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1)

“..여기는 어때?”
“거기는 얼마 전에 의뢰가 있었네.”
“그럼 이씨일가는?”
“오래 전에 의뢰가 있었긴 했는데..”
“오래 전이면 괜찮지 않아?”
“이벤트의 8할은 이씨일가라..”
“아 달링~! 진짜 인생을 어떻게 산거야?!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한군데도 없다는게 말이 되는거야?! 어?!”
부점장이 짜증을 내며 내게 성을 냈다.
그런 부점장에게 내가 덤덤하게 말했다.
“근무자라면 어쩔 수 없다는거 알고 있지 않나? 그리고 달링이라니?”
“아니.. 뭐.. 오빠랑 알고 지낸지도 좀 됐고~ 이제 달링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불러.”
“어? 그럼 오빠는 괜찮은거네?”
하.. 진짜 짜증..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부점장이 콧노래를 부르며 도움 받을 수 있는 리스트를 확인하다 이내 다시 시무룩해지며 말했다.
“하.. 진짜 어떡하지?”
“저번처럼 혼자 하면..”
“아 그럼 오빠 뿐만 아니라 다 죽는다니까~?! 오빠 근무 몇 년 차인데 이렇게 인맥이 없는거야?!”
그렇게 성을 내던 부점장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오빠 올해 몇 살이지..?”
“그런걸 외우고 다니나?”
“몇 년생이야?”
“88.”
부점장이 잠시 동안 멍을 때리더니 화들짝 놀라며 내게 소리쳤다.
“오빠 벌써 45살이야?! 왜 이렇게 늙었어?! 근데 이 미모가 말이 되는거야?! 20대라고 해도 믿겠네!”
“벌써 그렇게 됐나.”
“내년에 은퇴하겠네..? ..점장달거야?”
“글세.. 일단 이번에 살아남아야겠지.”
“점장 달게 되면 나 데리고 가야해..? 알았지?”
“일단. 일에 집중하자고.”
그 때, 출입문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또독, 똑’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그물 가져왔습니다.”
라는 넉살 좋은 목소리가 문에 설치된 스피커로 울려퍼졌다.
부점장과 내가 출입문에 설치된 도어스크린을 통해 밖을 확인했다.
경비가 양 손에 녀석과 양이를 들고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며 서있었다.
***
“순찰 돌다가 눈에 보이길래 데려왔습니다~. 왜 애들을 문 밖에 두셨을까~? 유기동물죄로 신고당합니다~?
출입문을 열자 경비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며 허허실실 말을 붙였다.
경비에게 목뒷덜미를 잡혀 공중에 띄워진 채 녀석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나와 부점장을 쳐다봤다.
양이는 쳐다본다기 보다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녀석은 훌쩍이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경비가 녀석들을 내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두 마리였군요~! 행복하시겠습니다~?“
”왜 찾아왔나?“
내 말에 경비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일손이 필요하시지요~?“
”어떻게 아셨어요?!“
부점장이 귀신이라도 본 듯이 놀래며 물었다.
경비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제 직업이 뭡니까~? 이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지요~.“
”오빠 다행이다! 경비는 우리 업계에서 인맥이 상당하니까 큰 도움이 될..“
”나가.“
경비.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 좋아보이지만.. 속을 알 수가 없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 타이밍에 도움을 준다고? 믿을 수 없다.
내 말에 부점장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지금 물,불 가릴 때야? 누구라도 도움을..“
”못 믿네. 나가.“
내 반응에 경비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물었다.
”..그 때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경비가 갑자기 입고 있던 조끼를 벗고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부점장이 당황해서 경비의 행동을 막으려고 다가갔다.
”영감님 갑자기 이게 무슨?!“
경비가 부점장의 손을 얌전히 제지하고 셔츠를 벗어 웃통을 드러냈다.
많은 흉터들 가운데 경비의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나있는 흉터가 선명히 보였다.
본인의 손으로 흉터를 가리키며 경비가 말했다.
”그 때 일은 이걸로 퉁친거 아니었습니까~?“
경비가 넉살좋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 일, 어차피 혼자 못하는거 아시지요~? 일적으로, 근무자들 다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소개해줄 사람들 얘기만 한 번 들어보시죠~.“
”그래 오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급한 불은 꺼야지 않겠어? 그리고 영감님은 옷 좀 입으세요!“
잠깐의 침묵이 공간을 가득 매웠다.
..하 별 수 없나?
부점장과 경비, 그리고 녀석을 한 번씩 쳐다본 후, 나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아까 분명히 ‘얘기만’이라고 하지 않았나..?“
”허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얘기 나온 김에 겸사겸사 얼굴도 보면 좋지요~!“
”..그러기엔 ‘환영식’이 너무 거한거 아닌가..?“
나와 경비를 중심으로 총구를 들이밀고 있는 김씨일가의 ‘선수’들을 경계하며 경비에게 속삭였다.
”누구에게 연락했나?“
”곧 오실겁니다~. 허허.“
이 때, 검붉은색 가죽으로 덮인 출입구가 열리며 흑발에 빨간 후드집업을 입은 여자가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들어왔다.
