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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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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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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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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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4)

DUMMY

섬서(陝西) 동천(銅川) 요주(耀州) 풍운관(風雲館).


풍운관은 사천이 아닌 곳에 자리한 청성의 속가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곳이었다.


청성진룡 덕에 청성의 위세가 높아지며

속가인 풍운관 역시 유례없는 번영을 맞이했었으나-


“이 일을 어찌할꼬···.”


관주 이소항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였다.


최근 들어 종남과 화산 속가들의 지나친 견제로

풍운관의 세가 나날이 쇠락하는 중인 탓이었다.


똑똑.


“아버님, 상천입니다.”


“들어오너라.”


이소항의 장남 이상천이 관주실에 들었다.

그의 얼굴도 잔뜩 굳어있는 것은 마찬가지인 채였다.


“매상관(梅想館)의 수작질이 날이 갈수록 지나칩니다.

이제는 본산까지 욕보이려 드니···.”


두 부자(父子)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웠다.


청성은 다른 명문들에 비교해도

속가에 대한 대우가 월등히 좋은 편이었다.


처음 속가를 세우기로 결정이 되면

반드시 본산에서 제자를 보내어 입지를 살펴 주고,


일정 수준의 수입원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본산에서 대가를 받기는 커녕 지원금을 대주었다.


게다가 일정한 시기마다 본산 제자들이 직접 내려와

속가의 상황을 살피고 무공을 다듬어 주었다.


“청성이 속가에 허락한 무공은 죄다 폐급이라니,

무슨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린단 말입니까?”


이상천이 억울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비 앞에서 울분을 토해내었다.


“어디서 사람을 사 와서는 청성 속가 출신이라느니,

무공을 익히다 혈도가 꼬여 못 걷는다느니···!”


처음엔 그저 풍운관에서 아이들을 홀대한다던가

가르치는 무공이 형편없더라는 정도의 소문이었다.


사실도 아니었고 큰 타격도 없었기에

일일이 맞서 싸우는 대신 무시하고 넘겨버렸더니,

점점 도를 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일단은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들부터 잡아야 한다.


곧 본산 분들이 방문하실 시기이니,

우리는 남아있는 아이들부터 잘 보살피고 있자꾸나.”


“본산 분들이 오신들 잠깐 보고 가실 게 아닙니까?”


본산의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풍운관에 들린 것이

벌써 다섯 해 전의 일이었다.


풍운관이야 자리를 잡은 지가 이미 오래인 데다가

하락세라고 해도 새로 등록하는 관도가 없는 것이지,

기존의 관도들까지 이탈 중인 것은 아니었다.


“섬서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속가나

작고 운영이 어려운 속가에 자리 잡고 머무실 테니,

저희 속사정까지 털어놓을 틈이 있겠습니까?”


“···차 한잔 나눌 시간은 있지 않겠느냐.”


애써 괜찮은 척은 하였으나

이소항의 얼굴에도 내심 서운함이 깃들었다.


풍운관보다 사정이 어려운 속가가 많은 것은 안다.


자신들도 오래전 그 도움을 받아 자리 잡았으니,

청성에서 작은 속가들을 우선으로 살피는 것에

불만하거나 서운할 자격이 없음도 알았다.


그래도 그간 자신들이 본산에 바쳐온 것이 있으니,

자꾸 풍운관을 우선해 주기를 바라게 되는 탓이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더니···.’


자꾸만 비집고 흐르는 못난 속내를 깨닫고

이소항이 스스로를 다잡고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은 속가들을 키워주려 하더라도

이러한 소문이 돌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어쨌든 본산 분들이 오시면 수가 생길 게다.”


별다른 수가 없어도 본산의 제자들이

다녀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상황이 나아지리라.


한결 편해진 듯 보이는 이소항의 얼굴에

안심이 된 이상천이 부러 투정하였다.


“···청성진룡께서 얼굴 한 번만 비춰주시면

그 흉악한 소문들 따위야 금세 가라앉을 텐데.”


이상천의 말에 이소항이

본산의 행사 때 멀리에서 보았던 화원을 떠올렸다.


“하하하, 그분이라면 그리하고도 남으실 테지.

허나 본산 분들이 모두 훌륭하시니 그분이 아니어도

우리 일은 잘 해결될 게다.”


“예,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화원이 없다 하더라도 청성은 든든한 뒷배라

이소항과 이상청은 웃음 한 번에 서운함을 털어냈다.


흐린 하늘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


휘익-


화원의 호각 소리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익숙한 듯 그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어? 대사형, 까마귀를 기르셨어요?”


모닥불 앞에 앉아있던 화창이

그 모습을 보고 부리나케 달려와 눈을 빛냈다.


“제가 기르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이름은 제가 지어줬지만요.”


