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실험 (1)

인사가 끝나자 송 차장이 영웅을 회의실로 불렀다.
“이야기 좀 하지.”
회의실로 들어간 영웅이 송 차장과 마주 앉았다.
“왜 그렇게 개인 돈을 들여서까지 스타트-업을 추적한 건가?”
많은 내용을 함축한 질문이었다.
송 차장은 영웅이 은밀한을 고용한 사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과 회사가 잘되기를 바라서입니다.”
영웅이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회사원이? 그것도 사원이?”
송 차장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사장의 오른팔답게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영웅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네, 이상철 소장에게 무슨 악감정 있나? 내가 알기로는 자네에게 꽤 우호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건 없습니다. 말씀드렸듯 회사를 위해서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해야지.”
영업을 한 영웅이 보기에도 대화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많은 질문을 하면서도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는 내비치지 않았다.
침묵하고 있는 영웅을 웃음 띤 표정으로 지켜보던 송 차장이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개인 돈 쓰지 말게. 사장님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하셨으니까 돈이든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말해. 보고도 자네가 알아서 하게. 나를 거치지 않고 사장님께 직접 보고해도 돼. 내게도 알려주면 고맙겠지만.”
송 차장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할 말은 다 했으니 나가서 일 보게. 업무 지시는 없으니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감사합니다.”
영웅이 꾸벅 인사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이슬기가 영웅을 자리로 안내했다.
팀원들과 떨어진 창가 구석진 자리였다.
“사무용품은 제가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비품 준비는 제 담당이니까.”
필기구는 물론 포스트잇까지 있었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밥 사세요.”
보기와는 달리 이슬기는 당돌한 면이 있었다.
“아, 네, 언제 시간 될 때 사겠습니다.”
“약속하신 거예요?”
“네.”
자리에 앉은 영웅은 노트북을 켜놓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새로운 부서로 배치됐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경영지원실장을 해봤지만 기획팀은 처음이었다.
기획팀은 외근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철영 과장과 이슬기 주임을 빼고 모두 외근을 나갔다.
“아, 벌써 밥때가 됐네. 강 대리 밥 먹으러 가자.”
사무실에 남아있던 셋은 구내식당으로 갔다.
“기획팀 문서는 어디 있습니까? 공부하려고 사내 인트라넷에 들어가 보니 텅 비어있던데.”
“기획팀 문서는 별도로 보관해. 그리고 기획팀원이라도 문서를 다 볼 수 없어. 등급을 나눠놓아서 일급비밀 이상은 담당자와 팀장님만 볼 수 있어. 만약 보고 싶다면 팀장 결재를 받아야 해.”
“식사하고 올라가서 제가 기획팀 문서를 보관해 둔 사이트를 알려드릴게요.”
이슬기가 말했다.
식사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이슬기가 영웅의 옆에 앉아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아이디는 사번이고 비밀번호는 알아서 지정하세요. 제가 허가를 해놓았으니 들어갈 거예요.”
틀어가 보니 카테고리별로 나눠져 있었다.
이 과장의 말대로 문서 옆에 비밀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2급이라고 쓴 문서를 눌러보니 내용이 보였다.
“1급이나 극비라고 쓴 문서를 눌러보세요.”
1급 문서를 누르니 팀장 결재를 받겠냐는 안내문이 떴다.
“고맙습니다. 이제 제가 해보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보겠습니다.”
이슬기가 자리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영웅은 상품 카테고리로 들어가 스타트-업을 클릭했다.
원료로 들어가 프로틴X를 클릭했다.
구매처와 담당자,.. 사장 이름이 나왔다.
사장 이름 ‘이기철’을 클릭하니 전화번호와 집 주소까지 나왔다.
생각보다 기획팀은 치밀한 곳이었다.
영웅은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메모지에 옮겨적었다.
옥상으로 올라간 영웅은 이기철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은밀한에게 보내고 밀착 조사를 부탁했다.
사흘 후 은밀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둘은 늘 만나던 커피숍에서 만났다.
“더 이상 조사하는 게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왜요?”
“집에서 놀고먹는 평범한 할아버지입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게 편의점에서 막걸리 살 때뿐입니다.”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잖아요?”
“바지 사장 같아요.”
은밀한이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검은 비닐봉지에 막걸리를 담아 가는 모습이 영웅의 눈에도 평범한 할아버지로 보였다.
“왜 바지 사장 역할을 한 거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뻔하지 않습니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간 거죠. 실제 운영은 우리가 본 조폭 같은 놈들이 한 거고요.”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연관돼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요.”
“그럼, 직접 만나보세요. 위험한 사람 아닙니다.”
은밀한은 편의점 앞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척 앉아 있다 할아버지를 불러 같이 술을 마셨다.
