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물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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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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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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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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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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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해외선물 입문 (3)

DUMMY


“너 요새 동네 자주 온다?”


영만이가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며 말했다.


“바쁜 직장인 친구들 보러 백수인 내가 직접 와주는 거 아니겠냐? 너넨 여기서 괜찮은 가게 길 가다가 보이면 알려주기나 해라.”


나는 대답하고 소맥을 말아서 한 잔씩 돌렸다.


“여기 내가 오고 가면서 보니까 손님이 많더라고. 니들이랑 올라고 딱 봐놨어. 고기 퀄 봐라. 진짜 좋다.”


정진이가 집게로 고기를 들춰보며 감탄했다.


“그러게. 고기가 육즙이 다르네. 야, 이거 다 구워졌으니까 일단 건배할까?”


우린 건배 후 소맥을 먹고 고기를 흡입했다.


“요새 회사는 어때? 이제 적응은 다 했나?”


나는 바로 두 번째 잔을 제조하며 물었다.


“이제 한창 일할 때지. 죽겠다. 내 사수가 여자 대리거든? 날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는데 뭐만 해도 난리야 아주.”


정진이는 한탄하면서 소맥잔을 받아 바로 들이켰다.


“아마 니 얼굴 때문에?”


“나도 그런 것 같다.”


한마음으로 공격을 했다. 역시 친구다.


“니들이 잘 모르나 본데, 나는 남자답게 생긴 편이야. 니들만 그걸 몰라.”


정진이가 씨이익 웃으며 말했다. 긍정적이라 참 좋다. 이게 니 매력이야.


“너무 남자다워서 문제지. 영만아 넌 어때?”


화제를 살짝 돌려봤다.


“나야 뭐, 거래처 돌아다니면서 욕먹고, 시간 죽이고, 그러다가 런하고 그런다. 인생 뭐 별거 없다.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 넌 어때? 요새 뭐가 그렇게 좋아서 살이 포동포동 쪘어? 실업급여 받으면서 꿀을 빠니까 좋냐?”


영만이는 중간중간에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갑자기 분노에 차서 묻는다. 물론 우리끼리 하는 장난이다.


“사실 내가 퇴직금으로 돈을 굴렸는데, 생각보다 잘 됐다. 그래서 너네 만나서 이런 거도 사고 그러는 거 아니겠냐? 앞으로도 뭐 힘든 일 있으면 말해. 내가 언제든 와준다.”


지훈이도 그렇지만 너네한테도 조금만 더 있다가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은 적당히 밥 살 명분 정도만.


“경기도 안 좋던데 용하네. 남들은 주식 물렸다는 소리만 하는데 용하네. 뭐 좋은 정보 있으면 우리도 덕 보자.”


“알았어. 있으면 알려줄게.”


권할 수 없는 거라 정보를 지금은 줄 수 없다. 얘들아.


나도 꿈 아니었으면 지금 이걸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술자리가 끝나고 예전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별빛마을 아파트.


내 산책 코스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여기까지 걸었다가 집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운동도 되고, 목표 심어주기에도 도움이 된다.


10월 4일, 오늘 기준 유로/달러 종가는 1.2515


보유한 매도 계약은 무려 72계약, 잔고는 28만 달러다.


수익으로 추가 진입하니 무서울 정도로 계약이 늘어난다.


3계약일 때 100틱 수익은 3,750달러지만


30계약일 때 100틱 수익은 37,500달러다.


방향이 맞는 이상 계약이 빨리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저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을 것 같다.




#


상쾌한 월요일 아침


거래가 없는 심심한 주말이 드디어 지났다.


어느새 중독이라도 되었나보다.


장이 열리지 않으면 허전하기까지 하다.



커피 드립포트에 물을 넣어 끓이고


간단하게 세수를 했다.


드리퍼에 필터를 씌우고 서버 위에 올린다.


전동 그라인더 버튼을 눌러 원두를 분쇄하니


향긋한 커피향이 방을 채운다.



