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주치의, 노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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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산
작품등록일 :
2024.05.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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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기다려라 오치수

DUMMY



검안대에 놓인 시신의 모습은 참혹했다. 얼굴은 두 눈이 패인 채로 뻥 뚫려 있었고, 고샅엔 음경과 고환이 함께 사라지고 없었으며, 양쪽 손가락도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이건 틀림없는 치정 관계에 의한 살인이야.”

유영교는 확신에 차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자기 여자를 쳐다보던 눈, 그리고 자기 여자의 몸을 만지던 손가락, 거기에 더해서 결정적으로 자기 여자와 정을 통한 음경과 고환까지 잘라갔다는 것은 엄청난 질투심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거든.”

“아, 예...”




중례는 유영교의 말을 대충 받아넘기며 시신을 면밀히 살폈다. 중례의 관심은 살인의 동기가 아니라 사인이었다. 이미 한성부 소속 오작인이 검안을 했지만 사인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유영교가 별도로 중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중례는 발견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건일지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시신은 청계천 상류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패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록을 분석하자면 발견 당시 시신은 이미 죽은 지 닷새는 지난 상태로 보였다. 그럼에도 시신은 부패가 심하지는 않았다. 음력 5월의 더운 날씨에서 5일 이상, 그것도 습기가 많은 계곡에 방치된 경우라며 심하게 부패해야 정상이었다.




중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아냈구나 그렇지? 도대체 사인이 뭐냐? 손발을 묶은 자국은 있는데, 목 졸린 자국도 없고, 칼에 찔린 자국도 없어. 그렇다고 입을 틀어막아 죽인 것도 아니고, 독을 쓴 흔적도 없고...”

유영교는 이미 검안 과정에서 파악한 내용들을 자기 말처럼 읊어대고 있었다.

“이 사람은 과다출혈로 죽은 것입니다.”

“과다출혈?”

“네. 범인은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 눈알을 빼고 생식기와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손목에 생긴 밧줄의 흔적이 발목의 흔적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난 점을 고려할 때, 신체의 일부를 잘라 낸 이후에는 위로 매달아 계속 피를 뽑아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돼지를 잡듯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피를 모두 뽑아냈다는 뜻인가?”

“물론 피가 일정 정도 빠졌을 때 이미 피해자는 사망했겠지요. 그런데 범인은 피해자가 죽은 뒤에도 계속 피를 뽑아냈습니다.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 죽은 지 한참 됐는데도 부패가 심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역시 노중례야. 이러니 내가 자네를 특별히 부른 것이지.”




“그런데 피해자 신원은 밝혀졌습니까?”

“아직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네. 호패도 없이 나체로 버려진 시신의 신원을 밝히는 것이 그리 쉽겠는가? 그런데 머리에 옥관자를 한 것으로 봐서 필시 양반일 것이네. 그래서 지금 사령들을 풀어 최근에 행적이 묘연한 양반을 찾고 있네. 어쨌든 범인이 보통 잔인한 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네. 신체를 훼손한 것도 모자라서 피를 모두 뽑아낸 것을 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은 아니란 말이지.”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그나저나 자네 또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니, 몸조심하게. 명나라 다녀온 지도 얼마 안됐는데, 이번에는 배까지 타고 바다를 건넌다니, 자네 올해는 역마살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나 보네.”




중례는 이틀 전에 대마도 정벌군의 종군 의원으로 차출되었다. 그 때문에 당장 정벌군에 합류해야 했다. 중군과 우군은 이미 아침에 출정하였고, 좌군에 예속된 중례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거제도로 떠날 예정이었다.

“배 멀미나 하지 않아야 할 텐데, 그것이 걱정입니다.”

“너무 걱정 말게. 주변에 알아보니, 거제도 들어가는 뱃길은 그리 멀지 않다고 하네. 어쨌든 별 탈 없이 잘 다녀오게. 그리고 다녀오면 꼭 들러주게.”

