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주치의, 노중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고요산
작품등록일 :
2024.05.11 06:15
최근연재일 :
2024.07.04 06:50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4,173
추천수 :
31
글자수 :
351,501

작성
24.06.14 08:07
조회
38
추천
0
글자
12쪽

제46화 영영 이별

DUMMY



중례를 만난 기쁨에 잠시 동안 생생한 모습을 보이던 상례는 한 순간에 다시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고 하더니, 갑자기 팔을 툭 떨어뜨리고 늘어져버렸다.

“상례야!”

깜짝 놀란 중례는 다급하게 침을 꺼냈다. 기혈을 뚫어 의식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의식이 돌아와야 약을 먹이든 죽을 먹이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발, 상례야...”




중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시침을 했다. 침을 모두 뽑은 뒤에는 뜸을 놓고, 약낭에서 구급약을 꺼내어 씹어서 먹였다. 다행히 일 각 쯤 지나자, 상례의 얼굴에 핏기가 되살아났다. 맥을 잡아보니 위급한 상황은 넘긴 것 같았다.

중례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왜 처방이 듣지 않는 거지? 다른 사람은 다 들었는데, 왜 상례만 회복을 못하는 거지?”




중례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여질은 소합향원으로 웬만큼 치료가 된 듯했다. 하지만 여질 외에 뭔가 다른 병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학질이 아니란 말인가?”

중례는 여질에 학질이 겹친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해 보았다.

“학질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중례는 머릿속으로 의서의 내용들을 떠올려보았다. 학질과 유사하지만 학질이 아닌 질병에 대해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저 머리만 복잡할 뿐이었다.

생각 끝에 중례는 함께 있던 지방 의원들의 추천을 받아 거제도에서 제법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갔다. 혹 그 의원에게서 의서를 빌려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오, 댁이 여질을 고쳤다는 의원이오?”




중례가 찾아가자 김인중이라는 그 의원이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양 활인원에 소속된 의원인데, 혹 의서가 있으면 빌려볼 수 있겠소?”

“이 시골의사가 가진 의서라고 해봤자, 몇 권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고자 한다면 내어 드리리다.”




김인중은 자기가 가진 의서 십여 권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가장 기본적인 의서에 불과했다. 그 내용들은 이미 중례의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김인중이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까짓 의서 십여 권만 보고 의원입네 하고 병자를 받는가 싶었다.

“실례가 많았소이다.”




중례는 김인중이 내민 의서들을 후루룩 살펴보고는 일어섰다. 그러자 김인중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혹 병자가 차도가 있다가도 이내 몽롱해지면서 정신 줄을 놓곤 합니까?”




그 말을 듣고는 중례는 다시 앉으며 물었다.

“맞습니다. 내가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알았습니까?”

“여질이 달리 여질이겠소? 여러 질병이 섞여 있어 잘 고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오? 나도 여러 차례 여질 환자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열 명이 여질에 걸리면 꼭 둘 은 죽고, 셋은 낫지 않고 애를 먹였소. 그런데 노 형은 마흔이 넘는 병자 중에 둘만 죽고, 하나만 애를 먹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그러면 의원께서는 낫지 않고 애를 먹이던 병자들을 치료한 적이 있겠군요?”

“물론 있지요. 하지만 그 중에 절반은 고치지 못했소.”

“어쨌든 절반은 고쳤다는 말 아닙니까? 절반은 어떻게 고쳤습니까?”

“나는 그저 까무릇(반하半夏) 삶은 물과 함께 박쥐 똥과 주사(朱砂, 붉은 모래)를 섞어 만든 환을 먹여 보았소. 그랬더니 낫지 않고 애를 먹이던 병자 중에 절반은 회복 하더이다.”




“여러 의서를 두루 살펴봤지만, 그런 처방은 본 적이 없소.”

“물론 의서에 있는 처방은 아니오. 그저 나도 돌아가신 부친께서 해오시던 것을 따라 했을 따름이오. 그런데 우리 부친께서 생전에 하신 처방 중에 별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

“그게 무엇이오?”




“여질에 걸린 뒤에 오래도록 낫지 않아 애를 먹인 병자가 하나 있었는데, 부친께서는 그 사람에게 특별한 처방을 하나 내려 고쳤어요.”

“그게 어떤 처방이오?”

“앞에 말한 그 처방으로 열병은 낫기는 나았는데, 어지럼증과 구토증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또 사물이 자꾸 갈라져서 보인다고 하였소. 그래서 부친께서 내린 처방이 매 끼니를 생쌀을 씹어 먹고, 한 달 동안 맨 발로 산을 타게 하는 거였소.”

“맨발로 산을 타요?”

“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정말 나았습니다.”

“혹 그렇게 해서 나았다는 그 사람을 만나볼 수 있습니까?”

