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지옥 난이도의 조별 과제(2)

이미 이사웅에게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삐쩍 마른 오수진을 혼자 두고 가는 건 성립되지 않는 논리였다.
아무리 무수관 소속 학생들이 방어와 주술에 특화되어 있어도.
“너희 같은 놈들이 학교에도 많냐?”
우스운지 경인이 킥킥댔다.
“알면 뭐 하게? 어차피 사웅 씨 오늘 여기서 못 나가.”
가을이 친절한 어조로 사웅을 향해 말했다.
“아이참, 나도 놀랐어.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우리, 거북이 주술사는 먹어 본 적이 없거든. 그것도 같은 조에 배정받는 우연까지.”
“별 미친 소리 다 듣겠네.”
“특별히 사웅이 너는 뼈는 남겨서 내가 제사 정도는 지내줄게.”
“그걸 생색이라고 내냐? 완전 미친년한테 내가 잘못 걸렸었네.”
“예쁘다 할 땐 언제고.”
두 혈귀회 놈들이 사웅을 비웃으며 정신이 팔린 때, 수진이 사복검의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그녀가 팔을 크게 휘둘러 사복검을 사방으로 돌렸다.
유연하게 휘어진 검날들이 펼쳐지며 경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검의 끝은 빠르게 돌며 가을의 머리를 겨냥했다.
경인이 창가의 고지에서 뛰어내리자 수진이 외쳤다.
“이사웅. 지금!”
입꼬리를 올린 경인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헤이. 그렇게는 안 되지!”
허공에 몸을 날린 경인은 사복검을 피하며 사웅을 향해 언월도를 내리찍었다.
날이 없는 자루 부분을 양손으로 잡아 막고서 사웅이 언성을 높였다.
“거, 살기 갈무리 좀 하지?”
“그러게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사웅 씨.”
“과제 좀 제대로 하지 그랬어?”
“무식하게 힘만 센 사웅 씨가 학교생활에 이렇게 의욕 있는 줄 몰랐지, 내가.”
얼굴로 칼날이 바짝 다가오기 전 사웅은 아래로 몸을 깊게 숙여 상체를 낮췄다.
다시금 휘두르는 월도의 날을 흘려보내더니, 골반을 비틀어 장대 안쪽을 파고들었다.
퍽!
갈비뼈 쪽으로 횡권을 맞은 경인이 억 소리를 냈다.
미간을 구긴 사웅이 말했다.
“한심한 새끼.”
경인은 퉤, 핏덩이를 뱉어냈다.
그리고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아. 사웅 씨는 그 주둥이 좀 어떻게 해야겠어?”
크게 원을 그리며 월도를 돌리더니, 경인은 찌르듯 재빠르게 내질렀다.
“사웅 씨, 뭐. 장학금이라도 노려?”
사웅은 등을 휙 뒤로 굽혀 피했다.
그러면서도 옆으로 굴러 거리를 더 좁혔다.
“요리조리, 곰이 아니라 쥐새끼가 따로 없네? 크큭.”
비웃으며 경인이 무기를 쌍단검으로 바꿨다.
양손에 쥔 쌍단검을 번쩍 들어 빠르게 휘둘렀다.
사웅은 발끝으로 땅을 차며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단검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공기를 갈랐다.
다시금 사웅이 아슬아슬하게 단검의 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사웅은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경인의 손목을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경인은 허리를 틀어 단검을 교묘히 회전시키며 공격을 막아냈다.
“사웅 씨 이게 다야?”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전부 다 유민준의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빠른 장면이었다.
골반을 비틀며 사웅이 주먹을 잽싸게 뻗었다.
“거, 말 많네.”
복부를 얻어맞으며 뒤로 밀려난 경인이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몸을 비틀댔다.
“컥.”
쿨럭대는 경인은 치명타는 피했지만, 생채기가 가득했다.
숨을 고르며 이사웅이 답했다.
“너나 잘해 새꺄.”
그러나 경인은 그 틈을 노렸다.
휘익 뛰어올라 그는 사웅의 어깨에 단검 하나를 박아 넣었다.
“아악!”
칼날을 돌려 쑤시며 경인이 광인처럼 웃었다.
“킥. 산 채로 동족을 먹는 건 우리 취향이 아니라서. 사웅 씨, 미안. 킥킥킥.”
칼날이 꽂힌 채 사웅이 거리를 벌렸다.
“너 이 새끼······.”
툭툭, 제 배를 털더니 멀쩡하게 상체를 세운 경인은 비웃음을 새겼다.
입가의 피를 슥 닦아내며 말했다.
“이래서, 신입생은 순진하다니까.”
“그러는 넌 유급생이라 좋겠다?”
여유롭게 수진을 상대하던 가을이 조소를 흘렸다.
“살살해. 곰 발바닥 요리 맛있다고 들었으니까 너무 상하지 않게 하고.”
