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 (7)

박진이 차트를 손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이 사람 완치됐다는 실험 자료 내놔. 전체는 주진수가 관리했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은 네가 작성해서 보고했을 거 아냐.”
연구원이 뭐라 말하려 하자 박진이 다그쳤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이 사람은 죽었다는 증거가 있어. 너는 완치됐다고 썼고 네가 핑계를 대고 있는 주진수는 없어. 설령 있다고 해도 자기가 지시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생각해 봐. 그러면 결론이 어떻게 나겠어? 네가 죽이고 서류를 조작한 거야.”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실험 결과서를 내놔. 그러면 주진수가 조작하도록 지시했다는 말을 믿어줄게.”
고민하던 연구원이 말했다.
“실험 결과서가 연구실에 있습니다. 잠시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박진이 밖에서 기다리던 형사들을 불렀다.
“이 형사, 김 형사 데리고 연구실 갔다 와. 살인 사건 피의자이니 달아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네. 알겠습니다.”
일어서는 연구원에게 박진이 말했다.
“다른 연구원들이 한 것까지 뒤져서 몽땅 가져와. 그래야 주진수가 지시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겠어. 옆에 있는 형사들이 알고 있었다고 하면 배신자라는 욕은 듣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연구원이 힘없이 대답했다.
잠시 후 연구원과 형사들이 상자에 서류를 담아왔다.
“다른 연구원들이 작성한 서류도 가져왔어?”
“네.”
“경찰에서 압수수색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 형사가 덧붙였다.
“잘됐네. 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서류를 어떻게 조작했는지 설명해 봐. 우선 자네 것부터.”
명령을 들은 연구원이 상자에서 그래프가 그려진 종이를 꺼내 박진의 옆에 앉았다.
“이게 원래 데이터입니다.”
연구원이 서류를 펼치며 말했다.
“그 데이터를 이렇게 바꿨습니다.”
서류에는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쁜 상태인데 좋은 상태라고 기록한 거네.”
“맞습니다.”
“죽은 환자 가족에게는 뭐라고 했어?”
박진이 불쑥 물었다.
“지병으로 인한 돌연사라고 했습니다. 치매 환자는 대부분 노인이라 다른 지병들도 많으니까요.”
“가족들이 그 말을 그대로 믿어?”
“적당히 위로금을 줬습니다. 돈을 내밀면 이의를 제기하던 사람도 수긍했습니다.”
이해가 가면서도 마음이 씁쓸했다.
“행방불명돼서 시체로 나타난 사람들은 뭐야?”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도 실험했잖아? 소각장에서 뼈도 발견됐어.”
“아, 그 사람들은 저도 잘 모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지.”
“정말입니다. 주진수 소장이 조폭들에게 가운을 입혀 실험했습니다. 약물과 세뇌로 사람을 조종하는 실험 같았습니다. 반항하거나 고발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고문하고 끝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약으로 살해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 새끼 완전 또라이 아냐!”
“네?”
연구원이 몸을 움츠리며 물었다.
“너 말고. 주진수 그놈.”
“또라이 맞습니다. 완전 미친놈입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지 연구원이 몸을 떨었다.
“그놈 심복 노릇을 한 너도 대단하네.”
“하고 싶어 한 게 아닙니다. 겁나서 했습니다. 가족까지 언급하는데 어떡합니까?”
“알았어. 자네도 힘들었겠네.”
악에 받친 연구원의 소리를 들은 박진이 어르며 말했다.
“자, 다음 질문.”
박진이 준비해 온 서류를 펼치며 물었다.
“자네, R&D제약 주식 샀지?”
연구원이 침묵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 사장부터 청소부까지 안 산 사람이 없어.”
“회사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에···.”
“그럴 수 있지.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에 살 수 있어. 그런데 문제는 팔면서 수십 배 폭리를 취한 거야. 공교롭게도 주가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사장부터 직원들까지 팔기 시작했어. 이러면 내부자거래를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 지능범죄수사팀이 그런 걸 전문으로 다루는 데라 주식 차트만 봐도 알 수 있어.”
“저 같은 말단 직원에게 누가 그런 고급 정보를 줍니까? 저는 소문만 듣고 사서 이 정도면 이익을 많이 봤다 싶어 팔았습니다.”
“소문은 어디서 들었어? 가장 고점에서 팔았네. 그 정도 소문이면 꽤 고급 정보 같은데?”
연구원이 말을 하지 않자 박진이 다그쳤다.
“이러면 기껏 쌓아온 좋은 관계가 다시 무너지잖아. 말해. 네가 말 안 해도 다 알게 돼 있어.”
“주식팀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주식팀? 그런 팀은 없는데?”
박진이 조직도를 넘겨보며 말했다.
“TFT 형태로 임시로 만든 조직입니다. 사장 직속부서입니다.”
“그래.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와야지.”