“물론이오. 그 사람이 바로 내 사촌 동생인데, 집을 알려 줄 테니 가서 한 번 만나 보시오.”




중례는 김인중이 알려준 그 기상천외한 처방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까무릇 삶은 물이 열을 내리는데 좋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주사와 박쥐 똥으로 환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것이 악질적인 여질을 고쳤다고 하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중례는 여질로 온갖 고생을 하다 김인중 부친의 처방으로 나았다는 그 사촌 동생 김인국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김인국이 앓았다는 그 여질의 증세가 상례와 매우 유사했다. 뿐만 아니라 김인중의 말 대로 그는 여질의 후유증으로 엄청난 어지러움증에 시달렸는데, 큰아버지인 김인중 부친의 강압적이고 지엄한 처방을 받아들여 매일같이 생쌀을 씹어먹고 맨발로 산을 탔더니, 한 달 만에 완쾌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중례는 상례에게 같은 처방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선 까무릇과 주사, 박쥐똥을 구하여 까무릇 삶은 물에 박쥐똥과 주사로 만든 환을 끼니마다 서른한 알씩 먹였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사흘 만에 상례의 몸에서 열이 내렸다. 하지만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제대로 걷지 못하는 증세는 여전했다. 또한 음식 냄새를 맡으면 토하기도 했다. 그래서 중례는 김인중에 일러준 대로 상례에게 매 끼니로 생쌀을 먹게 하고, 매일같이 함께 산을 탔다. 물론 상례는 맨발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계속하자, 정말 거짓말처럼 상례의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어지럼증도 조금씩 줄어들고, 구토증도 많이 줄어 웬만한 음식은 삼킬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한 달만 계속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하니, 그 말을 믿고 계속 해보자.”




중례는 그런 말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상례를 도닥였다. 그런데 상례를 데리고 산을 타기 시작한 지 열흘 쯤 지났을 때, 대마도 정벌에 나섰던 병력이 돌아왔다. 중례가 듣기로는 대마도 정벌에 나선 조선군은 많은 왜구들을 죽이고, 대마도에 잡혀 있었던 조선인과 중국인 수백 명을 구출함으로써 대단한 승리를 거뒀다 하였다. 그런데 막상 돌아온 조선 병사들 중에는 부상을 입은 자가 수백 명이었다. 또한 돌아오지 못한 병사가 수백 명을 헤아린다 하였다. 그 바람에 중례는 더 이상 상례의 치료에 전념할 수 없었다. 지방의원 셋과 함께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이종무는 중례를 불러 물었다.

“역병을 앓던 병자들은 모두 어찌 되었는가?”




그 말을 듣자, 중례는 상례를 한성으로 데려갈 좋은 기회라 여겼다.

“다섯 중에 넷은 완쾌되어 병영으로 돌아갔습니다만, 병사 하나는 아직 낫지 않아 치료 중입니다.”

“수고했네. 그런데 완쾌되지 못한 병사의 상태는 심각한가?”

“네, 아직 제대로 걷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허, 저런. 안됐구나.”




“듣자하니, 그 병사는 전라도엔 일가친척 하나 없는 사람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돌볼 사람도 없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 가능하다면 활인원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싶습니다. 마침 한성에는 일가친척도 있다고 합니다.”

“내 그 병사의 지휘관을 불러 상의해보겠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이종무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례가 몇 번이나 이종무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그때 이종무는 거제도를 떠나고 없었다. 조정의 명령에 따라 고성의 구량량에 함선을 집결하고 다시 대마도 정벌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종무가 2차로 대마도 정벌에 나서기로 한 날은 7월15일이었다. 그런데 그 얼마 전부터 바다가 심상치 않았다.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하루는 강풍이 몰아쳐 포구에 정박해둔 병선이 7척이나 파손되었다. 거기다 배 한 척이 풍랑에 뒤집히는 바람에 수군 7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 이후에도 거센 바람이 다시 몰아쳐 함선 8대가 바다로 밀려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바람에 이종무는 2차 출정을 포기해야 했다.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중례는 고성으로 갔다. 어떻게 해서든 이종무를 만나 상례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의도였다. 그 무렵, 상례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김인중의 말 대로 끼니를 먹을 때마다 생쌀을 함께 먹고, 매일같이 산을 타게 했더니, 한층 어지럼증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완쾌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어지럼증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상례의 어지럼증은 아침이 가장 심했다. 자고 일어난 직후엔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 낮에 맨발로 한참을 산을 타면 그 무렵부터 어지럼증이 완화되곤 했다. 중례는 상례의 그런 증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의서를 뒤져도 상례와 같은 병증을 기록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니 마땅한 처방을 발견할 수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오로지 김인중이 말한 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다.




