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해도 되나 싶으면 하지 말기

이 괴이들 사이에서 날 지켜주려는 건 좋지만, 아니나 다를까 금방이라도 싸움이 번질듯한 기세로 온가람이 흉흉한 기운을 뿜어냈다.
“나쁜 뜻이 아닌데 왜 은익호는 내 친구를 상대로 기를 끌어내고 있었지?”
만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람은 유민준을 이미 친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가람도 인간이 아니라는 게 여실히 유민준의 피부에 느껴졌다.
날 선 시선으로 온가람이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은익호의 볼을 잡아당기며 대꾸했다.
“왜 네가 나서서 난리인지 모르겠네? 저 인간도 가만히 있는데.”
“앚(맞)아.”
“그리고 온가람아. 내 이름은 강련이지 광년이 아닌데, 발음도 좀 똑바로 해.”
강련이 유민준 쪽으로 다가오자, 온가람은 그의 어깨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강.련. 됐냐? 너희 둘, 틈만 나면 아무한테나 싸움 걸고, 겁박해 대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겁주긴 누가 겁을 줬다고 그래. 여기 익호가 이름을 물었지만 이쪽의 ‘민준’이란 인간이 대답해 주지 않아 생긴 사소한 오해야. 겁은 지금 네가 주고 있지, 가람아.”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주변에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들이 대립하는 동안 강당의 시선은 이미 여기에 과하게 집중되어 있었고, 웅성거리는 주변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쟤네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냅둬. 온가람이랑 강련이랑 저러는 게 뭐, 하루 이틀이야?”
“저 둘, 이번에는 저 인간을 두고 다투는 건가? 반으로 나눠 가지면 안 되나아. 후암.”
“반으로 자르면 보통 생물은 죽어. 넌 아닐지 몰라도.”
“그래에? 후암.”
속이 반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형태의 학생과 긴 토끼 귀를 가진 학생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던 유민준은 당장 여기서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 밀려왔다.
‘시X. 살벌해 죽겠네. 도대체 행사는 언제 시작하는 거야. 정말.’
얼굴이라도 잘 안 보이게 할 속셈으로 유민준은 후드 줄을 쭉 잡아당겼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던 유민준은 제 쪽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남자를 발견했다.
아. 저 새끼도 이 이상한 학교 학생이라니.
후드로 얼굴을 꽁꽁 싸맨 유민준이 다시 봐도 도진혁이었다.
주변 여자(?)들이 술렁이는 걸 보아하니 이쪽 세계에서도 먹히는 모양.
제 얼굴만큼이나 새하얀 코트를 입은 도진혁은 앞 줄로 가려는 듯했다.
당연히 유민준과 아이들이 서 있는 쪽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무덤덤하게 도진혁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려던 걸 은익호가 붙잡았다.
“진혁아! 왔어? 넌 오늘도 앞에 앉아??”
도진혁은 무던하게 고개만 까닥였다.
그리고서 얽히고 싶지 않다는 듯 앞줄에 가서 앉았다.
다행히 그는 유민준을 알아보지도, 관심도 없는 듯했다.
‘잠깐, 저 도진혁이 여기에 있다는 건······.’
유민준은 클럽 앞에서 마주쳤던 이빨이 날카로운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일전에 애써 모른 척했던 무시무시한 여자가 무대 옆쪽에서 나타났다.
학생들은 그걸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삼삼오오 무리 지어 떠들고 있었다.
여자는 단상에 설치된 마이크를 톡톡 두드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2번 마이크 볼륨 좀 더 올려주세요. 얘들아.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다들 자리에 앉아. 곧 식 시작할 거다.”
잽싸게 유민준은 온가람을 끌고 자리에 앉았고, 은익호와 강련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자의 말에도 제자리에 가서 앉지 않고 여전히 서서 돌아다니며 서성이는 학생들이 있었다.
여자는 목소리를 그리 크게 내지 않으며 낮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다들 앉아.”
찬물을 끼얹은 듯 장내가 조용해졌다.
여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단상 위를 마저 정비했다.
시간이 얼추 되었는지 단상 위의 비어 있던 의자로 사람들이 들어와서 앉기 시작했다.
