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틀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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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키스킨
작품등록일 :
2024.05.09 2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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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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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깨어나다

DUMMY

"눌루스."


일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세계는 실수하지 않아. 너는 원래 이 세계의 사람이 맞아. 지금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말이야. 백번 양보해서 세계가 실수한 것이라고 해도, 무카치를 처리했다는 것 자체가 네가 이 세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야."

"무,, 뭐요?"

"무카치. 가문의 시련에서 네가 처리한 거대한 괴물 같은 녀석말이다."

"제가 그 녀석을 죽였다고요?"


의식이 돌아오고 난뒤,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생각났지만 괴물에게서 어떻게 벗어나게 됐는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죽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눌루스였다. 그런데 눈을 감았다 뜨니 기적처럼 눈 앞에 괴물이 사라져있었던 일이었다. 눌루스는 이제야 비로소 이런 일을 겪고도 자신이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왔는지를 궁금해하지 않은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들이 자꾸 휘몰아치는 탓에 이렇게 금방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누가 저를 구해준 거 아니에요? 저를 이렇게 만든 녀석이라던지."

"그럴리가 없지. 모르가 너를 왜 도왔겠니."


그 녀석이라면 그런 괴물 놈쯤은 쉽게 묵사발을 만들 수 있을 법도 했다. 한편으로는 일룸의 말도 맞았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남을 왜 도왔겠는가. 그곳에서 만난 여자애라면 모를까.


"혹시, 그 여자애가,,,"

"아니. 눌루스 그럴리는 없어. 가문의 시련은 개개인이 샤크마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는 자리다. 설사 누군가 죽는다하더라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 그게 바로 시련의 목적이거든. 적어도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는 샤크마를 선발하는 것."

"그치만 제가 무슨 수로 그 괴물을 죽여요! 저한테는 무기랄 것도 없었는데. 저는 그저 도망다닌 것 뿐이라니까요.”


일룸이 답답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역시 루틀레스라 그런지 말이 통하지를 않는군 그래. 그렇게 못 미더우면 너를 데리고온 레디한테 가보도록 해.”

“그 사람이 저를 구해준 건 가요?”

“모르지. 적어도 길바닥에 쓰러진 너를 데리고 온 건 맞으니까, 너를 구했다면 구한 거겠지.”

“그 분은 어디에 있어요?”


눌루스가 일룸을 만난 뒤 처음으로 생기있는 빛을 띄었다. 일룸은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어 헛웃음을 지었다. 눌루스는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 어떤 영예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세계의 존재를 아는 루틀레스들이 어떻게해서든 도넘을 갖기 위해 미친 짓을 벌인다는 사실도 분명 알지못하리라.


“글쎄. 어디에 있는지는 네가 알아내야겠지. 네가 루틀레스로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네가 살던 곳과 달라. 원하는 건 스스로 얻어내야한다는 소리야. 그 누구도 네 일을 나서서해주지 않는다고.”

“그럼 그 레디는 어느 가문이에요?”

“맨입으로 말해달라는 거냐, 지금?”


일룸이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주먹에 감은 혁대를 만지작거렸다. 모르는 허리에 감고 있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눌루스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주먹이 날아올 것같은 오싹함을 느끼고 희미하게 몸을 떨었다.


“내가 널 치료해주고, 위로해주기까지 했는데, 감사는 못할 망정. 내가 레디에 대해 알려주면 너는 뭘 해주겠나?”

“저는,,저는,,, 제가 뭘 해드리면 되겠어요?”


일룸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줄 수 있는거냐? 재밌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돌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네가 돌아가든 말든 내가 신경 쓸일은 아니고. 어디보자. 흐음.”


일룸은 따분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한 눈에 봐도 뭔가 말썽을 피울 생각에 빠져버린 사람같았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지금의 일룸과 얽히는 것을 피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일룸은 갈라진 나무 탁자를 불안하게 두드리더니 이내 힘을 풀고 전신을 의자에 맡겼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너무 일러. 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 꼭 한 번 내 부탁을 들어줘야할 거다.”

