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지옥 난이도의 조별 과제(3)

경인은 유민준에게 대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검은 손이 경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거기다 더해 사웅이 씨익 웃으며 뛰어올라 무릎으로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빠각! 소리가 울려퍼졌다.
축 늘어진 경인은 흰자가 보이게 눈이 뒤집혀 있었다.
수진은 힐끗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볼 게 많은데 기절시키면 어떡해. 이가을은 말할 상태도 아닌데.”
이사웅은 핏기를 닦아내며 씨익 웃었다.
“그냥. 이 새끼 좀 재수없지 않았냐?”
유민준은 숨을 고르느라 방호복의 헬멧 부분에 하얀 김이 가득 서렸다.
그걸 본 수진은 주술을 펼쳤다.
공기 중의 가루가 허공에서 모여 덩어리가 되더니 팟! 하고 사라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유민준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
얘는 공기청정기가 없어도 되겠다, 라고.
수진이 두 사람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둘 다 이제 그거 벗어도 돼.”
파하, 소리를 내며 방독면을 벗는 사웅을보며 유민준이 수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정말 안 써도 되는 거였어?”
“난 괜찮아.”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수진에게 있어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존재였다.
“······.”
“안 죽어.”
이제야 궁금한지, 사웅이 질문했다.
“아 맞다. 이가을은 대체 왜 갑자기 저런 거야? 그리고 이가을이 가짜란 건 또 뭐고.”
수진은 사웅에게 대꾸하지 않고 손을 휘저어 무언가를 또 하고 있었다.
깨진 창문과 무너진 돌벽을 복구하는 듯 보였다.
유민준이 먼저 사웅에게 대답했다.
“수정토나 워터비즈라고 들어봤어?”
사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더라?”
“고흡수성 수지(SAP)라는 게 있는데 인간 세계에는 가끔 화분 장식이나 뭐 그런 거로 쓰거든? 아기들 기저귀라든가 뭐······.”
얼마 전 유민준이 한국 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전공 수업을 할 때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과학 수업을 한다면>을 주제로 한 사람씩 발표를 이어갔다.
그 중 신지훈은 ‘워터 비즈(수정토)를 이용한 워터볼 만들기와 천연 방향제 만들기’를 제안했다.
발표자 외의 나머지 학생들은 비판과 평가를 해야 한다.
당시 서현이 위험성을 지적했었다.
“몇 년 전에 어린아이들이 질식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안전사고 발생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래서 제가 수업 타겟층을 고학년으로 설정했죠.”
“심지어 성인들도 온라인에서 관심 좀 끌겠다고 배수구를 막히게 했던 경우도 있던데요. 그래서 어린이 안전사고에는 어떻게 대응하실지 궁금합니다.”
“그런 건 극히 일부의 사례죠. 일반화하긴 무리가 있는 거 아닐까요.”
“게다가 미세 플라스틱 성분이라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 환경에도 마찬가지고.”
“한서현 학생은 일회용 생리대 안 써요?”
“······씁니다.”
지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죠?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뭘 못 배우죠. 안 그래요?”
하긴 나 어릴 때 개구리알 키우기라며 문방구에서 팔았었는데.
어쨌든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신지훈과 한서현의 공방을 재밌게 지켜봤다.
“제 질문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실험 중 혹은 수업 후 안전사고에 대응하는 방비책이 마련되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각자 재량에 맡기는 것도 필요하죠.”
“그건 교사가 하기엔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점수 잘 받겠는데?
내가 보기엔 서로 잘 대답하는 거로 보였다.
그런데 왠지 신지훈은 점차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니, 수업 끝나면 부모가 책임져야지 않나?”
서현이 말을 이었다.
“그럼 안전사고에 대한 방비책은 없다는 걸로 받아들이면 되나요?”
“그, 아이들에게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는 실험 태도를 학습시키면 됩니다.”
“네.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지금 신지훈 학생이 준비 온 양이 물과 만나면 부피와 무게가 상당할 텐데요. 실험 후 폐기는 어떻게 진행하실 예정입니까.”
우수 사례로 선정되면 다 같이 실습해보는 건 물론이고 가산점을 준다고 했다.
자신감으로 신지훈은 고흡수성 수지를 5kg이나 사 왔었다.
“실험용은 대용량이 싸니까 그냥 들고 온 예시라고 했잖아! 요.”
“후처리도 문제란 걸 지적하는 겁니다. 요즘은 아이스팩에서도 고흡수성 수지 사용 비율을 줄여가는 추세······.”
“그냥 신소재 공부하는 건데 뭘 그렇게 따져, 따집니까.”
수업이 끝난 뒤 지훈은 BB탄 크기의 고흡수성 수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아마 우수 사례는 포기한 모양.
나는 나중에 모쿠모쿠에게 똑같이 시연해줄 생각으로 되는 대로 많이 달라고 했더니, 지퍼백 두 개 분량이나 담아줬다.
그러나 나는 그걸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다.
산더미 같은 과제에 바쁘기도 했고, 온가람에게 사격 훈련을 받느라 정신도 없었다.
그날 일이 떠오른 건 창문 쪽 벽이 무너질 때였다.