“대사형께서 직접이요? 이름이 뭔데요?”


화원이 다정한 손길로 까마귀를 살살 쓰다듬었다.


“사유(詞靵), 그게 이 아이 이름입니다.”


까딱.


화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유가 화창을 향해 거만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하하하! 오아가 영물이라 하더니,

대사형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유는 똑똑하니 그럴지도요.”


까딱.


사유의 고개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움직였다.


“와아! 사유 너 정말 똑똑하구나!”


화창의 호들갑이 이어지니 호기심이 동했는지

모닥불 앞에 앉아있던 다른 이들마저 몸을 일으켰다.


“전서조로 길들인 겁니까?

주인이 누구이기에 오아를 길들였답니까?”


화유호의 물음에 화이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서조로 오아를 쓰는 게 힘든 일인가요?”


“···매도 쓰는데.”


같은 의문을 품었던 화수의 덧붙임에

화유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둘기야 귀소본능이라 큰 훈련이 필요 없고,

매 같은 새는 조금만 공들이면 길들이기 쉽지요.


허나 오아는 다릅니다.

영물이라 여겨질 정도로 머리가 좋은 새가 아닙니까?


스스로 내키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니,

보통 공력으로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불가합니다.”


오오!


다른 사제들은 물론이고 화원까지도

화유호의 설명에 사유를 보며 눈을 빛내었다.


“그 정도라니, 저도 이 아이 주인이 궁금해지네요.”


화이연의 시선이 빤히 화원을 향했다.


“아마 일전에 보셨을 겁니다.

담온이라고 저와 유람을 함께했던 벗이 주인입니다.”


화원이 사유의 주인을 밝히기가 무섭게

화창이 손뼉을 치며 아는 체를 하였다.


“와! 담온 형님이 사유의 주인이었어요?”


“네, 마침 담온도 섬서에 머무르신다고 해서

풍운관에 도착하면 시간을 정해 만나기로 했습니다.”


화창의 곁에서 사제들이 많이 편해진 화원은

이제 누가 묻지 않아도 제 이야기를 곧잘 하였다.


“담온 소협은 정식 문파도 없으시다 들었는데,

어떻게 오아를 전서조로 사용하시는 겁니까?”


“집안이 좋으신 게 아닐까요?

의복이며 검이며 죄다 최상급을 사용하시던데요.”


화유호의 물음에 화이연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화원 역시 사아가 부잣집 아들이 아닐까 생각한 탓에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감숙 출신에 그 정도 집안이 있던가···?”


화창이 의아하다는 듯 낮게 읊조렸으나-


푸드덕!


“벌써 가려는 거니? 다음에 볼 땐 풍운관이겠구나.”


의문은 사유의 날갯짓 한 번에 흩어지고 말았다.


까악-


제 할 일을 마친 까마귀 한 마리가

유유히 하늘을 날아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


“와, 아버지!! 저분들은 누구십니까?”


“세상에, 어쩜 저리 하나같이 훤칠하고 어여쁠까.”


“어? 저분, 그 유명한 청성진룡 아닙니까?”


화원을 필두로 한 청성 제자들의 등장에

유주에는 한바탕 때아닌 소란이 일었다.


“이야, 우리 대사형은 역시 여기서도 알아보시네요!”


간간이 들려오는 청성진룡이란 소리에

화창이 뿌듯하다는 듯 가슴을 부풀렸다.


“창아, 조용히 걸어야 있어 보이지.”


해맑은 얼굴로 조잘대는 화창을 향해

화이연이 조용하게 주의를 주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너무 어렵게만 보여서도 안 되지 않겠습니까?”


화원이 제 편을 들며 감싸주자

화창은 그새 화원 곁에 바짝 붙어 턱을 치켜들었다.


“보세요, 사저! 이게 다 제 역할이라니까요?”


“에휴, 저 천방지축을 진짜.

대사형께서 자꾸 감싸주시니 기고만장하잖아요!”


화이연이 화원을 향해 매섭게 눈을 흘겼다.


“하하···하···.”


화원이 어찌할 바를 몰라 어색히 웃음만 흘리니-


“저기가 풍운관인 것 같은데.”


지켜보던 화수가 나지막하게 화제를 돌려주었다.


“아이들 기합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 한참 수련 중인 모양인 듯합니다.”


화유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자,

세 사람의 시선은 금세 풍운관에 집중되었다.


“그럼 어쩌죠? 수련 중에 저희가 들어가면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요?”


“이연 사매의 말이 옳습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수련이 마무리되는 듯하면

방문을 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느새 풍운관의 대문 앞에 다다른 그들은

정갈한 태로 서서 수련하는 소리가 멎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사부님, 안녕히 계세···어? 누구세요?”


