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이건 어떠냐 멍?”
“조잡해.”
“이건?”
“화력이 별로야.”
“무기 추천해주는 것 마다 싫다고 하면 어쩌라는거냐 멍!”
41층에 위치한 무기고에서 아지가 씩씩거리며 나를 째려봤다.
“?난 골라달라고 한 적 없는데?”
“‘쓸만한거 없나?’ 라고 하지 않았냐 멍!”
“혼잣말이지.”
삐져서 궁시렁거리는 아지를 두고 쓸만한 무기가 있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김씨일가 무기고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진 그 곳에서, 익숙한 형태의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점장이 챙겼던 것과 같은 카람빗 나이프였다.
“총을 챙기지 뭐하러 칼을 챙기냐 멍? 칼은 총을 못 이긴다 멍!”
나이프 두 자루를 챙겨 양쪽 벨트에 착용하며 말했다.
“쓸 일이 생길 것 같다.”
“흠.. 그러냐 멍? 다른 건 더 안챙기냐 멍?”
대답 대신 권총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권총과 탄창 4개를 더 챙긴 다음, 수류탄 4개와 연막탄 2개를 챙겼다.
‘달칵, 달그락, 툭, 달칵, 달그락, 툭.’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 들리지 않..”
라고 말하며 아지를 쳐다봤다.
녀석은 자기 키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어마무시하게 많은 탄창을 옆에 쌓아두고 변형된 본인의 팔에 집어넣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미 쓴 탄창을 빼내고 새로운 탄창을 하나 하나 갈아끼우고 있었다.
“..자가 생성 아니었나..?”
“그런게 어딨냐 멍. 다 수동이다 멍. 무기 다 챙겼으면 나 좀 도와줘라 멍. 이거 혼자하려면 반나절 이상 걸린다 멍.”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비어있는 탄창을 빼내고 새로운 탄창을 하나 하나 갈아끼웠다.
***
“다 됐다 멍!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거냐 멍?”
“가게로 가자.”
“가게? 폭격이 멈췄으니까 건물로 잠입하고 있지 않을까 멍?”
“본인 목숨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폭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가게로 갔을거다.”
아지와 함께 비상 계단을 내려오며 말을 이었다.
“아, 그전에 들를 곳이 있네.”
“들를 곳? 멍?”
“이쯤에서 봤었는데.. 아, 여기있네.”
비상구 40층과 41층 사이의 통로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앞에 섰다.
눈을 감고 있는 여성의 얼굴을 중심으로 팔이 얼굴에서 피어나듯 사방으로 접붙혀진, ‘인간 꽃’ 그 자체의 형상을 한 동상이었다.
여성의 두 눈과 입은 실로 꼬매져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생동감이 있어 오히려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게 뭐냐 멍..? 설마 사람..이냐 멍? 역겹다 멍..”
“처음보는건가?”
“엘리베이터로만 다녔으니까 비상구에 이런게 있는 줄도 몰랐다 멍. 이런게 전시되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하회 손에서 나오려고 했을거다 멍.”
“그래.. 참 고약한 취미지.. 흔치 않고..”
고개를 돌려 아래 층으로 내려가면서 아지에게 물었다.
“건물 내에 쓸만한 차가 있나?”
“차는 잘 모른다 멍. 백정이나 연구원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멍?”
“연구원.. 마침 저번에 친해진 연구원이 있었지..?”
“친해진 연구원? 멍?”
***
“여.. 여기는.. 여기는 또 어.. 어떻게..?!”
저장고를 관리하고 있던 31층 연구원이 얼굴이 시퍼래진 상태로 우리를 바라봤다.
백정들에게 연락하려는 듯 핸드폰을 꺼내려는 연구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연락해도 소용없네. 하회랑 계약했거든.”
“예에?!”
“이제 한 식구다 멍!”
“그.. 그럴 리가..?!”
“못 믿겠으면 연락하던가.”
