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제 (4)

사람 없는 일요일, 스타트업 교육에도 참가하지 않고 권모수는 혼자 연구실에서 고민에 빠졌다.
성분표를 보고 실제 분석 실험을 해 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화학반응 실험에서도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실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실험에서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인체.
인체에도 여러 화학 물질이 있고 이를 통해 뇌와 신경계를 작동시킨다.
스타트-업이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 인체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을 마친 권모수는 학교 앞 편의점에서 스타트-업 5박스를 사 왔다.
한 박스당 20병. 총 100병의 스타트-업을 탁자 위에 놓고 녹음기를 켜놓고 앉아 5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마시기 시작했다.
“별다른 변화 없음.”
5병까지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위에 부담이 느껴지면서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듬. 카페인과 에페드린 작용 때문으로 판단된다.”
7병을 마시고 이렇게 녹음했다.
“졸리다. 알려진 카페인 효능과 다른 증상이다. 개인적인 신체 특성 때문인지, 스타트-업의 작용인지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10병을 마시자 잠이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카페인은 각성 효과를 일으켜 수면을 방해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에 반하는 현상이었다.
“망상 현상이 발생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과거의 기억이 뒤섞여 이상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정신은 또렷한데 망상을 없앨 수 없다.”
15병을 마시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환각과 더불어 흥분이 느껴진다. 몸에서 에너지가 솟구쳐 올라오는 기분이다. 소리치고 싶고 달려보고도 싶다. 성적 흥분도 강렬해진다. 애써 자제하고 있다.”
20병을 마시자 마약 같은 흥분 효과가 나타났다.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불빛이 번쩍였다.
대낮에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눈을 떠보니 실험하던 탁자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
일어나 고개를 흔들어 잠을 떨쳐냈다.
마시지 못한 80병의 스타트-업 병이 보였다.
‘마약류는 없는데 어떻게 환각과 흥분 효과를 일으킬까?’
권모수는 의문과 정리한 내용을 녹음하고 자신을 대상으로 한 인체실험을 마쳤다.
배가 고팠다.
영웅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점에서 만났다.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했다고요? 그런 위험한 실험은 하지 마세요. 제가 곧 조사 결과서를 받아 올게요.”
권모수를 걱정한 영웅이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조사 결과서를 봐도 특이 사항은 없을 겁니다.”
“왜요?”
“분석을 해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혈액뇌관문을 통과해 뇌와 신경계에 강력하게 작용한 다음 배출되는 성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체내에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설령, 카페인 같은 성분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고요.”
혈액뇌관문은 혈류를 뇌에서 분리하는 반투막이다. 이를 통과하면 뇌 기능과 신경 전달 물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권모수가 녹음기를 꺼내 오늘 실험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영웅은 자신이 자살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인지기능은 멀쩡했지만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인지기능이 멀쩡한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나요?”
“그게 무슨 말이죠?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예를 들어, 자신은 자살할 생각이 없는데도 자살하게 만들 수 있는 약이 있나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권모수가 말했다.
“제가 알기로 그런 약은 없습니다. 세뇌됐다고 하더라도 그건 생각이 바뀐 거지 생각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고문을 당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자살한다 치더라도 그 역시 생각대로 행동한 겁니다. ”
“스타트-업을 계속 마시니 환상과 흥분이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났을 뿐이지 나를 행동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자제하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연구원님 말은 내 생각이 살아있으면, 그에 반하는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한다는 뜻이네요.”
“네. 육체를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가치와 태도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생에서 좀비약을 마신 영웅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스타트-업이 이상철에게 좀비약 개발의 단서를 제공한 약이었을지도 모른다.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영웅은 금요일을 기다렸다.
물품 보관함에 사망 조사 보고서와 부검 자료를 넣기로 한 날이었다.
월요일 출근하자 얼마 안 있어 인사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저녁 약속 있습니까? 아니, 약속이 있더라도 시간을 내주셨으면 하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만나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 내겠습니다.”
영웅이 대답하자마자 휴대전화로 장소가 날아왔다.
‘진세이’라는 일식집이었다.
“7시에 거기로 오셔서 이름을 말하시면 됩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만나자고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파트장님, 아이디어 발굴 회의 시간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르는 소리에 영웅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영웅의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평소 인사부장일은 이렇게 반강압적으로 약속을 잡지 않는다.
