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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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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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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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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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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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同床異夢) (3)

DUMMY

사천(四川) 당가(唐家) 가주전(家主殿).


심란한 표정의 당선욱 앞에

화원이 정갈한 태로 마주 앉았다.


“내일 떠난다고?”


당선욱이 아쉬움을 담아 묻자,

화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런 때에 도와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다만 미룰 수 없는 선약이 있는지라···.”


화원의 말에 당선욱이 휘휘,

손을 내저으며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도움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되려 객을 모셔다 대접도 제대로 못 했으니,

내가 너에게 미안할 일이 아니더냐.”


제 편은 살뜰히 챙기는 당가인지라,

화원의 미소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오늘 보자 한 것은 아쉬운 마음도 있으나···.”


당선욱이 말을 잇다 말고

주름진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벗이 감추지 못할 만큼 아끼는 아이다.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으로

아이에게 괜한 심란을 주는 것이면 어찌하나.


잠깐 고민하던 당선욱이

그럼에도 끝내 하려던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마교가 엮인 듯하구나.”


마교.


그 말에 화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문득, 화원의 뇌리에

춘생의 심장을 베어 물던 마교 놈들이 스쳤다.


“아직 확실한 증좌는 없다.


허나 그간 조사한 바를 모아 놓으니,

그 끝이 결국 마교를 가리키더구나.”


이야기를 듣던 화원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의문을 표했다.


“마교가 숨어들었다면

어디에서든 마기의 흔적이 남았을 텐데요?”


마기는 내기와 달리 탁하고 역하다.


화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정파의 무인이라면

마기의 흔적을 잡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개입된 일이라면,

추적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은 마기의

흔적을 잡아내었어야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찾지 못하였다. 분명 마교의 소행인데,

마기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어.”


당선욱은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기의 흔적만 찾지 못한 게 아니다.

숨어든 마인의 꼬리조차 잡지 못했으니···.”


까득.


당선욱의 이가 살벌하게 갈렸다.


당가의 핏줄로서는 원수를 갚지 못하는 것보다

더 치욕적인 일이 없는 탓이었다.


“변절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지금으로써는 가려낼 방도가 없으니 조심하거라.


괜한 의심이 네 유람을 망칠까 싶어 고민했으나···.”


말끝을 흐리는 당선욱의 눈동자가

한결같이 곧은 태의 화원을 훑고 근심을 내렸다.


“네가 강하고 현명한 아이임을 알기에,

솔직히 알리고 주의를 주는 것이 나을 것 같더구나.”


“감사합니다, 당가주님.”


화원이 공손히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가의 입장에서 이 일을 외부에 알리는 것은

분명 부담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일 터였다.


그럼에도 당선욱은 화원을 위해

기꺼이 제 치부를 꺼내어 보여준 셈이었다.


“고맙기는, 무얼.

내 이야기는 끝이니 마저 편히 쉬거라.”


민망한 듯 내려진 당선욱의 축객령에

화원이 조용히 가주전을 빠져나왔다.


“화원 형님!”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해진이

나오는 화원을 발견하고 바짝 다가왔다.


“해진 소협, 여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끄덕끄덕.


화원의 놀란 물음에 해진이 자랑스레 끄덕였다.


“오늘이 당가에서 머무시는 마지막 밤이잖아요!

저희 남매가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


당해진이 눈을 초롱이며 화원의 반응을 살폈다.


그 모습이 꼭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서

화원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야 그리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헤헤, 그러실 것 같았어요!

제가 모실 테니 따라오세요!”


신이 난 당해진의 뒤를 따르며

화원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


당해진이 화원을 데리고 간 곳은

높고 화려한 주루였다.


“왜 이렇게 늦어?”


“여기 앉으세요, 도장.”


화원이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당해문과 당해란이 맞아주었다.


“이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함을 어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화원이 자리에 앉으며 감사를 전하자,

당해문이 얼핏 불퉁하게 말을 받았다.


“표현할 필요 없으니,

내 누이한테 치근덕대지나 마라.”


탁!


당해란의 부채가 당해문의 손등을

매섭게 내리쳤다.


“해문이는 신경 쓰지 마세요, 도장.”


발갛게 부어오른 혈육의 손등은 보이지 않는지,

당해란은 곱게 웃으며 화원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하하, 해란 소저께는 매번 신세를 집니다.”


웃음과 함께 흘린 화원의 농에

당해진이 고소하다는 듯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화원 형님, 진짜 누님이랑 혼인할 생각 없어요?”


“야!! 이 새끼가, 진짜!”


당해진의 물음에 화원이 답하기도 전에,

당해문이 자리를 박차며 동생의 정수리를 후렸다.