수진이 사복검으로 묶으려 할 때마다 가을은 4쌍의 다리 끝으로 요리조리 쳐냈다.
가을과 대치하던 수진이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도망가라니까, 저 멍청이도 정말.”
“수진아. 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수진은 냉소적으로 답했다.
“글쎄? 지금이라도 투항해. 그럼 목숨은 보장해줄 테니.”
“보자, 이정도 소란에 인간 하나 안 들어오는 걸 보면. 너 결계를 다시 펼쳐서 유지 중인 거 아니야?”
“그래. 너흰 못 도망가.”
“아니지, 널 죽이면 나갈 수 있잖아?”
사복검을 장검 형태로 바꾼 수진이 검신을 겨눴다.
“너희 조력자를 말하면 나가게 해줄지도.”
가을은 제 여덟 다리 중 두 개를 교차해 검을 막았다.
“난 널 시체로 데려가도 상관없어.”
“어련하겠어.”
“근데 수진이 넌 살아있는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이 있잖아?”
“무수관 사감을 사칭한 자는 누구지.”
“민준이한테 들었구나?”
두 여자의 얼굴이 잠시 가까워졌다.
사복검이 뱉어내는 냉기에 가을이 나머지 다리로 수진을 꿰뚫려했다.
아공간에 사복검을 보내며 수진은 뒤로 휙 물러섰다.
“그리고 진짜 이가을은 어딨어.”
“어머, 그새 거기까지 알았어?”
“그 얼굴 가짜 티가 너무 나서. 진짜 이가을이 훨씬 미인이거든.”
“풋. 그걸 도발이라고 하는 거야?”
“진심이라고 하지, 보통은.”
“역시, 무수관 애들이 책상 머리는 좋아. 그런데 딱 거기까ㅈ······.”
“금(禁).”
수진이 띄운 노란 종이가 여러 장으로 변하더니, 빠르게 가을을 향해 날아갔다.
피로 된 가는 송곳들이 바닥에서 쭉 뻗어 올라와 부적들을 파훼했다.
노란 종이들이 파스스 사라졌다.
“사람이 말하는데. 자꾸 이럴래, 수진아?”
***
한편 유민준은 입구가 막힌 계단 앞에 바짝 붙어있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널따란 반지하에 가득했다.
모든 광경을 보고 있던 민준은 왠지 속이 울렁거렸다.
생사를 건 싸움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제 눈에 가득 차는 광경은 너무나도 현실감각이 없었다.
안다.
요괴 선인들의 싸움에 저 같은 평범한 인간이 끼어들 수 없다는 것쯤은.
그러니, 생각해야 했다.
***
마치 긴 송곳처럼 솟아올라 수진을 노렸다.
수진은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허공에 노란 종이를 날렸다.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주문이 흘러나왔다.
“구(拘).”
노란 부적 종이에서 긴 밧줄이 촤르륵 뿜어져 나왔다.
가을은 가볍게 네 개의 다리들로 그 밧줄을 잘라내며 피했다.
“금(禁).”
수많은 종이를 잽싸게 피하는 가을은 꼭 바퀴벌레처럼 빨랐다.
그녀는 천장에서 부유하는 구(拘)의 술식이 펼쳐지는 노란 종이를 뚫어버렸다.
다시 또 파스스 사라진다.
수진은 멈추지 않고 또 술식을 내뱉었다.
“금(禁).”
“쓸 줄 아는 게 몇 개 없나봐? 깔깔깔.”
“산(散).”
쏟아지듯 노란 종이들이 흩날리며 파도처럼 밀려갔다.
이건 다 쳐내기 어렵겠다 싶었는지, 가을이 후다닥 경인 쪽으로 피했다.
그러자 경인이 빠르게 언월도를 꺼내 휘둘렀다.
돌풍에 종이가 날려 한데 뭉쳤다.
그러자 기둥처럼 솟아난 피가 한 번에 그것들을 파훼한다.
가을이 툴툴거렸다.
“귀찮게, 정말.”
까드득!
그러는 동시, 바닥에서 솟아난 붉은 송곳이 수진의 양 팔목을 꿰어냈다.
“오수진 괜찮냐?!!”
“사웅 씨, 어딜 봐. 여기 집중해야지.”
“너같이 덜떨어진 새끼한테 집중하고 싶진 않은데?”
수진은 억 소리도 내지 않고 가을을 노려봤다.
콰직.
다가오는 가을의 턱을 올려 차려던 양쪽 발목도 붙잡혀 바닥으로 끌려 내려갔다.
수진의 사지에서 붉은 피가 쉴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황홀하다는 듯 가을이 바라봤다.
눈매를 곱게 휘며 가을이 말했다.
“수진아.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지?”
“······.”
이가을은 바닥에 퍼져있던 피를 한데 모았다.
