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 (4)

권모수는 가루로 된 프로틴X를 조금 꺼내 손가락으로 비벼보았다. 영웅이 가져다 준 원료였다.
이 가루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열을 가하기도 하고 다른 단백질이나 효소를 넣어 결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일반 단백질과 차이도 알 수 없었다.
단백질 자체가 복잡한 물질이기는 하다.
생물체 내에서 단백질은 만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게 쓰인다.
몸속에서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효소, 호르몬 및 면역에 중요한 항체들은 대부분 단백질이다.
근육과 같이 몸을 구성하는 역할도 한다. 연골, 피부, 가죽, 털, 비늘 등을 이루는 주성분인 콜라겐과 케라틴도 단백질이다.
생물의 기본적인 DNA 복제서부터 생물의 외형 형성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정수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물질이다.
이런 다양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20여 종의 아미노산의 결합 순서에 따라서 무수한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모양도 크고 얽히고 꼬인 구조인데 이게 하나라도 달라지면 성질도 바뀌어 단백질만 보고 기능까지 유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수한 단백질은 일종의 나노로봇과 같이 특별한 기능을 수행한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의 경우 100%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의 일종이지만 구조가 이상하게 변형되어 나타나는 질병이다.
이렇듯 구조만 달라져도 치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더구나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줄줄이 이어진 사슬이 꼬이고 접히고 한 것만 있지 않다.
단백질에 다른 분자들이 달라붙은 복합단백질도 있다.
핵산, 당, 지질, 인, 금속, 색소 등과 결합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든다. 헤모글로빈도 복합단백질의 일종인 금속단백질이다.
단백질 종류만 수십만 가지에 이르는데 각각 다른 물질들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백질의 종류는 사실상 무한대나 마찬가지다.
영웅의 부탁이라 해보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실험계획도 세우기 어려웠다.
이럴 때는 생각나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우연한 발견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권모수는 연가시 암컷과 수컷의 꼬리 쪽을 각각 3센티미터씩 잘랐다.
엄청나게 질겨 자르느라 고생했다.
이렇게 자른 연가시에서 단백질을 추출해, 성분분석기를 통해 프로틴X와 비교해 보았다.
차이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실험만으로 연가시로 프로틴X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권모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재의 성분분석기로는 다른 단백질과 비교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야.’
분자구조까지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은 학교에 없었다.
권모수는 회사로 갔다.
“일요일인데 나오셨네. 일이 많은가 봐요.”
“급히 확인할 일이 있어서요.”
경비와 인사하고 연구실로 갔다.
전자현미경으로 구조를 살폈다.
연가시에서 추출한 단백질과 프로틴X는 구조가 달랐다.
‘분말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구조가 달라졌을 수 있어.’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영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반 연가시 구했습니다. 어디로 가져다드릴까요?”
“벌써요. 빨리 구하셨네요. 회사로 가져오세요.”
잠시 후 회사 정문에 도착한 영웅이 전화를 걸었다.
권모수가 밖으로 나가 연가시가 든 병을 건네받았다.
“저는 실험하던 게 있어 들어가 볼게요.”
인사도 없이 뒤돌아서는 권모수의 뒷모습을 본 영웅이 말했다.
“건강 유의하면서 하세요.”
실험실로 돌아온 권모수는 영웅이 준 병에서 연가시를 꺼냈다.
아직 물기도 가시지 않아 촉촉했다.
변형 연가시보다 얇고 길이가 짧았다.
꼬리 부분을 3센티미터 잘라 단백질 성분을 추출해 전자현미경으로 변형 연가시와 비교해 보았다.
세포 크기가 달랐다.
‘왜 같은 연가시인데 세포 크기가 다를까?’
여러 가지 생각이 일었지만 모두 추측일 뿐이었다.
변형 연가시를 키우는 과정을 모르니 알 수 없었다.
권모수의 연구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복합단백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당, 지질, 인, 금속, 색소 등과 반응시켜 보았다.
여기서도 결과가 달랐다.
일반 연가시 단백질은 복합단백질을 만들지 않았지만 변형 연가시는 철과 결합했다.
핏속에 있는 헤모글로빈과 비슷한 물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복합단백질을 인체가 헤모글로빈으로 오인하면 혈류를 타고 쉽게 뇌에 침투할 수 있다.’
이로써 변형 연가시를 원료로 만든 프로틴X의 뇌 침투 과정이 설명됐다.
뇌 침투 이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을 대상으로 한 인체실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전두엽을 마비시켜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컸다.
소기의 성과를 거둔 권모수는 영웅의 집으로 갔다.
“공장에서 키운 연가시로 프로틴X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백질 구조가 같아요. 그런데 일반 연가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철과 결합해 복합단백질을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영웅이 물었다.
“헤모글로빈이 철과 결합한 복합단백질입니다. 거기서 유추하면 혈류를 타고 뇌에 침투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동물 실험을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뇌에 침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경험상 전두엽을 마비시킬지도 모릅니다.”
