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 (1)

회사로 출근한 영웅은 이현철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바로 올라오시래요.”
면담을 요청한 지 5분도 안 돼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웅은 인체 실험실 관련 자료를 정리한 서류를 들고 사장에게 갔다.
현재로서는 프로틴X만 검출되었을 뿐 인체 실험실이 이상철이나 대민제약과 관련된 증거는 없지만 영웅은 이현철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웅이 장기간 출근을 하지 않아 활동 내용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넘어 정치권, 재벌과 결탁했을지도 모를 이상철의 활동을 제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현철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서 오게. 오랜만이네.”
이현철이 반기며 영웅을 맞았다.
“그동안 뭐 했나?”
보고를 자주 하지 않은 영웅에게 질책하는 소리로 들렸다.
“YG식품에서 만든 프로틴X를 추적하다 그 물질을 사용하는 인체 실험실을 발견했습니다.”
“인체 실험실? 그게 뭔 소린가?” 영웅은 준비해 간 보고서를 이현철에게 건넸다.
보고서를 읽어가던 이현철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예. 모두 사실입니다. 실험실에서 빼낸 자료도 있습니다.”
“상철이가 연관된 증거는 없단 말이지?”
“네. 없습니다. 다만 스타트-업에 사용했던 프로틴X가 인체 실험에 사용했단 소문이 나면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기에 미리 대비는 해야 합니다.”
“상철이가 연관된 증거가 없다니 다행이지만, 걱정이기도 하네.”
“어떤 점이 걱정이십니까?”
“이대로 손 놓고 가만있을 놈이 아니잖아.”
이현철은 이상철이 YG식품, 인체 실험실과 연관돼 있다고 믿는 듯했다.
“그 자식은 어릴 때부터 좀비균에 관심이 많았어. 집에서 연가시를 키우기도 했지. 할아버지는 천재 과학자다운 모습이라고 그런 상철이를 독려했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이현철이 아차 싶었던지 말을 멈췄다.
“지금 들은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말게.”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자네가 없는 동안 회사에도 문제가 있었네?”
이현철이 화제를 바꿨다.
“이승철 사외이사가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사망했네. 내가 사장이 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분이라 충격이 컸네. 가족에게 위로금을 드리고 조문했지만 마음이 아프네.”
“부검은 해보셨습니까?”
주위를 살핀 이현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는 눈들이 많아 부검은 하지 않았지만 혈액 채취 등 여러 검사를 해보았네. 이상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어. 프로틴X도 발견되지 않았고.”
말은 하지 않아도 이현철은 이상철을 의심하고 있었다.
사람을 조종하는 뇌 실험을 할 정도면 표 안 나게 죽이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사장님도 당분간 음식물 드실 때 조심하십시오.”
“허, 이거 기미상궁이라도 둬야 하나.”
화가 나는지 입을 꾹 닫은 이현철이 창밖을 바라봤다.
“혹시, 국회의원 신주영이라고 아십니까?”
“신주영? 자네가 주영이를 어떻게 아나?”
이현철이 오히려 반문했다.
“인체 실험을 했던 R&D 제약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왜?”
“주가나 펀드가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업가같이 생긴 사람들과 함께 왔답니다.”
돈이 목적인 것 같다고 말하자 이현철이 긴장을 풀었다.
“신주영은 고등학생 때부터 사귄 상철이 친구야. 집에도 자주 놀러 왔어. 상철이는 어렸을 때부터 권력가나 재벌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지. 거의 정기 모임을 할 정도였어.”
그렇다면 R&D제약에 찾아온 기업가들도 이상철의 동창이나 친구일 가능성이 높다.
“신주영도 한국대를 나왔고 아버지 법률회사에서 일하다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됐어.”
“그 사람도 조사해야 하는데 제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혹시 검찰이나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굳이 정치인까지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이현철이 망설였다.
“주가 조작이 사실이라면 회사에 영향은 없고 다른 쓰레기도 같이 치울 수 있습니다.”
