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 (1)

프로틴X의 출처를 묻는 이현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상철은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이현철은 생산본부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성분 중 프로틴X가 있지요?”
“네.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만듭니까?”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져온 것을 배합합니다.”
“어떤 회사에서 만드나요?”
“그건 구매팀장이 알고 있습니다.”
본부장이 송구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구매팀장을 부르세요. 프로틴X의 출처를 알고 싶다고 전하고요.”
잠시 후 구매팀장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프로틴X는 이상철 소장이 소개한 YG식품에서 조달받고 있습니다.”
“성분 분석이나 안전 검사는 했습니까?”
“그게...”
대답을 망설이는 생산본부장에게 이현철이 호통쳤다.
“대답하세요.”
“연구소장이 추천한 업체고 프로틴은 위험물질이 아니라 별도 검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원료인데 안전 검사를 안 했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유해 물질이라도 섞여 있으면 어쩌려고요?”
“죄송합니다. 당장 검사를 하겠습니다.”
본부장이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당장 정밀 검사해서 이상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세요. 그리고 프로틴X 만드는 회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구매팀장이 사업자등록증을 내밀었다.
“경기도 파주로 돼 있습니다.”
“가 봤습니까?”
“아닙니다. 그쪽 담당자가 회사로 와서 계약 체결했습니다.”
“원료를 만드는 회사에 가보지도 않고 계약을 체결했다고요? 당신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화난 이현철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죄송합니다. 당장 가서 위생 상태를 점검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구매팀장이 파들파들 떨며 사죄했다.
씩씩거리던 이현철이 무엇에 생각이 미쳤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가지 마세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스타트-업 생산은 당장 중단하세요. 이미 만들어진 것은 폐기하되 시장에 풀린 것을 회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은밀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산본부장이 물었다.
“아니요. 문제는 없습니다. 에페드린과 프로틴X를 빼고 건강한 원료로 대체해 뉴 스타트-업을 만들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생산을 재개하세요. 시제품이 완성되면 먼저 내게 가져와 설명하세요. 홍보실과 마케팅팀에도 더 좋아진 ‘뉴 스타트-업’ 판매 준비를 지시해야 하니까. 나가서 빨리 진행하세요. 비밀 엄수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혼쭐이 난 생산본부장과 구매팀장이 큰소리로 대답하고 달아나듯 사장실을 나갔다.
사장이 비서를 시켜 영웅을 호출했다.
“프로틴X는 여기서 제조했다고 하네요.”
이현철이 구매팀장에게 받은 YG식품 사업자등록증을 영웅에게 내밀었다.
“조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주소지가 경기도 파주였다.
영웅은 구매팀장에게 YG식품 담당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YG식품입니다.”
“대민제약 구매담당자입니다. 오늘 공장 시설을 방문해 점검하고 싶습니다. 3시쯤 방문할 계획인데 괜찮습니까?”
“시설 방문은 이상철 소장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소장님께 허락받고 다시 전화 주십시오.”
“네? 뭐라고요?”
대답 없이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
섣불리 접근하면 이쪽의 정체만 노출할 뿐이라고 판단한 영웅은 사업자등록증을 사진으로 찍어 은밀한에게 깨톡으로 보내고 전화했다.
“YG식품를 조사해 주세요. 감시가 엄중할 것 같으니 은밀하고 신중하게 조사하셔야 합니다.”
“은밀하고 신중한 접근은 제 전문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큰소리를 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던 영웅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거기 뭐 하는 뎁니까?”
전화를 받자마자 오히려 은밀한이 물었다.
“네? 그걸 조사해 달라고 한 건데요?”
“허허벌판에 세워진 공장인데 300미터 밖부터 CCTV를 설치해 놓고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공장 정문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방법이 없습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오늘 밤 시도해 보고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날 영웅은 은밀한을 만났다.
밤을 새웠는지 얼굴이 꺼칠해 보였다.
은밀한이 사진을 내밀었다.
“드론을 띄워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밤에도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었다. 정문에 경비소에 불이 켜있고 무기 같은 걸 든 사람이 계속 건물 주변을 순회했다.
차광막을 쳤는지 건물에서는 불빛 한점 비추지 않았다.
“한심하지만 이게 알아낸 전부입니다.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직접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알아낼 방법이 없겠습니까?”
은밀한 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다 말했다.
“꼭 알아봐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좀비균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를 장소였다.
“경비가 철통같아서 상대가 모르게 은밀하게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습니다.”
영웅이 말했다.
“이쪽 정체만 모르게 하면 됩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식으로 경찰에 고발해서 압수수색을 하는 겁니다. 물론 이 안에서 범죄 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겠지요. 증거는 있습니까?”
“아니요. 증거 없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은밀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만약 YG식품에서 좀비균을 키우고 그 원료를 대민제약에서 사용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영웅의 대답을 들은 은밀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남은 방법은 용병을 고용하는 겁니다.”
전생에서 영웅은 은밀한의 과거를 알았다. 은밀한은 특수부대 소속으로 대테러 대응을 담당했다. 작전 수행 중 인질이 사망했고 그 책임을 지고 은밀한을 비롯한 세 명이 옷을 벗었다. 그 세 사람이 모여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위험수당을 받아야 해서 비용이 꽤 셉니다.”
