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물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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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빛선
작품등록일 :
2024.05.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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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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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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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부동산은 차갑다

DUMMY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금 떠올려 보면 완전하지 않다.


시각적 이미지만 남아있는 것이 있고, 청각적 이미지만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따로 특별하게 보관이라도 되었는지,


시각, 청각뿐 아니라 그때의 분위기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나에게 그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부모님은 나와 동생의 손을 나란히 붙잡고, 어떤 빌라촌으로 들어갔다.


ㄴ자 모양의 4층 빌라였다.


중앙에는 미끄럼틀, 철봉, 그네, 시소가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 안의 가로등을 등지고 우리는 그 빌라의 어떤 곳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2층 창문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경민아,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 집이야.”


목소리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부모님은 계속 맞벌이를 해오셨었다.


내 기억 속의 가장 오래 전부터.


낡은 빌라였지만, 월세가 아닌 우리 집. 게다가 서울.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으신 기분이었을 거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14년을 넘게 살았다.




#


당시는 부동산이 계속 상승하던 시기였다.


부동산으로 누가 돈을 얼마 벌었네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신축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출 없이 아파트를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에도 신축 아파트는 빌라보다 비쌌다.


하지만 이자를 내면서 버티면 시세차익으로 보상받았다.


25평보다는 32평, 1채보다는 2채.


버틸 수만 있다면, 그 규모가 클수록 돈을 더 벌었다.


친척 중 한집은 10년간 이사를 3번이나 다녔다.


그 삼촌은 명절 때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삼촌, 친구들, 직장 동료, 옆집 사람의 성공이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부러웠던 모양이다.


우리의 낡은 빌라를 팔고, 전세로 다시 입주하여 투자금을 마련하셨다.


그리고 그 돈으로 경기도 어딘가의 아파트를 청약하셨다.


25평으로 갈지, 32평으로 갈지 부모님이 계속 싸우던 것이 기억난다.


결국 아버지의 승리로 결정이 났고 은행 대출을 받아 32평으로 계약을 했다.


그 아파트가 경기도 어디인지 모르는 이유


결국 입주는 하지 못했다.


시공사가 망하고 개발이 지연되었다.


원인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원인인지, 우리나라의 아파트 공급과잉인지는 모른다.


지연되는 동안에 은행 대출을 감당할 수 없었을 뿐.


그래서 경기도의 아파트와 작별했다.



역시 서울 부동산은 불패일까?


우리가 살던 빌라는 재개발을 시작했다.


그동안 재개발 이야기는 계속 있었지만 잘 안됐었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빌라 가격이 오른 이유를 우린 뒤늦게 알았다.


보금자리를 떠나 경기도 아파트로 갈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공사가 시작되었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우리는 옆동네 빌라로 이사갔다.




#


한 번의 부동산 투자 실패는 가족 행복의 변곡점이 되었다.


나는 대학교를 2년 다니다가 휴학을 했다.


입대날을 기다리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의사가 폐렴이라고 하는데 근래의 일로 면역력이 떨어지셨나 보다.


아버지는 불경기로 직장을 잃었다.


주변의 소개로 곧 학원 차량 운전을 시작했지만,

차량 구매에는 목돈이 필요해서 퇴직금이 모두 들어갔다.


생활비가 빠듯해졌다.


나는 입대를 연기하고 일을 계속했다.


동생도 일을 하면서 어머니를 간호했다.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고서야,


나는 미뤘던 입대를 했다.




#


군 생활은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점점 지루해졌다.

그래서 진중문고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 경제 관련 자기계발서는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다.

전에는 안 해봤던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밖에선 이런 책을 읽더라도 깊게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했겠지만


여기는 군대, 남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지는 곳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 돈이 충분하다면 투자를 해도 된다.


- 돈이 조금 있으면 투자를 하면 안 된다.


- 돈이 없으면 반드시 투자를 해야 한다.



첫 번째는 당연한 말이고,


두 번째를 보니 우리의 실패했던 투자가 떠올랐다.


아파트 공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었다면 투자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결과론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돈이 조금만 있었고 투자를 하면 안 되는 거였다.


투자를 안 했더라면?


가진 것은 지킬 수 있었겠지.



세 번째는 역설적인 말이다.


돈이 없는데 무엇으로 투자를 하라는 것인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나는 이것을 모험정신을 가지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계속 돈이 없는 상태로 살기보다는 모험을 해서 가져라.


로 이해했다.


그리고 투자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잘 몰랐었다.


아버지는 은행 ATM에서 돈 찾는 것도 당시에 처음 해볼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셨고,


어머니도 공과금 납부, 은행에서는 적금만 들었다.


부동산도 잘 모르셨다. 청약통장이 없었다.


증권계좌도 없고, 보험도 없었다.


우리 가족의 투자는 2개가 전부였다.


- 서울에서 14년간 보유했던 재건축 들어가는 빌라,

매도 시점 실패로 제대로 된 보상은 받지 못한.


- 경기도 어딘가의 32평 아파트,

투자 실패로 금융 비용만 지불했다.


2개의 부동산만이 모험을 한 투자였다.


그리고 모두 잘 몰라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은 20년 넘게 맞벌이로 성실하게 일하셨지만,


2번의 투자 실패로 자가에서 전세로 바뀐 대가를 치렀다.


