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오후 9시.
오피스텔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주차차단기 앞에 차가 서자 경비가 말했다.
“좀 늦으셨습니다~?”
“복잡한 놈이라 좀 늦었네.”
“호오~ 선생님께서 감당하기 좀 어려운 상대였나 보군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경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이제 배달 가시나요~?”
“알면서 뭘 묻나?”
“하이고 까칠도 하셔라~. 알겠습니다 알겠어~.”
경비의 말이 끝나자 주차차단기가 올라갔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간 나는 구석진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를 열었다.
업그레이드 된 장치라고 하지만 혹시나 놈이 잠에서 깨어날까봐 캐리어 문을 조금 열어 전기충격기를 쏴준 후 캐리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진짜 횟집’이 문을 여는 시간인 새벽 3시가 되길 기다리며 아침을 먹고 원래 루틴대로 11시에 청소를 시작했다.
***
새벽 3시.
‘싱싱한 횟감’이 든 캐리어를 들고 횟집으로 향했다.
횟집에 들어서자 저번에 봤던 덩치 좋은 점원이 내게 말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점원의 말에
“점장 횟감 배달.”
라고 답하자 점원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횟집에서 내게 줬던 주문서를 점원에게 건낸 후, 캐리어를 점원 앞에 갖다놨다.
점원은 주문서를 읽고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
잠시 후 점원이 캐리어를 다시 건네주며 말했다.
“다음에는 더 큰 캐리어에 담아야겠습니다. 횟감이 싱싱하긴 한데 뼈가 좀 으스러진 것 같습니다.”
“주문서에 체격이 빠졌던데.”
“뭐.. 그 부분은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렸던대로 저번보다 더 쳐드렸습니다. 주문..”
“당분간 주문 안받네. ‘휴가’쓰려고.”
이 말에 점원이 나를 뚫어질 듯 쳐다보며 물었다.
“점장님과 얘기 되신 겁니까?”
“지금 하려고. 점장은?”
“..주방에 계십니다. 근데.. 손질 중에는 아무도 안들이는거 아시지 않습니까?”
“잠깐이면 돼. 아니면 막아보던지.”
점원은 대답 대신 굳은 얼굴로 나를 주방에 데려갔다.
주방 끝 쪽 방은 투명 비닐들이 얼기설기 문댄 시멘트 벽 전체를 시트지 대신 감싸고 있었다.
방 중앙에는 내가 잡아온 횟감이 눕혀져 있었고 방 제일 안쪽 중앙에는 검정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맨 발의 점장이 스텐 작업대 위에서 칼을 갈고 있었다.
7:3 비율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나보다 좋은 체격을 갖춘 중년의 점장은, 우리가 왔다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칼을 갈았다.
점원이 아무 말 없이 턱을 까딱하며 내게 들어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방에 들어가며 바닥에 깔려있던 비닐을 밟아 부스럭 소리가 나자, 점장이 낮고도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아랑곳 않고 부스럭 소리를 내며 점장에게 다가가자, 점장이 갈고 있던 칼을 스텐 작업대 위에 있던 도마에 ‘쾅’소리가 나게 꽂으며 나를 째려봤다.
이내 나를 알아본 점장이 험악한 표정을 풀고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사랑하는 아들! 왔으면 왔다고 얘기를 하지~! 하마터면 귀한 얼굴에 흠집날 뻔 했잖아~!”
점장이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무슨 일이야? 또 이사가려고? ‘이벤트’ 적당~하면 아버지 집이랑 가까운데 그냥 살지 그래~?”
“다른 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 어떤 일? 주문하려고?”
점장은 도마 위에 꽂혀 있던 칼을 들고 바닥에 눕혀 있는 횟감 주변을 돌면서 내게 말했다.
“아니면 오늘 물건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 이미 예약이 되있는 놈이라 좀 곤란한데..?”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점장에게 말했다.
“하루 ‘휴가’ 내겠습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들 다시 한번 말해줄래?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하루 휴ㄱ..”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가 내게 달려들어 목에 칼을 가져다 댔다.
서늘한 칼의 감촉이 얇은 피부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고작 그 딴 얘기하려고 손질 중에 기어들어와?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하회일가 일입니다.”
“하회일가?”
이 말을 듣고 점장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정색을 하고 칼을 다시 내 목에 들이밀며 역정을 냈다.
“우리 시스템이 보통 시스템인줄 알아? 업계 통틀어서 우리같은 철통 보안이 없어! 부점장 이 보안 시스템으로 다~ 막고 있다고! 특히 너랑 하회일가랑 안엮이게 하려고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데! ‘라온’이라는 네 이름은 알아도 외부에서 네 얼굴을 모르는 이유가 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회일가가 저를 타겟으로 잡았습니다. 좋든싫든 부딪혀야 됩니다.”
“하..! 그럼 부점장 보안 시스템에 구멍이라도 생겼다는 거야?! 근거는?”
점장의 말에 녀석을 감시할 때 썼던 CCTV 장치로 하회가 말하는 부분을 보여줬다.
영상을 본 점장은 목에 겨눴던 칼을 거두고 팔짱을 낀 채 스텐 작업대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내가 근무자가 될 수 있게 키워준 양아버지이자 횟집의 주인인 점장으로써, 고민이 많이 될 것이다.
횟집에서 직접 쉬는 날을 지정해주는 경우를 제외하고, 본인 발로 찾아와 휴가를 썼던 근무자 중에 다시 돌아온 근무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점장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현 근무자 1위인 나를 ‘가게 운영 원칙’대로 처리할지, 아니면 그냥 휴가 처리 해줄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근무자들처럼 도망가진 않을 겁니다. 가게에 해 되는 일도 하지 않을겁니다. 반드시 돌아옵니다.”
