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물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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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선
작품등록일 :
2024.05.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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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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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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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물류센터는 차갑다 (2)

DUMMY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1달이 어느새 지나갔고 나는 이제 야간근무에 들어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많은 시간


19시, 다들 퇴근하는 시간이다.


김포 구촌 물류센터로 가는 버스 안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김포로 퇴근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김포로 이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은 항상 나뿐이다.


20분을 달리니 내릴 역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때 우려한 상황이 발생했다.


“기사님! 벨 눌렀는데 왜 그냥 지나가세요!!”


나는 분노의 샤우팅을 하며 사람들 속을 헤쳐나갔다.


“아, 죄송합니다. 착각했네요.”


기사님의 되도 않는 변명을 들으며 서둘러 내렸다.


이미 정거장에서 200m는 지나갔다.


맹세코 이게 처음이라면 나도 저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거다.


4일에 1번 정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누구나 나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벨을 눌러도 정거장에 서지 않는 경기도 버스란 대체 뭘까?


덕분에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퇴근할 때 정거장에서 손을 선풍기처럼 흔들어도 쌩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어찌나 화가 나던지.


회사로 가는 길을 홀로 터벅터벅 걸었다.


야간이 되니 태진형과 이제 못 보는 것이 아쉽다.


1달 동안 내 딴에는 많이 친해진 것 같다.


1주에 1번, 4번 본 것이 다인데 왜일까?


내가 내려준 커피를 맛있게 먹어줘서?


이것도 이유일 수 있다.


전에 같이 일하는 민수형은 드립커피 줬더니만,


“야 이건 커피가 왜 이렇게 시냐? 상한 거 아니야?”


라는 말과 함께 거의 다 남겼지.


그런 반응이 있을 수도 있다.


여하튼 난 서운했다.



태진형이 해외선물 하는 것도 친밀감의 이유겠지?


업무 중이라 이야기를 깊게 하진 않았지만


하는 사람을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라 신기하다.


내가 전에 돈을 수익이 나서 기쁠 때


다 날리고 힘들었을 때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었다.


이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회사에 도착했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를 좋아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괜찮은 사람과의 인연의 끝이 아쉬울 뿐.


난 여자 좋아한다.



“안녕하세요···”


피곤에 찌든 목소리지만 나름 반갑게 인사해봤다.


“어. 왔냐? 경민아, 지금 입고 다 잡아가니까 5분 있다 출력해. 은하커피는 주간 애들이 다 끝냈다고 했고 저기 책상 위에 전달사항 보이지. 이거 오과장한테 가져다 줘. 현장사람들 미팅시간에 한번 읽어주면서 교육하라고 해. 사진도 찍어서 보고해야 하니까 너가 있다가 찍어.”


정주임이 카랑카랑한 쇳소리로 업무 전달을 했다.


“넵.”


나는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문서를 챙겨 현장사무실로 갔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이거 강주임님이 읽어보시고 미팅시간에 교육하시래요.”


오과장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진천에서 사고난 거? 알지. 아까 들었어.”


오과장이 문서를 2초가량 둘러보더니 건성건성 대답했다.


“교육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하래요. 제가 있다가 와서 찍을게요.”


나는 살짝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시간도 없는데, 오늘 18,000박스가 넘어. 내가 입고 계속 받아줘야 하는데 언제 교육을 하고 있어.”


오과장이 갑자기 짜증을 내며 말했다.


사실 오과장님은 좋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남자답고 멋진, 여기선 오히려 젠틀한 편이랄까?


실제로 바빠도 너무 바쁜 게 문제지.


물류센터에서 지게차는 중요하다.


10명보다 지게차 다루는 1명이 더 귀하달까?


사람은 지치지만, 기계는 지치지 않는 것이 이유다.


우리 센터에 그냥 직원은 많지만, 지게차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은 몇 명 없다. 두어명? 다른 사람도 배우긴 하지만······


과장님의 지게차 컨트롤은 마치 페이커?


이건 너무 나간 것 같고 여튼 프로게이머들이 유닛 컨트롤 하는 거에 비할 수 있다.


암튼 다른 사람보다 아주 많이 잘 한다는 얘기다.


“제가 최선을 다해 빠르게 찍어보겠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산업교육의 현실이지.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피킹지를 출력했다.