“저,,”

“레디는 지금 집에 있을 거다. 디셉 아지트 왼쪽에 보면 큰 저택이 두 채 있을 거야. 그 중에 베리타 쪽에 가깝게 있는 집이야.”


눌루스가 거래를 취소하려는 요량으로 입을 열자마자, 그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일룸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 ‘레디’라는 사람을 찾아서 여기를 떠나버리면 그만이었다.


“고맙습니다.”

“공짜도 아닌데 뭘. 밤에 찾아가면 싫어할텐데. 뭐, 알아서 해라.”


일룸이 곰의 발바닥같은 손으로 눌루스의 어깨를 쳤다. 퍽 소리와 함께 눌루스의 입에서도 신음이 터져나올뻔했지만 안간힘을 써서 참아냈다.


일룸은 몹시 가까운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레디의 집은 감시탑에서 전혀 가깝지 않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도넘을 사용한 샤크마들이 10분은 족히 달려 도착한 곳이니 눌루스가 제 발로 걸어간다면 날이 샐 무렵에야 도착할 듯했다. 특히 지금처럼 몸이 성치 않을 때에는 말이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이미 모르와의 전투 때부터 해는 넘어간지 오래였다. 눌루스는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아 씨,,”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모르 녀석한테 짓밟힌 바람에 아무리 흔들고 두드려 봐도 먹통이었다. 뭐 핸드폰이 켜진다고 해도 별 수 없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이 어두운 밤에 빛 하나없이 걸어가려니 오금이 저렸다. 도시에서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완벽한 어둠. 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한밤 중에 너무 조급하게 움직인 건가 싶은 생각에 후회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얼마나 더 걸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지만 감고 있는 듯한 완벽한 어둠으로 인해 방향감각마저 흐려지고 있었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네가 살던 세계와는 달라. 그 누구도 너를 도와주지 않아.’


일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것 하나만은 눌루스가 원래 살던 세계와 같았다. 완전히 이방인이라는 사실.


장님처럼 걷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자연스레 눈이 어둠에 적응한 모양인지 이제는 희미하게 형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그 때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같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면 몹시 느리다는 것.


뚜···.벅 뚜······벅


찰나의 순간. 눌루스의 머릿속에서는 수 만가지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누적된 부상과 피로로 인해 이렇게 걷다가는 죽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약 소리의 정체가 무카치라면? 레디에게 가기도 전에 개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괴물에게 찢겨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걷다가 죽는 것이 더 나은 생각같았다. 처량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어차피 사고가 났을 때 죽을 목숨이었기에 아쉬울 건 없었다.


눌루스는 아픈 몸을 이끌고 최대한 숨을 죽여 걸었다. 그러나 디셉의 영역은 모래 바닥이었기에 아무리 소리를 숨긴다고 해도, 사방이 고요한 한밤 중에는 쓸려내려가는 모래 소리가 파도소리만큼이나 시끄럽게 들렸다.


‘들켰나?’


아무리 조심스레 걸어봤자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걸으면 걸을 수록 상대방의 인기척보다 자신의 발소리가 더 시끄럽게 허공을 울리고있었다. 그 순간 뚜벅이는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젠장.’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한 눌루스가 황급히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무언가로 인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퍼억


생각할 것도 없었다. 들켰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 눌루스는 이를 꽉 깨물고 마음을 굳게 먹으려 애썼다. 어차피 이미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 눌루스의 얼굴에 밝은 빛이 비쳤다. 어둠 속에서 과하게 밝은 빛이 보이자 순간적으로 눌루스의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빛 너머에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뭐하냐? 여기서?”

“모,,,,모르?”

“너 뭐하냐고. 남의 집 앞에서.”

“너는 뭐하는데? 아지트에 있어야 되는 거아니야?”

“내 집인데 내 맘이지.”

“네 집이라고? 여기 레디 집이랬는데.”

