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오전 12시 30분.
복층 계단 측면의 벽을 살짝 눌러 작업 도구들을 꺼냈다.
권총, 리볼버, 기관총, 수류탄, 나이프, 전기충격기 등 각종 도구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에 미리 이식해둔 CCTV 장치를 가동시켰다.
내 방에 설치해둔 빔 프로젝트를 통해 녀석이 지금 현재 보고 있는 것, 말하는 것이 녀석의 입장에서 생중계되었다.
녀석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복도를 지나쳐 현관 센서등이 꺼지기 전에 복층 계단 바로 옆에 있는 스위치를 터치해 불을 켰다.
그리고 현관을 기준으로 우측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올라가 시원하게 용변을 본 녀석은 사람처럼 세면대에서 손과 얼굴, 발을 닦고 물기를 털어냈다.
물기를 털어낸 녀석은 민들레 홀씨마냥 부풀어 퍽 귀여운 모습이었다.
얼굴이 두 배가 된 녀석은 화장실 바로 옆에 있는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는 한 사람이 평생 먹어도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우유로 가득 차 있었다.
녀석은 그 수 많은 우유 중 하나를 꺼내 기분 좋게 마셨다.
어디서 봤는지
“캬~ 시원~해 멍!”
라는 감탄사를 뿜어내며 우유를 다 마신 녀석은 주방에서 나와 아무 것도 놓여져 있지 않은 텅 빈 원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윽고 주방 맞은 편에 있는 복층 계단 윗 층에 올라간 녀석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잘 준비를 했다.
환하게 불이 켜진 방에서 녀석이 잠 든 것을 확인한 후, 빔 프로젝트를 끄고 작업 도구 손질을 마저 끝냈다.
총기들을 정리한 후, 녀석 때문에 지저분해진 녀석의 방과 구조가 같은 나의 집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잠깐 왔다 갔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녀석의 털이 부숭부숭 계속 솟아나왔다.
..다음에 녀석이 오면 청소는 직접 시키고 말거다.
털들과 한참 씨름을 한 후, 짧게 기지개를 켰다.
이제 제일 빡센 곳만 청소하면 된다.
바로 화장실.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 문을 열자 어제 ‘이벤트’를 준비했던 근무자의 동태눈과 그 악취가 나를 반겼다.
가을이라 그나마 다행이지 여름이었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 두 번 있던 일도 아니지만 이렇게 찾아올 때마다 어이가 없다.
의뢰 때문에 ‘낚시’를 했을 뿐인데, 원수라고 내 집에 찾아와 ‘이벤트’를 벌이다니..
이것 때문에 일거리도 늘어나고 이사 날짜도 앞당겨진 것 같아 여간 짜증나는게 아니다.
근무를 시작한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어야지 성실히 근무 수행한 사람한테 이게 무슨 민폐인지 원.
한숨을 푹푹 쉬며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벗고 ‘생선’이 된 근무자에게 다가가 ‘손질’을 시작했다.
먼저 생선이 입고 있던 옷을 가위로 잘라 옷을 벗겼다.
벗긴 옷은 잘게 잘라 일반쓰레기 봉투에 넣고 샤워기를 틀어 생선에서 뿜어져나오는 악취를 물로 덜어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생선의 머리, 양 지느러미, 몸통, 꼬리를 분리해 캐리어에 들어가기 좋은 크기로 손질했다.
손질된 생선은 파란 봉투에 잘 포장해 큰 캐리어에 넣었다.
캐리어를 신발장에 내놓은 뒤, 화장실 안에 여기저기 튄 생선 피를 락스로 구석구석 닦으며 화장실 청소를 마무리했다.
깔끔해진 화장실을 뿌듯하게 쳐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역시, 생선 비릿내엔 락스가 최고지!
***
새벽 3시.
무거워진 캐리어를 들고 집 밖을 나와 바로 앞 횟집으로 향했다.
‘영업 끝’이라는 푯말이 걸린 횟집 문을 열자,
조명 하나 없이 어두운 가게 내부에서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던 덩치 좋은 점원이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영업 끝났습니다.”
“점장은 낚시하러 갔나?”
“아니요. 회 뜨고 계십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어제 1마리. 주문은 안하는걸로.”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점원에게 캐리어를 넘겼다.
캐리어를 가져간 점원은 잠시 후, 빈 캐리어와 주문서를 내게 건냈다.
“주문 들어왔습니다. 수놈 1마리 내일까지 싱싱하게 잡아다주시랍니다.”
“그러지. 생선값은?”
“캐리어 안에 넣어놨습니다. 수놈 1마리는 싱싱한 만큼 좀 더 쳐주실 거랍니다.”
“알겠네.”
거래가 끝난 나는 이전 보다 가벼워진 캐리어를 끌고 횟집을 나섰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쓰레기장에서 분리 수거를 하고 있던 경비와 눈이 마주쳤다.
“일 하고 오시는 모양입니다~?”
경비가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능글맞은 영감같으니.
보통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어제, 오늘 ‘이벤트’가 계속 지속되었으므로 그 이유를 물으러 영감에게 다가갔다.
“‘이벤트’가 지속되고 있던데, 뭐 알고 있는거 없나?”
“아이고, 우리 ‘선생님’이 말이 짧으시네. 낸들 어찌 압니까? 늙은 경비일 뿐인걸요~.”
