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주치의, 노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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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산
작품등록일 :
2024.05.11 06:15
최근연재일 :
2024.07.0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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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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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화 마침내 형틀에 묶인 오치수

DUMMY



유영교의 급한 호출에 한성부로 달려간 중례는 검안대에 올려진 시신을 확인했다. 고덕만이 분명했다.

“맞지? 자네가 말했던 평양 감영의 형방을 지냈다는 그 자가 맞지?”

“네, 맞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오늘 아침에 옥사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네.”




고덕만은 외상이 전혀 없었다. 원래 심열증 증세가 제법 심각했다. 호흡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었으니, 언제 죽어도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통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심열증으로 급사했다면 필시 심통을 수반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가슴 부위에 푸른 시반이 넓게 형성되어야 했다. 손톱 또한 푸른빛을 띠어야 했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어떤가? 병사(病死)인가?”




유영교의 물음에 중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사가 아닌가?”

“지금으로선 속단할 순 없습니다. 제대로 검시로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왜 뭐 찜찜한 것이라도 있어?”

“고덕만은 원래 심열증으로 자주 심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심통으로 죽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살해당했다는 말인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례는 은비녀를 고덕만의 입에 넣었다. 하지만 입안에선 전혀 중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인후 깊숙이 은비녀를 넣고 기다렸다. 역시 독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입에서도 목구멍에서도 독흔이 없다면 이젠 항문만 살피면 되겠구만.”




유영교의 말대로 은비녀를 항문에 넣을 차례였다. 하지만 항문에 은비녀를 넣기 전에 먼저 대장에 차 있는 변을 빼내야 했다. 이미 소변은 다 쏟아낸 상태였지만, 대변은 아직 쏟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칫 섣불리 은비녀를 넣으면 대장에 쌓인 오물이 쏟아지기 십상이었다.

“옥졸에게 확인해보니, 어제 밤에 고덕만의 아내가 옥사로 음식을 넣었다고 했으니, 배가 차 있을 걸세.”

“고덕만의 아내가요?”

“그래, 옥졸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네. 제법 한 상 잘 차려 넣었다고 했네. 쌀밥에다 각종 나물에 꿩고기까지 넣었다고 하던데...”

“그럴 리가 없는데...”




고덕만의 아내는 남의 집 일을 도우며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였다. 하루 세 끼는 고사하고 한 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식이 셋이나 되는데다 남편 옥바라지 하느라 있는 돈 없는 죄다 끌어대다 집도 절도 없이 주막 뒷방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쌀밥에 닭고기까지 곁들인 푸짐한 상을 차려 넣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전옥서 죄수들에게 한상 잘 차려 넣으려면 옥사의 나장들 뒷주머니를 채워주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그들의 뒷주머니 채우는 값이 밥상 차리는 돈보다는 몇 배는 더 드는 법이었다.




“나도 그 점이 좀 수상하다 생각하네. 몇 년 동안 옥바라지 했으면 먹고 죽을 돈도 없을 것이 뻔한데, 전옥서에 한 상 거하게 차려 넣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거든. 그래서 음식에 독을 탔나 의심을 했는데, 입에도 목구멍에도 독흔이 나오지 않으니...”




중례는 시신을 옆으로 돌려 검시대 가장 자리에 뉘인 뒤, 은비녀에 앞서 항문에 목정(木釘, 나무 못)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오물을 받아내기 위해 물통을 시신의 엉덩이에 바짝 붙이고 섰다. 목정은 단단한 물푸레나무로 만든 나무못인데, 시신에서 오물을 빼낼 때 쓰는 검시 도구였다.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손가락 두 개 정도 굵기로 한 척 세 치 길이로 깎아 기름칠을 해서 쓰는데, 오물이 많이 묻는 까닭에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었다.




항문으로 들어간 목정이 직장을 거쳐 대장에 닿자 배에서 꿀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물이 쏟아질 것이라는 신호였다. 그 사실을 알고 유영교는 멀찌감치 물러서며 코를 막았다. 중례가 재빨리 목정을 뽑아내자 이내 지독한 악취와 함께 오물이 쏟아져 나왔다. 중례는 물통을 단단히 잡고 쏟아지는 오물을 받아냈다.