프린터 2개에서 20분째 쉴 새 없이 소리가 들린다.


종이가루가 사무실에 날리고, 프린터의 온도가 50도를 넘는 것 같다.


2천장이 넘는 종이를 혼자 정리하여 60대가 넘는 차량별 서류함에 분배했다.


작업 완료까지 3시간은 넘게 걸렸다.


이제 전반전은 끝난 셈이다.


한숨 돌리고 있자니


김치를 담당하는 분이 어느새 옆에 와있다.


“여기 적힌 항목들 차량별 수량으로 정렬해서 뽑아줄 수 있을까요?”


내게 이면지를 전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출력해드릴게요.”


출력을 하려던 바로 그때


“안돼! 해주지 마. 이것들이 작업을 이상하게 배워가지고. 계속 해주니까 버릇이 나빠지는 거야!”


강주임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사실 출력 몇 장 해주는 게 뭐가 그리 버릇이 나빠지는건가 싶긴 한데··· 굉장히 뻘쭘해지는 상황이다.


김치 담당자도 참지 않았다.


그러더니 같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오과장 이리로 오라 그래!!”


아··· 이런 것도 오과장님이 바쁜 이유 중 하나다.


오과장의 중재로 싸움이 마무리 되고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배송기사 한 명이 내가 아까 넣어놓은 문서를 보고는 험악한 얼굴이 되어 와서 소리쳤다.


“아니, 강주임님. 여기를 나한테 주면 어떻게 해요!! 여기는 5678이 가야지!! 여기를 가면 코스가 꼬여버리는데!! 1시간 반이 더 걸린다고요.”


자주 있는 일이다.


“니네 조장한테 따져!! 배차를 내가 했어? 주간 근무자가 조장이랑 배차한 거를 가지고 여기 와서 따지면 어쩌라는 거야.”


강주임이 다시 일어나 카랑카랑하게 외친다.


싸움에서 꼬리 내리면 버틸 수 없는 이곳은 바로 현대의 정글이 아닐까.


이제는 귀가 터질 것 같다.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따져요. 자는 사람 깨워서 항의해요 그럼?”


“누가 자는 사람 깨우래? 니네 조장한테는 말도 못 할 거면서 왜 여기 와서 난리야? 내가 조장보다 만만해보여?”


험악한 분위기 속에 사무실 밖을 지나가던 다른 배송기사가 여기의 눈치를 보더니, 서류함의 문서를 꺼내 현장으로 조심스레 뛰기 시작한다.


“니네 조장 저기 왔네. 저기 가서 따져.”


강주임이 손으로 도망가는 기사를 가리키더니 앉았다.


“형님! 형님! 이거 어떻게 할 거에요?! 5678한테 줘야죠.”


따지던 기사가 도망가는 조장을 추격하며 외쳤다.


“미안해. 오늘 한 번만 가줘.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조장이 뛰던 중 뒤돌아보며 말하고 다시 도망갔다.



에휴······ 혼란하다 혼란해.



오늘도 평화로운 물류센터의 하루가 마무리되고,


퇴근을 하는 길에 현장사무실에 인사하러 들어갔다.


태진형이 보였다.


“아르바이트는 어제까지 하고 그만두려고 합니다.”


태진이 오과장에게 말했다.


“그래요. 미리 말해줘서 고맙고, 내가 전달할게요.”


오과장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장님,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태진에게는 눈인사를 한 후 오과장에게도 인사했다.


“형 이제 그만둬요?”


현장사무실을 나와서 걸어가며 내가 물었다.


“어, 그냥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더라. 경민아 내가 오늘 차 가지고 왔는데 태워다 줄까?”


태진이 오른쪽에 주차된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차를 잘 모르는 나지만 비싸 보였다.


“태워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거절은 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차에 타고 집 근처의 역을 알려주었다.


“집이 이쪽이구나. 그런데 경민아, 우리 마지막이라 난 사실 조금 아쉽다. 아침 먹고 집에 들어갈래? 밥 먹고 다시 태워다 줄게. 내가 커피도 여러 번 얻어먹었는데 커피값은 해야지 싶다. 내가 아는 국밥 잘하는 데 있어. 아니면 뭐 좋아하는 다른 거 먹어도 되고.”