“이 주변 ‘경비’는 모두 당신 담당인데, 모른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경비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경비’는 어느 때 보다 삼엄하게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유명하신걸 어쩝니까~?”
“다음 번에 또 같은 일이 발생하면 가만 있지 않을걸세.”
“아이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섞을수록 나만 열 받는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경비가 말했다.
“이번에 동물 한 마리 키우실 것 같던데, 우리 건물이 반려동물 동거 가능 건물이라 다행입니다~?”
정말 짜증나는 노인네다. 언젠간 손 봐주고 말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와 거실에 놓여진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누웠다.
이틀 연속 이벤트에.. 참 고되다고 생각할 때,
‘살랑’
집 안에 숨어있던 녀석의 털 한 올이 산들산들 흩날리다 내 코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문득 녀석이 계속 자고 있을까 싶어 장치를 작동시키고 빔 프로젝터를 틀어 동태를 살폈다.
영상에는 양치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비춰졌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칫솔을 꼭 쥐고 양치하는 모습이 인형이 따로 없다.
양치질을 다 한 녀석은 높게 걸려 있는 샤워기를 몇 번의 점프를 통해 본인 방향으로 맞추고 물을 틀어 샤워를 했다.
상처 때문에 매어 놓은 붕대가 거추장스러운지 풀어버리고는 상처난 부위를 물로 씻어내며 중얼거렸다.
“더 이상 다치면 안되는데 멍.. 양이가 화낼거다 멍..”
양이? 보스의 이름일까? 아니면 가족? 뭐가 됐든 녀석과 가까운 관계의 인물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추측이지만..
총 맞은 부위를 저렇게 박박 닦는걸 보면..
녀석은 통각이 없는 모양이다.
보는 사람이 걱정되는 샤워를 마친 녀석은 물기를 털어내고 왼쪽 첫 번째 발가락 발젤리를 꾹 눌렀다.
그러자 팔이 드라이기로 바뀌어 녀석의 털을 순식간에 뽀송하게 만들었다.
그 때 ‘삐빅’하는 소리가 녀석한테서 지속적으로 났다.
녀석은 1층 방 정중앙에 벽을 마주보고 앉아 자신의 코를 눌렀다.
앞이 갑자기 하얘지더니 이내 벽면에 영상이 비춰졌다.
영상에는 하얀 하회탈을 쓰고, 갓을 쓴 사람이 검은색 한복을 입고 다리를 꼰채 금박 덮힌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뿔싸.
하회다. 하회일가다.
원하는 것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얻어내는 일족.
얻지 못할 경우, 끝까지 쫓아가서 그것이 무엇이든 파멸시키는 일족.
엮이면 피곤한 것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 좋은 근무자들도 이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려 애쓰는데,
내가 엮여버리다니..
골치 아파질 것이 뻔한 상황에 머리가 지근거릴 무렵, 하회가 느리고도 낮은 근엄한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다.
“어깨를 다쳤나보군요.. 꽤 힘든 싸움이었나봅니다..?”
“괜.. 괜찮았다.. 멍!”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결과는 어찌 됐는지요..?”
녀석이 우물쭈물거리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번에는 잘 안됐지만..”
“잘 안됐다니?”
하회의 날카로운 물음에 녀석이 겁을 먹었는지 화면이 흔들렸다.
“오.. 오늘 다시 찾아가기로 했으니까 잘 될거다 멍! 할 수 있.. 있다 멍!”
잠시 뜸을 들인 하회는, 이내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다.
“현재 업계 최고 근무자가 누군지 알고 있지요..?”
“알.. 알고 있다 멍! 내 표적인 ‘라온’이다 멍!”
“맞습니다.. 신체 변형을 한 것도 아닌 한낱 인간에 불과한 바로 그 ‘라온’이 업계 1위 근무자이지요..”
그는 꼰 다리를 풀고 두 팔을 무릎에 기댄 채 두 손을 맞잡고 비비면서 말을 이어갔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한낱 인간이 어찌 이 험한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건지..?”
그가 몸을 의자에 기대면서 녀석에게 통보했다.
“지금부터 딱 ‘사흘’ 주겠습니다.. 팔, 다리는 필요 없으니 머리만 온전한 상태로 내 앞으로 가지고 와요.. 기일이 지나면 양이는 어찌될지 모릅니다..?”
녀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양이.. 양이는 안된다 멍! 내가.. 내가 잘하겠다 멍! 가만 놔둬라 멍!”
녀석의 울부짖음이 무색하게 영상이 꺼지며 하회의 모습이 사라졌다.
빔 프로젝트 영상이 한동안 뿌옇게 송출된 후, 녀석은 현관으로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옆 집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빔 프로젝터를 끄고 여유롭게 주방으로 들어가 방탄 후라이팬을 살며시 쥐었다.
잠시 후, 매캐한 탄 내가 나면서 현관문이 ‘덜컹’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최대한 조용히 걸으며 동태를 살피는 듯 했으나 발과 장판이 맞닿으며 ‘찹찹’하고 울리는 소리는 어쩌지 못했다.
발바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녀석의 위치를 가늠한 후, 녀석이 주방 쪽으로 고개를 내밀기 바로 직전 후라이팬과 다시 한 번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강력한 스윙을 선사했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녀석이 나가 떨어졌다.
역시 무기로는 후라이팬이 최고지!
기절한 녀석을 들쳐 업고 복층으로 향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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