“전두엽이 마비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동물과 비슷한, 아니 동물보다 못한 수준이 될 수 있습니다. 전두엽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주요 특징입니다. 인간의 뇌에서 전두엽이 차지하는 비율은 30~40%입니다. 반면 고양이는 3.5%, 개는 7%입니다. 전두엽이 있어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계획을 세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기능이 마비되면 누군가의 조종을 받기 쉽습니다.”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P. Gage)는 신경과학에서 전두엽이 성격이나 자제심에 작용하는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게이지는 미국 버몬트에 사는 평범한 철도직원이었으나, 1848년 폭발물의 잘못된 매설로 굵기 3cm 길이 1m의 쇠막대가 얼굴을 꿰뚫는 사고를 당했다.
쇠막대는 왼쪽 뺨을 통과해 왼쪽 눈을 지나 전두엽을 완전히 통과해 버렸다.
머리와 입에서 피와 뇌수 등을 흘리며 그는 동료들에 의해 가까이에 있던 병원으로 이송됐다.
처음 며칠간은 의사도 회생 가능성이 없다며 반쯤 포기했고, 실제로 머리에서 고름을 쏟아내고 간헐적으로 코마 상태에 빠지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뇌 전문의의 치료에 힘입어 결국 회복했다.
왼쪽 눈을 잃은 것 이외에는 건강을 회복했지만, 게이지는 더 이상 예전의 게이지가 아니었다.
사고 이전에는 말수도 적고 성실하며 온순하던 그가 전두엽 부상 이후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감정 기복이 심해져 자주 화를 내었으며 이기적이고 충동적으로 변했다. 음식을 차려 내오는 짧은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화를 냈으며 전에는 입에 담지도 않았던 불경스러운 말을 썼다.
끈기나 시간을 요구하는 숙련 작업의 효율도 엄청나게 떨어져 결국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후 산타클라라에서 얼마간 농장 일을 하기도 했지만 뇌전증 발작에 시달리게 되어 일을 그만두었고, 지속된 발작을 겪으며 36세로 사망하였다.
“피니어스 게이지 사례는 전두엽에 대한 한 예시입니다. 프로틴X가 그런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모르고요.”
권모수가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뇌에 영향을 미친다면 위험한 물질이네요.”
“네. 스타트-업에서 프로틴X를 빼기를 잘했습니다.”
공장이 사라졌으니 어차피 원료를 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상철은 이 정도로 멈출 인간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건물을 부수고 다시 세울 정도로 이상철이 움직이는 조직의 규모가 컸다.
전생에서 경영지원실장이었던 영웅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제 영웅은 회사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그와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려면 권모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프로틴X를 완전히 파악하려면 최신 장비가 있고 동물 실험 등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실험실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동생을 회복시키기 위한 연구도 계속 해야 하고요?”
“네.”
연이은 질문에 권모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영웅을 바라보았다.
“회사를 옮기면 어떻겠습니까? 선임연구원 자격을 드리고 연봉도 지금의 2배를 드리겠습니다. 회사 지분도 1% 드리겠습니다. 현재 시세로 50억 원 정도 됩니다.”
“어떤 회사입니까?”
“연구원님도 아는 회사입니다. 유니콘입니다.”
영웅과 함께 교육을 받은 권모수는 유니콘을 알고 있었고 유민조 대표와도 친하게 지냈다.
“스타트업 회사이지만 활발하게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고 곧 상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거기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유니콘에서 건강 검진 캡슐을 만드는 것은 아시죠. 그 캡슐에 호르몬, 효소 등 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탐지할 수 있는 나노 센서를 만들어서 탑재하시면 됩니다. 동생분을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런 결정은 유민조 대표님이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유민조 대표님도 찬성하셨습니다. 제가 유니콘 기술고문으로 있고 지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분 1%는 제가 드리는 겁니다.”
“왜요?”
“프로틴X를 연구하는 대가입니다.”
“왜 그렇게 프로틴X에 관심을 가지는 거죠? 엄청난 돈을 주면서까지?”
과학자이기 때문인지, 원래 성격이 그래서인지 권모수는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는 버릇이 있었다.
수업 중에도 계속 질문을 해서 답하다 말문이 막힌 강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도 있었다.
영웅은 솔직히 말하기로 결심했다.
“연가시 같은 좀비 기생충을 개량해 만든 약으로 인간을 조종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연구원님의 뇌과학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SF 소설 같은 이야기네요.”
권모수가 믿기 힘든 표정으로 영웅을 바라봤다.
영웅이 휴대전화를 꺼내 무너지기 전 건물 2층에서 찍은 연구실과 동물 실험 장면을 보여주었다.
“연가시에서 추출한 물질을 동물에게 주입해 실험하는 장면입니다. 왜 이런 실험을 하고 있었을까요?”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물들을 보십시오.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을 사람이 먹는 원료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자 건물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권모수가 찬찬히 동영상을 되감아 틀어보았다. 거기에는 원숭이, 침팬지 같은 유인원도 있었다.
“이렇게 무모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인체실험도 할 수 있겠네요.”
무심코 내뱉은 권모수의 말에 영웅은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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