안절부절 못하는 연구원을 향해 내 머리에 올라가 앉아있던 아지가 물었다.
“회사 차 여분으로 쓸 거 있냐 멍?”
“아.. 아니 그건 제.. 제 관할이 아니..”
“네 차는?”
“예?”
“차 없나?”
“있.. 있는데 왜..?”
“좀 빌리자.”
“아.. 아니..”
악의 없는 표정으로 연구원을 잠시 쳐다봤을 뿐인데 연구원이 바들바들 떨면서 내게 차키를 건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차 종류.”
“000가 0000.. S..SUV..”
“잘 쓰고 갔다주겠네. 아, 그리고 시간 괜찮으면 41층 고양이도 보살펴주게.”
“고.. 고양이요..?”
“나중에 봅세.”
“금방 갔다오겠다 멍!”
울기 직전의 표정을 한 연구원을 저장고에 두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우리 연구원한테 삥 뜯은거지 멍?”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웠지?”
“이래뵈도 AI 로봇이라고 멍!”
“뭐.. 빌린거지.”
“흠.. 그렇다고 하지 뭐 멍.”
연구원의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아지에게 물었다.
“하회 본 모습을 본 적 있나?”
“없다 멍.”
“그럼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아무도 모르는건가?”
“그렇다 멍. 근데 왜 멍?”
“오늘 하회 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엥? 누군데 멍?”
“일단..”
말을 이어서 하려고 하는데,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박씨일가가 운영하고 있는 시장 입구 쪽에 경찰차, 구급차, 그리고 소방차가 즐비해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잠깐 좀 들리지.”
“여기가 아까 말한 잠시 들릴 곳이냐 멍?”
“아니. 근데 볼 일이 생겼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아지를 두고 시장 쪽으로 차를 돌렸다.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한 후, 차 문을 열자 매캐한 매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으엑, 탄내가 너무 심하다 멍!”
뒤따라 차에서 나온 아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다리가 없나?”
“그건 아닌데 너무 피곤하다 멍.. 아 탄내.. 킁! 어깨 좀 빌릴게 멍.”
“갑자기?”
“그러게 갑자기 왜 이러지 멍.. 하~암 졸리다 멍..”
“그럼 차에 있어라.”
“탄내가 나도 차 안 보다 밖이 좋다 멍.”
“..”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어깨에 매달린 아지를 들어올려 말없이 품에 안았다.
녀석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이내 곯아떨어졌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지를 차 안에 넣어놓고 홀로 시장으로 향했다.
***
시장 입구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매캐한 연기가 시장 입구에서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이따금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성한 곳 하나 없이 정신을 잃은 상태로 구급 대원들에게 업히거나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그 근방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주변을 서성거리며 한숨을 쉬던 부부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내 옆을 지나갔다.
“아이구 저걸 어쩐디야.. 테러가 웬말이야 웬말이..”
“그러게 말이여.. 하늘에서 갑자기 미사일이 왜 날아왔데..?”
“그러니까 말이여.. 시상에.. 아직까지 멀쩡하게 나온 사람이 없으니 우째?”
미사일이라..
뭐 더 볼 것도 없군.
차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김씨일가의 선수였다.
곧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선수에게서 흘러나왔다.
“아이고 선생님~!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괜찮으신가요~?”
“영감, 선수가 왜 여기 있는거지?”
“박사장님이 연락을 안받으실 분이 아닌데~ 너무 안받으시길래 선수 한 명만 이곳으로 보냈죠~. 안그래도 하회일가 쪽에 보낸 선수들이 모두 당해서 선생님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연락할 수단이 생겨 다행이네. 영감, 지금..”
“선생님.”
영감이 내 말을 끊고 평소와 다르게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게로 돌아오시지 말고 멀리 피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영감도 눈치 챘구만. 나도 알고 가고 있는거니 괜찮네.”
“아시면 더욱 이쪽으로 오지 마셨어야죠~!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얼른 피하십시오~!”
