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1)

우리는 손쉽게 3점짜리를 하나 더 발견했다.
13점이 됐다. 도진혁은 27점이다.
나는 아까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도진혁에게 물었다.
“교수님들이 말했던 미로의 수호자. 우리도 한 번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한데. 넌 뭐 아는 거 없어?”
“주로 물가 근처에 산다는 것 정도? 하지만 숨는 데 도가 튼 녀석들이라 찾기 어려울 거라 들었다.”
아마 비행 공법이나 추적 법술을 할 줄 아는 녀석들에게는 유리하겠지, 도진혁이 중얼거렸다.
“음. 너 움직이는 대상의 기척을 읽는 뭐, 그런 거 할 줄 안댔지?”
“간단한 상급 감지 주문이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방향 정도는 알아도 가다 보면 길을 찾기가 좀.”
“일단 지금처럼 움직이는 걸 다 쫓아다니긴 그렇고. 내가 듣기로는 이 정도 크기였거든?”
유민준은 손을 들어 온가람이 설명했던 집토끼만 한 크기를 지어 보였다.
“하나씩 찍어라도 보자. 물가에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는지 돌아다녀라도 봐야지. 네가 방향을 말해주면 아까처럼 길은 내가 찾을게.”
미로의 수호자는 출구 열쇠를 쥔 존재들이었다.
찾기만 하면 잡는 건 어렵지 않다고 들었다.
여러 개의 하얀 채찍을 수족 다루듯 하는 도진혁이 있다면 잡아볼 만할 거 같았다.
몇 시간 있어 보니 느낀 바가 있다.
일단 도진혁은 길치가 확실하다.
기척을 따라서 가긴 하는데, 과정에서 잘못되는 케이스 같달까.
하여간 애가 좀 얼빵한 구석이 있다.
그날 클럽에서 마주친 날 밤에 왜 그렇게 무서워 보였나 모를 일이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슬슬 하늘이 다시 완연한 잿빛이 되었다.
낮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지만, 어두운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야밤에 남산에 올라온 건 둘째 치고.
이 말도 안 되는 곳까지 헤집고 다니니, 피로가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잠시 앉아서 쉬긴 했다.
다니면서 도진혁은 여유롭게 하얀 채찍으로 작은 산짐승들을 수렵했다.
하지만 유민준은 걷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채집까지 하니 체력이 더 빨리 소진된 기분이었다.
“넌. 잠을 안 자도 괜찮냐······?”
말똥한 눈매로 도진혁이 대꾸했다.
“내 형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뭔데.”
“학생에게 잠이란 죽어서 자는 거라고.”
저런 존재들도 대한민국 교육의 폐해를 겪고 있구나.
유민준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살벌한 교육 방침이네.”
“내 주변의 인간들은 3일 정도는 안 자도 괜찮다고 들었는데. 유민준, 넌 아닌가 보군.”
“도진혁아.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 그래. 하루에 8시간씩 자는 게 뇌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
허튼소리로 잠을 쫓아내기를 한참.
어찌저찌 방향 따라 길을 찾다 보니 2점짜리랑 1점짜리 비석을 발견해서 도진혁은 30점, 나는 16점이 됐다.
우리는 작은 연못가에 도착했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허탕이다.
“아. 도대체가 열쇠를 쥔 동물 같은 건 보이지도 않네.”
설상가상으로 배에서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의아하다는 듯 도진혁이 물었다.
“배가 고픈가?”
“당연하지.”
“지금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간식을 제법 먹지 않았나.”
“간식이 밥은 아니지.”
“그럼 잠시 쉬어서 뭐라도 먹는 편이 좋겠군.”
“넌 배 안 고프냐?”
“딱히 고프지 않다. 네 몸은 효율이 낮은가 보군.”
“그래. 원래 인간이란 이런 법이란다. 도진혁아.”
채집한 재료와 아공간에 있던 것들을 뒤섞어 유민준은 간단하게 스튜를 끓였다.
도진혁은 배가 고프지 않다더니 세 그릇이나 비워냈다.
배가 좀 부르게 먹고 나니, 졸음이 거침없이 밀려왔다.
결국 유민준은 1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도진혁은 흔쾌히 연못 낚시하며 경계도 서겠다고 했다.
나 역시 채집한 것을 나누기로 했지만, 사실상 도진혁이 수렵한 것들이 더 많은 실정이었다.