여러 가지로 떠보았지만 평범한 노인이었다. 절대 사업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업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니 진저리를 치더라고요.”
“YG식품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의심할 것 같아서요. 말할 것 같지도 않고. 심하게 겁먹은 것 같아요.”
조폭이 연관돼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뻔한 스토리라 이 정도에서 조사를 마치려 했는데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으세요?”
“네. 알고 싶습니다. 연관된 사람들 정체도 파악하고 싶고요.”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떻게요?”
“겁을 줘야죠. 심약한 사람이라 통할 겁니다.”
다음날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이기철 집의 벨을 눌렀다.
은밀한의 동료B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찰을 본 이기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건물 폭파 사건으로 조사할 게 있어 이기철 씨 뵈러 왔습니다. 안에 계시는 거 아니까 문 열어주십시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연 이기철이 손이 떨고 있었다.
B는 거침없이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무엇을 조사하시려고?”
“건물이 폭파될 때 어디 계셨습니까?”
“아내와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건물이 무너진 건 언제 아셨습니까?”
“거기 사는 친구가 전화해서 알았습니다.”
“폭파 현장에는 언제 갔습니까?”
“안 갔습니다.”
“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건물이 무너졌는데 안 갔다고요? 왜 안 갔습니까?”
“무서워서···.”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 이기철은 겁에 질려있었다.
B는 다그치기보다 구슬리기로 전략을 바꿨다.
“건물 안에서 모기와 사마귀, 연가시를 키우는 것은 아셨죠?”
“그건 어떻게?”
“알고 계셨네요.”
“왜 그런 걸 키우셨습니까?”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이기철이 긴 한숨을 토해내며 이야기를 했다.
땅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기철 소유였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 그 땅에 식품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자기는 농사만 짓던 무지렁이라 그런 걸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요새는 농사를 짓다가 식품회사를 차려 재벌이 된 사장님이 많습니다. 인터넷 시대입니다. 고객들이 알아서 주문을 해오니 장사하기도 편해졌습니다. 자식들에게도 번듯한 모습 한 번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듭 거절했지만 사내는 몇 번이나 찾아와 운영은 자기가 할 테니 안심하라고,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이익이 나지 않으면 배상해 주겠다고까지 말했다.
“서울에 빌라지만 집도 한 채 사드리겠습니다. 여기다가는 공장을 지어야 하니까요.”
“공장 지을 돈은요? 저는 그런 돈 없습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기 소유로 된 집 등기부등본을 보고 이기철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이사를 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공장을 보며 흐뭇했다.
그러던 중 사내가 태도를 바꿨다.
채무 이행 각서를 가져와 사인하라고 했다.
무려 10억 원이나 되는 돈이었다.
사인을 못하겠다고 하자 사내가 구슬렀다.
“그러면 건물 한 채를 공짜로 지을 생각이었습니까? 이 돈 1년 안에 뽑아냅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사인을 하지 앉자 문신을 한 조폭들이 몰려와 아이들 이름까지 들먹였다.
이기철은 할 수 없이 사인을 했다.
건물이 완공되고 이기철은 사장이 됐다.
처음에는 사장실로 출근했지만 할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은 사내가 알아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1층에서 모기와 사마귀, 지렁이 비슷하게 생긴 생물을 키우는 것을 보았다.
식품회사라면서 왜 그런 걸 키우냐고 물어봤다.
사내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지금 유행하는 식품입니다. 미국에서는 식용 곤충을 키워 단백질을 만드는 회사가 많아요.”
인터넷으로 관련 회사도 보여줬다.
정말 그런 회사가 많았다.
조폭들이 들어오고, 외국인이 일하러 오고, 할 일이 없는 이기철은 가끔 생각날 때만 출근했다.
다행히 돈은 꼬박꼬박 들어왔다. 농사지을 때보다는 수입이 좋았다.
그러다 공장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B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침묵하고 있는 이기철 옆으로 가서 동물 실험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내부를 촬영한 영상이 있다는 것을 안 이기철이 놀랐다.
“허가받지 않고 동물 실험하는 것은 아셨어요?”
“허가받아야 하는 건 몰랐고 이건 봤습니다.”
“왜 실험한다고 하던가요?”
“곤충들로 만든 단백질을 동물 사료로 만들려고 실험한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뭐 하는 데입니까?”
연구실을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B가 물었다.
“식품과 사료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연구했나요?”
“여자 박사님이요. 이름은 모릅니다. 모두 박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진이 있습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개업식 때도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아까 채무 각서 쓰셨다고 하셨죠? 그 서류 좀 보여주세요.”
꺼내 온 각서를 사진 찍은 B는 두려워하는 이기철을 안심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이기철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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