“해문 소협, 진정하십시오!”


“넌 놔, 이 새끼야!! 확 독분 풀기 전에!!”


화원이 당해문을 말리고자 애썼으나,

꼭지가 돌아버린 그는 도무지 말려지지 않았다.


“아악-!! 누님, 나 죽어요!!! 흐억!!”


당해진의 비명에 상황을 지켜보던 당해란이

한숨을 푹 쉬고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당해문, 앉아.”


멈칫.


싸늘한 누이의 목소리에

날뛰던 당해문이 거짓말처럼 몸을 굳혔다.


어쩐지 끼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뻣뻣한 움직임으로 당해문의 고개가 돌았다.


“···그, 내가 좀 과했지? 하하, 앉자.

앉아야지, 응. 얼른 앉자.”


누이의 싸늘한 눈동자를 마주한 당해문이

다급하게 자리에 앉았다.


황당하게 지켜보는 화원을 향해

어느새 여유를 찾은 당해진이 속삭였다.


“내 형이지만 저거 진짜 등신이라니까요.”


“···크흠.”


무의식 중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던 화원이

간신히 목을 굳히고 헛기침하며 자리에 앉았다.


“제 아우들이 아직 철이 없답니다.

도장께서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끄덕.


“해란 소저 같은 분이 누이라면

누군들 별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화원의 다정한 답에

당해란이 지긋이 미소 지었다.


“도장께서는 벌써 이리 현숙하신데,

우리 해문이는 대체 언제쯤 철이 들까요?”


당해란의 눈길이 슬쩍,

당해문을 질책하듯 흘깃하고 지나쳤다.


“···한 잔 받아라, 청성진룡.”


누이의 시선을 슬쩍 피한 당해문이

화원을 향해 잔을 들어 보였다.


“그러시지요.”


화원이 웃는 낯으로

당해문의 잔에 제 잔을 맞추었다.


꿀꺽.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술이

달큰하게 입안을 적셨다.


“쳇, 술도 잘 마시네.”


“어느 면에서나 뛰어난 편인지라.”


당해문의 퉁명함에

화원이 여유롭게 응수했다.


흘깃.


화원을 훑는 당해문의 시선에는

미움과 함께 인정도 담겨 있었다.


“하기야, 너만 한 놈이 없기는 하지.”


중원 무림을 통틀어

눈앞의 화원만 한 신랑감은 없었다.


당해문 역시 그걸 알기에

속이 뒤집혀도 참고 있는 것이었다.


“해문아,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그런 게 아니지 않았니?”


당해란의 조용한 일갈에

한숨을 쉰 당해문이 말을 돌렸다.


“할아버지께 얘기는 들었지?”


별다른 설명 없이 건넨 말이지만,

화원은 그것이 마교의 일임을 알아들었다.


“아정이라는 아이는 어찌되는 겁니까.”


화원이 내내 품고 있던 의문을 꺼내자,

당해란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당가는 원한을 잊지 않지요.”


한숨처럼 내뱉어진 그녀의 답에

화원이 손에 든 술잔을 꾹 그러쥐었다.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나 보구나.’


잊지 않겠다.

그 말은 결국 당장은 묻는다는 소리였다.


시종의 비명과 방호의 절규가

심란한 마음을 비집고 올라 귀를 채웠다.


“잡은 이들은···어찌하실 겁니까?”


화원의 조용한 물음에

당해문이 빠득, 이를 갈며 말했다.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당해진이 모처럼 제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할 겁니다.”


세 쌍의 눈동자가 흉살스런 빛을 내었다.

화원은 그저 가만히 술잔을 기울였다.


‘죗값, 죗값이라···.’


당가에 충성한 노파가 죽었고,

그녀의 어린 손녀도 죽었을 것이다.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는

분명히 엄중하게 벌해야 할 문제였으나-


‘그 죗값을 치러야 할 이들이

정녕 지하에 갇힌 자들이 맞던가?’


화원의 눈에 작금의 일은

그저 당가 식솔들의 분풀이일 뿐이었다.


“···죽은 이들의 한이나마 풀리면 좋겠습니다.”


그것조차 아니라면 의미 없는 살생일 테니.


뒷말을 삼킨 화원의 미소에

당가의 핏줄들이 조용히 잔을 맞추었다.


***


며칠 뒤, 귀주성(貴州省) 노주(瀘州).


정갈하게 차려입은 화원이

참담하여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노주의 어디서 만날지를 안 정하다니!

이래서야 그가 와도 엇갈리면 끝인 것을···.’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던 화원의 뒤로 툭, 누군가 다가왔다.


“나를 찾는 건가?”


익숙한 저음에 화원이 냉큼 몸을 돌렸다.