오물이 다 나오자, 중례는 물로 시신의 항문을 씻은 다음, 식초로 다시 한 번 닦아냈다. 그리고 항문 깊숙이 은비녀를 밀어 넣었다. 은비녀는 적어도 일 각 이상 항문에 넣어둬야 했다. 그 동안 중례는 시신에서 쏟아진 오물을 채에 부어 걸러낸 뒤, 다시 물로 씻어 미처 소화되지 않은 음식들을 골라냈다. 항문의 독흔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알아내는 것도 필요했다. 때론 독이 아니라 음식으로 독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덕만이 먹은 음식 중에는 미처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제법 있었다. 급히 먹었는지 음식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중례는 그 음식물들을 하얀 종이 위에 하나 둘 올린 뒤, 검시소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검시소는 어두워서 음식물을 분별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햇빛 아래에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중례가 검시소 밖으로 나가자, 유영교도 코를 싸잡고 뒤따라 나오며 말했다.

“자넨, 정말 지독해. 어떻게 그 냄새를 맡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물을 골라내?”




사실, 중례도 처음엔 시신에서 오물을 뽑아낸 뒤엔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수 년 간 지속하자, 견딜 만 해진 것이었다.

중례는 오물 속에서 걸러낸 음식물들을 밝은 햇살 아래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유영교도 어느새 중례 옆에 앉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급하게 먹었구만. 나물은 아예 씹지도 않고 넘겼어. 고기 껍데기도 보이네. 하긴,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겠어. 그런데 이 나물은 비름 아닌가? 딱 봐도 쇠비름이네, 쇠비름.”

“쇠비름이 분명해요?”




“그럼, 쇠비름을 내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 이걸 몰라보겠어. 우리 어머니가 매일 같이 들판에서 뜯어오라고 시킨 것이 이 쇠비름인데, 하도 쇠비름만 많이 먹어서 똥을 싸도 쇠비름이 그대로 나왔다니까. 그러니까, 쇠비름이 확실해.”

“옥졸이 꿩고기도 넣었다고 했지요?”

“그렇지. 꿩고기에 나물 반찬에 쌀밥에 한 상 잘 차렸다고 했지.”

“쇠비름에 꿩고기라...”




사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쇠비름은 나물 중에 가장 흔한 것이어서 좋은 상을 차릴 때엔 올리지 않는 반찬이었다. 그리고 왜 하필 꿩고기였을까? 기왕이면 살찐 암탉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올려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중례는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쇠비름에 금계라면?’




중례는 검안소 안으로 들어가 시신 항문에 넣어둔 은비녀를 뽑아내었다. 역시 아무런 독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영교는 갑자기 검안소 안으로 뛰어 들어온 중례의 꽁무니에 붙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독흔이 나왔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 독살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요. 독살입니다.”

“무슨 소린가? 독흔도 없는데, 독살이라니?”

“독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살해한 것입니다.”

“음식으로? 도대체 무슨 음식으로?”




“쇠비름과 금계입니다.”

“쇠비름과 금계?”




“고덕만이 먹은 꿩고기는 필시 금계(金鷄) 고기일 것입니다. 쇠비름과 금계는 상극으로 두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절대 금기입니다. 금계의 어떤 부위와 비름을 함께 먹으면 엄청난 독성으로 변해 멀쩡한 사람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덕만은 금계 한 마리를 통째로 먹었을 것이고, 거기에 쇠비름을 함께 먹었다면 그 독성으로 인해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독살할 수도 있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듣네. 그런데 고덕만이 쇠비름과 금계를 함께 먹은 것을 어떻게 밝혀내지?”

“전옥서에 음식을 넣어준 자를 찾아야지요.”

“그건 내게 맡기게. 전옥서 옥졸들은 다 내 손바닥 안일세. 누가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는지 알면 되는 것 아니겠나?”

“안 봐도 뻔합니다.”




“뻔하다면 오치수?”

“그렇지요. 오치수가 아니라면 누가 고덕만 같은 자를 죽이겠습니까? 필시 고덕만의 입을 막기 위한 짓이겠지요.”

“하여튼 오치수 그놈 무서운 놈이야. 자네도 조심하게.”




유영교와 헤어진 중례는 오치수 집으로 향했다. 고덕만의 이름을 슬쩍 흘려 놈의 반응을 살펴볼 심사였다.

