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실험 (3)

영웅과 모수는 미안해하는 여자를 달래고 집을 나왔다.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까?”
“정밀 분석을 해야 확실하게 알 수 있지만 뇌파와 맥박이 비정상적으로 빠릅니다. 스테로이드와 프로틴X도 검출됐습니다.”
영웅은 권모수에게 프로틴X 잔류 여부를 파악할 수 있게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프로틴X가 나왔어요?”
영웅이 놀라 묻자 모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인체 실험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고 임상 실험을 하는 곳은 YG식품과 연관돼 있을 수 있었다.
“돌아가서 임상 실험 장소를 물어봐야겠어요.”
돌아서는 영웅을 모수가 붙잡았다.
“아까 집에서도 물어봤잖아요.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을 겁니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닙니다.”
잠시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하던 권모수가 말했다.
“남자는 약물에 의해 최면에 걸린 것 같아요. 깨어있지만 좀비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임상 시험 장소를 찾을 수 없을까요?”
“찾을 수 있습니다. 캡슐이 아직 몸 안에 있으니까요. 프로틴X 잔류량으로 파악했을 때 남자는 최근까지 임상 시험을 계속 당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밤 10시경 찾아가는 곳이?”
“맞습니다. 임상 시험을 하는 곳일 겁니다.”
영웅과 모수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캡슐에서 보내는 전파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집을 나왔나 봅니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모수가 말했다.
여자의 말처럼 남자는 밤 10시경 집을 나왔다.
둘 멀찍이 떨어져 남자를 미행했다.
남자가 큰길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시 후 검은색 봉고차가 서고 문이 열리자 남자가 탔다.
당황한 영웅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빨리 주차한 곳으로 갑시다.”
영웅과 모수가 달려가 차를 타고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몰았다.
다행히 직선주로였다.
영웅은 최대로 속도를 올렸다.
“다시, 전파가 잡힙니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모수가 말했다.
영웅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앞에 있습니다.”
검은색 봉고차가 보였다.
갓길로 빠진 봉고차가 큰길을 빠져나갔고 영웅도 같은 방식으로 뒤를 쫓아갔다.
차가 거의 지나지 않는 길이 나왔다.
“들키지 않게 천천히 가세요. 캡슐에서 보내는 전파를 쫓아가면 됩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봉고차가 산길을 올라갔다.
뒤를 쫓아 산길을 오르려는 영웅에게 모수가 말했다.
“차가 멈췄습니다. 쫓아가면 들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갑시다. 저기 공터가 있네요.”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내려 산 길을 오르려는데 뒤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쳤다.
둘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또 다른 검은색 봉고차가 보였다.
“한 대가 아닌가 보네요.”
연이어 다른 봉고차가 산길을 올라갔다.
“찻길로 가면 들킬 텐데 어떡하죠?”
주위를 둘러보는 영웅의 눈에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보였다. 등산로인 것 같았다.
“이리로 갑시다.”
둘은 나뭇가지에 얼굴이 쓸리며 어두운 산길을 올라갔다.
봉고차들이 올라간 쪽에서 하얀색 건물이 보였다.
외관으로 봐서는 병원이나 연구소 같았다.
둘은 길도 없는 산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최대한 건물 가까이 갔다.
철망으로 사방을 둘렀고 철문 앞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문을 통제하고 있었다.
“좀비 몇 마리야?”
걸어가 차 문을 연 사내가 물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말했다.
“여섯 마리.”
차에서 내린 여섯 명을 사내가 인솔해 끌고 갔다.
사내 말처럼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전파가 잡히나요?”
영웅이 모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네. 잡힙니다.”
“일단 여기서 조사합시다. 어떤 신체 변화가 있는지.”
영웅이 겉옷을 벗어 휴대전화 불빛이 보이지 않도록 덮었다.
“실험이 시작됐나 봅니다. 혈압이 급격하게 오르고 맥박이 빨라졌습니다.”
휴대전화를 살펴보며 권모수가 말했다.
“프로틴X, 에페드린, 스테로이드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심장 박동수가 한도치를 넘었습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때 건물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창문을 깨고 몸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자주 있는 일인 것처럼 남자 둘이 달려오더니 떨어진 사람을 들것에 실어 건물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혈류량과 에너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몸부림치는 것 같습니다. 뇌파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던 권모수가 하!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수치만 보고도 그에게는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 잔인한 실험은 처음 봅니다.”
새벽 1시쯤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걸어 나왔다.
정신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탈진 상태라 그렇게 걷는 것 같았다.