차분하게 유민준은 이가을을 관찰했다.
이가을은 돌을 막아낸 잔해 일부를 입으로 뱉었다.
입보다 큰 불순물을 뱉어내는 그녀는 일순 무방비해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손톱만 한 콘크리트 조각 몇 개와 모래 알갱이가 그녀가 다리 속에 고스란히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아마도 나중에 처리하려는 듯 보였다.
유민준이 보기에는 사웅과 수진이 밀리는 거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문득 온가람이 준 기관총에 고흡수성 수지를 넣어서 쏘면 어떨까 하고 상상했다.
비록 진짜 탄환을 사용한 건 아니어도 유민준은 사격 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랬더니 온가람은 에어소프트건을 종류별로 잔뜩 넘겨줬었다.
온가람이 어릴 때 쓰던 거라고 했다.
총알 빼고는 구성과 리코일이 실제 마탄 총기와 거의 흡사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전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유민준도 이게 통할지는 잘 알 수 없었다.
SAP는 불어나는 데 시간이 꽤 소요된다.
아마 택도 없을 수 있다.
그래도 살려면 할 수 있는 건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피부를 보호할 만한 게 있을지, 아공간 인벤토리에 검색했다.
착용 불가라고 뜨는 것 외엔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방탄복], [방화복], [방호복]
A급 방탄조끼에, 그중 Lv.S라고 써 있는 방호복까지 꺼내 입으니 제법 두툼하다.
몸이 조금 둔한 기분이긴 했다.
하지만 살점이나 피를 빼앗길 가능성을 낮추는 게 낫다.
다음으로 아공간에 대충 넣어둔 고흡수성 수지를 검색했을 때였다.
[고흡수성 수지(SAP) (2.14kg)]
[유민준이 신지훈에게 양도받은 것.
흡수율 200배.
물에 닿으면 투명해진다.]
연관된 물품으로 바로 아래엔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하이퍼앱소번트 폴리머(HAP) (46kg)-제작 유민하]
유민준은 재빨리 설명란을 읽었다.
[유민하가 교내에서 몰래 키우는 반려 식물을 위해 사용하고 남은 것.
분말 형태이다.
흡수율 6170배.
토양 수분 보유력 향상.
식물 생장 촉진.
생물에 대한 안정성 높음.
.
.
.
*흡입 주의*
다량 사용 시 LV. D 이상의 방호복 혹은 방독면 착용 권장.]
웬 반려 식물······.
유민하는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건가 싶었지만, 그 생각은 나중 일이다.
HAP를 조금 꺼내 보니 입자가 고운 가루였다.
<운동과 영약> 수업 재료로 사두었던 밀가루 포대와 지퍼백도 꺼냈다.
유민준 본인한테도 얼마나 해로울지 모르는 일이라, HAP를 밀가루에 아주 소량 섞어 지퍼백에 넣었다.
거대한 탄창에는 SAP를 와르르 쏟아 넣었다.
제일 먼저 소비될 위층엔 기존의 BB탄을 넣었다.
도진혁한테 배운 트랩도 던지듯 설치했다.
물론 화약 대신 밀가루를 썼다.
이야기를 듣던 이사웅은 응급처치를 하던 손을 잠시 멈췄다.
놀란 눈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되물었다.
“아까 총알처럼 쏜 게 SAP라는 거고, 봉지에 넣어서 던진 게 밀가루랑 너희 누나가 만든 HAP 가루가 섞인 거였다고?”
“응. 시간 없어서 손으로 대충 쓸어 담았지, 뭐.”
“인간들은 별걸 다 만드는구나. 그렇게 금세 피가 쭉쭉 흡수되고.”
“오수진이가 주술 걸어줘서 효과적이었지. 원래는 그렇게 빨리 안 부풀어.”
유민준은 수진에게 탄환이 터지지 않고, 기존보다 더 빨리 물을 흡수하도록 주술을 부탁했다.
잠깐의 틈이었지만, 수진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무척 작은 목소리로 티 안 나게 주술을 걸어주었다.
-‘인(韧), 극(剋), 가(加), 적(寂), 회(廻).’
주술은 평소라면 시간이 걸릴 과정을 순간적으로 진행시켰다.
게다가 이가을은 천성이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거 같았다.
오수진이나 이사웅은 견제해도 유민준은 먹거리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유민준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실제로 가을은 어차피 나중에 다 뱉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싸움 자체를 일종의 유희처럼 여기는 중이었다.
비비탄이라고 여긴 이후부터 가을은 유민준이 아무리 플라스틱 총알을 쏘아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간이 느릿하게 던지는 밀가루 봉지 따위에 흐트러져서 사웅에게 처맞는 경인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다 흡수했다.
어차피 그녀에게 수진도 대단치 않은 주술사로 보였다.
매개로 부적을 꼬박꼬박 이용하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러나 그건 가을이 수진을 간과하고 있던 거였다.
- 작가의말
이번 회차가 다소 길어지는 듯해 2화로 나눠 업데이트합니다.
고흡수성 수지(SAP, Super Absorbent Polymer)에 관한 건 뇌피셜이 섞여 있습니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3794&cid=58940&categoryId=58956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4041&cid=60229&categoryId=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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