사내아이 하나가 맑게 웃으며 대문을 열었다가

앞에 선 화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진삼아, 수련 끝나자마자 뛰어가···는···?”


진삼을 향해 웃으며 다가오던 이소항이

열린 문 앞에 선 화원을 보고 말도 걸음도 멈추었다.


“이소항 관주님 되십니까?

본산에서 온 화자배의 대제자, 화원이라 합니다.”


화원이 이소항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뒤에 섰던 제자들 역시 함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본산 제자 화수입니다.”


“저는 화유호라고 합니다.”


“화이연이에요.”


“저는 화창이라고 합니다, 관주님!”


본산의 제자가 곧 방문한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누가 오는지는 몰랐던 이소항이 입을 떡 벌렸다.


“처, 청성진룡께서 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이소항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안내하려는데,

지켜보던 진삼이 갸우뚱하며 화원을 붙잡고 물었다.


“우리 관주님이랑 아세요?”


진삼의 질문에 기겁한 이소항이

다급히 아이를 끌어당기려 하였으나-


“이, 이놈아! 청성의 도사님들이시다, 이분들이!”


화원은 그런 이소항을 말리며 다정하게 답해주었다.


“그래, 관주님께서도 청성 분이신 것은 알지?

우리도 청성에서 왔단다.”


“너 청성진룡 몰라? 우리 대사형이 그 유명한

중원무림대회 최연소 겸 최다 우승자인데!”


넉살 좋은 화창이 옆에서 거드니,

갸우뚱했던 진삼의 눈이 어느새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러더니-


“얘들아-!! 너네 다 이리 와 봐!!

여기 이 도사님이 중원무림대회 우승자래!!”


단박에 몸을 돌려 풍운관 안으로 뛰더니

함께 수련하던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 어디?”


“정말? 정말 중원무림대회 우승자예요?”


“청성진룡? 나 들어봤어! 진짜 청성진룡이에요?”


순식간에 화원 무리를 둘러싼 아이들이

저마다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이놈들아···! 귀한 분들께 무슨 무례더냐?

상천아-! 상천아, 어디 있느냐?”


당황한 이소항이 다급하게 이상천을 찾았으나,

화원은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관주님.

본산에는 아이들이 없는지라 이리 보니 좋은걸요?”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어느새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중이었다.


“우와! 그럼 누나랑 형 중에 누가 더 세요?”


“형들도 이거 벨 수 있어요?”


“우와, 관주님보다 더 센가 봐!”


그제야 이소항도 진정이 조금 된 듯,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워낙 말괄량이라···.”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관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바깥을 보아주실 다른 분은 안 계실까요?”


화원의 물음에 이소항이 주변을 둘러보며

보이지 않는 이상천을 찾았다.


“아들 녀석이···아, 상천아! 어서 오너라!”


아버지의 부름에 서재에 있던 이상천이

급히 달려 나왔다.


“어찌 그러십···처, 청성진룡?!”


이소항과 똑 닮은 얼굴로 놀라는 이상천을 보며

화원이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본산에서 온 화원이라 합니다.”


“아···아, 예! 풍운관의 이상천입니다!”


혼란했던 이상천의 눈동자가 기쁨으로 물들었다.


“상천아, 잠시 청성 분들과 함께 아이들 좀 보거라.

아비는 이분과 이야기 좀 하고 오마.”


“예, 그럼요! 얼마든지요!”


상상으로나 기대했던 인물이 눈앞에 있다니!


두 부자에게 드리웠던 어둠이 말끔히 사라지고

든든함과 기대가 근심이 난 자리를 가득 메웠다.


섬서의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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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계림산수기천하(桂林山水欺天下) (1) 24.06.03 25 1 12쪽
24 보이지 않는 틈 (3) 24.06.02 28 1 13쪽
23 보이지 않는 틈 (2) 24.06.01 27 1 12쪽
22 보이지 않는 틈 (1) 24.05.31 27 1 12쪽
21 동몽이상(同夢異床) (3) 24.05.30 29 1 12쪽
20 동몽이상(同夢異床) (2) 24.05.29 27 1 11쪽
19 동몽이상(同夢異床) (1) 24.05.28 29 1 12쪽
18 동상이몽(同床異夢) (3) 24.05.27 28 1 12쪽
17 동상이몽(同床異夢) (2) 24.05.26 36 1 11쪽
16 동상이몽(同床異夢) (1) 24.05.25 36 1 12쪽
15 알지만 모르는 벗 (3) 24.05.24 36 1 12쪽
14 알지만 모르는 벗 (2) 24.05.23 36 1 12쪽
13 알지만 모르는 벗 (1) 24.05.22 39 1 12쪽
12 중원무림대회(中原武林大會) (5) 24.05.21 4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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