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틀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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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키스킨
작품등록일 :
2024.05.09 2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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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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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크마의 길

DUMMY

각 가문의 신입 샤크마들은 1년간 파터의 휘하에서 생활한다. 파터는 4년간 이어질 캠프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1년간 샤크마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일종의 담당자같은 존재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은 파터를 통해서 걸러지며 위로 보고 되어야할 일과, 파터의 선에서 해결되어야할 일로 나뉜다. 파터는 각 가문의 샤크마들을 관리할 의무가 있으므로, 아직 완전한 1인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샤크마들의 대리자라고 볼 수 있다.


눌루스는 아직 부모님을 잃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누군가와 가까워질 마음도, 열심히 살아볼 마음 따위도 없었다. 그저 이 시간들을 한시라도 빨리 모면하고 원래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어느 곳에나 있는 오지랖 넓은 녀석 하나가 금새 눌루스의 옆자리를 꿰찼다.


"너 루틀레스라며? 난 코몬."


코몬이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눌루스도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인사에 응했다.


"아직 유니폼도 안 입었네?"

"입을 줄 몰라서."

"디셉 유니폼은 격식이랄게 없어.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돼. 그래서 보통은 전투 스타일에 따라서 입거든. 너는 어느 쪽이야?"


코몬이 주먹에 감긴 혁대를 자랑스레 내보였다.


"근접, 원거리? 어느 쪽이야? 보통 근접 전투 스타일인 경우에는 혁대를 손이나 발에 감는 경우가 많아. 가죽 끈이라고는 해도 감고 안감은 건 차이가 크거든. 데미지도 증가하지만 동시에 보호도 된단 말이지. 반면에 원거리 스타일은 이동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기동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착용해. 경우에 따라서 악세서리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근접이랑 원거리는 어떻게 정하는데?"

".. 루틀레스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이따가 파터 레디 수업에서 봐. 보통 샤크마들은 이미 어릴 때 다 정하고 오기는 하는데, 형식적으로 첫 담임 수업 때는 전투스타일 결정을 하거든. 그럼 일단, 지금은 이렇게."


코몬이 눌루스의 멀쩡한 반대쪽 어깨에 가죽띠를 둘둘 감았다. 어깨에 기분좋은 정도의 압력이 느껴지며 견장처럼 어깨 전체를 적절히 감싼 모양새가 됐다.


"이쪽 어깨는 박살나지 말라고."


눌루스의 얼굴에 웃음이 배시시 새어나왔다. 조건 없는 친절함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디셉의 담임은 레디였다. 1년생 담당자들을 보통 파터라는 호칭으로 칭한다고들 했다. 파터의 첫 수업은 코몬이 말해준대로, 전투 스타일 결정이었다.


"1년생 첫 수업에서는 전투 스타일을 결정하고, 알쿨루를 통과하는 게 과제다. 최초의 알쿨루는 바로 각 아지트의 파터와 진행한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어이, 거기 다들 진정하고. 나도 1년생 상대로 이러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아. 너희에게 행운일지는 모르겠다만 각 전투마다 내 공격 스타일을 랜덤으로 바꿀 예정이다. 나는 이렇게 한 발을 공중에 띄우고 있을거고, 너희를 견제하는 것 이외의 신체적인 해를 입을 만한 공격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레디가 왼쪽으로 무게 중심을 싣고 외다리로 섰다.


"너희의 공격이든, 뭐든 내 몸을 스치기만 하면 통과다. 시간은 무제한이지만, 경기장에서 떨어지면 끝이야. 간단하지?"

"스치지 못하면요?"


샤크마 중 하나가 묻자 레디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주 좋은 질문이야! 그러면 샤크마 생활도 오늘로 끝인거다."

"어제 가문의 시련에서 샤크마로 인정받은 건데요?"

"그건 어제 이야기지. 어제 샤크마라고 오늘도 샤크마라는 법이 있나?"


샤크마들의 분위기가 자못 엄숙해졌다. 그저 평범한 수업 중 하나라고는 하나 사실상 샤크마로서의 존재가 달린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참고로 알쿨루는 모든 아지트의 샤크마가 모여서 진행된다. 이기기만 한다면 더없이 뽐낼 수 없는 기회가 되겠지."

