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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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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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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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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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이상(同夢異床) (1)

DUMMY

꿈틀.


사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식초 향이 섞인 매운 냄새가 훅 올라온 탓이었다.


“이걸···먹는다고···?”


잔뜩 굳은 담온의 표정을 보고는

화안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보기에만 좀 빨간 거지,

드셔보시면 그리 맵지도 않습니다.”


그러고는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시뻘건 고기 한 점을 쏙, 입에 넣고 씹어댔다.


‘하긴, 매워 봤자 사람 먹는 음식인 것을.’


잘 먹는 화원이 눈앞에 있으니

사아는 먹어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덥썩.


그렇게 겁 없이 고기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컥! 콜록! 이, 이 무슨···!”


사아는 제가 화원에게 당했음을 깨달았다.


가득 따른 차를 내리 석 잔을 비웠는데도

화끈하고 얼얼한 느낌은 가라앉지 않았고,

되려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매운 것을 거의 못 드시나 봅니다.

이정도면 아주 안 매운 음식인 것을···.”


화원은 짐짓 안타까운 듯 말하였으나,

눈꼬리와 입꼬리가 맞닿을 듯 휘어있었다.


“쿨럭! 내 벗이 생각보다 뒤끝이 길었군.”


사아가 은근히 눈을 흘기자,

화원이 능청한 얼굴로 점소이를 불렀다.


“예, 도사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요?”


“내 벗께서 매운 음식을 아니 드시니,

혹 아이들에게 먹이는 안 매운 것이 있겠는가?”


찌릿.


사아의 살벌한 눈빛에

점소이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답했다.


“크흡! 흠! 외지 분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닌지라,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주는 계란볶음밥 외에는···.”


“푸흡! 그거, 큽···! 그걸로 하나 주시게.”


화원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간신히 주문을 마쳤고-


“예! 주방장님, 여기 아이용 계란볶음밥 하나요!”


점소이가 큰 소리로 주문을 외치자,

그때부터는 아예 박장대소를 하였다.


“웃으니 보기는 좋군.”


저를 반기며 내내 웃어 주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라앉아 보였던 화원이었다.


그런 화원이 저리 좋다고 웃으니,

사아도 아무렴 어떠한가 싶어 미소를 띄웠다.


***


한편, 청성산(靑成山) 원명궁(園明宮).


쾅!


녹황이 탁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당장 데려와야 합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녹황을 질타할 수도 없어,

마주 앉은 유성이 골머리를 앓았다.


“황아,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지 않느냐.”


“마교가 엮인 일입니다!

확실해지고 나서 부르면 늦는 것을 모르십니까?!”


15년 전, 녹황은 감숙 사태 수습의 총괄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마교의 끔찍함을 지나치게 잘 알았고,

아들 같은 제자를 그런 위험에 놓아둘 수 없었다.


“민간의 어린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다지만,

원이는 장성한 열여덟 사내이니라.


당장 마교에서 그 아이를 노릴 이유도 없거니와

그런다 한들 쉽게 당할 아이가 아니지 않더냐?”


안다.

그것은 녹황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러나 마교의 움직임이

세간의 상식 같던 적이 있던가?


“원이는 타고나기를 특별한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마교 놈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것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럴 리가.


그들에게는 상식이랄 것이 없다는 것 역시,

녹황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당가의 사람을 죽이고 그 자손을 납치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당가의 저택 내부에서!

이런 상황에 아이를 밖에 두는 것이 맞습니까?”


녹황의 따지는 듯한 물음에

유성이 손에 든 서신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선욱이 마교와 유금의 사건이 얽힌 듯하다고

청성에 서신을 보내 협력을 요청한 것이 사흘 전.


마교를 조사하는 일은 인력이 부족한 세가의 특성상

단독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원이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하니,

당가의 입장에서 우리만 한 선택지가 없었겠지.’


또 화원이 이미 모든 사태를 지켜본 상황이니,

당가에게는 청성과의 협력이 최선이었을 터.


“부르더라도 지금은 아니 된다.”


유성의 단호한 거부에 녹황이 소리를 높였다.


“정녕 원이가 잘못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겁니까?!”