“신입생치고는 주술을 꽤 하는 거 같은데. 주술사들이 나랑은 상성이 별로 안 좋거든? 일단, 내 다리 값부터 받······.”
그때였다.
작은 폭죽 같은 소리가 한 번에 울려 퍼졌다.
팡! 파바바팡! 파방!
펑펑대며 하얀 가루가 사방에서 터졌다.
이가을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아 시발! 깜짝이야!!!”
이 틈에 과감하게 뛰어오른 수진은 붉은 송곳에서 벗어났다.
“이사웅! 받아!”
사웅이 경인의 단검을 밀어내며 그의 복부를 발로 퍽 찼다.
그리고서 빠르게 사웅은 수진이 던진 방독면을 낚아챘다.
지(止)라고 흘겨 넣은 종이를 제 팔다리에 휙 감고서 수진이 새로이 주문을 외웠다.
“염(焰).”
다다다다다!! 다닥!! 닥!
갑작스럽게 쏘아대는 기관총 소리에 지하가 시끄러웠다.
미간을 찌푸리며 가을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빠르게 가을의 다리가 꿀렁대며 하얀 가루를 흡수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자잘한 붉은 덩어리를 뱉어냈다.
“퉤퉤퉤. 이건 뭐야, 밀가루잖아.”
노란 종이에서 작게 타닥거리는 불꽃을 손끝으로 잡으며 경인이 느긋하게 말했다.
“분진폭발이라도 일으켜보려고? 고작 이정도 양으로?”
“염(焰).”
“불꽃도 불꽃 나름인데, 이건 뭐 성냥 크기도 안 되겠네. 큭.”
날리는 하얀 가루 사이에서 유민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바닥에서 몸을 낮추고 엎드린 민준은 주황색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서 버트스톡을 견착한 자세였다.
민준을 보며 가을은 비웃음을 흘렸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기관총을 부여잡고 이것도 총알이라고 쏘는 건가?
“유민준?”
가루가 채 가시기 전, 가을을 향해 유민준이 다시금 연발로 탄환을 쏘았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총알 몇 개는 벽에 박혔다.
4쌍의 다리 중 2개가 튀어나와 총알을 잡아냈다.
입에서 뱉어낸 총알을 내던지며 가을이 웃음을 흘렸다.
“풋. 뭐야, 벽에도 박히길래 기대했는데. 고작 비비탄이네? 마탄도 아니고, 이까짓······.”
“폐(蔽).”
족히 몇 미터는 되는 길이로 변한 종이가 원을 그렸다.
착 달라붙더니 가을의 눈을 잠시 가렸다.
짜증 내며 가을이 종이를 잡아 뜯어댔다.
직접 부적이 감기는 경우엔 기를 조금 담아서 찢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자꾸 사람 말하는 데 끊고 난리야.”
아니나다를까 가을의 생각대로 수진의 부적술보다 제 기가 더 셌다.
투둑 종이를 뜯어내고 미간을 좁혔다.
"소용없다니까 수진아?"
경인은 유민준의 등장에 흥분한 듯 목 높혀 말했다.
“민준 씨!! 지금껏 어디 숨어 있었어?!!! 보고 싶었다고!!! 키킥.”
여전히 가을을 향해 탄환을 쏘며 민준이 불평하듯 대꾸했다.
“야이씨!! 그렇게 내가 과제 내놓으라고 할 땐 바쁘다고 유난 떨더니! 인제 와서?”
가뿐히 여덟 개의 다리가 총알을 받아냈다.
가볍기 그지없는 플라스틱 쪼가리다.
정말 웃긴다는 듯 가을이 박장대소했다.
“푸하하. 민준이 너, 이와 중에도 과제 얘기야? 진짜 특이한 인간이네.”
민준이 대꾸했다.
“지도 같이 열심히 해놓고!”
“푸훗. 네 피 맛 정말 궁금하다. 궁금해!!!”
“야 가서 선지국이나 사 먹어. 우리 누나 다니던 맛집 알려줄 테니까.”
“아, 이가을. 웃지만 말고 나랑 내기나 할까?”
긴 봉을 꺼내들며 경인이 말을 이었다.
“누가 먼저 잡을지. 맛이 궁금하면 일단 잡아야 할 거 아냐! 키키킥.”
“내기 좋지!”
두 사람이 유민준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사웅이 막아섰다.
그 사이 수진은 유민준에게 주술을 거는 걸 마쳤다.
그녀가 사방에 노란 종이를 가득 날렸다.
“금(唫).”
여러 장으로 나뉜 부적은 손가락 반 틈도 안되는 작은 크기였다.
흡사 노란 꽃잎이 흩날리는 착각이 이는 광경이었다.
바늘 같은 굵기로 변화시킨 피가 바닥에서 솟아 정교하게 부적을 꿰뚫었다.
