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늙은 호랑이 사냥

오치수는 이번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매번 중국에 사신이 갈 때마다 상단의 수하들을 사신 일행에 합류시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사신이 가면 의당 물품을 가지고 상단이 따라붙었고, 중국에 가서 물품을 판 돈으로 다시 중국 물품을 사서 들여와 파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 수익의 절반은 사신에게 주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총제 최운이 중국 사신으로 갈 때도 전과 다름없이 수하들을 합류시켰을 뿐인데, 왜 갑자기 이 일을 트집 잡는지 오치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사신단이 갈 때면 의당 그렇게 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지고 보면 불법이었고, 일종의 뇌물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중국에 천추사로 간 총제 최운이 상인 정석을 자신의 종 매읍방이라 속이고 데리고 간 것을 사헌부에서 문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사헌부가 총제 최운의 행위를 탄핵한 것은 주상 재위 5년(1423년) 11월 25일이었다. 당시 사헌부가 주상에게 올린 탄핵문은 이랬다.
“천추사(千秋使) 총제 최운이 모리하는 상인 정석(鄭石)의 이름을 종 매읍방으로 바꾸어 사칭하여 데리고 갔고, 또 법에 정해진 숫자 이외의 포 10필을 몰래 끼고 중국에 들어가 이익을 꾀하였으며, 총제 유장, 판목사 이안우, 상호군 강주 등은 별도로 포를 부탁하였으니, 청컨대, 수교에 의하여 죄를 논단하소서.”
천추사라 함은 명나라 황태자의 생일인 천추절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이었다. 그런데 천추사 정사인 최운을 비롯하여 부사 유장과 그 수행관들이 모두 장사치를 이끌고 가서 물품을 팔아 이익을 꾀한 것이 발각되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오치수는 사헌부의 이번 탄핵이 영 납득이 되지 않았다. 중국 사신 일행에 상단이 따라붙어 이익을 취하고, 그것을 사신 일행과 나눠먹는 것은 고려조부터 행하던 관행이었다. 물론 불법이었지만, 조정에서도 사신 일행이 고생하는 것을 감안하여 그 정도는 눈감아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신단이 좀 지나치긴 했다. 다른 사신단에 비해 훨씬 많은 물품을 가져갔을 뿐 아니라 따라 간 상인의 수도 너무 많았다. 물론 그들 상인들은 모두 사신단의 종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주상도 사신단의 지나친 상업 행위를 보고 받고 묵과하지 않았다.
“최운이 무역한 물품을 관에 몰수하고 직첩을 거두고 외방에 부처할 것이며, 이안우,유장,강주는 다만 무역한 물품만 거두라.”
이렇게 최운이 관직에서 쫓겨나고 나머지 관리들은 나눠 가진 이익을 빼앗은 수준에서 사안은 종결되었다. 물론 오치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의금부에서 오치수를 잡아들였으니, 그가 영문을 몰라 하는 것도 당연했다.
“네놈이 그간 사신단이 중국을 갈 때마다 물품을 대고 이익을 취한 것이 사실이냐?”
이수의 그 물음에 오치수는 한층 더 의아했다. 오치수의 상단이 한성 최대 규모라는 것은 웬만한 관리들이 다 아는 일이었고, 또 웬만한 중책에 있는 관리치고 오치수의 돈을 먹지 않은 자가 없는 마당에 케케묵은 과거사까지 들먹이는 게 영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오치수를 의금부로 잡아들인 것은 이수였다. 이수는 최운에게 물품을 댄 상단이 오치수 상단인 것을 알고, 오치수를 잡아들일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상에게 특별히 주청했다.
“전하, 지금 시전의 상단들이 조정 신료들에게 뒷돈을 대는 일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도 사신단과 시전 상인들이 결탁하여 벌인 일입니다. 특히 시전 상인들 중에 가장 큰 상단을 가지고 있는 자가 오치수라는 자인데, 이 자의 술수가 보통이 아닙니다. 또한 이 자에게 남모르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항상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이 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여 다시는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 상인들과 결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수는 겉으론 시전 상인들과 조정 신료들의 결탁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지만, 실제론 오치수를 얼마간 의금부에 잡아놓고 그가 그동안 저지른 죄상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또한 친한 벗이었던 중례의 아버지 노상직의 결백을 증명할 방도도 함께 구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설사 노상직의 결백을 밝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치수에게 심대한 타격을 안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 특별히 위관을 맡아 그 자를 치죄하여 시전의 질서를 바로 잡아 보십시오.”
주상의 허락을 얻어낸 이수는 의금부의 특별 위관이 되어 오치수를 직접 신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치수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쉽게 주눅이 들지도 않았고, 겁먹은 표정도 아니었다. 단지 매우 당황스러운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이수의 다그침에 오치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오치수가 입을 열면 다칠 관리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고, 때문에 시간을 끌면 의당 그들이 와서 자신을 꺼내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오호, 네 놈이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이수가 오치수를 노려보며 힐난하자, 오치수가 이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좌승지 영감, 이 나라에 상단이 몇 개인 줄 아십니까? 북쪽에서부터 의주, 평양, 해주, 함흥, 강릉, 개성, 한성, 제물포, 수원, 공주, 대구, 부산에 이르기까지 상단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또한 각 지역마다 수십 개의 상단이 있는데, 그 상단들이 가장 원하는 일이 바로 사신단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고려조부터 줄곧 이어왔고, 관에서도 하등에 문제 삼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 상단도 그런 관례에 따라 이번 천추사 행렬에 상단을 끼워 보냈습니다. 또한 소인이 알기로는 이미 이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좌승지께서 어찌하여 이런 일을 벌이시는지 소인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놈, 네가 보기에는 이 일이 내가 하는 일로 보이느냐? 어명으로 행하는 일이다.”
