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김 여사

일정한 구역에 분포된 진(鎭)들은 하나의 결계지(結界地)를 이뤘다.
이가을과 이사웅이 인간 유민준을 데리고 온 이 집도 그 진(鎭)이 있었던 곳 중 하나였다.
오수진은 이 집에 누구든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인 유민준은 아무런 상관이 없단 걸 확인했기에 도주하라 일렀다.
쓸데없이 옛날 생각이 나게 하는 인간이었다.
처음 오수진이 이 구역에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 근방은 원래 인간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미안하다. 오수진. 너희 본부장님이 그렇게 되시는 바람에······당분간만 인간 세상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다녀와.’
한직으로 쫓기듯 밀려난 오수진이 맡은 건 가장 작은 진(鎭)으로, 크게 연구 가치는 없는 별 볼 일이라곤 없는 구역이었다.
-‘서울에서 조금만 버티면 우리 오수진이, 내가 한성에 책임지고 복귀시켜 줄게. 응?’
요괴인 수진의 눈에 보기엔 각각 다른 크기의 조잡한 집들이 비탈길에 모인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곳을 달동네라는 낭만 있는 이름으로 불렀다.
위장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살았던 인간, 김 여사.
그녀는 이 달동네에서 가장 꼭대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원래 그녀에게는 딸이 있었다고 했다.
수진은 밖에 다닐 땐 네다섯 살짜리 어린아이 모습으로 둔갑했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집 나간 딸이 낳은 손녀라고 여겼다.
저보다 한참 어린 인간들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수진은 여전히 비경사(秘境司) 소속이었다.
작은 일이라도 맡았으니 크게 불만은 없었다.
좌천된 게 뭐 대수인가 싶었으니까.
그저 오수진은 인간들 틈에서 합법적으로 살아볼 기회 정도로 생각했다.
관찰하다 보니 김 여사는 어린 인간들을 돌보기 좋아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게, 김 여사는 회사에서 지급하는 돈을 도통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다.
하던 일을 관둘 만한 충분한 액수일 텐데.
김 여사는 꼬박꼬박 유치원 선생님 노릇도 계속했다.
그리고 김 여사는 돈의 대부분을 근처 보육원에 갖다주기도 했다.
필요가 없다고 해도 수진에게 이것저것 사입히거나, 먹였다.
한성에서만 살던 요괴인 수진은 김 여사의 행동이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린 인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항시 김 여사는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먹이면서도 수진이 배고프지는 않은 지 확인했다.
종종 먹다 지친 수진이 자신은 인간을 먹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매번 그런 게 아니라며 김 여사는 늘 웃었다.
어느 날부터는 수진이 진(鎭)의 관리 보수를 쉬는 주말이면, 김 여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보육원에 함께 갔다.
김 여사는 그곳 아이들에게도 밥을 해 먹였다.
이상한 인간이었다.
어린 인간이 아니라, 밥을 먹이는 걸 좋아하나?
이따금 수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기를 10년이 지났다.
오수진이 진을 관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수진은 어른의 모습을 오가며 김 여사의 집을 고쳤다.
왠지 김 여사는 음식 하는 것 외에는 손재주가 없어 보였다.
주술을 사용하면 금방이겠으나, 직접 김 여사와 함께 몸을 움직이는 게 수진은 점차 더 익숙해져 갔다.
연구하길 본래도 좋아하는 성정이라 인간 아이인 척 학교에도 다녀봤다.
인간 아이들은 꽤 빨리 자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라면 둥지를 떠나갔다.
달동네에 남은 젊은 사람은 오수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또 20년이 훌쩍 지나갔다.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면서 빈집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인간 아이들의 보육원도, 진(鎭)도 이전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었다.
진(鎭)의 이전을 위해 김 여사의 집에는 한성과 통하는 이동 포탈이 만들어졌다.
임시였지만 팀원들도 돌려받았다.
그러는 동안 동네에서는 김 여사를 김 할머니, 혹은 김 노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진(鎭)의 이전이 완료되었다.
장장 12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김 여사는 이제 여든이 넘은 나이였다.
회사는 오수진을 하늘 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시켰다.
하늘 대학교는 천지 학관 시절 진작 졸업한 곳이었다.
이번에는 학생 역할을 연기하는 게 주어진 일이었다.
다시 팀장직도 완전히 되찾았다.
오수진은 김 여사에게 집을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김 여사, 나 승진해서 다른 데 가게 됐어.’
-‘우리 강아지 잘됐네.’
-‘응. 다시 팀장 달았어.’
-‘잘 된 거 맞지?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평일엔 내 팀원들이 와 있을 건데. 허리도 아프면서 또 밥상 차린다고 고생하지 마. 알겠지?’