유영교는 한성부 정문 앞까지 나와 배웅하며 몇 번이나 몸조심 하라고 당부했다. 중례는 유영교와 헤어진 후 빠르게 육조거리를 벗어나 운종가로 길을 잡았다. 다음 날 낮에 좌군에 합류하기 전까지 시간 여유가 있었다. 운종가로 가서 오희묵의 점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오희묵과 잘 사귀어 둔다면 그의 아버지 오치수에게도 접근할 기회가 생길 것으로 판단했다.




“오치수 이놈! 기다려라, 나 노중례가 반드시 네 놈의 흉계를 밝혀내고 말 것이다.”

중례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랬더니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중례는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혹여 오희묵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애써 냉정을 되찾았다.

오희묵의 말대로 그의 점포를 찾는 것은 쉬웠다. 시전 초입에 있는 포목점에 들러 오희묵의 이름을 댔더니 단번에 알려줬다.

“오, 노 의원, 어서 오게.”

오희묵은 기대 이상으로 중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심지어 주변 점포 사람들에게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칭송을 쏟아내기도 했다.

“요동 벌판에서 정재술 대감마님의 목숨을 구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라오. 천하에 둘도 없는 명의란 말이오, 명의.”

오희묵은 마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명의를 자기가 이제 막 발굴이라도 한 듯 너스레를 떨며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후 오희묵은 중례의 소매를 잡아끌며 자기 집으로 이끌고 갔다. 다음날 거제도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자, 어차피 한성에서 하룻밤을 묵을 거라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는 말까지 했다.




오희묵은 아버지 오치수의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오치수의 집은 제법 규모가 컸다. 솟을 대문까지 갖춘 육십 여 칸의 기와집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며 중례는 드디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구나 싶었다. 거기다 필시 오치수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손에서 진땀이 났다.

중례는 오치수를 만날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오치수는 출타 중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노 의원 자네를 꼭 소개하고 싶네. 이미 자네 이야기는 말씀 드렸네. 아버지께서도 자네를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네.”

오희묵은 행랑체에서 멀지 않은 작은 사랑에 술상을 차려 놓고 중례를 대접했다. 오희묵은 여러 차례 술을 권했지만 중례는 다음 날 좌군에 합류해야 한다는 핑계로 술은 사양했다. 하지만 하도 권하는 통에 한 잔만 받아 마셨다. 그러자 오희묵은 이내 한 잔을 더 권했다. 중례는 강권을 이기지 못해 반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자네 충고를 듣고 건강을 생각해서 요즘 나도 술을 조심하고 있네만, 그래도 생명의 은인이 내 집을 찾아줬는데, 어떻게 술 한 잔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원래 말술이라 요 정도 술은 끄떡없네.”

오희묵은 정말 술병을 몇 개나 비워도 말짱했다. 중례도 말리지 않았다. 오희묵이 술 때문에 다시 병이 재발한다면 이 집을 쉽게 드나들 구실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중례는 더 이상 오희묵의 건강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오치수에게 원수 갚을 생각만 하였다.

오희묵은 말이 많은 자였다. 또한 쉽게 속을 드러내는 성격이기도 했다. 중례는 오희묵이 술이 달라올라 얼굴이 불콰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넌지시 물었다.

“정재술 대감 댁과는 친분이 오래 된 것 같던데요?”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고... 아직 십 년도 안됐는데 뭐.”

그렇게 운을 떼더니, 오희묵은 혀가 약간 꼬부라져서는 적어도 자기가 아는 내용은 숨김없이 떠들어댔다.




“한 십 년 전쯤에 아버지께서 의주 목사 밑에서 책방 노릇을 했거든. 그때 말이야... 음 이건 자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해주는 말인데... 다른 사람에겐 절대 비밀이야, 비밀, 알았지? 어쨌든... 그때 아버지가 중국 상인들과 거래를 좀 했는데, 말하자면 밀거래인데...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의주에서는 밀거래가 흔하거든. 하여튼... 잘 들어봐.”

