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틀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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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키스킨
작품등록일 :
2024.05.09 2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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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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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시련

DUMMY

노인의 입에서는 마른 나무가 긁히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사피.. 베리타스.."


그 말을 내뱉자 마자 언제그랬냐는 듯 노인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마치 숨을 거둔 사람처럼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노인은 사피가 처음 봤을 때처럼 다시 몸이 굳은 상태로 돌아갔다. 오래된 고목나무의 형상으로.

 

물론 사피가 베리타스인 것은 당연한 일었지만, 사피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조용히 단상아래로 되돌아갔다.


이 자리는 축하나 소란은 허용되지 않는 경건한 자리였다.


세계의 주적인 무카치를 무찌르기 위한 전사로서의 길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에서 천한 환호성은 금물이었다.


그 다음 차례인 실렌은 아버지와 같은 멘다의 힘을 인정받았고, 모르는 예상대로 디셉의 힘을 증명해냈다.

 

"운 좋게도 올해의 샤크마 중 사망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권을 표한 스물 아홉의 샤크마는 죽음보다 더욱 가혹한 수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영원히 힘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평생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며, 카디드를 떠나야할 것입니다. 영원한 수치심을 느끼며 거리를 전전하는 불명예를 맛볼 것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많은 기권자가 나왔습니다. 노빌리가문 연합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사방에서 우리를 노리는 세력이 조여오고 있습니다. 인간들, 무카치들, 그 외의 다른 종족들. 우리는 늘 우리의 강함을 사방에 떨쳐 세계의 평화를 유지해야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존재의 이유입니다. 새로운 샤크마 여러분은 여러분의 용맹을 떨치며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영예를 위해 살아가길 바랍니다."


카에쿠스가 말을 마침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왔다. 행사에 참여한 모든 인원들은 7고난자를 제외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카에쿠스를 향한 열렬한 존경과 동경을 표했다. 그 때 카에쿠스의 얼굴이 경련하듯 뒤틀리며 살짝 일그러졌다.


카에쿠스의 시선이 닿은 곳은 가문의 시련이 진행된 구역이었다. 얼마 전까지 사피가 온몸을 던지며 자신의 힘을 증명해냈던 곳이기도 했고. 사피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도 하나둘 카에쿠스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허공을 보고 계신건가?’


카에쿠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특별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베리의 수장인 카에쿠스가 감상에 젖어 허공을 볼리는 만무했다.


“어, 저기!”


그 때 샤크마 중 하나가 소리쳤다. 저 멀리서 단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가문의 시련을 통과한 샤크마들은 이미 준비된 군인답게 재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만.”


카에쿠스의 불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샤크마들은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전투태세를 풀고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오직 눈빛에서만 샤크마들의 곤혹스러운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짙은 회색의 대기가 회장을 둘러쌌다. 무겁게 짓누르는 회색의 대기는 말보다 세련된 위압감으로 회장을 압도했다. 어느덧 작은 점처럼 보이는 존재가 코 앞까지 다가온 것이 보였다. 

"허···헉···"


진행관인 레디의 품에는 우스운 복장을 한 녀석 하나가 누워있었다. 카에쿠스의 위엄으로 인해서 그 누구도 떠들지는 않았지만, 그 녀석의 행색은 회장을 묵음의 소음으로 가득 채우기 충분했다.


녀석의 정체를 두고 수많은 추측이 오갔다.


피뎀?

설마···..루틀레스···.?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피뎀 가문의 녀석들이 안광을 비추며 녀석의 출신을 전면부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루틀레스라기에는···.


이제 루틀레스 따위는 없는 걸로 아는데.


죽을 힘을 다해 도넘을 사용한 모양인지 레디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카,, 카에쿠스님. 이 녀석 숨을 안 쉬는 것 같습니다..














레디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이제 막 샤크마가 된 녀석들 앞에서 어느 정도 권위를 보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연우를 안고 떨리는 손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샤크마들이 그저 그가 힘들어서 이러는 것으로 생각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뚜벅뚜벅



카에쿠스는 살면서 누구에게도 숙인 적 없는 고개를 꼿꼿히 처들고 레디에게로 다가왔다.



"그래서 시련은 통과했나?


"예?"


"시련은 통과했느냐고. 무카치를 죽였냔말이야."



카에쿠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예, 카에쿠스님. 무카치를 죽였습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카에쿠스에게 답하는 레디의 목소리에서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시련에 통과한 거군."


카에쿠스가 텅빈 눈으로 레디의 품에 안긴 우스운 옷차림의 소년을 보며 덧붙였다.


"물론 죽지 않았을 때 얘기지만."


그 때 레디가 카에쿠스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7고난자의 수장에게 감히 그렇게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하다니 경솔한 일이었다. 물론 그 조차도 카에쿠스의 계산 하에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몸 절반이 통째로 날아가고 말았을테니.


레디의 속삭임이 귓속으로 흘러들어가자 카에쿠스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어렸다. 감정과는 거리가 먼 카에쿠스의 낯빛에 왠일인지 희미하게 표정의 변화가 일었다. 사피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귀를 만지작 거렸다.