“저도 형 그만둔다는 거 방금 듣고 아쉬웠어요. 국밥 좋아합니다. 그리로 가시죠.”


나도 같은 생각이라 고민 없이 바로 결정했다.


차는 물류단지를 빠져나와 달리길 10분 정도,


얼마 전 개발이 완료된 서울의 마지막 신도시 어딘가로 진입했다.


“우리 집 근처라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가 진짜 맛있다. 너도 먹어보면 바로 알······ 아 맞다. 주차하고 우리 집에 잠깐 들르자. 너한테 커피 얻어먹고 원두를 몇 개 샀는데 다 못 먹었어. 아까운데 향미 빠지기 전에 나눔 해야겠네.”


우리는 주차를 하고 7층 형의 집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어요? 제가 밤새고 와서 몰골이···”


“어, 나 혼자 살아. 노총각이다.”


태진이 살짝 웃으며 말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어디 보자. 이거 하고 이거. 로스팅한 지 2주 정도 된 거니까 아직 상태 괜찮을 거야.”


태진은 거실 진열장 커피용품 사이에서 원두를 고르더니 내밀었다.


“잠깐··· 이거는 파나마 게이샤 아니에요? 갑자기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원두 지퍼백에 인쇄된 글자를 보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왜 파나마 게이샤면 부담되고, 너가 줬던 에티오피아 원두면 괜찮고 그런 거야? 원두 차별하지 말어라.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 편의점 도시락 먹고 너가 내려준 커피 있잖아? 그게 종이컵에 담겨서 그런건지, 먼지 나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마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임팩트가 많이 컸어. 너무 맛있더라. 그래서 그때 잠깐 꽂혀서 많이 샀다가 남은 거야. 너에게도 책임이 있달까. 저기 봐라. 원두 더 있는 거 보이지? 그리고 파나마 게이샤인 거를 아는 사람이 먹어야 걔도 고마워할걸? 내 전 여친이 그거 보고 일본 기생이 만든 커피냐고 묻더라.”


태진이 다른 방향의 진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진열대에는 20병이 넘는 양주가 진열되어 있고, 원두도 몇 개 더 있었다.


“와··· 이건 다 뭐에요. 양주에요?”


나는 진열대의 양주를 하나하나 눈으로 훑으며 물었다.


“술은 잘 모르나 보네. ······ 음 경민아, 우리 그냥 매장가서 먹지 말고 배달해서 먹자. 도가니 먹니? 여긴 도가니가 최고야.”


태진은 자신의 컬렉션을 입을 열고 감탄하는 자를 보고, 신이 났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고선,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배달앱을 켜서 주문했다.


그러더니 진열대에서 유리잔을 하나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원구 모양의 얼음을 하나 꺼내 잔에 넣었다.


“어디 보자··· 쉐리··· 쉐리가 좋을 것 같은데.”


혼자 중얼거리더니 병 하나를 골라서 얼음이 반쯤 잠기게 따르더니 잔을 몇 바퀴 돌렸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인데. 배달 오기 전에 조금씩 맛보고 있어. 개인적으로 얼음 없이 그냥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너 밤새고 와서 먹으면 확 취할 수도 있으니 온더락으로 준비해봤다.”


태진은 말을 하고 나서, 잔을 식탁 위로 미끄러트리며 전해주었다.


“와··· 전에 먹은 양주는 화장품 향 비슷하게 났는데······ 이건 달달하면서도··· 음··· 과일향 같기도 하고···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 맛있어요.”


처음 느끼는 맛과 향에 놀란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모른다고 하면서 잘만 표현하네.”


지금 태진형이 나를 보는 눈빛은 마치 이유식 먹던 조카를 흐뭇하게 보던 동생 같았다.


“형도 드세요. 혼자 마시려니까 이상해요.”


“너야 있다가 잘 거지만, 나는 대낮부터 술 먹으면 오늘 하루 삭제야. 그리고 있다가 너 태워다주기로 했잖아.”


태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혼자 갈 수 있어요. 멀지도 않은데요.”


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예의상 했다.


“아까 내가 한 말인데, 뱉은 말은 지켜야지.”


곧 배달이 도착하고, 우리의 대화는 내 처음의 예상보다는 많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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