“파트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죄송하지만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팀원의 질문에 딴생각하고 있던 영웅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일에 집중했다.
‘만나서 들어보면 알겠지.’
영웅은 6시에 퇴근해 약속 장소인 ‘진세이’로 차를 몰았다.
겨울 끝자락이어서 어둠이 일찍 내렸다.
‘진세이’는 남한강 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희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물거품이 보였다.
한길을 벗어나 산길로 올라서니 등대 불빛 같은 조명이 길을 인도했다.
그 끝에 음식점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보니 배처럼 생긴 집이었다.
배를 모방해 만든 둥근 창문으로 웃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안내원에게 이름을 말하니 일어서 정중한 태도로 안내했다.
유리문 밖으로 일본식 정원이 보였고 그 뒤에 여러 채의 집이 보였다.
사원증을 대고 유리문을 통과한 안내원이 영웅을 한 집으로 안내했다.
“VIP 오셨습니다.”
“모시게.”
인사부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안내원이 연 문 안에 있는 사람을 본 영웅은 놀랐다.
이현철 혼자 앉아있었다.
“들어오게.”
안내원이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사라지는 것을 본 영웅이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셨습니까. 부사장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영웅을 본 이현철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앉게. 여기는 내가 아는 식당이니 너무 긴장할 것 없어.”
“네.”
영웅이 자리에 앉았다.
“배고플 텐데 일단 먹고 이야기하지.”
이현철이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아까 이야기한 음식 가져오게. 술은 뭘로 하겠나? 일식집에 왔으니 사케 어떤가? 운전은 걱정하지 말게. 대리운전할 사람이 있으니.”
“네. 좋습니다.”
음식은 맛있었다.
식사 도중에 수석 주방장이라는 사람이 특급 회를 가지고 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사케에서 향긋한 향기가 났다.
영웅과 이현철은 친한 지인처럼 주거니 받거니 사케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주로 이현철이 묻고 영웅이 답했다.
“혹시 데이트 있었던 건 아닌가? 갑자기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여자친구는 있나?”
“네.”
영웅의 대답에 이현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의외네. 여자친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고 지나치게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고 했네. 나는 자네가 너무 맑거나 지나치게 살핀다고 생각했거든.”
전생이라면 이현철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때는 오로지 일을 기준으로 삼았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잘라냈다.
지금은 이수연과 사귀고 있지만 그때 그 성격은 바뀌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떤 일로 부르셨습니까?”
부끄러움에 영웅이 화제를 돌렸다.
“그 봐. 내 말이 맞지. 벌써 용건부터 묻지 않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닙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부사장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영웅의 이야기를 들은 부사장이 말했다.
“내 시간은 내가 알아서 챙기겠네. 나는 자네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즐거워.”
부사장의 이야기에 영웅은 할 말을 잃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는 영웅을 바라보던 부사장이 품에서 사진을 꺼내 영웅에게 내밀었다.
물품 보관함에서 서류를 꺼내는 자신을 찍은 사진이었다.
“자네 맞지?”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사진이 찍혔다.
“네. 맞습니다.”
“오토바이 탄 사람을 보내 음으로 양으로 나를 도운 것도 자넨가?”
부사장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네. 제가 그랬습니다.”
“왜 그랬나?”
가까운 미래에 이상철이 좀비약을 만들고, 그것을 막으려 이현철을 도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는 부사장님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부사장님이 사장이 되는 것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 또한 사실이었다.
“그건 이상하군?”
“네? 뭐가 말씀입니까?”
“자네는 경영총괄 때 내 쪽으로 오라는 청을 거절했네. 최근에 인사부장이 말했을 때도 거절했고. 나를 도우려면 부서를 옮기는 게 정상 아닌가?”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면 그리했을 것이다.
뒤에서 돕지 않고 함께 의논하면 더 쉽게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은밀한 조차 왜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으니까.
“부사장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이상철 소장은 치밀한 사람입니다. 제가 드러내놓고 부사장님 편에 서면 경계했을 것이고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을 겁니다.”
이현철이 그런 말을 하는 영웅을 바라보며 긴 침묵에 잠겼다.
술기운이 오르는지 눈이 몽롱하게 보였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