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소비의 신비로운 침술

천달방 신궁(지금의 창경궁)을 나선 주상과 상왕 이방원이 사냥을 떠났다. 소비는 사냥 행렬에 따라가지 않고 풍양궁으로 바로 갔다. 풍양궁은 이방원이 왕위에서 물러난 뒤에 지은 이궁으로 한성에서 백 리도 넘게 떨어져 있었다. 이방원은 대비 민씨가 죽기 전부터 자주 그곳에 머물곤 했다. 민 씨가 살아 있을 때 소비도 두어 번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풍광이 아름답고 휴식하기 좋은 곳이었다. 대비 민씨가 죽은 후로 소비는 경자년(1420년) 시월부터 줄곧 상왕의 건강을 돌봐왔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 풍양궁에서 보냈다. 소비가 상왕을 돌보게 된 것은 오로지 주상의 뜻이었다. 왜인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승려 의관 평원해가 상왕을 그림자처럼 호종하며 건강을 돌보고 있었지만, 주상은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소비를 상왕전에 딸려 붙여 평원해를 돕도록 했다.
이방원은 3년 전인 기해년(1419년) 5월부터 중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이방원의 목 위에 작은 종기가 났었는데, 이를 등한시하고 목욕을 하다 덧나는 바람에 중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평원해가 재빨리 조치한 덕분에 치명적인 상황은 모면했다. 그럼에도 구안와사로 인해 입이 돌아가고 한 쪽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았다. 때문에 소비가 처음 만났을 때 이방원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늘 벌린 입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소비는 침과 뜸으로 거의 1년여를 치료한 끝에 기어코 이방원의 입과 눈을 회복시켰고, 이후로 이방원은 소비를 절대적으로 신임하여 어디를 가든 꼭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 사냥 길엔 소비를 풍양궁에 떨궈놓고 갔다. 이방원은 전에 없이 건강에 자신감을 보였다.
“산길이 험하니 아녀자가 따라 갈 곳이 아니다. 너는 풍양궁으로 먼저 가서 푹 쉬고 있거라.”
그렇게 사냥을 떠난 날이 이틀 전인 4월 12일이었다. 그날부터 이틀 동안 이방원은 주상을 대동하고 산을 헤집고 다니며 사냥을 했고, 잠은 인근의 영평현(지금의 포천 지역)에서 잤다. 그 덕에 소비는 정말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풍양궁 안엔 궁을 돌보는 차비노와 서리들, 그리고 군졸 몇 명뿐이었다. 시어머니 같이 구는 상궁들이나 늘 시샘어린 눈으로 보는 나인들도 모두 영평에 머물고 있는 터라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소비는 풍양궁 수각(水閣)에 앉아 가만히 볕을 즐기고 있었다. 그곳은 이방원이 좋아하는 장소였다. 자그마한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 만든 정자였다. 이방원은 볕이 따뜻한 날이면 자주 그곳에 누워 침을 맞곤 했다. 언제가 침을 맞던 이방원이 소비에게 물었다.
“내 얼핏 들었는데, 네 어미가 국무였던 가이라고 하던데 맞느냐?”
“그렇습니다.”
“가이는 남편이 없었는데, 어찌 네가 가이의 딸이 되었느냐?”
“어머니께서 신당에 버려져 있던 저를 주워서 길렀다 합니다.”
“음,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친부모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것이냐?”
그 물음에 소비는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이방원이 말을 이었다.
“어허, 내가 괜한 것을 물었구나.”
그때 소비는 속에서 불길 같은 것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내 부모는 네 놈이 죽이지 않았느냐 하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은 탓이었다. 소비는 이방원을 대할 때마다 그 뜨거운 불길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원수이기 전에 의원으로서 고쳐야 할 병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지내야만 했다. 그러다 하루는 이방원의 맥을 짚다가 속에서 타오르고 있던 불길이 훅 꺼져버리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장옹(腸癰, 소장이나 대장에 생기는 종기)이었다. 삭맥에 홍맥이 겹치는 것으로 봐서 상태가 자못 심각했다. 그런데 이방원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장옹은 상태가 아주 나빠질 때까지는 병자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웬만한 의원은 진맥으로 장옹을 짚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 배꼽 주변에 창종이 생기거나 배가 심하게 부풀어 올라야 그때서야 알게 된다. 하지만 소비의 예리한 손끝엔 장옹의 맥이 분명히 잡혔다.
그러나 소비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맥을 잡을 때마다 장옹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차피 심해지면 배꼽에서 농이 흘러나오거나 대변에 농혈이 섞여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 전에 평원해가 장옹을 잡아낸다면 약을 쓰겠지만,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만약 장옹에 중풍까지 겹친다면 죽음 목숨이나 진배없었다.
소비는 그저 구안와사를 고치는 데만 열중했다. 그리고 구완와사가 완치되자, 이방원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몹시 들떴다. 하지만 중풍의 뿌리는 그렇게 쉽게 뽑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여 무리하여 기력을 쇠진하면 돌발적으로 발병하여 다시 악화되는 것이 중풍이었다. 그런 까닭에 평원해는 이번 사냥을 강력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이방원이 워낙 사냥을 좋아하는 터라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간 구안와사로 인해 사냥을 자제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고집을 부렸다.
이번에 사냥터로 잡은 부명산은 제법 험준한 곳이었다. 비록 험한 곳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방원의 건강 상태론 분명 무리가 있는 산행이었다. 더구나 이틀이나 지속되는 산행이었다. 하지만 이방원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런 까닭에 소비까지 떼어놓고 간 것이다.