영웅은 이상철을 쓰레기라고 돌려 말했다.
“알았네. 생각해 보지.”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실험실 연구소장이 주진수란 사람인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주진수?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영웅은 은밀한에게 주진수 조사도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이현철과 면담하고 나오면서도 영웅은 머리에는 같은 의문이 맴돌았다.
‘주가 조작일까? 사람 조종일까?’
신주영이나 다른 기업인들이 사람 조종에 투자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드러내놓고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주가 조작인데 왜 폭력성을 키우는 인체 실험을 했을까?’
답답한 마음을 정리하려 회사 뒤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민희정이었다.
“잘 도착하셨어요?”
“네. 덕분에 잘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곳은 정하셨고요?”
“지금은 동생 집에 있는데 곧 방을 얻어 나갈 겁니다. 일자리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도 정말 감사해요. 여기 와서 생각난 게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네? 어떤?”
“그 사람들은 불법 체류자만 실험하지 않았어요. 2층에 따로 치매 환자들을 모아놓고 실험했어요.”
연고가 없거나 행방불명돼 보호자가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으리라.
불법 체류자나 치매 환자처럼 어디 하소연할 데 없거나,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실험 도구로 썼다.
악당이지만 치밀한 놈들이었다.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했습니까?”
“연구소장 말로는 치매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다만 방법이 정상적이 아니었어요. 대조군을 만들어 무작위로 약을 투여하거나 심한 경우 두개골을 열어 뇌에 약물을 직접 투여까지 했으니까요.”
전화기를 들고 있는 영웅의 손이 분노로 떨렸다.
“그래서 치료제는 개발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어떤 약을 실험했습니까?”
“저도 일부만 봤는데 여러 가지 성분과 결합한 아미노산 복합체였어요. 주원료가 되는 아미노산은 어디서 추출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좀비균이나 숙주에서 추출했을 것이다.
“투약 외에 다른 실험은 하지 않았습니까?”
“이걸 실험이라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망설이던 민희정이 입을 열었다.
“치매 환자 중에는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아무 데서나 배변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약물 치료와 함께 고문 등 충격을 줘서라도 행동을 고치려 했어요. 그 역시 잘되지 않았지만요.”
민희정과 통화를 하고 나서 영웅은 실험실을 운영한 자들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2층에서 그들은 치매 환자의 특성 중 하나인 폭력성을 다스릴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약의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줄 방법이기 때문이다.
배변 역시 마찬가지다.
폭력을 행사해 행동을 조종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치매가 치료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공포심을 일으켜 치매 환자를 조종한 것이다.
‘신주영이나 기업가들은 치매 치료제 개발에 투자한 것이다.’
이들이 어디까지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사실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거니까.
영웅의 예측은 맞았다.
R&D제약이 치매 치료제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장외거래에서 주가가 수십 배 치솟았다.
치매 환자가 완치돼 가는 과정, 인터뷰하는 모습이 너튜브로 퍼지면서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환자와 더불어 고통받아 온 보호자들 역시 R&D 제약에 찬사를 보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에서도 해내지 못한 일을 새로 만들어진 한국 제약회사에서 해낸 것이다.
영웅은 민희정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현철에게 보고했다.
“사실인가?”
“증거 영상이 있습니다.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요.”
영웅은 이현철에게도 야간 투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조작된 영상이거나, 다른 내용이라고 주장하겠지. 이 영상만 가지고는 부족해. 주범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고.”
자칫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에 영웅은 민희정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민제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어서인지 이현철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치고 일어서는 영웅에게 이현철이 말했다.
“내일 지능수사대 팀장을 소개하지. 그 사람에게 자네가 밝혀낸 사실을 알리게. 단, 대민제약과 무관하게 일반시민이 제보한 것으로 해야 하네. YG식품이나 프로틴X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고. 미리 고민해서 어떻게 이야기할지 시나리오를 짜서 오게. 철저히 금융 범죄에 초점을 맞춰.”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