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그러나, 고단한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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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드
작품등록일 :
2024.05.09 14:51
최근연재일 :
2024.06.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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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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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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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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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2. 모든 것이 협력하여 (1)

DUMMY

미다스 스타디움의 어느 회복실.

뮐러가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는 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 [눈앞에 있는 놈, 보이나? ······죽여라.]

- 사아아아-

- 헤, 헤레브!


훈련실에서 보았던 그 기막힌 광경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던 것일까.


뮐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이 이렇게나 꼬일 줄이야.”


화의 입에서 ‘류 건’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하며 안도감이 들었었다.

그녀의 소식을 타고스와 건에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이 몰려들었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화와 엮인 문제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자, 그 기쁨은 이내 깊은 고뇌로 변질되었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아니, 건이 화의 현재 상태를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보였기 때문.


‘건 그놈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뮐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으음······.”

“······!”


조그만 신음과 함께 몸을 뒤척이던 화가 이내 눈을 뜨자, 뮐러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얼굴에 가득했던 수심을 지우고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몸은 좀 어떠냐?”


뮐러의 질문에 잠시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화.

별 이상은 없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여긴 어디죠?”

“회복실이다. 대련······을 끝내고 난 후 의식을 잃고 실려 오던데?”


뮐러가 ‘대련’이라는 단어에서 잠시 멈칫하자, 화가 슬며시 웃어주었다.


“······괜찮아요.”


작으나 씩씩한 화의 말투.

뮐러의 눈이 깊어졌다.


‘······강건한 마음을 가졌구나.’


그녀를 향한 디안나의 태도로 보아 그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진 시련과 역경을 겪었을 터.

그럼에도 애써 미소지으며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이 어린 소녀를 보자······.


‘데우스님이시여. 이 어린아이에게 도대체 어떤 뜻을 두셨기에······.’


뮐러는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의자에서 일어나는 뮐러.


“······가자. 내가 바래다주마.”




쏴아아-


미다스 스타디움을 빠져나와 걷기를 얼마.

저 멀리 저물어가는 태양을 배경으로 빛바랜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자, 화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예쁘다.”


그 말에 잠잠히 웃는 뮐러.


“끌끌끌······. 크리마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장관이지. 타이밍이 좋았구나. 물론 안티스타시의 수도, 아리엘의 정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


안티스타시.


아리엘.


그 막연하면서도 그리운 이름들이 뮐러의 입에서 들려오자, 호기심이 든 화가 물었다.


“뮐러님······. 인간이세요?”


그 질문에 발걸음을 멈추는 뮐러.

그가 궁시렁거렸다.


“쯧, 이제는 동족도 의심할 정도로 늙었나. 앞으로 팻말이라도 들고 다녀야지 원.”


그 심술 가득한 말에 화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자, 눈썹을 잔뜩 찌푸린 뮐러가 말했다.


“인간이고 말고. 나 같은 자가 인간이 아니면 대체 누가 인간이란 말이냐?”

“······알았어요.”


하지만, 뮐러가 인간이라고는 해도 자신이 정의한 인간에 부합하리라고는 화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의 음성에 희미하게 섞인, 불신의 향을 맡은 뮐러가 물었다.


“못 믿는 눈치 같은데?”

“······믿는다니까요.”


손사래를 치는 화를 유심히 지켜보다 입을 여는 뮐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데우스시니라.”

“······!”


과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블리온?’


180도 바뀐 화의 반응.

이를 놓치지 않은 뮐러가 짓궂게 중얼거렸다.


“이놈,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보니 역시 못 믿고 있었군. 에잉, 내 서러워서 살겠나.”

“아, 아니거든요!”


당황한 화의 목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투닥거리며 걷기를 얼마.


무엇을 보았을까.

어느 거대한 동상이 세워진 길가에 다다른 화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배팅 용지를 꼭 붙잡고 그 동상 앞에 엎드린 메슈바에게 두 눈을 고정한 채였다.


“플루토스님이시여······. 부디 이번 결과가 잘 나오기를 간구합니다······. 제발······!”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손.


그러자.