"지면 개쪽일거고."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 크지 않은 키. 눌루스의 어깨를 박살내버린 모르였다. 레디는 다시 특유의 사람좋은 얼굴로 실실거렸다.


"저렇게 파터 말에 끼어들면 안되겠지? 그럼, 바로 시작하자."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모르였다. 모르는 교실 앞으로 나가 교탁 위에 있는 세 가지 물건을 천천히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낡은 단검, 장창, 모르가 늘 소지하고 다니는 것과 닮은 돌멩이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창을 만질 때 까지만 해도 아무런 특이점이 없었지만, 마지막 돌멩이를 잡으려는 순간 돌멩이가 손 사이로 살아있는 것처럼 빠져나갔다. 모르가 다시 손을 뻗었으나, 마치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일정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밀려났다. 샤크마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레디도 마찬가지로 뜻 모를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르는 몇 번 더 돌멩이를 잡으려고 시도하다가 이내 그만두고 다음으로 옮겨갔다. 네번째 물건을 잡으려는 찰나, 레디가 말했다.


“굳이 그것까지 시험해 볼 필요는 없겠어. 모르는 도넘형 원거리다. 그럼 알쿨루 때까지 대기하도록.”


뒤이어 다른 샤크마들도 똑같이 전투스타일을 판단하기 위해 나섰다. 모르와 다른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서른명가량 되는 샤크마들이 대부분 ‘신체형’이었다. 가죽끈을 주먹에 감은 것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듯이 코몬도 ‘신체형’이었다. 돌멩이가 놀라울 정도로 손가락 사이를 유연하게 빠져나간 모르와 실록 두 사람을 보았을 때만 샤크마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그 외의 서른 명 가량의 샤크마들이 나서는 동안에는 무미건조한 박수소리만 가득했다.


그러나 ‘도넘형’인 모르와 실록이 나섰을 때조차 레디는 마지막 네 번째 물건을 만지는 것을 허락지는 않았다.


“아직 안한사람?”


레디가 샤크마들을 쭈욱 훑고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눌루스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눌루스는 긴장한 듯 침을 한 번 꿀떡 삼키고 앞으로 나섰다. 모든 물체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손에 잡힌다면 어떤 전투 스타일도 가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오해를 풀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마음 한 켠에 피어났다.


“후우.”

“그렇게 긴장할 필요없어.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네가 갖추고 있는 능력을 보는 거야.”


눌루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첫 번째 단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칼자루에는 낡은 천이 아무렇게나 감겨있었다. 천은 이미 삭을대로 삭아, 누렇게 빛바랜 상태였다. 한편으로는 이상한 결벽증이 발동하여 손에 닿는 것조차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눌루스는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하고 단번에 칼자루를 쥐었다. 칼자루는 물리법칙에 따라 자연스레 손 안에 들어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여기에 있는 다른 녀석들처럼 그런 마법같은 능력따위는 없으니까.


눌루스는 곧바로 다음 장창을 집었다. 눌루스가 의식의 긴장감을 망가뜨린 탓인지 레디가 주의를 주었다.


“천천히. 너무 빨라.”


눌루스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지막이다. 눌루스의 마음 다른 깊은 곳에서는 자신도 ‘도넘형’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피어올랐다. 서른명 중에 겨우 두 세명 뿐인 존재. 자신도 모르와 같은 도넘형이라면 녀석같은 말도 안되는 기술을 쓸 수 있다는 뜻이 될테니까. 눌루스는 은밀한 바람을 잠재우며 돌멩이로 손을 뻗었다. 손이 닿기 직전 돌멩이가 살짝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눌루스는 살짝 고개를 들어 레디를 바라보았다. 레디도 본걸까? 그의 표정은 의중을 파악할 수 없이 알쏭달쏭한 모습이었다. 눌루스는 이윽고 주먹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펴보았을 때, 그의 손에는 돌멩이가 지극히 평범하게 놓여있었다.


눌루스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레디쪽을 바라보았다. 레디는 생각에 젖은 듯 눈썹을 밀어올렸다.