“오셨군요! 노주의 어디에서 뵐지를 안 정해서,

이걸 어떡하면 좋은가 한참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사아가 피식 웃음 지으며

화원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트렸다.


“그대는 기운이 유독 맑아서 눈에 잘 띄어.”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안심이란 듯 웃는 화원을 보며

사아 또한 제 근심을 몽창 덜어내었다.


“참, 제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었지 뭡니까?”


화원의 말에 사아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중요한 것?”


화원이 큼큼, 목을 가다듬고는

살짝 뒤로 물러서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저는 청성의 화원이라 합니다.”


이것이었나.

사아의 눈매가 장난스레 휘었다.


“담온이라 하오.”


사아가 입꼬리를 한껏 늘인 채 말했다.


“담온님이셨군요! 담ㅇ···예?! 담온이요?!”


담온이란 이름을 곱씹던 화원이

이내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되물었다.


끄덕.


사아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짐짓 여유로운 척 고개를 끄덕였다.


“혹 9년 전의···그 담온입니까?”


화원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사아가 나른한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런, 나는 내 벗을 잊은 적이 없건만···.

내 벗은 나를 참 쉽게 잊었던 모양이로군.”


사아가 장난삼아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당황한 화원이 다급히 변명하였다.


“아닙니다, 잊다니요!


잊은 게 아니라 다만 너무 커지셔서,

아니, 그러니까 성장하셔서···?”


푸흡.


그런 화원이 어찌나 우습고 귀여운지

사아는 결국 호탕하게 웃어 버렸다.


“하하하! 하, 이리 웃는 것도 오랜만이군.”


화원의 샐쭉한 눈빛이 따가웠으나

그마저도 사아는 웃음으로 넘겨버렸다.


“···거, 다 웃으셨습니까?”


“다 웃은 건 아닌 듯하지만···.


더 웃었다간 내 벗이 날 죽이려 들 터이니,

다 웃은 것으로 하지.”


사아의 답에 입술을 삐죽이던 화원은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인연이 아닙니까?


제게 벗이 되어준 이도 담온뿐이고,

제가 벗을 청한 이도 담온뿐입니다!”


···벗이 없는 게 자랑은 아니지 않나?


사아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굉장히 뿌듯해 하는 화원의 기분을 망칠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 주었다.


“그대 말이 맞아.”


어차피 벗이 없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으니.


“제가 살던 사천도 그렇지만,

이곳은 특히 매운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더군요!”


“사천에서는 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귀주에서는 맵지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더군.”


사아의 이야기에 화원이 크게 끄덕였다.


“귀주 사람들은 매운 것의 종류도 구분한다 합니다.

담온은 매운 걸 잘 드십니까?”


멈칫.


화원의 물음에 그를 따라 걷던

사아가 멈칫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천마궁이 있는 신강은 사천과 거리가 있었고,

딱히 매운 음식을 즐기지도 않았다.


더구나-


‘애초에 맵게 만들지를 않으니···.’


교주인 천마와 소교주인 사아의 식사다.


별다른 명이 내려지지 않는 한,

굳이 음식을 맵게 할 간 큰 이도 없었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지역이 아니었다.”


“에이, 뭐 어떻습니까?

다 먹으라고 만든 음식입니다.”


그리 말하며 앞서가는 화원의 걸음이

유난히 경쾌하고 매끄러웠다.


“큰일이군.”


사아가 곧 닥쳐올 제 운명을 직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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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혈귀(血鬼) (1) 24.06.06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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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계림산수기천하(桂林山水欺天下) (2) 24.06.04 25 1 12쪽
25 계림산수기천하(桂林山水欺天下) (1) 24.06.03 25 1 12쪽
24 보이지 않는 틈 (3) 24.06.02 28 1 13쪽
23 보이지 않는 틈 (2) 24.06.01 27 1 12쪽
22 보이지 않는 틈 (1) 24.05.31 27 1 12쪽
21 동몽이상(同夢異床) (3) 24.05.30 29 1 12쪽
20 동몽이상(同夢異床) (2) 24.05.29 28 1 11쪽
19 동몽이상(同夢異床) (1) 24.05.28 29 1 12쪽
» 동상이몽(同床異夢) (3) 24.05.27 29 1 12쪽
17 동상이몽(同床異夢) (2) 24.05.26 37 1 11쪽
16 동상이몽(同床異夢) (1) 24.05.25 36 1 12쪽
15 알지만 모르는 벗 (3) 24.05.24 36 1 12쪽
14 알지만 모르는 벗 (2) 24.05.23 36 1 12쪽
13 알지만 모르는 벗 (1) 24.05.22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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