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미련함으로 지혜를 (2)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줄곧 생각에 잠겨있던 벤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감명을 받은 듯한 음성이었다.
“칼로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힘이었군요. 대체 그 엄청난 능력을, 인간들은 무슨 수로 얻는 겁니까?”
그러자 타고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했었지.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
“칼로스는 ‘얻는’ 게 아니야. ‘받는’ 것이지.”
“받는······.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요상한 대답에 입이 막혀버린 벤터.
타고스가 물었다.
“메슈바들은 태어날 때부터 말루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네.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맞나?”
벤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타고스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우리 인간들도 메슈바처럼 태어날 때부터 그 ‘칼로스’라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선천적인 말루스와 달리 칼로스는 후천적이야.”
“후천적······?”
“아까 말했었지. 얻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칼로스는, 하나의 표징이자 선물이라네. 데우스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는 타고스.
결국 침묵으로 그들의 대화를 참관하던 건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너무 추상적이어서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만. 뭘 어떻게 해야 칼로스를 얻을, 아니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
건의 질문에 타고스가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건에게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거듭나야만 한다.”
“······?”
“우리가 거듭날 때, 비로소 그 거듭남의 증표와도 같은 칼로스가 주어지지.”
그 말에 건이 생각에 잠겼다.
거듭남.
‘새로 태어나다’라는 뜻의 단어.
보통 육(肉)이 아닌 영(靈)적인 변화를 말하지만, 워낙 어려운 개념이기에 건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다.
그래서일까.
그 거듭남이라는 개념이, 그저 칼로스를 꽉 붙잡고 있는 일종의 결계로밖에 보이지 않는 건이었다.
‘역시······. 공짜 따위는 없다는 건가.’
건의 표정이 뚱해지는 것을 본 타고스가 덧붙였다.
“아마 안티스타시에서는 거듭남을 ‘좁은 문에 들어간다’라고 표현할 것이다.”
“좁은 문······.”
말끝을 흐리는 건.
아마 타고스는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한 것일테지만, 안타깝게도 건에게는 별 효력이 없었다.
애초부터 자신은 칼로슨지 뭔지 하는 능력에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사는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힘 따위 거추장스럽게 여겼기 때문.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공부라도 좀 해놓을걸.’
건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으나.
“그럼······. 그 좁은 문에. 아니,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들려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자신만의 아가토스님을 만나는 것. 그분의 희생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아가토스님을 영접(迎接)하는 것. 그것이 거듭남의 핵심이자, 좁은 문에 들어가는 열쇠다.”
“······!”
점차 산으로 가는 문장들.
당황한 건이 버벅거렸다.
“아가토스의······. 뭐요?”
마침내 건이 고장나버리자, 그 모습이 꽤나 볼만했던 것인지 타고스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허허허허······. 아직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무나. 때가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니.”
“······.”
김이 팍 샌 건이 조그맣게 궁시렁거렸다.
“칼로스······. 받기가 뭐이리 어려워?”
“······!”
허나, 그 말에서 무언가 짚이는 게 있었던 것일까.
타고스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부드러우나 엄중한 음성이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
“칼로스가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줄줄이 어긋나는 법. 우리가 끼워야 할 첫 단추는, ‘칼로스’가 아닌 ‘거듭납’이다.”
“······!”
그 말에 뜨끔한 건이 움찔하자, 타고스가 덧붙였다.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칼로스는 선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리가 아가토스님을 영접하고 거듭났을 때, 칼로스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거듭남의 징표로 말이다.”
“······.”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잊지 말거라. 칼로스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지 않으면 칼로스는 고사하고 좁은 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해.”
“······예.”
타고스의 따끔한 경고에 마지못해 대답하는 건.
그 모습이 못미더웠던 것인지 타고스가 한 번 더 못박았다.
“명심하여야 한다. 칼로스는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네가 얻기를 포기할 때, 그 권능은 네게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닫는 타고스.
건도 질린 듯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실내에는 또다시 정적이 찾아오는 듯했다.
허나.