구량량 병영을 찾은 중례는 잠도 자지 않고 이틀을 꼬박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잠시나마 이종무를 만날 수 있었다. 중례는 이종무에게 상례의 몸 상태를 설명하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소인이 능력이 닿은 대로 온갖 처방을 다해보았지만, 더 이상 병증을 호전시킬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활인원으로 데려가 치료하게 해주십시오. 활인원에는 저의 스승 탄선 스님이 계시니, 필시 마땅한 처방을 내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았다. 내 곧 전라도 수군에 통보하고 그 병사를 활인원으로 데려가 치료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이종무의 확답을 얻어낸 중례는 곧장 거제도로 돌아와 상례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상례야, 이제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중례는 누워있는 상례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말했다. 그런데 상례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할 줄 알았는데, 그저 희미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혀 형님, 어제부터 자꾸 몸이 늘어지고... 팔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




그러고 보니 얼굴에 핏기도 없고, 음성도 몹시 떨렸다. 거기다 입에서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한 순간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다.

“상, 상례야!”

중례가 상례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상례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몸이 축 늘어지더니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중례가 당황하여 맥을 짚었더니, 맥이 뛰지 않았다. 급히 인중에 침을 꽂았지만 소용없었다. 허리춤에서 구급약을 꺼내 씹어서 입에 넣어줬지만 전혀 삼키지 못했다. 가슴에 귀를 대어보니, 심장이 뛰지 않았다. 코끝에 손을 갖다 대도 전혀 콧김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침을 꺼내 가슴을 찔러 보기도 하고, 모든 혈에 침을 있는 대로 다 꽂아보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혈이란 혈엔 모두 뜸을 떴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그래도 중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상례의 가슴을 마구 두드려도 보았고, 심지어 입에다 숨을 불어넣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례의 몸은 점점 차갑게 굳어만 갔다.

중례는 온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상례의 몸에 엎드려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뒤 늦게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지방 의원들이 상례의 몸에서 그를 가까스로 떼어놓자, 발악을 하며 울부짖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종대왕의 주치의, 노중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 소설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24.07.04 31 0 -
67 제67화 마지막화 - 병마와 의술 그리고 죽음 +1 24.07.04 38 1 11쪽
66 제66화 떠나는 주상, 찾아온 병마 24.07.04 22 0 12쪽
65 제65화 훈민정음을 공표하는 세종 +1 24.07.03 28 0 11쪽
64 제64화 문자 창제를 결심하는 주상 24.07.02 29 0 11쪽
63 제63화 온갖 병으로 시달리는 임금 24.07.01 53 0 15쪽
62 제62화 오치수의 몰락 24.06.30 33 0 10쪽
61 제61화 늙은 호랑이 사냥 24.06.29 28 0 12쪽
60 제 60화 마침내 형틀에 묶인 오치수 24.06.28 50 0 10쪽
59 제59화 스승 탄선의 유언 그리고 그들의 결합 24.06.27 44 0 11쪽
58 제58화 도성에 몰아닥친 역병 24.06.26 43 0 10쪽
57 제57화 이방원의 죽음을 지켜보는 소비 24.06.25 36 0 16쪽
56 제56화 나의 후궁이 되어 주겠느냐? 24.06.24 38 0 9쪽
55 제55화 소비의 신비로운 침술 24.06.21 40 0 12쪽
54 제54화 양녕의 병을 치료하고 임금의 신임을 얻은 노중례 24.06.20 41 0 12쪽
53 제53화 마침내 확인된 아버지의 결백 24.06.19 58 1 9쪽
52 제52화 결정적인 증인 24.06.18 39 0 14쪽
51 제51화 일망타진 24.06.17 41 1 8쪽
50 제50화 쥐도 새도 모르게 24.06.16 35 1 8쪽
49 제49화 이놈, 반드시 너를 죽인다 24.06.16 43 1 11쪽
48 제48화 하늘의 단죄, 다시 생모의 무덤을 찾은 소비 24.06.15 41 0 11쪽
47 제47화 마음을 털고 일어나는 소비 24.06.15 33 0 8쪽
» 제46화 영영 이별 24.06.14 38 0 12쪽
45 제45화 대마도 정벌군 속에서 만난 중례와 상례 24.06.13 37 1 14쪽
44 제44화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된 가이 24.06.12 41 1 10쪽
43 제43화 국무 가이의 실종 24.06.11 42 0 13쪽
42 제42화 호랑이굴에서 만난 원수 24.06.10 39 1 9쪽
41 제41화 기다려라 오치수 24.06.09 42 0 10쪽
40 제40화 집현전을 키우리라 24.06.08 46 1 13쪽
39 제39화 대마도 정벌에 나서는 이방원, 햇병아리 임금의 자괴감 24.06.06 53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