내 말을 들은 점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휴가 관련 ‘가게 운영 원칙’,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각 가게별로 지정해놓은 신체 부위를 반납할 것.’”
“우리 가게는 어딘지도 알고 있고?”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점장은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내게 건내며 말했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라. 대신할 수 있는 건 같은 값의 같은 것 뿐.”
점장이 건낸 칼을 움켜쥐고 심호흡을 한 뒤,
빠르게 주방 쪽으로 달려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점원의 목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점원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점장이 다가와 점원의 머리를 발로 밟으며 말했다.
“아들 휴가 잘 다녀와~. 형제 피 값으로 받은 거니까 허투루 쓰지 말고.”
점원의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칼을 점장에게 정중히 건낸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빠져나와 부점장에게 향했다.
***
“정말 아무 것도 못 찾았나?”
“아 그렇다니까? 오빠 나 못 믿어?”
가지고 있는 기억 중 쓸모 있는 기억이 아무 것도 없다니?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부점장을 쳐다보자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모니터를 내게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이거 봐. 기억이라고 저장되어 있는게 딱 5가지 밖에 없다구!”
모니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1. 양이는 내 가족이다.
2. 내 몸은 양이 거다.
3. 하회가 양이를 담보로 라온의 머리를 요구했다.
4. 양이를 되찾으려면 업계 최고 근무자인 라온을 죽여야 한다.
5. 양이를 되찾으면 같이 집으로 갈거다.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 부점장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기억을 압축해서 보기 좋게 나열한건데 저런 기억밖에 없어. 하회일가에서 어떤 기술을 쓰고 있는지, 쓸만한 기억이 있는지 좀 알아내려고 했는데.. 쓰읍.. 별 도움될게 없네?”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던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그럼 이제 쓸모 없어졌으니까 없앨까?”
라고 밝게 말했다.
부점장의 말과 동시에 온갖 위험해보이는 살상 도구들이 수술대 천장 위에서 내려와 금방이라도 녀석을 썰어버릴 듯 위협을 가했다.
아.. 죽이기는 좀 그런데.. 뭔가 방법이.. 아!
“하회일가에서 지낸 기록이 있긴 한가?”
“응? 아 있긴 해.”
“그럼 하회일가 내부 도면을 얻을 수 있겠네?”
“얻을 수는 있는데 어차피 못 들어가니까 필요 없잖.. 잠깐 오빠..? 설마..?”
“당하기 전에 쳐야지.”
“에이 무슨 말도 안되는..”
그녀가 말을 하다 말고 내 표정을 살폈다.
동요하지 않는 내 표정을 본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빠 진짜 마음 먹었구나..? 근데 근무도 있잖아?”
“휴가 냈다.”
“어머?! 누가 대신 갔데?!”
“그게 중요한가?”
“뭐~ 그렇긴 해~.”
그녀가 키득거리다가 이내 어두워진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아이 근데 진짜 쉽지 않은데 어떡하지..? 꼭 해야되는거지~? 그치~?”
뜸들이고 있는 부점장에게 제안을 했다.
“필요한게 뭔가?”
“역시 우리 오빠, 눈치가 빠르다니까~?”
부점장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회일가 수장의 탈’을 가져다줘.”
“‘하회탈?’ 그거면 충분한가?”
“그거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언제 갈거야?”
바닥에 끌릴랑 말랑하는 연구복을 손으로 정갈하게 정리하며 그녀가 물었다.
“지금.”
“지금?! 갑자기?!”
“휴가 날짜가..”
“아, 그렇지 참. 그래도 1시간 정도는 시간 좀 주라~. 나도 살펴보긴 해야하잖아?”
부점장이 녀석에게 다가가 주위에 있는 위험한 장치들을 원위치시키고 녀석에게 씌웠던 기억 장치를 제거하면서 내게 물었다.
“이 물건은 어쩔거야?”
“당분간은 내가 데리고 있겠다.”
“에? 왜? 오빠 동물 좋아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내가 데려가겠네.”
“흐음~. 알았어 뭐. 나한테는 필요 없.. 어엄마야 이거 왜이래?! 이거 안놔?!”
부점장이 녀석을 풀어주자마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본인의 날카로운 이빨로 그녀의 팔을 물었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얘 싸나운 것 좀 봐! 오빠 얘, 얘 좀 어떻게.. 어머머!”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옆에 놓여져 있던 케이지에 재빠르게 녀석을 던져넣었다.
녀석은 분한지 멍멍거리면서 우리에게 육두문자를 날렸다.
부점장은 본인의 팔을 보며 짜증을 냈다.
“정말 못살아! 이거 바꾼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앙칼진 고양이 때문에 또 바꿔야 하잖아! 나쁜 고양이!”
“고양이 아니라 개.. 쨌든 남은 스킨 여분으로 구비해뒀나?”
“당연하지 오빠~. 난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라구~”
부점장은 녀석에게 물려 너덜너덜해진 암스킨(arm skin)을 벗겨내고 가지고 있던 새로운 암스킨으로 교체했다.
그녀가 본인의 교체된 팔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음~ 이제 됐다. 근데 오빠는 왜 신체개조 안 해? 나한테 오면 정말 잘해줄텐데. 오늘 온 김에 팔 한 쪽이라도 하고 갈래?”
부점장의 말을 무시하고 녀석이 든 케이지를 들었다.
그녀가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벌써 가는거야? 조금 더 있다가~.”
“시간 없다고 했을텐데? 문 열어. 한 시간 뒤에 연락하겠네.”
“히잉.. 알았어. 대신에 다음에는 조금 더 있다 가야 해? 더 자주 오던가? 알았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는 부점장을 뒤로 한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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