- 자책? 웃기지 마. 난 후회하는 것뿐이야! 내가 그때······. 기도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 같이 나갔더라면, 적어도 아버지는 살릴 수 있었어!


그 절박한 모습에서 누군가가 보인 탓일까.


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답답해진 가슴을 잠시 문지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


“······가요.”


그 말에 화처럼 자리에 멈춰서 메슈바를 가만히 지켜보던 뮐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말없이 걷다 뮐러가 그녀와 나란히 줄을 맞춰 걸을 때쯤.


화가 물었다.


“뭘러님은 인간이라고 하셨죠?”

“그래.”

“비블리온······. 잘 아시나요?”

“······어느 정도는?”

“그······.”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다 도로 닫는 그녀.


한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억지로 쥐어 짜낸 듯한 목소리였다.


“비블리온은······. 우리 인간들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 안티스타시 인간들은 항상 무언가를 보여줄 것처럼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내나, 막상 재난이나 어떠한 문제에 부딪치면 도망가기 바쁘더군. 평소 입이 닳도록 말하던, 그 데우스의 도움과 기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야.


“우리 인간들은······. 완벽한 존재인 걸까요?”


- 그래서, 어떤가? 정말 선한 거 같던가? 인간이.


- 겉은 멀쩡하나, 막상 속을 까보면 모순과 거짓. 그리고 망설을 비롯한 온갖 쓰레기밖에 들어있지 않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놈들. 그것이 내가 정의한 ‘인간’이다.


“만약 우리 인간들이 생각보다 그리 완벽하지 않다면······. 데우스님도 과연 완벽하실까요?”


- 데우스를 믿는 네놈들도 모순으로 가득 찬 찌꺼기들에 지나지 않거늘, 네가 믿는 그 데우스라는 신이 도대체 어떻게 특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섬기는 신이, 과연 완전하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데우스님께서 완벽하지 않다면. 특히 기도의 응답에 있어서 편향적이시라면······.”


- 기도에 대한 응답. 그게 네가 말한 사랑의 근거이자 기준 아닌가?


“우리가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기도를 들어주실지도 모르는데.”


- 가엽게도······. 너는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거 같구나. 아울러 데우스의 사랑 역시.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는 그녀.


허나······.


그 저주와도 같은 질문들을, 뮐러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던지며 순간 감정이 격해진 것일까.


툭-


어느새 화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 한 방울이 바닥을 적시자.


“······!”


크게 놀란 그녀가 황급히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동시에 화의 발걸음이 느려지자, 뮐러가 그녀를 지나쳐 두어 걸음 정도 앞서갔다.


지그시 눈을 감는 뮐러.


그의 탄식이 속에서 울려퍼졌다.


‘데우스님이시여······. 부디 이 어린 영혼의 상처를 보듬어주시옵소서.’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흐르길 얼마.

화의 발걸음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느낀 뮐러가 입을 열었다.


“너는 데우스님을 왜 믿느냐?”


- 훌륭한 대답이다. 그럼 하나 더 물어보지. 너는 데우스를 대체 왜 믿는가?


“······!”


우연인지는 몰라도, 스트라토스가 던졌던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뮐러의 질문.

그 난해한 주제에 얼굴이 흙빛이 된 화가 입을 꾹 닫았다.

아마 그녀 자신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터.


그러자 뮐러가 또다시 물었다.


“질문이 어려운 모양이구나. 질문을 살짝 바꾸마.”

“······.”

“화 너는······. 데우스님을 신뢰하느냐?”

“······!”


이번에도 화는 대답할 수 없었다.


데우스를 신뢰하는지에 대한 여부.


그 질문 역시 자신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화두였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데우스님을······. 신뢰하고 있냐고?’


그 질문조차 낯설었던 화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자, 뮐러가 말을 이어나갔다.


“방금 네가 던진 질문들을 가만히 들어보니, 너는 데우스님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네가 원하는 어떠한 요구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서 데우스님을 믿고있는 듯하구나.”

“······.”


마치 그녀를 나무라는 것처럼 들리는 뮐러의 말투.

입술이 살짝 튀어나온 화가 고집스레 반문했다.