낚시까지 해준다니.
나로선 호구 하나 잘 잡은 느낌이었다.
[푹신한 침낭]을 꺼내 몸을 눕혔더니 살 것 같았다.
나는 까무룩 잠들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시간이 된 거면 도진혁이 깨웠을 텐데.
나는 희미하게 어린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눈을 붙인 지 얼마나 된 걸까.
『노올자.』
『꺄르르르륵.』
침낭에서 뭉그적거리며 누워 있는데, 갑자기 근처의 수풀 주변을 사사삭 하는 인기척도 느껴졌다.
‘뭐지.’
눈을 떠보자 얼마나 잤는지, 해가 지고 있다.
진작 도진혁이 저를 깨우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도진혁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도진혁 뭐하냐.”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여기 친구가 더 있었네.』
“도진혁.”
이름을 불렀지만 미동도 없었다.
『놀자.』
문득 이지수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미로에 어린아이는 없어요.’
혹시나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들리면 얼른 그곳에서 최대한 존재를 들키지 말고 벗어나라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도진혁의 뺨을 쳤다.
“야. 도진혁. 정신 차려 봐.”
초점이 나간 도진혁의 동공에 움직임이 없다.
가만히 보니 얼굴도 창백하다.
『우리랑 놀자.』
삽시간에 아이들 무리가 우리를 둘러쌌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눈부분이 까맣게 텅 빈 허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단 유민준은 아이들을 못 본 척했다.
“아오. 꿀 빠는 줄 알았는데······.”
들켰을 땐 어떻게 하란 말이 없었는데.
황급히 유민준은 아공간에 장비를 때려 넣었다.
아이들은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서 도진혁을 들쳐 멨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일단은 런이다.
뭔지 모르겠을 땐 째는 게 좋다.
저보다 한 뼘은 더 컸기에 간신히 도진혁을 업고서 뛰기 시작했다.
『너도 우리랑 놀자.』
아이들 무리가 와글와글 쫓아왔다.
다행인지 짧은 다리만큼 좀 느린 편인 거 같았다.
맨 앞에 선 한 아이가 유민준의 바지를 잡아당기려 했다.
『하얀 견과(犬瓜)는 놓고 가.』
『데려가지 마. 가지 마.』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유민준은 아이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술래잡기를 할 수 없어.』
검은 구멍이 대신한 눈 부위에서 아이들은 검은 눈물을 쏟아냈다.
『규칙에서 어긋났어.』
『같이 놀아야 하는데.』
『넌 뭐야?』
뭐긴 뭐야. 평범한 인간이다.
『왜 규칙에서 어긋났지?』
유민준은 섬뜩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냅다 뛰었다.
『당강(當康)을 만나려면, 많이. 많이 잡아둬야 하는데.』
『놀자. 가지 마.』
『가지 마.』
『여기 같이 있자.』
무작정 한참을 뛰어 어느 동굴 앞에 다다라서야, 아이들은 쫓아오길 멈췄다.
움직일 수 있는 일정한 영역이 있는 녀석들인 것 같았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내며 유민준은 도진혁을 바닥에 내려뒀다.
“······.”
잠시 고민하던 유민준은 낑낑대며 도진혁을 끌어다가 동굴 안쪽에 눕혔다.
덩굴이 가득 있어서 쉽게 눈에 띄진 않을 듯했다.
이 자식 어떻게 해야 일어나는 거지.
이제 와서 버리고 갈 수도 없고.
툴툴거리며 유민준은 [푹신한 침낭]을 꺼내 펼쳤다.
“일어나라 제발 좀.”
여전히 도진혁은 눈 뜨고 멈춘 것 같은 모양새였다.
다행인지 얼굴색은 조금 돌아오고 있었다.
도진혁의 충혈된 눈을 억지로 감겼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해가 내려앉는 걸 보며 유민준은 캠프를 꾸렸다.
입구에는 아까 도진혁이 준 [자동식 함정]을 설치했다.
“개 힘드네.”
해가 온전히 졌다.
아까는 굳게 봉우리가 닫혀 있던 꽃 몇 송이가 동굴 조금 안쪽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려, 아공간에 수납해 둔 핸드폰을 꺼냈다.
이제 미로에 들어 온 지 스무 시간이 조금 지났다.