“흠, 근데 타고스님께서는 이미 좁은 문에 들어가신 분 아닙니까.”
벤터는 아직 끝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타고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묻는 벤터.
“그 경험을 활용하셔서 도와주신다면 건도 금방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타고스가 미간을 문질렀다.
‘······오늘 고생 좀 하겠군.’
타고스가 잠시 숨을 돌리고는 건에게 물었다.
“건아. 전에 네가 힘을 기를 수 있게 도와달라 말했던 것, 기억하느냐?”
- 저에게도 검술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그러자 타고스가 또다시 물었다.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었지?”
“······.”
건은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답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
- 할 수 없다.
원래는 ‘안 된다’가 지극히 정상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타고스는 그 지극히 정상적인 대답을 놔두고,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대답을 내놨었다.
하지만······.
‘뭘 어쩌라는 거야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건이 아까와 같은 뚱한 표정으로 타고스를 쳐다보자, 타고스는 그에게 대답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말했던 것 그대로다. 난 할 수 없어.”
“······?”
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칼로스를 받은 자가 칼로스를 받는 데 도와줄 수 없다니?
그럼, 타고스는 칼로스라는 그 힘을 대체 어떻게 받았다는 말인가.
건이 팔짱을 끼고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타고스를 쳐다보자, 타고스가 대답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도와줄 수 있다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국은 좁은 문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다니까.”
“······?”
“문 앞까지 도달한다 한들,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겠느냐. 나에게는 그 열쇠가 없다.”
그 말에 벤터가 재촉하듯 묻자.
“그럼······. 그 열쇠는 누구에게 있습니까?”
건과 눈을 맞추며 대답하는 타고스.
“오직 자기 자신과 아가토스님에게.”
“······?”
“좁은 문을 여느냐 마느냐는, 오직 자신과 아가토스님께 달려있다. 제삼자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어.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나 모르겠군, 벤터.”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문 타고스가 벤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기만 하는 문장들에 벤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잃을 뿐이었고.
건의 뜨악한 표정 역시 짙어져만 갔다.
그러자 다시금 얕게 웃는 타고스.
“허허허허······.”
타고스가 입을 열었다.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 채였다.
“······내가 또 너무 깊게 들어갔군. 잊어버리게, 벤터. 다 쓸데 없는 이야기니. 건 너도 마찬가지다.”
허나 그 말이 건에게는 마치 ‘아직 넌 멀었다’라는 말처럼 느껴진 탓일까.
건이 반항하듯 물었다.
“아가토스라면, 아니 아가토스님이라면 저도 이미 ‘영접’했습니다만. 당신께서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신의 아들이라고. 그분의 희생······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도 그분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영접이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는 건.
그러자 타고스가 본인의 머리를 가리켰다.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한 영접이라고 할 수 없다.”
“······?”
이어 가슴을 짚는 타고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
“아가토스님을 하나의 ‘지식’으로 인식해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내면 깊은 곳에서 지식이 아닌, 지금도 ‘살아계시는’ 분으로 인정해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한 ‘영접’의 정의다. 알겠느냐?”
하지만 그 말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
이번에는 벤터가 갑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라······. 솔직히 무슨 차이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리고 거듭나려면, 먼저 아가토스님을 만나 대화라도 하면서 그분을 알아가기라도 해야 영접을 하든 말든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아가토스님께서는 이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신 분 아닙니까? 제가 메슈바여서 그럴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참 막연하게 다가옵니다.”
그러자 건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벤터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저게······. 대체 뭔 소리래.’
타고스와 대화하다 보면 마치 양파를 까는 기분이었다.
까도 까도 줄지 않는, 의문투성이 양파.
거듭남과 칼로스.
아가토스와 영접.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벤터에게 가세한 건이 분통을 터트리며 물었다.
“듣고 보니 저도 벤터님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죽으신 분을, 우리가 대체 어떻게 만난다는 겁니까?”
그 질문에 타고스가 탁자로 눈을 돌렸다.
벤터와 건의 눈이 그의 시선을 말없이 따라가자, 타고스가 탁자에 놓인 비블리온에 손을 얹었다.