“휴우.. 됐다. 따라오든지.”


모르가 빛을 거두고 앞장섰다. 눌루스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거운 발을 이끌고 모르의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치고박고 싸운지 얼마안된 상대를 생명의 은인으로 만나는 것은 무척 어색한 일이었다.


“나도 손전등 좀 줄 수 있어?”

“손,, 뭐?”

“손전등.”

모르가 짜증난다는 듯 눌루스를 확 돌아보았다.


“너,, 눈,,, 눈이 왜 그래?”


모르의 눈의 흰자와 검은자가 뒤바뀐 것처럼 모르의 눈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눌루스는 그 앞에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보여?”

“장난하냐?”


모르가 눌루스의 손을 그대로 낚아챈 뒤 뿌리쳤다.


“넌 사하도 쓸 수 없는 거야? 이건 뭐 루틀레스가 아니라 진짜 눌루스네, 눌루스야.”


모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가. 왼쪽 끝방.”

“너무 어두운데.”

“하아,,”


문을 열자 오히려 바깥보다 더욱 어두운 실내가 나타났다. 모르는 일부러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걸었다. 모르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손전등을 비춘 것처럼 환해졌다.


“오늘 최악의 날이네, 최악의 날.”


쿵쿵쿵쿵


어찌나 세게 걸음을 내딛는지 늙은 나무를 밟을 때 나는 끼익 소리가 완전히 묻힐 지경이었다.


“그거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라”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야? 한도 끝도 없네. 들어가.”

“레디랑 아는 사이야?”

“알바.”


모르의 대답이 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어깨에 치미는 고통으로 인해 바로 힘이 풀렸다. 이 녀석이 아까 그렇게 무자비한 녀석과 같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큰 집에 비해 단촐한 문앞에 도착하자 모르가 방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눌루스와 같은 천덕꾸러기 신세인지 구석진 곳에 위치한 옥탑방이었다.


“너는 안들어가?”

“내가 왜 들어가. 너 때문에 여기까지 왔구만. 내가 데려다준 거 비밀이다.”


모르가 들릴듯 말듯한 정도로 말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방안으로 들어가는 눌루스에게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쁜 애는 아니라는 일룸의 말이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레디?"


눌루스는 모르가 했던 대로 '사하'를 써보기 위해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줬다. 그런데 눈이 뽑힐 것 같은 피로감 말고는 달라진 점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그런 능력을 쓸 수 있게 될거라는 기대따위는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방 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누가 있는 것 같은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눌루스가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눌루스?"

"으악,,"


레디가 황급히 입을 막은 덕분에 눌루스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놀람의 표현을 대신했다.


"스캄의 저택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 나도 얹혀 사는 처지거든. 너네들이 올라오는 소리 때문에 이미 화가 잔뜩 나 있을거다."


레디가 씩 웃어보였다. 모르보다는 옅어서 평범해보였지만, 분명 눈에서는 '사하'라고 불리는 안광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날렵한 인상의 금발의 중단발 머리를 휘날리는 남자였다. 누가봐도 호감을 주는 밝은 인상의 사나이였기에 이런 저택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눌루스가 진정이 되자 레디는 방 안 쪽에 있는 마호가니 책상뒤에 낡은 가죽 의자에 몸을 싣었다.


오래된 모양인지 레디가 몸을 맡기는 대로 의자가 깊숙히 푹 꺼졌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니?"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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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넘형 훈련 24.05.28 4 0 12쪽
9 샤크마의 길 24.05.27 5 0 12쪽
8 묵시의 예언 24.05.24 6 0 11쪽
» 아지트, 깨어나다 24.05.23 9 0 12쪽
6 아지트, 깨어나다 24.05.23 7 0 12쪽
5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7 0 12쪽
4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6 0 12쪽
3 가문의 시련 24.05.13 5 0 11쪽
2 가문의 시련 24.05.10 10 0 12쪽
1 가문의 시련 24.05.09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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