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점장의 협력을 약속 받은 직후, 영감이 조심스레 주방에 들어와 말했다.
“두 분 말씀 다 나누셨지요~?”
점장이 영감에게 물었다.
“영감도 알고 있었어? 부점장 그렇게 된거?”
“저도 라온님이 알려주셔서 알았습니다~.”
점장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젠장맞을! 아직 20년은 남았건만.. 작업실 피해도는? 전달 받은거 있나?”
“소방 대원들 말에 따르면 거의 다 전소되서 건질게 없을거랍니다~.”
점장이 내게 말했다.
“들었지? 내 쪽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작업 도구는 없어. 식구들 몇 명 붙여주는게 단데, 그래도 필요해?”
“그거면 충분합니다. 영감, 김씨일가랑 박씨일가 연락 됐나?”
“김씨일가에서는 1시간이면 준비가 끝날거라고 했습니다~. 박씨일가는 연락이 안되서 조금 있다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럼 1시간 있다 김씨일가 작업장에서 만나도록 하지. 가능하십니까?”
점장이 대답했다.
“당장도 가능해.”
“그럼, 좀 있다 뵙겠습니다.”
점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영감과 함께 주방을 나오는데 영감이 물었다.
“점장님을 어떻게 설득하신겁니까~?”
“부점장이 죽었으니까 설득이 가능할거라 예상했네. 우리 가게 최대 전력 중 하나였으니까..”
“참 아쉽게 됐습니다~.”
“녀석들은?”
“애들은 선생님 집에 데려다놨습니다~. 편히 쉬고 있을 겁니다~.”
“..그 녀석들을 뭘 믿고..?”
난장판이 되어있을 집을 예상하며 서둘러 올라갔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캄캄한 집 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집 안으로 조심히 들어가 복층 계단 옆 벽면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거실 불을 켰다.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복층에 올라갔지만 녀석들은 없었다.
뭐야? 이 녀석들 어디갔어?
어리둥절해 하며 혹시 밖에 나갔을까 녀석들을 찾고자 현관문을 열었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 겉면을 확인해보니 아지 녀석이 머리를 문지르며 울고 있었다.
“뭐냐 멍! 조심 좀 해라 멍! 아프다..ㅠ”
“어딨었나?”
“양이가 우유 먹고 싶다고 해서 우리 집에 갔었다 멍. 아야.. 미안하다고도 안하냐 멍!”
“미.. 미안”
그 때 아지 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양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뭐하냥? 얼른 락스 가져와라 냥!”
“알았어 멍! 라온! 락스 좀 빌려줘라 멍.”
“뭐하게?”
“사고를 좀 쳐서 필요하다 멍.”
“가져다 줄게.”
집에 들어가 락스를 들고 아지의 집에 들어가자 익숙한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녀석들 도대체 뭔 짓을 한거야?
기분 나쁜 냄새는 방 안쪽으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튄 피가 현관 쪽 옷장과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고 주방 쪽으로 시체 한 구가 눕혀져 있는지 축 늘어진 손이 바닥에 놓여있는게 보였다.
아지를 바라보며
“저 손은 뭔가?”
라고 물어보자 아지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한 번 쓱 보고 내게 말했다.
“하회 쪽에서 사람을 보내서 내가 처리했다 멍!”
옆에 있던 양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랑이다 냥. 냄새 더 심해지기 전에 얼른 처리하자 냥. 락스 줘라 냥.”
내가 락스를 양이에게 건내자 양이가 앞발을 내저으면서 아지를 가리켰다.
“쟤한테 줘라 냥.”
아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치워야지 멍? 내가 분해, 네가 분쇄 담당 아니냐 멍?”
양이가 점프해 복층 계단에 늘어져 누우면서 말했다.
“지금 난 그냥 평범한 고양이다 냥.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준다 냥. 한숨 잘 테니까 알아서 잘 치워라 냥.”
“그래도..”
“저것들도 너 혼자 다 막았잖냥? 알아서 해라 냥.”
아지가 양이를 한참 쳐다보다 고개를 휙 돌리며 날 바라봤다.
그 크고 푸른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아지가 말했다.
“도와줘 멍~.”
나는 아무 말 없이 락스통을 아지 앞에 내려놓고 녀석들의 집에서 나왔다.
내가 나가자 아지가 현관문을 벌컥 열며
“매정하다 멍!”
라며 소리쳤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녀석이 말했다.