미숙한 학생들과 달리, 적어도 교수들은 모두 완벽하게 인간의 껍데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민준은 저들 역시 인간일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위에 헤일로가 있는 건장한 남자도, 후광이 있는 뚱뚱한 여자도 그렇고 꼭 종교 대화합 잔치에 온 것처럼 저마다 책 속 신화에서나 볼 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학교인거냐.’
이내 작은 단상 쪽에서 도포를 차려입고 갓을 쓴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안경 쓴 남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개회식을 알렸다.
책자에 있는 교가를 따라 부른다는지 하는 점은 의외로 한국 대에서 이미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음 순서로는 총장님의 인사와 특강이 있겠습니다.”
무대 중앙의 단상에 발판이 설치되었다.
그 위로 뒤쪽 의자에 앉아 있던 빼짝 마른 할머니가 올라갔다.
“친애하는 하늘 대학교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삽니까?”
노익장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일순 모두의 시선이 총장에게 집중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때론 마치 여러분 나이대에서는 자신의 삶이 돈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인간 세상이나 이 괴이한 생물들 세상이나 자본주의 사회란 건 비슷한 건가 하는 생각으로 민준은 턱을 괴었다.
“그러니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 하늘 대학교에 왔을 테고.”
총장이 말을 하며 박수를 짝, 하고 한 번 치자 강당 내부에 오만 원권 지폐가 꽃잎처럼 날아다녔다.
학생들이 술렁이며 손을 휘저으니 잡히지 않고 사라졌다.
환영이었다.
빙긋 웃더니 총장이 말을 이었다.
“압니다. 돈, 무척 중요합니다. 물질은 지금 현세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돈은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이기도 하지요. 돈이 우리에게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으니까요.”
돈이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건 민준도 공감했다.
솔직히 집에서 나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민준은 가벼운 지갑만큼 무거운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장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공간 전체에서 환영이 일렁이며 시각적인 자료가 더해지니 아이들의 집중력이 올라간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번식 욕구와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익숙한 PPT 스크린 대신에 강당 내부를 날뛰는 환영들이라니.
유민준은 별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냥 신기해하기에도 마음이 불편해, 민준은 주변 학생들을 살폈다.
눈을 빛내며 기대에 찬 학생.
의욕 없이 늘어져 그늘진 얼굴의 학생.
좌불안석 손톱 끝을 깨물고 있는 학생.
외형을 떠나서 정말 평범한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들이었다.
유민준은 이들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누나는 어떻게 이런 세계와 얽힌 걸까.
고개를 들자 총장과 언뜻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이 욕구를 충족하려면 부조리와 마주해야 합니다. 부조리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이지만. 돈 때문에 우리는 부조리를 겪지요. ······돈은 불행과 고통의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입니다.······”
얼마만큼의 나이를 먹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아 보이는 총장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강당 내부에 자신의 연설과 알맞은 환영을 보여주었다.
“여러분에게 돈은 무엇입니까? 불행과 고통의 상징입니까, 아니면 선망의 대상입니까? 나는 여러분이 우리 하늘 대학교를 졸업할 때, 돈 ‘위해서’나 돈 ‘때문에’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대학 생활을 즐기고 믿을 만한 동료를 많이 만들라는 말을 끝으로 총장의 특강이 끝났다.
흡사 평범한 대학 총장이 할 법한 말이라고 느껴지긴 했다.
총장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꼼짝없이 여길 다니는 수밖에 없는 건지 고민해봤지만 사실 답이 나오진 않았다.
‘생각보다 일반 대학교랑 비슷하네.’
무대 위에 앉아 있던 교수들은 각 단과대학과 특수학부의 학장이었다.
그들은 간략한 인사와 자기소개를 했다.
학칙 등을 알려주고는 새터 활동의 개회식이 끝났다.
개 중에는 눈에 띌 만한 교칙이 있었다.
교내 대련 시 조교 이상의 허락과 입회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대련이 왜 있을까.
등골이 오싹하다.
학생들이 저마다 자리 이동을 위해 분주했다.
친절하게도 온가람은 팔찌 형태의 홀로그램 지도를 펼쳐 유민준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민준이 넌 자유전공이니까······N11 606호 강의실로 가면 되겠다.”