-‘다 우리 강아지 부하 직원들 아니야. 고마워서 수저 몇 개 더 놓는 건데.’
-‘아니, 요즘은 배달도 다 잘 된다니까 그러네. 여튼 나 이번 일은 4년만 하면 되니까, 이거 끝나면 나랑 놀러 가자.’
-‘우리 수진이랑 가면 다 좋지.’
김 여사는 오수진이 아이의 모습이든 어른의 모습이든 ‘우리 강아지’, ‘우리 수진이’라며 다정하게 불렀다.
오수진은 입학 후에도 주말마다 김 여사의 집에 방문했다.
그리고 얼마 전.
김 여사가 죽었다.
그동안 이름보다 김 여사, 김 할머니라고 더 많이 불리던 여자.
김옥희.
오수진은 사비로 어느 장례식장을 빌려 상을 치렀다.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김옥희가 먹이고 돌보고 학교를 보냈던 많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기억났다.
아이들이 미래라고.
옥희야. 이거 봐.
널 만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목 놓아 우는 인간.
-‘할매, 나 이제 취직도 했는데. 흐어엉.’
개과천선한 인간.
-‘김 여사님. 제가 사람답게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아이를 안고 온 인간.
-‘수진 언니는 나이를 하나도 안 먹은 거 같네요. 그때 저희 새 건물로 이사하게 해준 거. 언니였죠? 고맙다는 말 늦게 해서 미안해요. 얘는 제 아들이에요.’
발인 때까지 있겠다며 술잔을 기울이는 인간.
-‘김 할머니가 누나 예뻐하시는 거 보면 나도 가족이 있었다면 저랬을까, 하고 부러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런데 누구에게도 나는 네가 웃으며 눈감았다고 말을 못 하겠구나.
오수진은 울지 않았다.
자신은 김옥희의 죽음의 진상을 알았다.
텅 빈 관을 묻고서 돌아서야 했던 날.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오수진은 무작정 규율을 어기고 회사에 찾아갔다.
-‘강 팀장 어딨어.’
-‘비경사 소속인 분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저희 감찰원에 오시면 곤란한······아, 강 팀장님. 여기 오수진 팀장님이 저번에 그,’
-‘괜찮아요. 오 팀장, 여기서 이러지 말고 사무실 들어가서 얘기하자.’
강 팀장을 따라서 그의 개인 사무실에 갔다.
소파에 앉기도 전에 오수진이 물었다.
-‘옥희. 김옥희 어떻게 된 거야. 범인은.’
-‘과학검시원에서 부검을 진행하긴 했다만 아직은 범인을 특정하기 좀 어려워.’
-‘특정하기 어렵다고? 특정하지 않는 건 아니고? 강 팀장, 내가 그러라고 김옥희 시신 인계한 거 아니야. 범인 잡으라고 맡긴 거지.’
-‘정신 좀 차려. 냉정하게 일 처리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목숨값을 받아야겠다. 옥희 몫도, 내 팀원들 몫도.’
-‘공무원이 잘도 그런 말 한다.’
그렇다. 김옥희 곁에 붙여둔 팀원들도 전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김 여사, 김옥희의 시신은 피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미라처럼 말라버린 옥희를 내려다보며 오수진은 차분하게 회사에 연락해 사체를 수습하고 장례 준비를 했었다.
그러는 사이, 하늘 대학교에서 위장용으로 쓰던 휴대폰은 잊고 있었다.
-‘하······진짜 수진아. 너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마음 약해지게. 나 진짜 이거 말한 거 알면, 문 본부장한테 죽는데······.’
-‘문 도령은 내가 알아서 할 게 단서라도 줘. 응? 강 팀장.’
-‘······혈귀회(血鬼會)라고, 알아?’
혈귀회는 일종의 마약처럼 유희 삼아 인간의 피를 빨고 노는 요괴들이었다.
오래전 동족 포식과 인간의 피를 탐하던 습성을 못 버린 자들이기도 했다.
-‘요즘은 젊은 요괴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블러드 스펙터라고 이름을 바꾼 모양이던데. 최근엔 순혈주의자들도 섞여 있다, 나는 그 정도만 알아.’
-‘고마워. 강 팀장. 그 정도면 충분해. 그리고······.’
오수진은 숨죽여 결계를 짜놓고 기다렸다.
범인이 현장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로.
그리고 오늘 걸려든 게 이들이었다.
개 중 하나, 이가을은 딱 봐도 혈귀회 놈이다.
창가쪽 벽이 무너지면서 튄 파편을 툭툭 털어내며 오수진이 말했다.
“이가을, 이경인. 너희 둘 다 혈귀회인가?”