“치.. 치우는거 도와주면 하회일가 일 도와주겠다 멍!”
“필요없네.”
“나도 나름 쎄다 멍! 그리고 거기 지리도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냐 멍!”
“집에 있어라.”
“왜 안데려가려고 하냐 멍! 나도 꽤 도움이 된다 멍! 지금도 백정 3명이나 처리했..”
“살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청소하면서 얌전히 집에 있어라. 양이도 있지 않나?”
마침 비상문이 열리며 영감이 복도에 나타나 자연스레 대화가 끊겼다.
영감이 아지를 보고 나를 보며 말했다.
“사이가 꽤 좋아지셨네요~? 달려가시길래 무슨 일 있을까~ 해서 올라와봤습니다~.”
“괜한 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 1시간 있다 만나도록 하지.”
아지를 보며 말했다.
“더 필요한거 있나?”
“몰라 멍!”
아지가 현관문을 ‘쾅!’ 소리나게 닫으며 집에 들어갔다.
고양이도 아니면서 까칠하기는.
나도 내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영감이 말했다.
“선생님, 박씨일가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합류는 어렵지 않을까요~?”
“쉽지 않구만.. 알았네. 일단 현재 있는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봐야겠어.”
복잡해진 머리를 싸매고 집에 들어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9시.
점장과 형제들, 그리고 영감과 함께 김씨일가를 방문했다.
“좀 일찍 왔네?”
검은색 원피스에 빨간 자켓을 걸친 장신의 여자가 사탕을 입에 물고 중앙 홀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누군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점장이 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랜만이네 마담. 요즘도 몸 갈아끼우는게 취미인가봐?”
“점장에 비하면 양반이지~. 많이 급하긴 했나봐? 가게 문 닫고 올 정도면?”
“요즘 우리 쪽에 마진이 몰려서 장사가 영 안됐나보네~. 우리 쪽 제안을 받아들인걸 보면. 안 그래?”
“보통 급한 사람이 먼.저. 제안을 하던데~. 낚시만 다니느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르나보네?”
“누가 할 소리. 본인 몸만 신경쓰느라 세상 물정 모르는게 누군데?”
마담과 점장의 신경전이 한창 고조된 순간, 영감이 둘 사이를 떼어내며 말했다.
“아이고, 예예~ 두 분 반가워서 이러시는거 잘~ 알겠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어떻게, 준비는 잘 끝난겁니까~?”
마담이 점장을 째려보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누구랑 다르게 일처리 하나는 잘~ 하거든. 오빠도 알지?”
점장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마담을 노려봤다.
마담도 이에 질세라 점장을 독기 어린 눈빛으로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인원이 많이 올 줄 알았으면 준비를 좀 덜 할걸 그랬어~. 괜히 힘만 뺐잖아? 김실장~!”
마담이 복도를 향해 소리치자 검은 턱시도에 빨간 넥타이를 맨 키 큰 남자가 중앙 홀로 나와 마담 옆에 뒷짐을 지고 섰다.
마담은 김실장의 턱 주변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이 사람들 ‘VVVIP룸’으로 안내해 줘. 내보낼 때는 비밀 문으로, 알지?”
김실장은 마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VVVIP룸으로 안내했다.
그는 복도 끝에서 우측으로 틀어 그 끝에 있는 어두운 창고로 우리를 안내했다.
창고 문이 닫히고 이내 불이 들어왔으나 창고 안은 텅 비어있었다.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지금 장난해?!”
점장이 신경질적으로 김실장에게 물었다.
김실장은 아무 대답 없이 창고 끝으로 걸어가 벽을 더듬어 어느 한 부분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벽을 누름과 동시에 창고 우측 끝 벽이 옆으로 열리며 김씨일가의 VVVIP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종 얼굴, 안구, 팔, 몸통, 손, 머리카락 등이 검정철제선반에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철제선반과 철제선반의 중간, 비어있는 공간에는 기괴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점장이 김실장을 따라 걸으며 영감에게 물었다.
“영감이 일할 때도 저런 작품이 있었나?”
“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좀 더 적었었죠~. 김씨일가를 떠나려한 사람들이 그동안 더 있었나봅니다~. 주의 깊게는 보지 마십쇼~. 정신 건강에 안좋습니다~.”
“취향도 참..”
점장과 영감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철제선반이 있는 구간이 끝나고 사람 형태의 로봇들이 줄지어 서 있는 구간이 나왔다.