어제는 10시간 지났을 때쯤 밤이 되었는데.
지금은 8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10시간 간격으로 밤이 되는 건 아닌 건가.
우선 대충 계산해 보니 잠은 4시간 정도 잔 것 같다.
그냥 이대로 여기에서 30시간이 될 때까지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이미 유민준은 재료를 얻어서 나갈 거란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온가람이 보물창고라고 했지.
우선 보이는 거라도 채집해 둘까 싶어 나는 안쪽 벽으로 다가갔다.
쪼그려 앉아 꽃들을 캐고 일어나는데 순간 어질했다.
순간적으로 벽을 짚었는데, 몸이 꼬꾸라졌다.
“으악!”
그냥 야트막한 동굴인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돌에 쓸려 팔꿈치가 작살났다.
미간을 구기며 유민준은 일어났다.
“아, 겉만 쓸렸네. 뭐야 이건 또.”
안쪽으로는 길이 있었다.
원래 있던 곳을 왔다 갔다 해보니, 들락날락할 때마다 토벽이 일렁거렸다.
프로젝터기로 쏘아 돌벽을 구현한 느낌.
그냥 그렇게 유민준은 이해하기로 했다.
밖에선 안쪽이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무언가의 눈속임인 듯싶었다.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도진혁을 내려다본 유민준은 잠시 고민하다, 그가 시야에 보이는 선에서 안쪽을 살피기로 결심했다.
혹시나 출구라면 땡잡은 셈일 거였다.
동굴을 살피던 유민준은 벽에 무언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
돌벽에는 꼭 미국 만화에 나올 법한 그림체의 무척 익숙한 캐릭터가 끌로 깎아낸 듯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질적인 캐릭터 부조(浮彫)는 거의 유민준의 키보다 컸다.
‘이런 곳에 왜 이게······.’
유민준은 아공간에서 [정신없이 밝은 랜턴]을 꺼냈다.
뒤로 더 물러서서 빛을 비춰보니 더욱 확실했다.
토끼 캐릭터다.
둥글고 긴 귀, 툭 튀어나온 네모난 이빨, 별을 박아 반짝거리는 눈에 속눈썹 한 가닥.
엉성하게 늘어진 티와 바지까지.
이 토끼 캐릭터는 누나가 어릴 적 만들어준 동화책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심지어 동굴의 벽에는 알 수 없는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모든 글씨의 끝에는 ^^가 붙어 있었다.
글씨들을 따라 대충 몇 걸음 옮기니, 중간 즈음 익숙한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유민하 아지트임 들어오려면 죽을 각오 해^^>
분명 음각으로 새긴 건데도, 유민하 글씨체였다.
이게 일전에 누나가 영상에서 언급했던 학교에 숨겨둔 것들 중 하나인가?
나는 되돌아가 잠시 도진혁을 살펴본 뒤, 구불거리는 동굴 길을 따라 들어갔다.
글씨가 끝나는 지점이 되니 벽에 빛을 내는 구슬들이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랜턴을 도로 아공간에 집어넣고서 점점 넓어지는 공간을 따라 5분 정도 걸었다.
‘미로는 원래 내부가 매번 변한다고 하지 않았나?’
들어갈수록 천장이 높아졌다.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어느덧 족히 빌라 한 채 높이 정도의 공간에 다다랐다.
무척 낮고 작은 높이로 된 계단식 폭포와 그 아래의 둥근 연못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는 넓게 설치된 데크.
그 위의 3단 높이의 책장들과 소파.
널브러진 쿠션들.
그리고 뜨개질로 만든 크고 작은 러그들.
무척 본격적인 주방과 화덕 그리고 이질적인 대리석 식탁.
한쪽에는 거대한 천막도 있었다.
커튼 안쪽으로는 침대도 보인다.
저건 설마 서랍장인가.
굉장히 이 미로와는 어울리지 않게 꾸며진 장소였다.
“하여간 유민하······.”
심지어 나름대로 생각해 둔 미로 내의 비석 위치에 관한 이론은 눈앞의 풍경에 의해 곧장 폐기되었다.
열댓 개가 넘는 비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비석 두 개는 따로 데크 옆쪽에 있었다.
그 비석들은 기둥 취급인 듯 사이에 무지개색 해먹도 연결해 놨다.
꼭 글램핑장에 온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유민준.”
