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 (5)

그날 밤 신주영 의원이 요양병원 원장에게 전화했다.
“내일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압수 수색 들어갈 겁니다.”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거리를 방황하는 치매 환자 영상이 퍼져 어쩔 수 없었어요. 어쨌든 압수 수색 이유는 주가 조작입니다. 큰 문제는 없겠지만 대비하세요.”
“주가 조작이면 본사로 가야지 왜 병원으로 옵니까?”
“그러게요. 바보 같은 놈들.”
잠시 침묵하던 신주영이 말했다.
“치매 환자들과 실험 기록도 치워 두세요. 주가 조작을 빌미로 그걸 조사할지 모르니까.”
“영상 퍼지자마자 실험 중단하고 자료도 다 치워놓았습니다.”
“혹시, 지난번 베트남 여자처럼 헛소리를 지껄일 사람은 없습니까?”
“약을 투입한 다음 세뇌하고 검증까지 마쳤습니다. 어차피 남아있는 사람들은 식물인간 비슷한 상태라 증언할 수도 없습니다.”
“믿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원장은 원무과장 등 심복들을 불러 내일 경찰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올 거라고 알리고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박진이 형사들을 이끌고 요양병원에 갔을 때 정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박진 일행이 다가가자 경비가 기다렸다는 듯 나와 굽신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려? 뭘 기다려? 우리가 누군지 알고?”
당황한 경비가 대답 못하고 쩔쩔맸다.
“샜네. 샜어. 쥐새끼가 있었네.”
박진 옆에 있던 형사가 말했다.
“팀장님 이거 들어가도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일단, 들어가자.”
정문을 닫으려고 하는 경비를 본 박진이 말했다.
“놔두세요. 사람 더 옵니다. 큰 차도 들어오고요.”
박진이 눈짓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강력계 김인환 팀장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정문에 서서 부하들이 오기를 기다렸고 박진은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원무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능범죄수사팀에서 나왔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입니다. 지금부터 환자 치료 외에 모든 행동을 중지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협조하겠습니다.”
원무과장이 놀라지도 않고 순순히 응했다.
“수색해.”
박진이 명령하자 형사들이 2층과 3층으로 움직였다.
“원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혼자 남은 박진에게 원무과장이 말했다.
“원장실은 갈 필요 없습니다.”
“예? 주가 조작 혐의로 서류 찾으러 오신 거 아닙니까?”
그때 원무과장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 굴착기가 들어옵니다... 형사들도 우르르 몰려옵니다...”
박진도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를 끊은 원무과장이 박진에게 물었다.
“서류 찾으러 오셨는데 왜 굴착기가 들어옵니까?”
“서류를 땅속에 숨겼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누가요? 누가 그런 제보를 해요?”
원무과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보자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박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무과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곧바로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던 건물 뒤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일대는 이미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었다.
경계를 서고 있던 형사가 원무과장을 제지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굴착기가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구덩이 안에서 흰색 방역복을 입은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람 뼈입니다.”
남자는 손에 검게 변색 된 뼈를 들고 있었다.
“뼈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켜보던 원무과장의 무릎이 휘청하며 꺾였다.
급하게 처리하느라 완전히 없애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니까 저 사람 긴급 체포해.”
김인환이 지시했다.
옆에 있던 형사가 원무과장 손에 수갑을 채웠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미란다 원칙을 이야기한 형사가 원무과장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당신은 살인 사건 피의자입니다. 병원에서 직책은 무엇입니까?”
“원무과장입니다.”
대답하는 원무과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리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여기에서 죽은 사람을 소각하고 묻는 것을 알고 있었죠?”
“아닙니다. 몰랐습니다.”
“에이, 여기로 달려온 걸 보면 알고 있었다는 건데?”
“아닙니다. 여기서 시체를 태운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원무과장이 알면서도 인정한 거니 사체 유기죄네. 사체 유기죄도 형량이 커요. 누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협조하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원장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형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원장실을 노크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원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낯선 사람들이 처음 보는 기구를 가지고 병실을 들락거렸다.
“찾았습니다.”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몽둥이에 혈흔이 남아있습니다. 설마 병원에서 몽둥이로 치료하지는 않을 테지요.”
“여기도 찾았습니다.”
다른 병실에서 나온 남자가 말했다.
“심장 제세동기를 변형시켜 만든 전기충격기입니다. 끝을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부착할 수 있도록 집계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형사들은 고문 장치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슬며시 비상구로 달아나려는 원장을 키 큰 사내가 막아섰다.
박진 팀장이었다.
“증거 인멸 협의가 있어 긴급 체포합니다. 체포해.”
박진이 옆에 있던 형사에게 지시했다.
수갑을 차는 원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분 오줌을 지리시는데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겁을 먹으시면 어떡합니까? 화장실로 모셔가서 티 안 나게 닦아드려. 누가 보면 때린 줄 알겠다.”
형사가 화장실로 원장을 끌고 들어갔다.
같은 시간에 다른 광수대 형사들이 경찰들을 동원해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살았거나 일하던 곳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칫솔이나 컵 등 DNA가 남아있을 만한 물건들을 수거했다.
주변 사람에게 이름 등 인적 사항을 물어 최대한 기록했다.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처음 경찰을 보고 놀라 달아났던 외국인들이 몰려와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이 제시한 정보로만 파악해도 범죄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광수대에서는 병원에서 발견된 뼈와 별도로 수집한 물건을 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DNA 대조를 요청했다.
검사 결과 11명의 DNA가 일치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뼈나 혈흔도 23개였다.
어림잡아도 30명 정도가 살해된 것이다.
광수대에서는 정식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원장과 원무과장, 소각장 관리자였던 설비과장을 심문했다.
세 사람의 증언은 한결같았다.
사체 유기에 협조한 것은 인정했지만 살해나 고문, 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주진수 연구소장과 그가 데려온 조폭 같은 사람들이 한 짓이다.
자신들도 그들의 협박이 무서워 동조한 것뿐이다.
광수대에서는 주진수를 추적했지만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름은 가명을 쓴 것 같고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주진수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한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야, 본사에서 했죠.”
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수대에서는 신속하게 R&D본사로 쳐들어갔다.
이번에도 지능범죄수사팀과 공조했다.
김인환은 바로 사장실로 올라갔다.
“30명이나 살해된 사건입니다. 병원 관계자들은 주진수가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진수가 누구입니까? 왜 그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했습니까?”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사장이 말했다.
“나는 모릅니다. 인사부장이 추천해 결재했을 뿐입니다.”
“인사부장이 추천했다고 연구소장으로 발령 냅니까?”
“워낙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서요. 믿고 맡겼습니다.”
사장은 인사부장 핑계를 대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인환이 뒤에 서 있던 형사에게 지시했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니 인사부장 긴급 체포하고 전 직원 인사 기록 카드 즉시 확보해.”
“네.”
명령을 받은 형사가 급히 달려 나갔다.
“주진수에게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라고 지시하셨습니까?”
김인환이 다시 사장에게 물었다.
“네. 지시했습니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이니까요.”
이어 사장이 덧붙였다.
“하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치료제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고요.”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그걸 몰랐다는 건 직무 유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을 선발하면 믿고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노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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