박진이 다정한 눈으로 연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정에 약한 사람이야. 자네가 협조해서 수사가 빨리 진척된 거 잊지 않을게. 오늘 수사는 여기까지. 달아날 생각은 하지 마. 달아나지도 못하겠지만 바로 수배자 명단에 올릴 테니까. 나가봐.”
“초등학생 아이가 둘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연구원이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나갔다.
연구원이 나가자 박진이 형사에게 인사부장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지금 광수대 김인환 팀장님이 수사하고 계십니다.”
박진이 김인환 팀장에게 전화했다.
“선임연구원을 조사해서 왜 살해하고 데이터 조작했는지 알아냈어. 연구소장인 주진수가 지시한 일이야.”
“사장은 관계없고?”
전화기 저편에서 김인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더 조사해 봐야 해. 지금 인사부장 조사하고 있다며. 내가 잠깐 봐도 돼? 주가 조작 혐의가 있어.”
“나는 끝났으니까 네가 데려가.”
박진의 지시를 받은 이 형사가 인사부장을 데려왔다.
“이쪽저쪽에서 수사받느라 수고가 많네요. 그만큼 혐의가 많다는 뜻이겠죠? 지능범죄수사팀 박진 팀장입니다. 그쪽에 앉으세요.”
인사부장이 박진이 가리키는 의자에 앉았다.
“주식팀은 어디 소속입니까? 조직도에는 없는데.”
박진 입에서 ‘주식팀’이라는 말이 나오자 인사부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시적인 조직이라 조직도에는 없습니다.”
“누구 지시를 받고 움직였습니까?”
“한시적인 조직이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인사부장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박진이 호통을 치며 일어섰기 때문이다.
“아니, 이 사람이 누굴 빙다리 핫바지로 아나? 조직이 있는데 지시한 사람이 없다고? 회사에서 그게 말이 돼? 사장 직속부서로 있었잖아. 맞아? 틀려?”
박진의 호통에도 인사부장은 침묵했다.
“안 되겠네. 이 형사 이 사람 증거 인멸 혐의가 있으니 긴급 체포해서 경찰서로 끌고 가서 정식으로 심문해.”
이 형사가 수갑을 채우려 하자 인사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사장님 직속부서로 움직였습니다.”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박진이 손을 흔들어 이 형사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네가 충고 한마디 하지. 당신이 충성한다고 사장이 보호해 줄 것 같아? 아냐. 오히려 독박 씌어서 꼬리를 자르려 들거야. 교도소에서 삶을 끝내고 싶지 않으면 솔직하게 털어놔. 알아들었어?”
“네. 알겠습니다.”
인사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말이 통하네. 주식팀 팀원 명단은 어디 있어?”
“한시적인 조직이라 제가 따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제 방에 있습니다.”
“이 형사 데려가서 가져와.”
“가시죠.”
일어서는 인사부장에게 박진이 덧붙였다.
“주식팀에서 보고한 자료도 있으면 같이 가져와. 협조 잘하면 정상 참작할게.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가 사장 돕겠다고 나설 처지가 아냐. 사장이 죄가 있어야 자네가 살아.”
“알아들었습니다.”
잠시 후 인사부장이 이 형사와 함께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명단입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것은 주식팀장이 사장님께 보고한 ‘일일 보고서’입니다. 보고가 끝나면 제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일일 보고서에는 연필로 글이 쓰여 있었다.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점진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것.’
‘일시적으로 주가를 떨어트릴 것.’
‘지분 중 5%를 팔아 현금화할 것.’
“연필로 쓴 건 누가 쓴 거야?”
“사장의 지시한 내용을 제가 받아 적은 겁니다. 그래야 지시가 수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왜 연필로 썼어?”
박진이 알면서도 물었다.
“그거야... 나중에 지어서 흔적을 없앨 수... 있으니까요.”
“여기 적힌 대로라면 사장이 주가 조작을 지시한 거네?”
인사부장이 침묵했다.
“털어놓을 거면 화끈하게 털어놔. 그래야 화끈하게 도와줄 거 아냐. 어차피 주식팀 직원들 불러다 물어보면 다 알게 돼 있어. 그 사람들보다 먼저 협조하는 게 낫지 않겠어? 공정위인가? 거기서도 담합 사실을 먼저 말하는 회사에는 특혜를 준다는데. 나도 그 취지에 동감해.”
“맞습니다. 사장님이 주가 조작을 지시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제가 알고 있는 한 다 말하겠습니다. 대신 팀장님도 약속한 것을 지키시리라 믿습니다.”
“뭐,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없어. 나는 그저 날 도와주는 좋은 사람은 좋게 대해주고 애먹이는 나쁜 사람은 벌을 더 심하게 줄뿐이야.”
인사부장 뒤에 서 있던 이 형사가 박진이 심문하는 모습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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