“하회랑 계약을 했어. 점장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하더군.”
“점장님 머리를요~?!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하게 해야지. 그리고 원래는 내가 가려고 했는데, 영감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부탁이라 하심은..?”
영감에게 말을 전하자
“..알겠습니다~. 가게에서 뵙도록 하죠~.”
라고 답해줬다.
영감과 헤어지고 난 후, 곧바로 가게를 향해 달렸다.
새벽 4시 43분.
하늘에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부슬비를 맞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영업..”
불꺼진 가게 앞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던 점원이 암호를 읊다가 나를 보고 멈짓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암호를 말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점장은 낚시하러 갔나?”
“아니요. 식사 중이십니다.”
“점장을 만나고 싶은데.”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점원이 일어나자 가게에 있던 점원들이 총구를 겨누며 내게 하나 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점장 지시인가?”
“배신자에게 말할 의무는 없습니다.”
“배신자라.. 틀린 말은 아니지.”
조심스럽게 테이블 모서리를 잡으며 점원들에게 말했다.
“점장만 불러주면 돼. 다들 자기 목숨은 소중하지 않나?”
“말도 안되는 소리.”
그 말과 동시에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테이블을 급히 들어 방패로 삼고 바로 앞에 있던 점원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와 동시에 의자를 집어던져 총을 쏘던 점원들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자켓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12시, 10시, 9시 방향에 있던 점원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줬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그 뒤에 있던 점원들이 사시미를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다구리에 장사없다 이거지?
한 번 해보자고!
앞 쪽에 있던 점원의 공격을 피해 고개를 수그린 후, 카림빗 나이프로 점원의 허벅지를 찔러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 틈을 타 내 오른쪽에 있던 점원이 위에서 아래로 사시미를 휘둘렀다.
공격을 피해 뒤로 살짝 물러나며 허벅지에 부상을 입은 점원의 멱살을 잡아 우측에서 공격한 점원에게 집어던졌다.
좌측에 있던 점원의 사시미 든 칼을 왼손으로 잡고 복부와 목을 나이프로 그었다.
‘푸욱, 사악’
기분 나쁜 고기 썰리는 소리와 붉은 피가 뿜어져나와 얼굴을 적셨다.
뒤에서 공격 대기하고 있던 점원의 품에 바로 파고들어 복부를 4~5차례 가격한 후, 그대로 주방으로 끌고 들어가 주방 안 쪽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점원이 대신 맞게 했다.
아까 테이블을 이용해 몸통을 들이받았던 점원이 일어나 내 양 팔을 덥석 잡으며 외쳤다.
“아버지한테는.. 한 발도.. 못 갑니다아아아!”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가 있는 힘껏 뒤로 젖히며 점원의 머리를 가격하고 점원의 멱살을 잡아 앞으로 엎어쳤다.
주방 안에 있던 점원들의 총알을 피해 주방 입구 바로 옆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권총을 손에 쥐었다.
잠깐의 적막함이 공기를 매우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하나.. 둘.. 셋!
주방 안 쪽으로 빠르게 돌아서며 점장의 방을 지키고 있던 점원 4명의 머리에 차례대로 구멍을 내줬다.
‘털썩.’
점원들이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숨을 고르며 점장 방으로 향했다.
‘쉬익!’
점장 방에 진입하기 직전, 내 얼굴로부터 3c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별안간 사시미 옆면이 머리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코가 베일 뻔한 위기에서 벗어나 곧바로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사시미를 나이프 옆 날로 빗겨치고 나머지 손으로 나이프를 바투잡아 점원의 복부에 꽂아 넣어 사선으로 올려그었다.
점원들이 없어진 가게에서는 ‘달그락’ 거리는 점장의 식사 소리를 제외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테이크를 썰어 먹고 있는 점장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테이블 앞에 우뚝 섰다.
점장은 아무 말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점장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대어 낚으러 왔습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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