녹황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는 훗날 저처럼 장문의 자리를 이을 제자였다.


유성이 씩씩거리는 녹황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황아, 너는 어찌 진중한 아이가 중한 일만 생기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느냐?”


유성의 조용한 질책에 그제야 아차 싶었던지,

녹황이 분기(憤氣)를 가라앉히고 사죄했다.


“···송구합니다, 장문인.”


어려서부터 너무 큰 책임을 안긴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잘하는 녀석이 한 번씩 무너질 때면,

유성은 못난 스승의 탓인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지금 원이를 불러들이면 어찌 될 것 같으냐?


당가와 협력하기로 한 것이 불과 사흘 전이다.

이 일에서 원이를 떼어놓을 수 있겠느냐?”


“···!”


매번 한 치 앞만 보는 자신보다,

더 앞서 걷는 스승임을 녹황은 새삼 깨달았다.


“원이를 부르면 녹자 배(輩)만이 아니라,

원이를 필두로 화자 배까지 투입해야 할 것이다.”


유성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녹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가르치면 금세 성장하는 녹황이라,

유성이 흐뭇한 얼굴로 입꼬리를 늘였다.


“황아, 네 사조께서 왜 갑자기 원이에게

유람을 다녀오라 명하셨는지 너 아느냐?”


기특한 김에 한 가지를 더 가르쳐 볼까.

그리 마음 먹은 유성이 넌지시 물었다.


“그야, 원이도 이제 다 컸고···.

언제까지 청성에만 둘 수는 없어서 아닙니까?”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그저 정직하기만 한 녹황의 답에

유성이 그만 픽, 웃음을 흘렸다.


겉보기엔 이립이나 되었을까 싶어도

불혹을 넘긴 제자였건만 아직도 이리 귀여웠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였겠느냐는 게다.

한참 화자 배가 경험을 쌓고 이름을 높여야 할 때,

굳이 대제자인 원이를 왜 혼자 보내셨을까?”


듣고 보니 의문이라,

녹황이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그저 오래도록 뜻을 세우지 못한 원이가

안타까워 그러하신 줄만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것이 많았다.


외부 행사를 맡기기에는 화원이 어리다 했으나,

녹황도 그즈음 이미 외부 행사를 맡기 시작했었다.


되려 목적 없이 유람하는 것이

어린 나이에는 어쩌면 더 위험한 일이 아니던가?


게다가 화원을 홀로 보내라 해놓고,

대제자의 부재(不在)를 이유로 화자 배 전체를

외부와의 행사로부터 격리하도록 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녹황이

조심스레 유성에게 물었다.


“혹, 화자 배를 외부와 단절시킬 목적입니까?”


끄덕.


“옳다. 내 제자가 미련하긴 하여도

모자라지는 않으니 다행이구나.”


유성의 답에 녹황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으로 얻을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화자 배에나 청성에나

좋을 것이 없는 일인 것 같았던 탓이다.


“원이를 부르지 않는 이유와 같다.”


“···!”


녹황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장문의 자리란 제 제자만 보아서는 안 됨을,

그는 이렇게 또 배우는 중이었다.


“근자에 마교가 심상치 않았음은 알 게다.”


녹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당가에서야 유금의 일이 있고 나서야

각지에서 비슷한 일이 생겨나고 있고,

그것이 마교와 관련된 일임을 알았지만-


“저희는 이미 사천에서 벌어진 납치 사건들이

마교와 연관이 있음을 알고 조사 중이었으니까요.”


활동 범위가 넓고 마교를 향한 경계가 심한 청성은

이미 한참 전부터 비밀리에 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 유자와 녹자 배의 보고를 취합하니

마교에서 무언가 일을 꾸미는 것이 분명하더구나.


그래서 원이를 유람으로 내돌리자 하신 게다.

만약 이런 때에 원이가 이곳에 있으면 어땠겠느냐?


필히 그 아이를 내보내야 했을 테지.

그러자면 또 화자 배를 함께 딸려 보내야 했겠고.”


대체 저분들은 몇 수 앞을 내어다 보시는가.

녹황은 제 사부와 사조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절묘한 수입니다.”