요새 새로 생긴 습관이다.


드립 커피.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려서 먹는다.


한 달에 5만원이면 하루에 2번씩 내릴 수 있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도 아니다.



분쇄된 커피가 뜨거운 물에 부풀어 오르면서 향이 퍼지고


서버에 검붉은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감상한다.


추출이 끝나고 먹는 첫 한 모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침이 기다려지는 맛이다.


커피를 마시면서는 지난 밤에 있었던 뉴스를 찾아봤다.


커뮤니티에서 해외선물 글도 둘러보고.


뭐 별다른 일은 없었구나.


월요일은 사실 그렇다.


주말에 어디 전쟁이라도 났던지


대지진이 나지 않는 이상은 아침부터 시세 변동이 있진 않다.


해외선물은 오후부터 시작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월요일 아침이지만,


유럽이나 미국에게는 아직 일요일 밤이다.


걔네가 월요일이 되는 오후 5시는 되야 움직인다.



사실 이제는 나 자신이 전업투자자처럼 느껴진다.



처음 느낀 건 거래하는 한국증권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다.


고객님이 지금 보여주는 거래량과 잔고로 인해 고객등급이 오른다고 한다. 수수료도 내려준다고 한다. 기프티콘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1억에 도달했다.


정말이지 특별한 기분이었다.


그 때가 새벽 1시였나?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셔서 크게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서 길거리를 걷는데


먹자골목의 네온사인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한참을 걷다가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맥주를 종류별로 고르고


평소에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서 쳐다보지도 않던 안주들을 사서 먹었다.


다음 날에는 백화점을 갔다.


백화점에서 옷을 샀다.


낮이라 매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구경을 한참 하다가 이름을 들어봤던 매장으로 들어갔다.


옷을 입지도 않고 대충 골라서 2벌 샀는데 40만원이 넘었다.


점원분이 옷을 즉석에서 클리닝 해주는 게 신기했다.


서비스가 다르네.


이래서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옷을 사나 싶다.



별빛마을 아파트도 그렇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의식주,


인간의 기초적인 욕구라고 했지.


먹을 것 잘 먹고


입을 것 잘 입으니


이제는 집으로 관심이 가게 된다.


앞으로 집까지 충족이 된다면?


초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 되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자아실현의 단계였던가?


대학교 다니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충족하겠지.



그러니 이제 남은 것.


집을 사고 복학하면 당장은 더 바랄 게 없겠다.



오후에 산책을 하는 중에 정진이에게 연락이 왔다.


뭔 일이 있는지 힘들다고 한다.


아마 저번에 말한 그 대리 때문이겠지.


마침 목요일이 한글날이니 수요일에 술 한잔 사달라고 했다.


정진이는 유머러스한 편이고 성격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 누군가 그걸 건드리면 내색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직 사회 초년생이라 실수를 많이 할 텐데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어린 여자라서 힘든 모양이다.


나도 군대를 남들보다 3년 늦게 갔기 때문에 이해가 됐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데 처음에는 힘들다.




#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기시감에 눈을 크게 떴다.


잉? 어느새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다.


또 꿈인가?


이번에는 안전장치가 어깨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있다.


열차는 직선코스를 달리다가 곧 수직으로 상승했다.


아찔한 느낌에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수직으로 하락한다.


이걸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눈을 뜰 틈이 없다.


꿈인 걸 알면서도 계속 눈을 감은 채 시간이 지난다.


그러다 나는 끝도 없이 떨어지는 느낌 속에 깼다.


간만의 꿈. 뭔가 의미가 있나?


눈을 감아서 뭐가 뭔지는 모르겠네.


별일은 아니겠지. 다 잘되고 있는데.




#


정진이와의 약속이 있는 날의 오후다.


산책을 겸해서 목적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이라 20분 조금 넘게 걸린다.


꿈 때문인지, 요새 차트 보느라 늦게 자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평소보다 힘들었다.