“너는 무슨 과야?”
“아······나는 생산과학부인데. 아직 세부 전공은 못 정했어.”
유민준은 책자의 목차를 뒤적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생산과학부······는 의학대학 소속이네? 너 공부 잘하는구나.”
일순 말을 돌리듯 온가람이 대꾸했다.
“으응. 민준아. 아까 내가 수강 신청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이야기해 준 거 기억하지?”
아까 전 온가람이 설명해 준 걸 떠올린 유민준은 턱 밑을 쓸어내렸다.
여기 강당에 있던 인원만해도 1,000명은 넘어 보이는데.
어디서 그런 경기를 치른다는 건지 사실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유민준은 대답했다.
“응.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 애당초 여기에 온 게 무슨 착오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재밌다는 듯 온가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민준이 넌 자기 객관화가 별로 안 되어 있는 편인 거 같아.”
“그거······칭찬이야, 욕이야?”
“받아들이기 나름이지. 하여튼 교양 수업 같이 듣자. <마탄(魔彈)과 사격의 관계>랑 <세계 종교 이해>는 꼭 이 교수님들 거 듣는 게 학점 받기 좋댔거든.”
강당에서 나오자 복도에 즐비해 있던 문들이 전부 엘리베이터로 바뀌어 있다.
이제는 뭘 봐도 놀랍지 않은 기분으로 엘리베이터에 온가람과 올라탔다.
그는 03과 11이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옛날 아파트 마냥 15층까지 되어 있는 버튼을 힐끗 본 유민준은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는 걸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11층은 지하 11층이라도 되는 건가.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온가람이 입을 열었다.
“기숙사 배정도 무사히 끝나야 할 텐데.”
“아, 네 형제들은 다 화주관 출신이랬나.”
이곳에는 네 개의 기숙사가 존재했다.
청목관, 화주관, 금백관, 무수관. 동서남북 방위에 따른 4마리 영수의 이름을 딴 거라는데.
유민준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직도 이 학교 구조가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파악할 수 없었으니.
어쨌거나 유민준의 한국 대학교 기숙사 이름이 관악 하우스인 걸 비교해 보면 무척 특이한 이름들이었다.
온가람이 먼저 내리고, 유민준은 어색하게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았다.
11층을 알리는 엘리베이터 음성에 따라 내리자 유민준은 왠지 졸도할 거 같았다.
속이 좀 울렁거린다.
‘분명 내려가는 느낌이었는데?’
유민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발을 내디디자 환한 햇살이 짤막한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은 하나. 그리고 평범한 건물 복도.
창밖을 내다보니 무척 낯익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대낮과 다름없이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 다니고 있었다.
잠시 미간을 좁히고 둘러보니 이곳이 남산임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주변에 구조물들이 조금 전 유민준이 있던 서울과 약간씩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데서 무작정 유민하에 관해 묻고 다닐 수도 없고.’
유민준은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높고 낮은 건물들과 넓은 운동장은 이곳 전체가 캠퍼스를 이루는 거로 보였다.
설마 606호가 지상 6층이란 소린가?
얼빠진 표정으로 유민준은 창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누군가 다가와 그의 후드를 휙 벗겼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놀란 유민준이 몸을 획 틀었다.
표정을 가다듬고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여자에게 대꾸했다.
“누구세요?”
번뜩이는 금색 눈동자가 섬뜩하게 저를 응시했다.
시체같이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웃으며 말하니, 입안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모른 척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네. 유민준 학생. 그래, 그날도 낯이 익다 했어.”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유민준은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저 606호 가는 길이라. 가보겠습니다.”
여자는 유민준의 후드를 획 잡아 끌었다.
“그날 내가 초롱아귀 잡는 거 봤잖아. 근데 왜 모른 척하지?”
턱을 잡힌 유민준은 힘없이 여자의 눈높이로 끌려 내려왔다.
“······.”
“과연. 내 기억이 틀릴 리 없지.”
“······.”
“밝은 곳에서 보니 민하랑 얼굴이 쏙 빼닮았네. 그날 왜 모른 척 했지?”
유민준의 눈썹이 꿈틀댔다.
“저희 누나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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