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틀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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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키스킨
작품등록일 :
2024.05.09 2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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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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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시련

DUMMY

몇몇 진부한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 이야기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연우는 티끌만한 상처도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차가 반파될 정도로 심각한 교통사고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타고 있던 앞좌석은 원래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찌그러졌다. 그러나 뒤에 타고 있던 연우만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남았다. 충격으로 잠깐 기절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친척들은 장례식장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연우를 위로하는 척했지만 뒤를 돌자마자 수군거렸다.





“자식 새끼가 부모를 잡아먹은 거지 뭐.”


“뭐 그런 소리를 한대. 근데 애가 독하기는 하다. 울지도 않네.”


“차가 완전 박살이 났다잖아. 근데 쟤 한 번 봐봐. 멀쩡하지? 바로 그 날 퇴원했단다. 말이 돼?”


“그래, 보통 놈이 아니니까 부모가 죽었는데도 저렇게 멀뚱멀뚱 서있지.”



너무 갑작스럽게 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어떤 것도 느낄 새가 없다. 모든 것은 한낱 꿈 같을 뿐이니까.



꿈이어야만하고.



운전 중이던 아버지는 술을 마신 것도, 졸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곳은 사고가 잦은 구역도 아니었다. 그저 연우의 열 여섯번째 생일을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온 가족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연우는 사고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가장 먼저 부모의 안부를 물었다. 다들 고개를 휘저을 뿐이었다. 그 다음, 겨우 정신이 돌아왔을 때 가해자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


경찰은 상대 운전자에 대해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신원 미상.



블랙박스도 망가졌고 그 시각 도로의 cctv도 모두 마비되어있었다고만 했다.



떠들썩한 것도 며칠 뿐이었다. 그저 지구상에 개미떼처럼 흘러넘치는 인간 중 둘이 죽었을 뿐이니까. 생각보다 너무나 빠르게 모두에게서 잊혀지며,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연우를 맡겠다는 친척은 없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형제조차 없었다. 어머니 쪽 가족들은 각자 먹고 살기 바쁘다는 말뿐이었다.



집 안의 모습은 사고가 있었던 그날 아침과 같았다. 어머니의 화장대에 어지러이 놓여있는 악세서리들과 침대에 놓여있는 몇 벌의 옷가지들. 싱크대에 설거지 되지 않은 씨리얼 그릇 세 개는 가족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게 했다.



연우는 사고가 있던 그 날부터 늘 집에서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었다. 아버지가 입던 옷이었다. 덩치가 컸던 아버지의 옷을 입으니 바보가 따로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연우는 그 양복 말고 다른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연우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거실 한 켠에 우두커니 놓인 서재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아버지의 성격을 보여주듯 널찍한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몇 주동안 닦지 않아 먼지가 쌓인 것만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책상의 오른쪽 모서리에는 아버지의 만년필과 색이 누렇게 바랜 기도서가 놓여있었다. 연우는 아버지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기도서를 집어들었다.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으나,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유일한 유산이 이 기도서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바로 할머니는 이 기도서의 첫 구절을 늘 읊조리셨다고 했다. 그런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 때문인지 아버지도 늘 기도서의 첫 구절을 입에 달고 사셨다.



연우는 기도서를 펴, 낡을대로 낡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첫 장을 보았다.



[각각의 존재가 신의 말씀을 아뢰니


네 안의 목소리를 받들라.


두 개의 속삭임이 공명하여


마침내 하나로 돌아가리니.]



이제 이 기도서는 아버지를 거쳐 연우의 것이 되었다. 언젠가 기도서를 가지게 될 줄은 알았으나 그것이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 없었다. 그 흔한 감기 몸살 한 번도 앓은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잔병치례가 많았던 것은 오히려 연우쪽이었다. 아버지가 농담조로 정말 내 아들이 맞냐고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버지는 열여섯번째 생일이 되면 네게 말해줄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너의 열여섯번째 생일만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그 때가 되면 네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 것이라고. 이제 아버지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말씀처럼 열여섯이 되자 연우의 세상은 달라졌다.



아버지만을 믿고 의지하던 연우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강연우만이 있을 뿐. 연우는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기도서를 읊조리고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러자 기도서 사이에 끼어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기도서만큼이나 낡고 낡은 편지 봉투였다. 봉투에는 빨간 색의 인장이 찍혀있었는데 아직 채 뜯기지 않은 채였다. 연우는 몸을 숙여 의문의 봉투를 집었다.



그 순간, 사방이 소음으로 둘러싸이고, 머리칼을 스치는 산들바람이 느껴졌다. 마치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워프한 것처럼.



연우는 황급히 편지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다. 연우의 옆으로 수많은 발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바삐 움직였다.



퍽!



연우는 그대로 중심을 잃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씨발 새끼. 걸리적 거리고 지랄이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리는 찰나 양쪽에서 뛰어드는 인원 때문에, 연우는 다시 한 번 벌러덩 넘어졌다. 온몸은 어느새 흙탕물 범벅이 되었다.



“멍청한 새끼.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어? 뛰라고 씹새끼야!”



아까 전에 들은 것과 같은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설을 들으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우는 상황 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켜 사람들이 달려가는 방향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연우 옆에서 함께 뛰어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연우와 나잇대가 비슷해보였다. 아이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저만큼 앞까지 달려나갔고, 어떤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은 채 완전히 패닉에 빠져있었다.