카에쿠스가 속한 거룩의 가훈은 진실. 베리의 고행자들은 하나같이 공명정대하며 오직 정의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애초에 그들의 고려사항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런 카에쿠스가 자기도 모르게 계산에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분명 이 일이 저 정체모를 녀석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레디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에쿠스가 눈짓하자 그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피뎀의 7고난자 하나가 다가왔다.


"이 녀석이 피뎀의 고난자에게 힘을 인정받는게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지를 알아야할텐데."


레디가 꿈같은 눈빛으로 피뎀의 고난자를 응시했다. 생에 단 한 번 그것도 어릴적부터 오직 가문의 시련만을 위해 훈련 받아온 대가문의 아이들을 제치고 세 손가락안에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부모가 가문의 유력자가 아니고서야 택도 없는 일이었기에, 레디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물론 피뎀의 고난자가 히크마는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중요한 사실은 피뎀의 일반 사제가 아니라 무려 ‘고난자’에게 힘을 인정받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듣도 보도 못한 아이는 온 가문의 아이들이 열망하는 희귀한 도넘을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피뎀의 고난자에게 가문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설사 루틀레스라 할지라도 이것만으로 이 녀석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세계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에게 이러한 관심이 득이 될리는 만무했다.


피뎀의 고난자는 마치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흔들림 없는 움직임으로 캠프의 최고 실력자 옆으로 다가섰다. 레디는 피뎀의 고난자가 뿜어내는 힘의 위압감으로 인해 몸을 덜덜 떨었다. 녀석이 의식이 없는 상황이라 천만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캠프에 온 첫 날부터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졌을테니까.


고난자는 레디에게 안겨있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연우의 손이 절로 고난자의 손바닥 위에 올라갔다. 캠프의 모든 사제들은 일정 수준으로 수련한 뒤부터 도넘을 숨쉬듯이 사용할 수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어떤 도넘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천차만별이었다. 곧 연우의 손이 고난자의 손바닥 위에 얹혀졌다. 살포시 눈을 감았다.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피뎀의 사제는 아직 힘을 확인받지 못한 샤크마의 손을 잡고 얕은 명상에 빠져든다. 그 다음 곧바로 의식에 헛점을 찾아파고들어 들리는 동물의 울음소리로 힘을 분류한다고 한다. 그 종류는 들소, 독수리, 곰, 뱀의 네가지로 분류된다. 각각의 동물은 특정 가문을 상징하므로, 피뎀은 곧바로 샤크마의 힘을 인정하는 것이다.


“흐음.”


고난자의 입에서 단말마같은 감탄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히크마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죽어가는 듯한, 또는 갈증이 나 목이 타들어가는 사람의 것과 같았다.


거룩의 카에쿠스는 미동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피델의 고난자가 눈을 뜨자 명상의 잠긴 그의 공허한 회색 눈이 드러났다. 흰자위 하나 없이 회색으로 가득 들어찬 눈이었다. 그리고는 숨이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소리다. 뭐지? 뭐지?”


그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고난자의 목소리는 180도 바뀌었다. 마치 피뎀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그의 입을 빌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들소?”

“아냐.”

“뱀?”

“아냐.”

“곰?”

“아냐.”

“독수리?”

“아냐.”

“뭐야뭐야뭐야뭐야.”


피뎀은 한참동안 미친듯이 중얼거리더니 다시금 앞을 보고 회색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녀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레디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난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고난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연우뿐이었다.


“흐이이이익”


피뎀의 고난자는 말을 마치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갈색의 눈동자로 돌아왔다.


“디셉이군.”


레디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디셉이라면 레디와 같은 가문이었으니까. 물론 이 녀석이 가진 특별한 ‘도넘’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혹시나 베리타스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었다. 물론 베리타의 사람들이 예언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베리타 녀석들은 정이 가지 않았다. 꼭 로봇같다고 해야할까.


“이 녀석, 괜찮겠죠?”

“이 정도로 죽는다면, 샤크마의 자격이 없는 거지. 어린 애들도 약화된 무카치 정도는 손쉽게 처리하는 거 자네도 알잖아.”


레디는 대답 대신 은근한 수치심에 휩싸여 말을 멈추었다. 레디는 이래서 베리타를 싫어했다. 전혀 악의없이 어쩌면 그래서 더 상대의 약한 부분만 골라 찔러댔으니까. 레디는 가문의 시련에서 약화된 무카치를 상대로 거의 죽을 뻔했었다. 그 녀석이 없었다면 말이다.


“오늘 예기치 못한 소란이 있었군. 샤크마 여러분 모두 축하합니다. 여러분이 세계의 희망입니다. 끊임없이 수련하여, 지금 제가 서있는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카에쿠스는 마지막 말을 하며, 사피에게 살짝 눈길을 주었다. 아무리 무감정한 베리타스 가문의 카에쿠스라 할지라도 자신이 점찍어 놓은 후계자에게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었다. 사피는 그의 시선을 이해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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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넘형 훈련 24.05.28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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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묵시의 예언 24.05.24 7 0 11쪽
7 아지트, 깨어나다 24.05.23 9 0 12쪽
6 아지트, 깨어나다 24.05.23 7 0 12쪽
5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7 0 12쪽
4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6 0 12쪽
» 가문의 시련 24.05.13 6 0 11쪽
2 가문의 시련 24.05.10 11 0 12쪽
1 가문의 시련 24.05.09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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