그런데 오치수는 중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휘말려 있었다.

“대행수께서는 지금 안 계십니다. 의금부 도사가 오늘 갑자기 들이닥쳐 끌고 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중례는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의금부에서 잡아갔다면 필시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중례는 오치수가 왜 의금부로 끌려갔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전에 가서 오희묵을 찾아보았지만, 그는 점방에 없었다. 그곳 점원의 말이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부하고 있다 하였다.




그 시간 오치수는 의금부에서 형틀에 묶인 채 신문을 받고 있었다. 오치수를 신문하고 있는 위관은 놀랍게도 좌승지 이수였다.

“상인 정석이 너의 상단에서 부리는 자가 맞느냐?”

“소인이 직접 부리는 자는 아니옵고, 그저 저희 상단에 물품을 대는 자입니다.”

“이놈 어디서 거짓을 늘어놓느냐? 정석이 너의 수족이라는 사실은 시전 상인들이 모두 아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직접 부리는 자가 아니라고 하느냐?”

“그, 그것이...”




오치수가 머뭇거리자, 이수가 더욱 몰아쳤다.

“이미 정석을 취조하여 네 놈의 수하라고 실토하였다. 그런데도 거짓을 늘어놓는 것이냐? 진정 네 놈이 악형을 당해봐야 바른 말을 할 것이냐?”

“제, 제 상단에서 부리는 자가 맞습니다만... 이번 천추사 일행에 가담한 것은 절대 제가 시킨 일은 아닙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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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67화 마지막화 - 병마와 의술 그리고 죽음 +1 24.07.04 38 1 11쪽
66 제66화 떠나는 주상, 찾아온 병마 24.07.04 23 0 12쪽
65 제65화 훈민정음을 공표하는 세종 +1 24.07.03 28 0 11쪽
64 제64화 문자 창제를 결심하는 주상 24.07.02 30 0 11쪽
63 제63화 온갖 병으로 시달리는 임금 24.07.01 53 0 15쪽
62 제62화 오치수의 몰락 24.06.30 33 0 10쪽
61 제61화 늙은 호랑이 사냥 24.06.29 29 0 12쪽
» 제 60화 마침내 형틀에 묶인 오치수 24.06.28 51 0 10쪽
59 제59화 스승 탄선의 유언 그리고 그들의 결합 24.06.27 44 0 11쪽
58 제58화 도성에 몰아닥친 역병 24.06.26 43 0 10쪽
57 제57화 이방원의 죽음을 지켜보는 소비 24.06.25 36 0 16쪽
56 제56화 나의 후궁이 되어 주겠느냐? 24.06.24 39 0 9쪽
55 제55화 소비의 신비로운 침술 24.06.21 40 0 12쪽
54 제54화 양녕의 병을 치료하고 임금의 신임을 얻은 노중례 24.06.20 41 0 12쪽
53 제53화 마침내 확인된 아버지의 결백 24.06.19 59 1 9쪽
52 제52화 결정적인 증인 24.06.18 39 0 14쪽
51 제51화 일망타진 24.06.17 42 1 8쪽
50 제50화 쥐도 새도 모르게 24.06.16 36 1 8쪽
49 제49화 이놈, 반드시 너를 죽인다 24.06.16 44 1 11쪽
48 제48화 하늘의 단죄, 다시 생모의 무덤을 찾은 소비 24.06.15 41 0 11쪽
47 제47화 마음을 털고 일어나는 소비 24.06.15 34 0 8쪽
46 제46화 영영 이별 24.06.14 39 0 12쪽
45 제45화 대마도 정벌군 속에서 만난 중례와 상례 24.06.13 38 1 14쪽
44 제44화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된 가이 24.06.12 41 1 10쪽
43 제43화 국무 가이의 실종 24.06.11 44 0 13쪽
42 제42화 호랑이굴에서 만난 원수 24.06.10 39 1 9쪽
41 제41화 기다려라 오치수 24.06.09 43 0 10쪽
40 제40화 집현전을 키우리라 24.06.08 46 1 13쪽
39 제39화 대마도 정벌에 나서는 이방원, 햇병아리 임금의 자괴감 24.06.06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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