소비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휴 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뭉게구름이 무척 여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소비의 마음은 하늘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이방원 곁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의원의 신분이라곤 하지만 부모를 죽인 원수를 치료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할 때도 많았다. 또한 의원으로서 병자의 병을 알고도 숨기고 있다는 것도 불편했다. 그런 까닭에 이방원을 보지 않고 지낸 지난 이틀의 휴식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였다.
그런데 이방원이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늦어도 해가 지기 전에는 어가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미 정오를 지난 지도 제법 되었다.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가가 이미 십 리 밖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비는 옷매무새를 살핀 뒤, 어가를 맞을 준비를 하였다.
이방원은 먼 길을 거둥한 뒤엔 반드시 침을 맞는 습관이 있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침을 놓아 달라 할 것이 분명했다. 이방원에게 바깥나들이 후에 침을 맞는 습관이 생긴 것은 소비가 곁에 온 뒤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침 맞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런데 소비의 침을 맞고 난 뒤부터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더구나 소비가 침으로 구안와사를 완전히 치료한 뒤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침을 놓아달라고 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두 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방원은 소비의 침을 좋아했다.
소비의 침술은 아주 특별했다. 소비는 다른 의원과 달리 침의 온도를 매우 중시했다. 병증에 따라 냉침, 한침, 평침, 온침, 열침, 번침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육침법이라고 불렀다. 육침법 중에 냉침은 얼음 사이에 침을 꽂아뒀다가 쓰는 침이고, 한침은 차가운 물에 침을 넣어뒀다가 쓰는 침이며, 평침은 실온에 뒀다가 쓰는 침이다. 그리고 온침은 따뜻한 물에 넣어뒀다가 쓰는 침이고, 열침은 뜨거운 물에 넣어뒀다가 쓰는 침이며, 번침은 불에 달구어 쓰는 침이다. 이 여섯 가지의 침법 중에 소비가 이방원에게 사용한 것은 평침과 온침 두 가지였다. 나머지 네 가지 침법은 조선 의학에선 철저히 금기시 했다. 그나마 온침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의관에 따라서는 온침도 쓰지 못하게 하는 자도 있었으나 이방원의 주치의 평원해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소비는 온침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는데, 특히 중풍을 치료할 땐 반드시 온침을 썼다. 다행히 이방원도 온침을 매우 좋아했다.
사실, 소비는 활인원에서 냉침과 한침, 열침과 번침을 사용하여 환자들을 고친 일이 많았다. 냉침과 한침은 온역이나 학질에 효과적이었고, 습증이나 중풍 환자에겐 열침이나 번침이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중풍을 앓고 있던 이방원에게는 열침과 번침을 쓸 엄두을 내지 못했다. 특히 번침은 아예 입 밖에 꺼낼 수도 없었다. 조선 의학에서는 번침을 아주 사악한 침법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번침은 의술에서 미지의 세계였다. 번침뿐 아니라 평침을 제외한 모든 침법이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실상 냉침에서 번침에 이르는 육침의 세계는 소비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침법이었다.
원래 육침법을 고안한 사람은 소비의 스승 탄선이었다. 하지만 탄선은 육침법을 고안하긴 했으나 자유자재로 사용하진 못했다. 탄선이 쓸 수 있는 침법은 평침 외에 온침 정도였다. 번침만 하더라도 탄선은 깊게 탐구하지 못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비는 달랐다. 소비는 다섯 살 때 처음 침을 잡은 이래 몸으로 익힌 침법이라 그런지 육침법을 아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만큼 소비의 침술은 타고난 것이었다. 스승인 탄선조차도 침술에 있어서만큼은 소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탄선은 기회 있을 때마다 소비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나 이외에 누구에게도 육침법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육침법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 하나뿐인데, 섣불리 세상에 내놓았다가는 큰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소비는 탄선이 왜 그런 당부를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육침법을 함부로 드러냈다간 사악한 침술로 사람을 속인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었다. 특히나 소비는 무녀의 딸이라 그런 말을 듣기 딱 좋은 처지였다.
소비는 스승 탄선의 당부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물을 끓였다. 온침에 쓸 물은 우선 팔팔 끓인 뒤, 다시 일정한 온도까지 식힌 뒤에 사용해야 했다. 물의 온도가 적당한 때에 이르면 물을 유기그릇에 나눠 담고 뚜껑을 덮어 놓고 사용해야 한다. 때문에 물을 끓이고 식혀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소비가 온침을 쓰기 위한 준비를 모두 끝냈을 때, 어가가 풍양궁에 당도했다. 예상했던 대로 이방원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소비에게 침을 놓으라고 명했다. 이방원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이틀 동안 산을 누비며 사냥을 한 것이 다소 무리가 됐던 모양이었다.
온침을 맞은 이방원은 평소보다 빨리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에도 온침을 맞으면 잠을 자곤 했지만, 그토록 빠르게 잠든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간밤에 잠자리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원래 잠자리에 예민한 그였기에 현청에 마련된 침소가 편했을 리 없었다.
소비는 잠든 이방원의 맥을 잡아보았다. 중풍과 장옹의 상태를 짚어보기 위함이었다. 중풍은 잠잠한 편이었지만, 장옹은 한층 깊어져 있었다. 소비는 맥을 짚던 손을 이방원의 아랫배로 옮겨 보았다. 하지만 소비의 손끝엔 장옹이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장옹이 뱃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뜻이었다. 소비는 복부를 깊이 눌러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혹여 이방원이 깜짝 놀라 깨어날까 염려한 탓이었다.
이방원은 침을 뽑은 뒤에서 한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저녁 수라가 준비되었을 때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상과 함께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