“가을아, 오수진 씨, 생각보다 나이 많은가 봐. 킥킥. 혈귀회라니.”
이가을이 자랑하듯 피로 만든 제 다리의 모양을 바꿔댔다.
“대답이 듣고 싶어? 그럼 일단 내 아공간 가방은 돌려줄래? 이 망할 도둑년아?”
최종적으로는 마치 갑각류처럼 끝이 뾰족한 다리가 이가을의 무릎 아래에 자리 잡았다.
각기 네 개씩 여덟 개의 다리.
흡사 거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손 중 하나에는 거대한 집게 모양으로 붉은 액체가 일렁거렸다.
긍정의 표시나 다름없었다.
냉랭한 얼굴로 오수진이 대꾸했다.
“이곳엔 왜 왔는지 누구의 사주인지 말해.”
“내가 왜? 말해주면 도와주게?”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이사웅은 몸을 뒤로 휙 빼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오른팔은 언제든 장(掌)을 펼칠 수 있게 곧게 뻗었고, 왼손은 허리춤에서 권(拳)을 쥐었다.
그는 혈귀회가 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피를 조종하는 술법은 인간의 피를 맛본 요괴만이 가능하다는 건 배운 적 있었다.
이사웅이 미간을 구기며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가늠하듯, 날을 세웠다.
“야, 오수진. 혈귀회가 뭐냐. 이름 개 촌스럽네. 그리고 너흰 왜 이러는 거냐?”
실실 웃으며 이가을이 비련의 여주인공에 빙의한 듯 굴었다.
“어머머. 사웅아, 내가 피로 마법 좀 쓴다고 그렇게 재깍 뒤돌아서는 거야? 서운한데?”
“곰족은 멍청하다더니. 킥킥. 상황 판단 진짜 안 되나 봐요. 사웅 씨?”
오수진은 입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단순무식해 보이는 이사웅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이경인을 칠 테니, 그 틈에 넌 도망가. 이사웅.
-야, 2대2여야 수가 맞지. 무슨 소리야.
-혈귀회(血鬼會)는 블러드 스펙터라고 불리는 조직이야. 인간뿐만 아니라, 동족의 피도 탐해.
-어쨌든, 넌 착한 놈이고 쟤들이 나쁜 놈들이란 거 아니냐.
-네가 있어 봐야 방해니까, 도망치라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울림이 오수진의 귀에 맺혔다.
내키지는 않지만 살려서 대답을 들어야 한다.
“이가을, 이경인. 웬만하면 너흴 죽이지 않고 싶으니 대답해. 너희한테 이 주소를 준 남자. 누구야.”
무수관에 유민준이 말했던 인상착의의 사감 선생 따윈 없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이 둘은 말단이다.
그러니 그가 이 장소를 알려줬다면, 그쪽이 범인일 확률이 더 높았다.
여전히 부서진 창가에 쪼그려 앉아 있던 이경인이 언월도를 어깨에 걸쳤다.
“푸하하하. 웬맨해면 쥭이지 얞고 시퐁. 크크큭.”
“얘 수진아, 우리 너 잡으러 온 거야. 아무리 무수관에 들어갔다고 해도 신입생주제에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야?”
“킥킥. 거북이 고기는 무슨 맛일까?”
도발에도 오수진의 표정은 변함없이 찬 바람만 쌩쌩 불었다.
“이렇게 해요. 수진 씨, 유민준 어디다 숨겼는지 말해주면, 나도 힌트 정도는 줄게요. 킥킥.”
굳은 얼굴로 오수진이 대꾸했다.
“조금 전에도 인간의 피를 마시고 온 주제에 잘도 그런 말을 하네.”
“기껏 가을이가 도시락으로 데려왔는데, 수진 씨가 빼돌려서 지금 쟤 화났잖아.”
이가을이 아무래도 좋다는 투로 말했다.
“뭐, 학교에서 만나면 되지. 유민준은.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자.”
유민준은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발등에 못이라도 박은 듯 그는 미동없이 관망했다.
이게 무슨 일인 거지?
기괴한 형상의 이가을 그리고 저를 도시락이라고 부르는 이경인.
혼란스러운 가운데 유민준이 돌 쌓인 계단을 바라봤다.
‘퇴로는, 막힌 건가?’
키가 큰 편인 유민준이라해도 아무런 도움닫기 없이 오르기에 창문은 높았다.
말이 반지하지, 그냥 지하나 다름없는 깊이다.
심지어 벽이 무너졌다고 해도 그 앞엔 긴 장대 같은 언월도를 든 이경인이 있었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오수진이 말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내 모습이 다시 이들에게 보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유민준은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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