손톱을 후 불며 가을이 이죽댔다.
“수진이는 포기를 모르는구나?”
“······포기를 모르는 건 너지. 이가을.”
“나? 내가 명백히 우위에 있는데 포기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대단한 자신감이네.”
“주술사들은 나와 상성이 매우 나쁘거든. 지금 너도 마찬가지고.”
“지금까지 네 수준 보다 떨어지는 주술사를 만났나 보지.”
경인도 수진을 비웃기는 마찬가지였다.
“키키킥. 특히나 부적술은 가을이랑 더 안 좋지?”
한편 민준은 기관총을 다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제는 경인을 피해 이리저리 뛰느라 땀을 빼고 있었다.
“그나저나, 키킥. 민준 씨 어딜 자꾸 도망가.”
유민준이 헐떡이며 대꾸했다.
“징한 새끼네, 거. 사웅이랑 놀아라 좀.”
“가을이랑 내기했잖아요. 큭.”
“나랑 놀라잖냐.”
경인을 잡으러 나왔으나, 반대로 유민준이 사냥당하는 듯했다.
오수진과 이사웅이 막아주고 있긴 해도 도망치는 게 쉽지 않았다.
“시야라도 가릴 참인가 본데. 이런 건 가을이가 얼마든지 다 흡수했다가 뱉어내면 그만이라. 큭.”
유민준이 틈틈이 던져대는 자그마한 봉지들을 경인은 쳐냈다.
허공에서 봉지가 터지자 이가을이 잽싸게 한쪽 다리를 뻗어 하얀 가루를 거뒀다.
소량만 조금씩 흩날리는 정도였다.
분진폭발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건지, 경인은 인간의 꼴이 너무 우스웠다.
“크크큭. 소용없다니까요. 민준 씨.”
숨을 내몰아쉬며 유민준이 반문했다.
“왜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크큭. 택도 없다고 할 걸 그랬나? 분진폭발을 일으키려면 얼마나 가루의 양이 많아야 하는지 알아요?”
“난 문과라. 계산은 네가 하지?”
사웅은 경인이 민준을 향해 내려치는 봉을 흘려냈다.
그리고서 파박, 빠르게 다가가 그의 얼굴에 장을 날렸다.
“야, 어디 보냐? 너 여유 좀 있나 보다?”
비틀거리는 경인의 코가 뭉개져 있었다.
“······사웅 씨 곱게는 못 죽겠네.”
“어디 해 봐. 븅신.”
유민준은 뒤로 쑥 빠져서 소리쳤다.
“이사웅 화이팅!!”
피식 웃으며 사웅이 달려들었다.
경인은 왠지 모르게 좀 전보다 사웅의 손이 매섭게 느껴졌다.
이 자식 설마, 벌써 기파(氣波)나 기공(氣功)을 쓸 줄 아나?
박투술(搏鬪術)에 밀리는 듯해 경인이 외쳤다.
“이가을!!! 여길 좀!!크악!”
갑작스럽게 사복검이 촤악 날아와 경인의 몸을 묶었다.
당황한 경인이 상체를 뒤틀었으나, 검날이 살을 파고들었다.
무덤덤하게 수진이 말했다.
“움직이면 다친다.”
“크하하. 이가을 아까우니까 얼른 내 피를······?”
여전히 가을은 대꾸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가을은 몸이 무거웠다.
토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녀의 다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젤리처럼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불현듯 가을의 피부 곳곳이 울룩불룩 징그럽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무언가, 몸 안에서 맴돌며 팽창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무언가 잘못된 걸 인식한 가을은 제 안에 맴도는 불순물을 토해내려 했다.
하지만 노란 종이들이 입을 틀어막는 게 더 빨랐다.
“폐(閉).”
“읍!!!”
“봉(封). 송곳 놀이는 여기까지.”
빠르게 움직이던 피로 만든 다리들은 야구공만 한 알갱이들이 가득 차 둔탁하게 꿀렁댔다.
이가을은 꼭 엉킨 개구리알을 잔뜩 달고 있는 모양새였다.
언뜻 푹 퍼져 뭉그러진 반죽처럼 보이기도 했다.
환 공포증이 없는 사람도 생길 지경으로 무척 끔찍한 모습이었다.
오수진이 여유롭게 손을 내저었다.
“금(擒).”
허공에 떠오른 구에서 검은 팔들이 잔뜩 쏟아져나왔다.
손쉽게 가을을 짓눌렀다.
그리고서 팔들은 분열하며 경인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가을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촘촘하게 경인을 감싸더니 이내 그는 검은 팔들에 의해 전신이 구속되었다.
한숨을 돌리며 유민준이 경인을 향해 물었다.
“혹시 너희도 과학 수업 같은 거 하나?”
- 작가의말
분량이 다소 길어졌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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