이 약한 자신을 혐오하며 무의식 속으로 빠져드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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