도진혁이 내가 남긴 메모를 읽었는지 비척거리며 나타났다.
한 소리할까 했다.
하지만 버스 운행을 재개할 수 있을지도 모를 마당이라, 인간적으로 참았다.
“일어났냐? 어휴.”
여전히 핏기가 채 돌아오지 않은 얼굴로 도진혁이 몸을 숙여 사과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구해줘서 고맙다.”
아이들이 나타나서 유민준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으나 즉각 환각에 걸렸다고 했다.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고, 주변의 풍경은 일그러져 보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는데, 그게 꼭 자장가 같았단다.
나는 공치사는 나중에 하는 거로 생각했다.
어차피 도진혁은 빚지고 살 성격은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여긴······?”
“아마도 우리 누나가 학교 다닐 때 남겨둔 장소 같아.”
“네 누님도 하늘대 출신이었나. 이곳, 범상치 않은 술식들이 잔뜩 있는데. 신기하군.”
대수롭지 않게 데크로 걸어가며 나는 대꾸했다.
“어. 뭐. 그 덕에 내가 특별전형으로 들어온 거라던데. 나도 누나가 이런 걸 해놨을 줄은 몰랐어.”
“네게 이곳에 대해 미리 언급을 주신 건 아니었나 보군?”
나는 바닥에 있던 쿠션을 주워 먼지를 털며 대답했다.
“전혀. 우리 누나. 연락 안 된 지 4년쯤 됐거든.”
당황한 표정으로 도진혁이 말했다.
“······그런가. 미안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데 왜 미안하다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혁의 저런 반응은 호구다웠다.
새삼스럽다는 듯 민준이 말했다.
“뭐. 미안하면 앞으로 나 잘 도와주기나 해. 평범한 인간인 내가 이런 데서 어떻게 적응하겠냐.”
도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네게는 신세를 지기도 했고.”
“일단 너도 와서 뭐 출구나 그런 거 단서 될 만한 거 있는지 좀 볼래?”
“하지만 너희 누님의 물건들인데 내가 어찌 함부로 손대지. 게다가 느낌이······.”
유민준은 도진혁의 말을 잘랐다.
“어차피 졸업한 지 한참이라던데 뭐. 그나저나 우리 누나 끄적거리는 거 좋아해서 여기저기 뭐 메모나 노트 같은 거 있을 거야. 단서 같은 거 있나 좀 보자. 너는 저기 천막 쪽 좀 찾아봐.”
“알겠다.”
도진혁이 천막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붉은색 빛이 사방에 퍼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났다.
삽시간에 빛은 도진혁을 튕겨냈다.
콰과광―
“컥.”
도진혁이 돌벽에 부딪히자 그곳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쿨럭대더니 도진혁이 몸을 일으켰다.
“헉 도진혁 너 괜찮냐?”
“이 정도쯤은 문제없긴 한데. 아무래도 내가 방범용 장치를 발동시킨 거 같다.”
“엥? 그건 또 대체 뭐ㅇ······.”
유민준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 갑작스럽게 눈도 뜨기 힘들 정도의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몸이 따가울 정도라 두 사람 다 몸을 낮췄다.
이내 바람이 잦아들자 도진혁은 현저히 다른 격을 느끼며 눈을 떴다.
강렬한 붉은빛을 내는 눈동자가 위압감을 뽐내며 허공에 떠 있었다.
거대한 뿔 네 개.
사자 같은 둥근 귀와 얼굴.
용의 몸에 호랑이의 다리가 합쳐진 듯한 몸뚱아리.
거기에 달린 불꽃이 타는 듯한 긴 꼬리.
어째서 저런 존재가 미로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도진혁은 저게 후(犼)라고 확신했다.
몸통이 붉긴 해도 등 비늘 색을 보건대 분명 청목후(靑木犼)였다.
모든 후(犼)의 이름이 붙은 자들은 자연에서 태어난 고대의 존재들이라, 도진혁은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유민준은 식탁 아래에서 기어 나오느라 아직 청목후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유민준은 머리를 털며 불평을 뱉어냈다.
“퉤. 아 퉤퉤퉤. 모래는 또 어디서 날아온 거야 진짜. 눈이랑 입에 퉤. 다 들어갔네. 도진혁 괜찮냐.”
언짢다는 듯이 무게감 있는 어조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누가 감히 나의 단잠을 깨우나.」
도진혁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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