“드리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저도 같이 들어갑니다.”
“왜요? 위험한 데를?”
“만약 발각되면 책임을 지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지시했으니까요. 변명도 제가 해야 무난하게 넘어가기 쉽고 회사에서도 저를 변호하려 애쓸 겁니다. 다음으로 건물 안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의약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영웅의 말을 들은 은밀한이 끄응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싸움은 할 줄 알아요? 아니, 해본 적은 있어요?”
“태권도 경기도 대표였습니다. 주짓수도 배웠고요.”
은밀한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실전은 달라요. 군대는 어디 나왔어요?”
“특전사 특임대 출신입니다.”
오호, 하며 은밀한이 놀라는 소리를 냈다.
“곱상하게 생겨서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샌님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네요.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 모른다니까.”
영웅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은밀한이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함께 합시다.”
영웅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은밀한이 친구 두 사람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주로 무력이 필요할 때 개입하는 것 같았다.
한 명은 이현철을 살해하려는 김진영을 유인해 붙잡을 때 은밀한과 같이 움직였던 사람이었다.
“일단 건물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밀번호를 알아야 해요.”
“지문 인식이면 어떻게 하죠?”
영화를 보면 술잔에 묻은 지문을 복사해 보안시스템을 통과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만들기 힘들다. 10년 후쯤에나 가능한 기술이다.
“기절시킨 다음 끌어다 지문을 누르면 돼요.”
아, 그러면 되겠구나. 역시, 실전 경험이 중요했다.
“일단 어떻게 문을 여는지 확인합시다.”
그믐날 밤 일행은 YG식품으로 갔다. 나무가 무성한 곳에 차를 세운 은밀한이 적외선 망원 렌즈를 단 드론을 띄웠다.
“이렇게 해서 알 수 있을까요?”
“저기 무기 들고 주위를 돌아다니는 친구 있지 않습니까. 한 시간에 한 번씩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 유심히 봐두는 건데.”
은밀한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드론이 발각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경계가 더 삼엄해질 텐데.”
“이거 무소음에 스텔스 기능까지 갖춘 최고급 드론입니다. 쉽게 발각되지 않아요.”
은밀한은 직접 개조해 만들 정도로 드론 광이었다. 개중에는 날아다니다 가로등 같은데 달라붙어 CCTV 역할을 하는 드론도 있었다.
스텔스 드론이 발각되거나 알아내지 못하면 CCTV 드론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들어갑니다.”
문 앞에 선 경비가 보였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시스템이네요. 받아적어요. 2, 3...”
뒷번호는 경비의 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 저놈은 뭐 저렇게 경계심이 많아. 밤에 아무도 없는데 뭘 저렇게까지 가리고 눌러.”
30분 후 다시 밖으로 나온 경비원이 건물 주위를 돌았다.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네요. 내가 사장이라면 월급 많이 주겠어요.”
1시간 뒤 다시 경비원이 건물 내로 들어가려 번호를 눌렀다.
아까 실패를 경험한 은밀한이 드론과 렌즈의 각도를 조절했다.
“2, 3, 4, 5, *.”
문이 열렸다.
번호를 확인한 일행은 허탈했다.
“2345. 2345... 이렇게 쉬운 번호를 비밀번호로 했으면서 뭘 그렇게 조심스럽게 눌러.”
화가 나는지 은밀한이 구시렁거렸다.
“밤이야. 누가 들을 수 있어. 조용해.”
동료가 주의를 주었다.
“아, 미안.”
드론을 회수한 일행은 차를 타고 조용히 사무실로 돌아왔다. 미행은 없었다.
“뭔가 허술한 느낌이 드는데.”
“그래. 쉽게 침투할 수 있을 것 같아.”
차를 타고 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에 뭐가 있을까?”
“단백질을 만드는 식품회사니까 콩이나 고기 같은 게 쌓여있지 않을까?”
“그런데 한 시간마다 들어가서 조사한다고?”
“라면 같은 거 끓여 먹으면서 쉬다가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데 저 사람 꼭 기절시켜야 하나? 성실한 사람 같은데.”
“나쁜 놈도 성실해.”
이야기를 듣던 영웅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답지 않게 티키타카 대화하는 게 재미있었다.
“마취시키면 어떨까요?”
영웅이 물었다.
“마취제 있어요?”
“네. 거즈에 묻혀서 호흡하게 하면 2~3시간 지나 자연스럽게 깨어날 겁니다. 건물 내부를 촬영만 하고 아무것도 가져 나오지 않으면 비밀을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알려지면 일자리를 빼앗기고 쫓겨날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약을 가져와 보세요. 저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게.”
“왜요?”
영웅은 꼼꼼히 실험하고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제가 수면장애가 있어서 사흘째 잠을 못 잤어요. 그거로라도 자보려고요.”
“마취와 수면은 다릅니다.”
“정신없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넌, 원래부터 정신 빠진 놈이야. 걱정할 것 없어.”
또다시 계속되는 티키타카를 들으며 영웅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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