주저앉는 사람을 인솔하던 남자가 몽둥이로 때려 일으켜 세웠다.
실험자들이 타고 왔던 봉고차로 들어갔다.
하나, 둘 봉고차가 떠나갔다.
봉고차가 다 사라지자 사내들이 철문을 잠그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영웅과 모수는 조심스럽게 산길을 내려왔다.
공터에 세워둔 차에 타자마자 빠르게 차를 몰았다.
“임상 실험이 아닙니다. 불법 인체 실험입니다.”
권모수가 분개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실험하고 있는 걸까요?”
“과학자로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좀비로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좀비? 그게 무슨 뜻입니까?”
“최면에 걸려 조종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죽을지도 모를 인체 실험에 참여하는 것을. 실험자들이 조종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무조건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게 좀비가 아니고 뭡니까. 스테로이드 등 약물의 힘을 빌려 한꺼번에 에너지를 폭발시키면 웬만한 사람은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어떻게 조종자의 뜻에 따르게 하는 걸까요?”
“최면이나 세뇌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렇게 맹목적으로 따르나요? 최면이나 세뇌가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프로틴X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수면내시경 해 봤죠? 마취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잃습니다. 그와 비슷한 겁니다. 프로틴X가 전두엽을 마비시키는 것은 동물 실험으로도 확인했는데 어떻게 사람을 조종하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저들의 연구자료를 볼 수 없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인체 실험 장소로 들어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YG식품과는 달랐다.
인체 실험을 하는 장소라 그런지 경계가 삼엄했고 일의 성격상 안에도 많은 인원이 있을 것 같았다.
“건물은 제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권 수석님은 최면을 걸어 조종하는 원리를 파헤쳐 주십시오.”
영웅은 흥분한 권모수를 달래 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왔다.
밤새 실험 장소에서 들었던 비명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권모수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
새벽에 건물 위치와 캡슐로 감지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보내왔다.
‘이놈들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흉악한 범죄집단입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영웅은 자신이 증거를 잡을 때까지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답 문자를 보냈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꼬리만 자르고 달아나 어디선가 같은 일을 반복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조직이었다.
어쩌면 재벌이나 정치인이 연루돼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사람을 조종하는데 관심이 많은 부류였다.
실제 영웅은 이상철이 사장으로 있는 친구에게 약을 주며 회사 직원을 조종하라고 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영웅은 해가 뜨자마자 은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 좀 잡시다. 잠 좀.”
은밀한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미안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영웅 씨 하는 일 중에 급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은밀한이 전화를 끊으려는 기척을 보여 영웅이 서둘러 말했다.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입니까?”
“아, 참.”
혼자 화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은밀한이 말했다.
“잠 다 깼습니다. 지금 만납시다. 그런데 회사 출근 안 해도 돼요?”
“네. 출근 안 해도 됩니다.”
“그래도 월급은 나오고요.”
“나옵니다.”
“부럽습니다. 나는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야 하는데.”
잠투정인지 뭔지 투덜거리며 약속 장소를 잡았다.
은밀한을 만난 영웅이 어젯밤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체 실험? 지금 세상에 그런 실험을 하는 조직이 있다고요?”
“네. 있습니다.”
“인체 실험하는 장면을 직접 봤습니까?”
“보지는 못했지만 증거가 있습니다.”
영웅이 권모수에게 받은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봐도 이해가 안 되는지 영웅에게 물었다.
“설명하려면 이야기를 길게 해야 합니다.”
“잠도 깼고 당장 할 일도 없으니 길게 이야기해 보세요.”
영웅은 먼저 가지고 있던 캡슐을 꺼내 기능을 설명했다.
“이걸 먹으면 몸의 각종 증상과 변화, 심지어 몸 안으로 들어온 약물까지 검사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초기 모델은 식약처 허가를 받아 이미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밀한이 캡슐을 집어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캡슐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영웅은 의료 플랫폼에 여자가 올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남자의 증세, 뒤를 미행해 본 내용을 말했다.
“비명이 들리고 유리창을 깨고 몸을 던지는 사람도 봤습니다.”
영웅이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아 사진은 흐릿하게 보였지만 땅에 떨어진 사람을 들것으로 옮기는 장면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왜 인체 실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보고서에 쓰여 있듯이 약물에 중독됐기 때문입니다. 불법 체류자들이라 신고도 못 하고요.”
비로소 이해한 은밀한이 화를 냈다.
“사람이 아니라 악마네. 그런데 왜 이런 실험을 하는 겁니까?”
“그걸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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