어명이라는 말에도 오치수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좌승지께서 주상 전하의 글 선생님이라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압니다. 또한 승정원의 승지가 의금부의 위관이 되는 일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란 것쯤은 저도 잘 압니다. 필시 좌승지께서 전하께 청을 넣어 저를 잡아들이신 것 같은데, 솔직히 말씀하시지요.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요? 재물입니까? 자리입니까?”
오치수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도 지지 않았다.
“네 놈이 잡은 줄이 단단하긴 한 모양이구나. 그러나 곧 알게 될 것이다. 네 놈이 썩은 줄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하나 더. 네 놈은 지금 이번 천추사 일로 잡혀 온 것으로 알고 있겠지? 하지만 틀렸어.”
“그럼 무엇 때문에 저를 잡아온 것입니까?”
“곧 알게 될 테니, 기다려.”
이수는 그렇게만 말하고 국문을 멈췄다.
“이 놈에게 큰칼을 씌워라. 그리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라. 만약 몰래 누군가를 만나게 하면 너희는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 일은 어명으로 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이수는 의금부 도사들은 물론이고 형리들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의금부를 빠져나왔다.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지만, 이수는 중례에게 사람을 보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마침내 오치수를 잡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 오치수를 몰락시키고 놈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중례는 오치수가 왜 갑자기 의금부에 하옥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오치수를 의금부에 가둔 분이 스승님이었군요.”
“오치수는 구린 데가 많은 놈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죄가 많을 것이다. 나는 오치수를 의금부에 가둬두고 오치수에게 원한을 품은 자들을 찾아내 여죄를 밝힐 셈이다. 또한 네 아버지의 결백도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중례가 생각난 듯 말했다.
“전옥서에 갇혀 있던 고덕만이 오늘 아침에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검시를 해보니, 음식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살해를 사주한 자는 오치수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성부 포도나장 유영교가 그 사건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빨리 오치수가 고덕만 살해를 교사한 증거를 잡아야겠구나. 어쨌든 오치수가 수를 쓰기 전에 빨리 놈을 옭아매야 한다.”
“알겠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중례는 이수의 집을 나오자마자 곧장 유영교를 찾아갔다. 이미 밤에 한성부에서 만나기로 약조한 터였다.
“옥사에 밥을 넣은 여인은 찾았습니까?”
“물론이지. 내가 장담하지 않았는가?”
“누굽니까?”
“이미 잡아다 옥사에 가둬뒀네. 가서 만나 보세.”
유영교가 잡아온 여인은 전옥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막의 주모였다. 그녀를 추궁하였더니, 중례가 예상한 대로 쇠비름과 금계 고기를 옥사에 넣었다고 했다.
“옥사에 밥상을 넣어달라고 부탁한 자가 누구요?”
“가끔 주막에 들러 밥을 먹고 가는 사람인데,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입니다요. 그리고 소인은 그저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한 상을 잘 차려 옥사에 넣어주기만 하면 심부름 값을 두둑이 주겠다고 했습니다.”
“금계는 어디서 구했습니까?”
“금계는 제가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가져다 줬습니다.”
“나머지 음식은 모두 직접 만든 겁니까?”
“그렇습니다요. 옥사에 있는 분이 쇠비름나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별도로 만들었고, 다른 나물은 주막에서 흔히 내놓는 것입니다. 거기에 시래기 국물에 쌀밥, 그리고 금계 고기를 더해서 넣어준 것뿐입니다.”
“그래, 그 사람은 옥사의 죄수와 무슨 관계라고 했습니까?”
“먼 친척이라 했습니다.”
“그 자를 다시 보면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죠.”
주모에 대한 취조는 거기까지였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옥사에서 나오면서 중례가 묻자, 유영교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주모를 풀어줘야지.”
“주모를 풀어주면 놈들이 그냥 두지 않을 텐데요.”
“물론 그렇겠지. 그래서 풀어주는 거야.”
“덫을 놓자는 거군요.”
“그렇지. 주모를 미끼로 놈들을 잡아야지. 내가 주모를 잡아올 때 제법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웠으니, 필시 놈들 귀에 들어갔을 게야.”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칫하면 주모가 죽을 수도 있는데요.”
“위험하기는 옥사에 가둬둬도 마찬가지야. 한성부 안에도 이미 오치수의 손길이 뻗쳐있을 거거든. 그리고 지금도 놈들이 한성부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그래서 나도 잔머리를 좀 돌려봤지.”
유영교는 나름 놈들을 잡을 묘책을 마련해둔 모양이었다.
“두고 보게. 이번에 이 유영교의 진가를 알게 될 걸세. 어쨌든 위험하니, 자네는 이곳에서 좀 기다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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