연우는 아이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달리기는 했지만, 상황이 주는 압박감에 그렇게 할 뿐 이 모든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이었는데.



그 때 얼굴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아이 둘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연우의 양옆을 조여왔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연우와 발걸음을 맞추어걸었다. 아이들은 말랐지만 다부진 몸으로 종교인이 입을 법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있다면, 날씨가 꽤나 추웠음에도 둘다 민소매 형태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쟤 지금 뛰는 거 맞지?"


"그러게 뛰는 건가봐. 도넘은 뒀다가 뭐한대?"


"자랑할게 없으니까 미개한 걸 자랑 삼나보네."



두 녀석은 연우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연우가 계속 반응이 없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걸어왔다.



“너 옷 꼴이 그게 뭐냐?”


“뭐, 루틀레스라도 되나보지.”


“하여튼. 촌스러운 피뎀 새끼들.”



둘은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닌 듯 서로 묻고 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우의 양 옆에서 키득거리며 기분나쁜 웃음을 짓던 아이들은 마치 날아다니는 것처럼 가뿐한 걸음걸이로 금새 연우를 앞지르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불쾌한 감정은 온데간데 없고, 멍하니 감탄사만 새어나왔다.



“이게 무슨..”



연우는 믿기지 않는 듯 양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보았다. 그렇지만 문신이 있는 녀석 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경쓰지마. 원래 못난 애들이라.”

"아앗···깜짝이야..!"


소리 없이 다가온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놀래키는게 취미인가. 연우는 놀란가슴을 진정시키며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시선을 던졌다. 앞선 두 녀석들과 달리 문신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뿐히 달리고 있었다. 말을 걸고있으면서도 연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달리는 그녀의 오른쪽 뺨에는 날카로운 것에 긁힌 듯한 상처가 귀바로 옆까지 가로로 길게 나있었다. 얼굴의 상처 덕분에 그녀가 조금은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자아이는 연우의 옷을 슬쩍 내려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근데 너 옷이 좀 웃기기는 하다.”


체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몇 분째 뭔가에 쫓기듯이 전속력으로 달리자 온몸에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과 같은 템포로 달리는 여자아이는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너 어느 가문이야? 설마 베리타는 아니지?”


여자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하긴, 베리타면 내가 모를리가 없지. 난 먼저 갈게.”


이 녀석들은 다들 자문자답하는게 유행인가. 베리타? 아까 그 녀석들도 그렇고 뜻 모를 말만을 연신 내뱉었다.  연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여자를 소리쳐 불렀다. 어쩌면 지금 연우에게 가장 절실한 답을 줄 사람일지도 몰랐다.


“자,잠깐! 지금 왜 다들 뛰어가는 거야?”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풋."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린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에서인지 여자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그리고는 멋쩍은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러는 너는 왜 뛰는 건데?”


"그야,"


연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빼액하고 창공을 울리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사람의 소리는 아니었다.


"저것 때문이지."


"잘 아네."


"저게 왜 갑자기 쫓아오는거야? 날···.. 쫓아오는 건 아니겠지?"


"뭔 헛소리를 하는거야···? 가문의 시련이니까. 네 힘을 입증해야 될 것 아니야."


“가문의 시련? 그게 무슨···.”


여자아이는 뭐 이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한심한 눈빛을 보내며 손끝으로 연우의 뒤편을 가리켰다.


“무카치를 죽여.”



여자아이의 손끝에는 이미터 정도의 키에 어기적거리며 쫓아오는 검은색 액체같은 것이 보였다. 키는 이미터쯤 될까. 아니 삼미터, 사미터였을까? 거대한 크기 때문에 현실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일반 성인 남성보다 거대한 덩치를 한 알 수없는 덩어리라는 것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우호적인 생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저걸 어떻게 잡아!”



“너 무카치 처음 봐? 요즘에도 시련 전에 무카치를 안 보여주는 가문이 있구나. 정말 루틀레스 인건가?  저건 약화된 녀석이라. 괜찮아. 진짜였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전멸이었겠지.”


그녀는 '무카치'라는 이름을 말하며 얼굴에 있는 상처를 어루만졌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긋한 태도였다. 마치 저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너넨 저걸 잡아?"



"무카치야, 저게 아니라. 그리고 죽여."



"그래, 무치인지 뭔지 하는 저거 말이야."



"죽여야지. 살고 싶으면."



냉소적인 태도로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이를 꽉 깨물며 '죽'을 세게 발음했다. 여자는 이제 연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듯 금새 앞으로 튀어나갔다.



"미안한데 너랑 시간 낭비를 너무 많이 해서 말이야. 난 통과가 아니라 1등이 목표거든."



연우가 붙잡을 틈도 없이 여자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자의 형태는 멀어졌지만 마지막에 남기고 간 말이 지독하게 귓전에 맴돌았다.



"조금 더 빨리 뛰는게 좋을거야. 그러다 죽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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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6 0 12쪽
3 가문의 시련 24.05.13 5 0 11쪽
2 가문의 시련 24.05.10 10 0 12쪽
» 가문의 시련 24.05.09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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