“저는 전투 능력이 없는 거죠?”

“글쎄다. 이렇게 아무 반응이 없을 수가 있나. 그러면 네 번째 물건까지 잡아봐.”


레디의 말에 샤크마들이 소리없이 동요했다. 모르도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마냥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번째 물건은 손 한뼘만한 크기의 두꺼운 책이였다. 눌루스는 천천히 손을 뻗어 책을 잡았다. 책은 앞에 세 가지 물품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이 그의 손에 안착했다. 눌루스의 마음에는 안도감과 시원섭섭한 감정이 몰아쳤다. 물론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살던 세계에서는 보지 못했던 강함과 마법같은 능력들에 저도 모르게 매혹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건 당연히 손에 잡혀야 되는 거고. 첫 번째 페이지를 펴서 읽어봐.”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눌루스는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첫 번째 페이지를 폈다. 글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문자들이 페이지를 시커멓게 덮고 있었다. 눌루스는 마지막으로 깊게 심호흡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자, 마치 감았던 눈이 뜨이는 것처럼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불이 켜지고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지니, 세상에 빛을 가져오기 위함이라.”


레디의 말대로 첫페이지의 글을 읽었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책이 손 사이로 빠져나간다거나, 물건이 공중으로 떠오른다던가 하는. 오직 모르만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눌루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눌루스는 괜히 멋쩍은 탓에 뒤통수를 긁으며 웅얼거렸다.


“더 읽을까요?”

“눌루스도 원거리 도넘형. 미세하기는 하지만, 돌멩이가 아까 살짝 움직였다. 아마 루틀레스로 오래 생활하다보니 도넘이 희석된 탓일거야. 그럼 모두 알쿨루 때가지 대기하도록.”


샤크마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며 눌루스를 흘기며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용이야 안 들어봐도 뻔했다. 저 정도 움직이는 게 무슨 도넘형이라고, 그러면 나도 도넘형이겠네. 뭐 이런 것들. 그 때 레디가 눌루스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속삭였다.


“눌루스는 나 좀 보고 가. 기도서도 챙겨오고.”


첫 줄을 읽은 순간 기도서라는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 이런 식의 문체로 쓰인 글은 기도서 말고는 없으니까.


“그거 어떻게 한거야?”


샤크마들이 전부 빠져나가자 왠지 늑장을 부리고 있던 모르가 눌루스에게 다가왔다.얼굴에 가득했던 적개심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히려 지금 모르의 눈에 감도는 빛은 동경에 가까웠다.


“기도서. 어떻게 읽은거야?”

“기도서인건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생겼잖아. 그렇게 작고 두꺼운게 기도서말고 더 있겠어?”


모르가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 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

“하필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이래서 레디가 네가 흥미로운 녀석이라는 얘기를 했구나. 이따가 아지트에서 봐.”


모르는 돌멩이를 앞으로 던지더니 변위를 사용해서 앞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르가 사라진 위치에는 덩그러니 돌멩이 하나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눌루스는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조심스레 주웠다. 눌루스의 손에는 한참 작은 돌멩이었지만 손에 잡히는 감각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그 순간 레디가 그의 옆을 지나는 바람에 눌루스는 물건을 훔치다가 걸린 사람처럼 자기도 모르게 돌멩이를 주머니 속 깊은 곳에 숨겼다.


“제가 재능이 없어서 부르신 건가요? 이제 드디어 제 말을 믿어주시는 거에요?”

“그러면 좋겠지만, 네 재능이 생각보다 엄청난 것 같아서 말이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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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넘형 훈련 24.05.28 4 0 12쪽
» 샤크마의 길 24.05.27 5 0 12쪽
8 묵시의 예언 24.05.24 6 0 11쪽
7 아지트, 깨어나다 24.05.23 8 0 12쪽
6 아지트, 깨어나다 24.05.23 7 0 12쪽
5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7 0 12쪽
4 아지트, 깨어나다 24.05.22 6 0 12쪽
3 가문의 시련 24.05.13 5 0 11쪽
2 가문의 시련 24.05.10 10 0 12쪽
1 가문의 시련 24.05.09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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