오희묵에 말에 따르면 오치수와 정재술을 연결시켜 준 것은 정재술의 아들 정충석인데, 오치수와 정충석은 중국에서 어떤 물건을 몰래 들여오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오희묵도 정확한 내막은 모르는 눈치였다. 중례는 당시 의주 목사였던 윤철중의 이름을 슬쩍 거론했지만, 윤철중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나의 결론은 그거야. 정충석이 그 놈만 만나지 않았다면 다 좋다는 거지.”




오희묵은 정충석에 대한 악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 놈은 한 마디로 나쁜 놈이야. 아니지 그 정도로는 안 되지. 정충석 그 놈은 천하에 둘도 없는 악질에다 마구니 같은 놈이야, 마구니...”

“아, 예... 저도 그때 봤을 때, 좀 무섭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렇지, 그 놈 무서운 놈이지. 자네도 조심해야 될 거야. 그 놈, 사람 죽이는 걸 무슨 개 잡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놈이야.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그 놈이 죽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지금도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의 멱을 따고 있을 지도 몰라.”

오희묵은 그쯤에서 눈빛이 희미해졌다. 술기운에 졸음이 쏟아지는 눈치였다.

“나 소피 좀 보게 오겠네. 어디 가면 안되네. 금방 다녀올 테니... 어 취한다. 오늘 따라 왜 이리 술이 올라...”

오희묵은 그렇게 나간 뒤에 감감 무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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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67화 마지막화 - 병마와 의술 그리고 죽음 +1 24.07.04 38 1 11쪽
66 제66화 떠나는 주상, 찾아온 병마 24.07.04 23 0 12쪽
65 제65화 훈민정음을 공표하는 세종 +1 24.07.03 28 0 11쪽
64 제64화 문자 창제를 결심하는 주상 24.07.02 29 0 11쪽
63 제63화 온갖 병으로 시달리는 임금 24.07.01 53 0 15쪽
62 제62화 오치수의 몰락 24.06.30 33 0 10쪽
61 제61화 늙은 호랑이 사냥 24.06.29 29 0 12쪽
60 제 60화 마침내 형틀에 묶인 오치수 24.06.28 50 0 10쪽
59 제59화 스승 탄선의 유언 그리고 그들의 결합 24.06.27 44 0 11쪽
58 제58화 도성에 몰아닥친 역병 24.06.26 43 0 10쪽
57 제57화 이방원의 죽음을 지켜보는 소비 24.06.25 36 0 16쪽
56 제56화 나의 후궁이 되어 주겠느냐? 24.06.24 39 0 9쪽
55 제55화 소비의 신비로운 침술 24.06.21 40 0 12쪽
54 제54화 양녕의 병을 치료하고 임금의 신임을 얻은 노중례 24.06.20 41 0 12쪽
53 제53화 마침내 확인된 아버지의 결백 24.06.19 59 1 9쪽
52 제52화 결정적인 증인 24.06.18 39 0 14쪽
51 제51화 일망타진 24.06.17 41 1 8쪽
50 제50화 쥐도 새도 모르게 24.06.16 36 1 8쪽
49 제49화 이놈, 반드시 너를 죽인다 24.06.16 43 1 11쪽
48 제48화 하늘의 단죄, 다시 생모의 무덤을 찾은 소비 24.06.15 41 0 11쪽
47 제47화 마음을 털고 일어나는 소비 24.06.15 34 0 8쪽
46 제46화 영영 이별 24.06.14 39 0 12쪽
45 제45화 대마도 정벌군 속에서 만난 중례와 상례 24.06.13 38 1 14쪽
44 제44화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된 가이 24.06.12 41 1 10쪽
43 제43화 국무 가이의 실종 24.06.11 44 0 13쪽
42 제42화 호랑이굴에서 만난 원수 24.06.10 39 1 9쪽
» 제41화 기다려라 오치수 24.06.09 43 0 10쪽
40 제40화 집현전을 키우리라 24.06.08 46 1 13쪽
39 제39화 대마도 정벌에 나서는 이방원, 햇병아리 임금의 자괴감 24.06.06 5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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