턱-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일까.
타고스가 말했다.
그리움이 적적히 배인 음성이었다.
“비블리온에······. 살아계시지 않느냐.”
“······?”
“그분의 성품과 심정. 우리를 향한 사랑. 그리고 희생. 이 모든 것이 비블리온에 담겨있다.”
“······!”
“그렇기 때문에, 오직 비블리온만이 우리를 아가토스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
건이 이마를 긁적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비블리온?
비블리온이라면······.
한낮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책 아닌가.
그 생명도 없는 문장의 집합체 따위가, 어떻게 자신을 죽은 자에게로 인도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타고스가 비블리온을 읊기 시작했다.
마치 건에게 화답하듯이.
“데우스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이번에도 건의 의문을 깨끗이 날려버리는 구절들.
타고스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숨쉬는 비블리온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며 혼과 영을 쪼개기까지 하는, 비블리온의 예리한 말씀들이······. 건 너를 아가토스님께로 인도할 것이다. 네 속을 감찰하시고 터치하시는 그 새미한 음성으로 말이다.”
“······!”
새미한 음성.
그 낮설지 않은 단어에 불현 듯 기억의 파편 중 하나가 떠오른 까닭일까.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 할 일이 없느니라.]
건이 마른 침을 삼켰다.
‘······설마.’
타고스가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칼로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다시 한 번 더듬으려는 듯이.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면, 데우스님께서 네 눈을 밝히 여실 것이다. 그리고 건 너는 너만의 아가토스님을 만나게 되겠지. ······내가 나만의 아가토스님을 만났던 것처럼.”
그 말에 건이 홀린 듯 묻자.
“대체······. 대체 왜 아가토스님을 만나야만 칼로스를 얻을 수 있는 겁니까.”
타고스의 묵직한 음성이 실내에 울려퍼졌다.
“그 힘은······. 아가토스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
그 말에 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그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왜 타고스의 설명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왜 노력한다고 해서 그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인지.
왜 아가토스를 만나야만 하는지······.
비로소 건은 납득할 수 있었다.
칼로스.
그 능력은, 결국 ‘신의 힘’이었다.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데우스의. 그리고 아가토스의 주권(主權)에 달려있는, 신의 권능.
그러자.
- 데우스! 당신은 제게 신도. 존경받아 마땅한 어떠한 자도······. 내가 믿고 따라야 하는 존재도 될 수 없습니다!
- 아까 뭐라고 했지? 빌어먹을 데우스? 쓸모없는 이야기? 한 가지 묻겠다. 넌 네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말하는가?
물밀 듯이 몰려오는 자신의 과거들.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실감한 탓일까.
갑자기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자신은 앞으로 영영 그 힘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이.
‘칼로스······. 내가 받을 수 있을까.’
건이 어두워진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때.
“후우······.”
자리에서 일어난 벤터의 신음에, 건은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기지개를 켜며 타고스에게 말하는 벤터.
“새삼 다시 느끼지만, 타고스님의 말씀은 메슈바든, 인간이든 그 내면의 깊은 곳을 터치하시는 듯합니다.”
그 말에 타고스가 간단하게 답했다.
“내가 아니라, 비블리온이 터치하는 것일세.”
이에 벤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을 향해 싱긋 웃었다.
“건, 네 덕분에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고맙다고 해야할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타고스가 가벼운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군. 건아, 슬슬 가자꾸나.”“······예.”
“벌써 가십니까?”
아쉬워하는 벤터.
타고스가 그를 향해 한 번 웃어주고는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들릴 곳이 많아서 말이야. 인사하거라, 건아.”
그러자 건이 되물었다.
“들릴 곳이······. 또 있습니까?”
“저녁까지 돌아다녀야 할 거다.”
“하아······.”
건이 얼굴을 문질렀다.
“안녕히 계십시오, 벤터님.”
“그래. 또 보자.”
벤터의 집 앞.
팔짱을 낀 벤터가 멀어져가는 건과 타고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건이라······. 재밌는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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