괜히 걸어왔다고 생각다가 역 앞에서 정진이를 봤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래?”


가을 저녁에 땀을 닦으며 내가 물었다.


“말하자면 좀 길어. 있다가 가서 해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딘가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근데 어디 가냐 우리?”


“장군 주먹고기라고 아버지가 찾은 맛집 있거든. 소주와 먹기에 제격이지.”


······주먹고기? 뭐야 이거? 갑자기 좀 무섭다.



동그란 불판에 두툼한 주먹고기가 가득 채워지고


강한 화력에 주먹고기는 빠르게 익었다.


그리고 사장님의 현란한 집게 컨트롤에 의해 완벽하게 뒤집히며 구워진다.


“이제 드셔도 됩니다.”


사장님은 쿨하게 떠나시고 우리는 고기를 집어 먹었다.


“너 아버님 말씀이 정확하네. 진짜 맛있다. 내가 먹어본 거 중에 최곤데? 소금만 찍었을 뿐인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나는 진심 감탄했다.


“와사비에도 찍어 먹어봐라. 우리 부모님 하는 계모임이 있거든? 거기에서 맛있다고 하는 데는 진짜 다 맛있는데 여기는 나도 깜짝 놀라울 정도의 맛이었어.”


정진이가 소주와 고기를 연신 먹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잠시 지켜보니 술 먹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야 천천히 먹어라. 왜 이렇게 빨리 마셔? 취하겠다.”


걱정이 되서 말했다.


“나는 이게 원래 속도야. 평소에 너네랑 맞춰준 거지. 너는 천천히 마셔.”


정진이가 끄떡없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소주 2병은 먹을 수 있어. 아직은 괜찮아.”


나도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어. 힘들면 꺽어 마시고.”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테니 이제 아까 한다는 얘기 해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유로/달러의 시세가 궁금했다.


그렇지만 친구와 단둘이서 대화하다가 확인을 하기에는 미안하다.


이걸 보면 분명 생각이 많아져서 친구 말에 집중을 못 한다.


시세를 확인했다.


내가 가진 포지션과 반대로 슬금슬금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EUR/USD 2014.12 72계약 평균가 1.2898 현재가 1.2630

보유잔고 190,964달러 수익 180,521달러


아직은 수익권이다.


그런데 10월 6일 28만 달러로 최고점을 달성하고, 점점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9만 달러면 9천만원이 넘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여태껏 이런 식으로 기다리면서 벌었으니깐 지금까지 온 길을 믿어야 한다. 바뀐 것은 없다.


오늘 새벽에도 1.2630 이었다가 1.2590까지 내려갔다.


아직까진 괜찮아.



돌아가 정진과 대화를 계속 했다.


“······ 그 여자 대리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냐?”


······


긴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들다는 거는 사실 별 내용은 아니다.


사소한 잔소리가 누적이 되고


직급차이 남녀차이로 인해 점점 오해로


서로에게 좋지 않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


“아마 그분도 그런 의미는 아니었겠지. 왜 널 이유 없이 싫어하겠냐? 너는 성실하고 싹싹하잖아? 일할 때는 열심히 하니까 자신감 가져.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오늘은 이거나 맛있게 먹자.”


혼을 담아 위로를 하다가 나는 화장실을 가면서 미리 계산을 했다. 그리고 시세 확인을 했다.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마냥 괜히 불안한가 보다.


내가 여태 전해준 긍정의 에너지가 스스로에게도 작용했는지 다시 마음을 추렸다.


돌아가니 정진이 계산대 앞에 나와 있었다.


“야 오늘은 내가 사려고 했는데 벌써 계산했더라. 집에서 쉬는 너한테 계속 얻어먹어야겠냐? 2차는 내가 살게. 거절은 넣어 둬라. 2차는 저기 있는 중식집에서 얼큰한 국물에다가 고량주를······”


······


그 날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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