아담한 체구의 여자는 우리 둘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경비에게 달려가 안기며 말했다.
”오빠~! 보고 싶었잖아~! 왜이렇게 오랜만에 온거야?“
여자의 행동에 김씨일가의 선수들이 우리에게 겨눴던 총구를 거두고 원래 본인들이 있었던 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경비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못 본 새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요즘 기술이 워낙 좋아야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갑자기 연락을 다주고?“
그러더니 여자가 경비 옆에 서 있던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경비에게 말했다.
”저 꼬마는 뭐고?“
..? 꼬마..?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경비를 쳐다보자 경비가 웃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얘기가 좀 길어질 듯 하니 안에서 잠시 얘기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그럼그럼!“
여자는 카운터가 있는 중앙 홀을 지나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복도 우측 문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문 양쪽으로 아까 우리에게 총구를 겨눴던 선수들 중 두 명이 가드를 서고 있었고,
방 안에는 투명한 유리 테이블과 검붉은 가죽 소파가 방을 빙둘러 배치되어 있었다.
여자는 검붉은 가죽 소파에 앉아 손으로 소파를 팡팡 치며 경비에게 말했다.
”여기! 편하게 앉아있어. 그래서 뭔데 도대체?“
”일단.. 소개부터 하는게 좋겠군요~. 이쪽은 라온. 현재..“
”어멈머머, 너가 라온이야? 얘, 반갑다 정말로~.“
여자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으려 하자 경비가 여자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
”벌써 이러시면 안됩니다~. 일단 얘기 먼저 듣고 그 다음에 하시죠~.“
경비의 넉살에 여자가 아쉽다는 듯 손을 거두며 말했다.
”오빠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탈이라니까~.“
경비가 특유의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여자를 소개했다.
”이분은 김씨일가의 수장, ‘마담’입니다.“
”반가워 꼬마? 네 얘기는 많이 들었어. 우리 애들이 너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데? 그래서, 무슨 낯짝으로 여기 발들였는지 얘기나 들어볼까~?“
너무 어린 얼굴에 내가 의심하면서 경비를 쳐다보자 경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래보여도 70이 넘었..“
”어머 오빠! 그거 비밀이잖아~! 시덥잖은 얘기할거면 얼른 나가! 아님 쫓아내 진짜~?“
”허허, 라온씨 얼른 얘기하세요~. 저희 이러다 진짜 쫓겨납니다~?“
부점장과 겹쳐 보였지만 기분 탓이려니 생각하고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마담에게 얘기했다.
***
얘기를 다 들은 마담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일손이 필요하다?“
그러더니 내게 얼굴을 불쑥 내밀더니 물었다.
”내가 얻는 대가는?“
”이 사람 실력 잘 아시지요~? 당분간 여기 위해서 일해줄겁니다~.“
나와의 협의 없이 말을 뱉어낸 경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그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가 내 어깨를 움켜쥐며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김씨일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건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내가 입을 열기 전, 마담이 본인 손가락 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흐음.. 그 정도로는 부족한데~? 하회일가면 우리 쪽도 리스크가 크단 말이야~. 그리고 우리 쪽에도 실력 좋은 선수들 많은데~. 아니면.. 이건 어때~?“
마담이 두 손가락으로 내 턱을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소원 1번 들어주기.’ 어떤 대상이든, 물건이든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소원 1번은 꼭 이뤄주는거야. 어때~?“
”내가 왜..“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경비가 내 뒤통수를 잡고 아래로 숙이며 말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요 당연히~. 그럼, 약속하신겁니다~?“
”오빠 얼굴 봐서 승낙한거야~. 그럼 이만 가 봐. 준비되면 연락줄게~.“
마담의 말이 끝나자마자 경비의 손을 뿌리치고 출입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나온 골목에서 경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경비의 멱살을 잡은 상태에서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본 근무지 외에 다른 근무지의 일을 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 만한 사람이 이 따위 짓을 벌여? 그리고 마담이 무슨 소원을 얘기할 줄 알고! 제정신인가?”
경비가 숨이 막힌지 켁켁거리며 아무 말도 못하고 버둥거리는걸 보고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경비가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
“도움을 못 받으면 3일 안에 죽는거 아닙니까~? 일단 살고 봐야지요~!”
“그 후에는 배신자로 찍혀 도망다니라는 말인가?!”
“일단 살면! 방법은 찾으면 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랑 부점장같이 ‘만들어진 존재’는 점장이 ‘해고’ 처리를 하는 즉시 사망하게 되는데,
어떻게 살 수 있다는거야?!
점장은 투잡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여러 생각들로 시끄러운 상황에 경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일단은 지금만 생각합시다~. 제가 이렇게 오래도록 살아있는 이유가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걱정 말고 다음 사람을 만나러가시지요~.”
“다음?”
내 반응에 경비가 웃으며 말했다.
“김씨일가로만 되겠습니까~? 보험은 많이 들면 들수록 좋으니까요~. 그럼 가보실까요~?”
경비가 자신있는 발걸음으로 먼저 골목을 벗어났다.
나는 그 뒤를 힘없이 따라갔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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