“그게······. 잘못된 건가요? 데우스님은 우리 인간들의 신이잖아요. 인간들의 신이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를 보호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바란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언짢은 목소리로 툭 내뱉듯 말하고는 입을 꾹 다무는 그녀.

그러자 뮐러가 쓴웃음을 짓고는 답했다.


“물론 네 말처럼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소원을 단순히 요구할 수 있는 것과, 그 요구가 믿음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다르지. 생각해봐라. 만약 우리가 그러한 이유만으로 데우스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거나 우리가 데우스님께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어지는 순간, 우리는 데우스님을 믿을 이유가 사라져버리지 않겠느냐?”

“······.”


그 말에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말이 없는 화.

어쩌면 뮐러의 분명한 말이 틀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뮐러가 그런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러한 믿음은 옳지 않다.”

“······.”

“본인에게 득이 되어야만 믿는. 자신의 염원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이 존재해야만 하는, 그러한 믿음.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신앙을 ‘기복(祈福)신앙’이라고 부른단다. 오직 자신의 복과 안녕(安寧)만을 바라는 신앙의 형태를 말이다.”


그러자 화가 반항하듯 물었다.


“그럼······. 우리 인간들은 대체 데우스를 왜 믿는 건데요? 데우스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의 요구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면······. 믿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설마······.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믿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을 거라 믿어요.”


그 말에 얕게 웃는 뮐러.


“끌끌끌······. 네 부모님은 네가 원하는 요구를 다 들어주셨느냐? 그것이 네게 해가 되거나 위험한 요구라도 말이다. 가령 작살을 가지고 놀게 해달라는 네 요구를 들어준다든지.”

“······!”


꽤나 날카로운 뮐러의 비유.

화가 대답하지 못하자, 뮐러가 말을 이어나갔다.


“데우스님께서도 마찬가지다. 너 자신은 모르겠지만, 때로는 네가 바라는 것들이 네게 해가 되는 경우가 있을 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널 사랑하시는 데우스님께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으신다. 너의 청을 들어줬을 때 네가 당장은 행복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네게 해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이 화에게는 되려 독이 되었던 탓일까.


하늘을 물들인 황혼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이었다.


“저는······. 메슈바들에게 모든 것을 잃고 이곳으로 끌려왔어요.”

“······.”

“집 문이 마구 흔들릴 때.”


- 쾅- 쾅-

- 문 열어!


“집 밖에서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들려올 때.”


- 푹-


- 아아악!

- 으으으······.


“토리스가 제 어머니를 위협할 때······.”


- 햐······! 여자를 본 지가 얼마 만이냐? 얌전히 협조하면······. 곱게 보내줄 수도 있는데.


“죽어라 기도했어요. 우리 가족을 살려달라고.”


점차 갈라지기 시작하는 화의 음성.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빠와 엄마는 죽었고······.”


- 따, 딸······. 흐극······! 사, 사랑한······. 알지? 어, 엄마 마음······.


“오빠는 살아있는지도 몰라요.”


- 너는 가장 마지막이니, 입 다물고 기다리도록.


“저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어긋났어요.”


뮐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화.

또다시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일까.

그녀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가족들을. 제 평화로운 삶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데우스님께서 보시기에 그렇게나 해가 되는 기도였을까요?”


그 가슴 아픈 질문에 뮐러가 입을 꾹 다물었다.


바닥을 잠시 쳐다보다 이내 황금빛으로 물든 천공을 가만히 지켜보는 뮐러.


뮐러가 말했다.


“아름답지 않으냐?”

“······.”

“저 드넓은 하늘을 가득 물들인 황금빛 말이다.”


그 말에 화의 눈이 하늘을 향하자, 뮐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찬란하게 반짝이는 특유의 특성 때문에, 금빛. 즉 황금색은 여러 색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치가 높은 색으로 여겨진다. 크리마타를 대표하는 색도 이 황금색이니까 말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화가 뮐러를 말없이 쳐다보자, 뮐러가 그녀에게 씩 웃어주고는 물었다.


“하나 묻고 싶구나. 이 찬란한 빛깔을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색이 필요할 거 같으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화는 그래도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저자가 이런 화두를 꺼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노란색이랑 갈색. 그리고 빨간색······아닐까요.”