부모님을 이것 때문에 원망하지는 않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새 병장이 되었다.


군인들이 싫어하는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일과는 전투태권도였지만


행보관의 지시에 맞춰 잡초를 제거하는 중이었다.


언덕 위에서 인사 계원이 내려오며 크게 소리쳤다.


“이경민 병장님! 행정반으로 바로 오시지 말입니다.”


전화를 받고,


나는 바로 청원휴가를 나갔다.




병원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동생과 이모가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수 있다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야? 좋아지고 있던 거 아니었어?”


“오빠······”


경란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다시 이어갔다.


“엄마가 요새 밥을 못 넘기더라··· 첨에는 더워서 입맛이 없나보다 하구 그냥 넘어갔지. 아빠가 전복을 사다가 죽도 끓여보고, 소꼬리 사다가 곰탕도 고아봤는데 다 남기는 거야. 안 되겠다 싶어서 입원을 했지. 링겔 맞고 한 주 정도는 괜찮아지나보다 했는데, 갑자기 저번 주에 중환자실로 간다는 거야······”


“이게 뭔 일이냐 진짜.”


이모도 흐느끼며 말했다.


“지금 상태는 어떻대?”


“중환자실 가고부터는 말도 못 해봤어. 내일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나 봐.”


“대체 무슨 병이래요?”


“패혈증인데 폐렴으로 인한 거래. 오빠, 일단 집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와. 중환자실은 면회를 아무 때나 못해. 오전 면회는 끝났고, 저녁 7시부터 30분간 면회야. 아··· 우리 집 이사 갔는데 오빠는 모르겠구나. 나랑 같이 가자. 이모, 저희 금방 다녀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주세요”


“그래. 너도 가서 좀 쉬다 와. 여긴 내가 있을 테니 걱정은 말고.”



우리의 새로운 집은 낯설었다.


1층이긴 한데, 주변 건물에 가려져 햇빛이 잘 들지 않았다.


집 내부는 습했다.


방은 2개였고, 내 옷은 동생 방의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궁금했던 걸 물었다.


“전세 거기는 어떻게 하고 여기로 왔어?”


“말도 마라. 아빠 차에 무슨 자동문을 달아야 된다. 무슨 오일을 갈아야 된다. 보험료도 개인이 아니라 영업용은 더 비싼 거 알아? 돈 들어갈 거가 엄청 많아. 엄마가 아빠랑 맨날 이걸로 싸웠어. 월급에서 기름값 빼면 남는 게 적은데 아빠는 월급 찍히는 거를 다 버는 거라 생각하나 봐. 자기가 카드 요금 안 내니까 모르는 거지. 큰아빠도 학원차 하는데 주말까지 해서 네 탕 뛰시잖아. 프리랜서라 그 정도를 해야 돈을 버는데 아빠는 두 개 하다가 하나를 관두니 이게 어떻겠어? 몰라. 나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동생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나는 화제를 조금 돌려봤다.


“여기는 너무 습하네.”

“엄마 있을 땐 그나마 관리가 됐는데, 조금만 신경 안 써도 이러네. 못 살겠다 진짜.”


경란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전역하고 바로 돈 벌게. 조금만 참아.”


“사실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오빠 전역하면 내가 나가려구. 회사에 언니가 하나 있는데, 룸메이트를 구한대. 일단은 혼자만 알고 있어.”


군대에서 상상했던 전역 후의 삶과 앞으로 실제 펼쳐질 삶은 크게 다를 것 같았다.



#


우리는 저녁을 먹고, 병원에 돌아갔다.


아버지가 계셨다.


불과 몇 달 만에 보는 것인데 전보다 늙어보였다.


이모에게 전달 받은 바로는 의사가 아까 와선 어머니가 내일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한다.


저녁 면회는 아버지와 함께 들어갔다.


여기 중환자실 면회는 2명이 최대라고 한다.


이곳은 굉장히 조용하고, 의료장비만 삑삑삑 하고 주기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호흡기를 착용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환자분이 말은 못 하시지만, 다 듣고 계시거든요. 손 붙잡고 말 하시면 되세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손을 좀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잠시 후 눈물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니 나도 눈물이 나고 목이 잠겨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손만 계속 붙잡았다.


면회가 끝나고 우리는 간호사의 설명을 들었다.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에게 연락을 준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잤다.


눈을 아주 잠깐 감은 것 같았는데 동생이 갑자기 깨웠다.


병원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우리는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지키고 있었을 텐데.


“0시경에 운명하셨습니다. 사망선고일은 어제나 오늘 중에 해드릴게요. 생각해보고 알려주세요.”


간호사가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사망시각도 조정이 되는구나.


아버지 하는 일도 있고,


나도 청원휴가중이라 어제로 사망일을 정했다.


장례식장을 잡고,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고, 서류도 떼었다.



첫날은 이미 지나갔고


둘째 날에는 손님이 많이 왔다.


친구들도 면접 때 입으려고 맞춘 듯한 정장을 입고 왔다.


평소와 다르게 낯설어 보였지만 많이 힘이 됐다.


다음 날 우리는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어머니를 안치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리를 하다가


나는 부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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