화원이 유람을 떠난 상태라 일을 맡길 수 없고,

화자 배는 총괄할 대제자의 부재로 나설 수 없다.


황명이라도 떨어지지 않고서야

외부에서는 항의도 불만도 가질 수 없는 명분이었다.


“그러니 원이는 결코 지금 돌아와서는 아니 된다.

너를 닮아 또한 올곧은 아이가 아니더냐?”


끄덕.


녹황이 온전한 동의를 담아 말을 얹었다.


“···원이라면, 말린다 해도 제가 해야 할 일이라며

앞장서서 싸우겠다 나서겠지요.”


녹황의 눈에 아직 약관도 넘지 않은 제 제자와

이립이 안 된 한창의 화자 배들이 선명했다.


“물이 되었든 피가 되었든,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마땅한 법이 아니겠느냐.”


두 어른의 눈동자가 단호하게 굳었다.


***


귀주성(貴州省) 노주(瀘州)의 낡은 객잔.


너덜해진 침상 위로

사아가 거리낌 없이 드러누웠다.


“담온은 차림이며 행동이 귀하게 자란 태가 나는데,

아무 데서나 이리 잘 드러누우시니 신기합니다.”


화원의 감탄 아닌 감탄에

사아의 표정이 애매하게 일그러졌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군.

그러는 그대는 누가 도사 아니랄까 봐

다 허물어진 탁상 앞에 정좌를 하시고?”


사아의 말에 화원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어려서부터 자세가 곧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잔소리를 들어온 터라.”


“하여간 도사들이란.”


사아가 혀를 끌끌 차니,

화원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자꾸만

쿡쿡 웃음을 흘렸다.


“참, 담온은 어느 지역에 머무르십니까?

언젠가 저도 초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꿀꺽.


기대가 가득한 화원의 눈을 마주하고는

사아가 저도 모르게 입이 말라 침을 삼켰다.


“···감숙. 감숙 출신이다.”


그냥 신강이라고 말할 것을 그랬나.

잠깐 후회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신강은 교의 세력권에 놓인 지역이라,

괜한 의심을 사기 쉬운 탓이었다.


“아, 그래서 흥륭산에 자주 오셨군요!”


“그런 셈이지.”


다행히 화원이 별 의심 없이 넘어가니,

사아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청성으로 돌아가면 초대하겠습니다.

담온도 꼭 청성에 와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그래, 그러지.

초대해 준다면야 기꺼이 가야지.”


누구를 어디에 초대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환히 웃는 화안을 보니 사아는 속이 쓰렸다.


‘어차피 부질없는 약속일 것을···.’


이 유희의 끝자락에 무엇을 마주할지 알면서도

당장 이 순간이 주는 위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첫날인데 술이라도 한잔 어떠신가?”


사아의 제안에 화안의 눈이 맑게 빛났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언젠가 저를 보며 웃음 대신 울음을 터뜨리겠지.


그날이 너무 빨리 찾아오지는 않기를 바라며,

사아는 그렇게 또 하루를 담온으로 살았다.


***


천마궁(天魔宮) 천마전(天魔殿).


“···커헉!”


바짝 말라버린 아이들의 시체 틈에서

천마가 몸을 일으키며 검은 피를 토해냈다.


“교주님! 몸은 어떠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천마의 곁에 다가선 무상이

그를 부축해 침상으로 모시며 물었다.


“그래, 확실히 지난번보다 효과가 좋구나.”


한결 편안해진 천마의 목소리에

무상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아는 어디에 있느냐?”


몸이 좀 나아지니,

천마는 어김없이 제 아들부터 찾았다.


“노주에서 청성진룡을 만나고 계십니다.”


그 말에 천마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침상에 늘어뜨리듯 기대며 명했다.


“나의 사아가 청성진룡과 즐거운 모양이니,

쓸데없는 짓들은 못 하게 하거라.”


“예, 조치하겠습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무상을 보며

천마가 넌지시 말을 더하였다.


“아들이 모처럼 벗과 어울린다는데,

아비가 되어 즐길 거리는 마련해 주어야겠지.”


사아를 떠올린 천마의 눈동자가

자상함을 담은 채 깊게 가라앉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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