뮐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맞혔구나. 하지만, 가장 중요한 색이 빠졌다.”

“······?”

“검은색이다.”


그 말에 화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검은······색?’


검은색.


모든 빛깔과 척을 진 색이자, 모든 색의 본질을 흩트리는 색.

가장 어둡고 우중충하며, 다른 색과 잘 섞이지 않는 색.


그 색이 바로 검은색 아니던가.


어떤 색이건 간에 검은색이 들어가기만 하면 검은색 특유의 어둡고 으슴푸레한 빛을 띠기 마련.


그러한 자기주장 강한 색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어두운 느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황금색에 말이다.


순간 화는 뮐러가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의 진지한 얼굴로 보아 장난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이러한 화의 심정을 알았던 것인지, 뮐러는 그녀에게 얕은 미소를 지어주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왜, 못 믿겠느냐? 하지만 사실이다. 색 중에서도 가장 눈부시고 화려한 색인 황금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어둡고 음울한 색인 검은 색이 들어가야 비로소 완성되지.”


그 말을 끝으로 화에게 고개를 돌리는 뮐러.

화들짝 놀란 그녀가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뮐러가 말했다.


“이는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데우스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금빛처럼 광채가 나고 아름다운 존재로 빚고 싶어하신단다. 그러나, 그 찬란한 금빛을 품기 위해서는 가장 어두운 검은빛도 반드시 품어야만 하는 법.”

“······.”

“화 너도 데우스님께서 빚어가는 자들 중 하나란다. 다만 다른 자들보다 검은색이 조금 빨리 들어간 것뿐이지.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라. 아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처럼, 이 시기가 지나가면 앞으로 네게 펼쳐질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닐 테니 말이야.”


마침 시커멓게 칠해진 벽이 눈에 들어왔던 것일까.

아직 색이 덜 칠해진 것인지, 군데군데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을 가리키는 뮐러.


“생각해봐라. 저 벽을 보면서 누가 이 거뭇거뭇한 벽이 장차 빛나는 황금벽이 될 것으로 생각하겠느냐?”

“······.”

“그러나, 이 벽에 노란색. 흰색. 빨간색······. 계속해서 색을 덧입히고, 마침내 빛나는 광채가 모습을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알게 된단다. 그 찬란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검은색을 사용했다는 것을 말이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하늘을 우러러 보던 뮐러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그가 입을 열자.


비블리온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우리가 알거니와 데우스를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화가 뮐러를 홀린 듯이 쳐다보자, 뮐러가 그녀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 네게 벌어진 일들이 불합리하고 고통스럽겠지만, 분명 데우스님께서 그 사건들을 통해 네게 계획하신, 어떤 선하신 뜻이 있을 게다.”

“······”

“후에 네가 이러한 사건을 찬찬히 되새겨볼 여유가 생길 때까지 성장한다면, 분명히 볼 수 있을 거다. 네가 겪은 그 사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지. 그리고 데우스님께서 네게 의도하신 뜻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러니 부디 너무 절망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의 말이 꽤나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

고개를 푹 숙인 화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뮐러가 말했다.


“아까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섬기는 데우스님께서 어떻게 완벽할 수 있냐고 물었었지.”

“······?”

“네가 말한 그 말······. 앞뒤가 바뀐 거 같지 않으냐?”


씩 웃는 뮐러.


그가 말했다.


“인간이 완벽하면 데우스님께서도 완벽할 것이다. 고로 인간이 불완전하다면 데우스님도 과연 완전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에, 완벽하신 데우스님을 찾는 거다.”

“······!”

“완전한 인간? 그런 인간은 없다. 그저 우리가 믿는 분이 완전할 뿐이다.”


미묘하게 변하는 화의 표정.

이를 본 뮐러가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새 코앞에 당도한 저택 대문을 향해.


“이런, 말하다 보니 속도가 느려졌군.”


그러자 화도 저만치 앞서가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뮐러를 가만히 쳐다보며.


‘······누구지, 저자는.’


이 세계의 모든 지식에 형통한 거 같은 자.


상황 이면에 자리한 진실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자.


저런 자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화는 희미한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자신이 정의한 ‘인간’을 찾은 거 같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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