김실장이 뒤돌아서 우리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을 도와드릴 선수 50명입니다. 사용 방법은..”
“50명?! 50명으로 하회일가를 어떻게 상대하라는거야?! 이것밖에 준비를 못 했나?!”
점장이 김실장에게 다가가 화를 내자 김실장이 차게 식은 눈으로 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담께서 신경써서 만들어주신 겁니다. 싫으면 그냥 가시던지요?”
“아이고~. 참 말을 뭘 그렇게 하십니까~? 사용 방법이 어떻게 된다고요~?”
영감이 점장과 김실장 사이에 시비가 붙기 전에 중재하며 김실장에게 물었다.
“..한 분이 여기 남아 로봇들을 동작해주셔야 합니다. 어느 분이 남으시겠습니까?”
“흠.. 제가 남도록 하지요~.”
점장이 영감을 보며 말했다.
“가능하겠나?”
“이 늙은이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래뵈도 기계공학과 출신입니다~?”
“원래 만드는거랑 조종은 다르지 않..?”
“아이고~. 뒤에서 잘 서포트하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어 김실장이 말했다.
“그럼 남으실 분은 정해진 것 같으니 나머지 분들께는 나가면서 필요할만한 물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은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따라오시죠.”
영감을 제외한 모두가 중앙에 있던 문을 통해 나갈 때, 영감이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알겠네.”
그렇게 영감을 두고 중앙에 있던 문이 닫혔다.
중앙에 있던 문을 통해 나가자, 이번에는 김씨일가의 무기고가 나왔다.
정갈하게 정리된 작은 총기류와 수류탄, 나이프 등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중앙 유리 관물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 관물대를 중심으로 양 쪽 벽에는 샷건, 소총 등 큰 총기류와 바주카포, 장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실장은 무기고 중앙에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뒤돌아 돌며 말했다.
“김씨일가에서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걸로 얼마든지 챙겨가도 좋다고 마담이 허락하셨습니다. 골라 보시지요.”
점장은 중앙 유리 관물대로 걸어가 카람빗 나이프 두 자루를 챙겨 양쪽 벨트에 착용했다.
형제들도 본인의 스타일에 맞춰 장검, 리볼버, 바주카포 등 본인들의 무기를 선택했다.
내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사람들을 보고만 있자 김실장이 물었다.
“아무 것도 안고르실겁니까?”
“두고 온게 있어서 괜찮네.”
김실장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본인들의 무기를 다 고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충분히 고르셨나요? 밖에 차를 대기시켜놨습니다. 따라오시죠.”
김실장이 유리 관물대에 서서 어느 부근을 발로 꾹 누르자 관물대 중앙이 갈라지며 대문이 열리듯 관물대가 열렸다.
열린 관물대를 따라 나가자 주차장이 나왔다.
우리가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차 되어 있던 검은색 스타리아 4대가 움직여 우리 앞에 섰다.
김실장이 말했다.
“하회일가까지 안전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타시죠.”
“선수들은 어떻게 오는거지?”
“여러분들이 출발하고 나면 저희 쪽에서 바로 출발시킬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나는 따로 가겠네. 선수들 출발하는 차 맨 뒤에서 가도록 하지.”
내 말에 점장이 물었다.
“아들~. 그냥 같이 타고 가도 될 것 같은데? 다른 생각 가지고 있는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수들 출발시키는지 확인하고 바로 뒤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계획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가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점장이 언짢은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스타리아에 탑승했다.
김실장과 나만 남았을 때, 김실장에게 물었다.
“하회일가 본가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김실장이 들어가려다 말고 나를 힐끗 보며 대꾸했다.
“..생선가게 부점장도 아는 정보를 저희가 모를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뭐라 했나?”
“부점장에게 정보를 넘긴게 저희입니다. 저희 일가가 모르는 정보는 없으니까요.”
김실장이 조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근데.. 이럴 시간이 없으실텐데요..? 벌써 10시입니다. 선수들을 데려오도록 하지요.”
무기고로 들어가는 김실장을 바라보며 묘한 기시감이 들었지만 곧 시선을 돌려 내 차가 주차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차 안에 있던 방전된 폰을 충전기에 꽂고 전원을 켜자 부점장의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빠~ 나중에 시간 날 때 봐~! 좀 자주 오라고~! 하회탈 고마워~!’
참.. 덧없다.
고맙다니.
복잡한 감정을 쓸어내리며 선수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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