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을 죽여라

“주군. 계획은요?”
적색 기사 미하일이 이반에게 작전 계획을 물었다.
“계획? 잠시 기다려라.”
“주군에게 계획이 있을리가 없죠. 그냥 뛴 겁니다. 이제 끝이에요. 지긋지긋한 소환수 생활도. 다같이 레프의 안식처에 가는 수 밖에 안 남았다고요.”
홀스가 작은 소리로 이죽거리며 비아냥 거렸다. 미하일은 홀스의 이야기를 제지했다. 홀스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소환수가 되고 나서 부터 성격의 비뚤어짐이 점점 커져갔다.
그는 주군을 멍청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하일은 주군에게 큰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주군이 한 일에 결과가 나쁜 것은 없었다. 오직 자신들이 휩쓸려 죽은 것 말고는···.
“홀스, 충성심을 보여야 할걸···.”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아닙니까? 저승 갈 사이에 무슨 충성이···.”
“난 죽음의 신 레프를 직접 보는 사이라고···. 잘 생각해 봐. 어떤 지옥이 제일 괴로울지. 괜찮은 걸로 하나 골라보라고. 레프에게 잘 말해 줄테니 말이야.”
“헐···.”
홀스를 가고 싶은 지옥을 고르는 사이에, 이반은 토메르가 말한 마을 언덕을 보았다. 언덕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관목을 따라 위로 이동했다.
“대부분 마을로 돌아가고, 고블린 경계병들은 스무 마리 정도만 남았습니다.”
“미하일, 계획은 간단해. 너희들은 나를 지키고, 안드레이는 마력을 아낀다.”
“주군은 어찌 하실 생각입니까?”
“드라칸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느냐.”
‘저렇게 정의로운 분이셨나?’
미하일은 잠시 침묵했다. 아무래도 이반을 오해 한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밤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소리가 들리면 나머지 고블린들이 몰려 들 것입니다.”
그사이 토메르가 시기의 부적절함을 토로했다. 시야가 잘 보이는 대낮에 50명 이상의 고블린들과 5명의 전투. 이쪽도 마법사가 있었지만, 마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상대편에는 고블린 주술사가 있었다. 시기와 장소가 좋지 않았다.
“밤, 밤을 왜 기다려. 내가 만들면 되지.”
이반은 자신있게 말을 던지고, 관목 위로 상체를 빼꼼 들더니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해골 그리모어인 메멘토를 들고 명령 했다.
“메멘토여! 밤이 필요하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해골의 뼈턱이 덜커덩하고 열리더니 신에게서 선물로 받은 검은 안개가 스르륵 밀려 나왔다.
전 보다 더 빠르고 더 짙은 안개가 드라칸들이 꽂혀 있는 봉들로 흘러갔다.
“케르. 케르. 이상하다. 불인가?”
갑자기 바닥에서 검은 연기 비슷한 것이 흘러오자, 고블린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 그것의 정체를 떠들었다.
“불이 난건가? 어디?”
“불, 불꽃이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다. 연기 치고는 어둡다.”
안개를 지켜보던 고블린들은 이것이 자연 현상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계를 서던 고블린들이 뿔나팔을 불고 소리를 질렀다.
고블린 병단과 약속된 경계의 뿔피리 소리였다.
뿌우-. 뿌우-.
“적이다. 적.”
이리 저리 찢어지는 경고의 소리들을 듣고 마을 여기 저기에서 고블린 병사들이 튀어 나왔다.
고블린들은 주인이 없는 빈 집들을 제 것인냥 뒤지고 있었다.
경계병들의 소리를 듣고서야, 허둥지둥 반짝이는 물건들을 두고 나왔다.
뛰쳐나온 고블린들은 제각각 조잡스런 도끼나 창 따위를 들고 가죽으로 중요 부위들만 겨우 가린 차림이었다.
수십의 고블린들 사이로, 요란스런 복장을 평범한 고블린보다는 두배는 커보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성인 인간 정도의 키를 가진 고블린이 해골로 된 지팡이를 들고 뛰어왔다.
고블린 주술사였다.
그의 지팡이는 머리는 무언가의 해골로, 지팡이는 곧은 경추와 흉골이 굳어진 척추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르를 카륵. 카카카. 캬르리추라. 전사들이여 언덕 위의 인간들을 죽여라.”
지팡이를 흔들며, 이반을 향해 돌격을 지시했고, 주술사도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주술사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저 인간들 때문이다. 인간들을 죽여라는 것이었다.
이반은 저 멀리 주술사가 이끌고 오는 보충 병력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오직, 검은 안개로 언덕 위의 시야를 가리는 데에만 힘을 썼다.
안개가 짙어져, 언덕을 경계하던 고블린들을 모두 삼킨 후에, 검은 안개는 봉위에 매달린 드라칸들의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고블린의 키는 인간의 허리 정도였다. 검은 안개는 스믈스믈 몰려왔고, 고블린들의 머리까지 안개가 차오르자, 그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완전히 빛이 사라진 어둠 뿐이었다.
“나를 무등을 태워라. 케륵.”
몇 마리의 고블린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동료들의 허리를 밟고 올라서거나, 제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푸욱-.
“아악. 찌르지 마라. 케륵.”
하지만, 안개 안에서 시야를 잃은 경계병들은 저마다 무기들을 꺼내들고 공포심에 허우적 댔다.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서 안개들을 향해 검과 창을 찌르고 베어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케륵.”
“일단 이 안개를 벗어나자. 케륵.”
그들에게 이 안개는 달 없는 밤이었다. 안개는 흩어졌다 다시 채워졌고, 그들이 찌른 대상들은 적이 아닌 동료들이었다.
결국, 고블린들은 드라칸들을 버리고 안개 바깥으로 도망치려 했다.
세 기사와 안드레이는 그런 모습을 멍하게 쳐다 보고 있었다. 그때 도망치던 두 마리의 고블린이 관목 사이에 서있는 이반을 발견하고 달려 들었다.
“키륵. 저 놈이다. 저 놈이 안개를 퍼뜨리는 주술사다. 죽여라.”
“케르륵. 죽이자.”
서로 소리를 지르며 이반을 향해 한걸음에 달려왔다.
“홀스 나와 같이. 토메르는 주군을 지켜.”
미하일이 짧게 외치고 앞으로 튀어나가, 한 달음에 도끼를 치켜들던 고블린 하나를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도끼 자루가 잘라지며 머리통이 박살난 고블린의 눈이 안골 바깥으로 흘러 내렸다.
미하일의 검신은 흐르는 마력으로 붉게 빛났다.
“케륵. 끆.”
“이놈···.”
홀스도 고블린의 창을 쉽게 쳐내고, 발로 허리를 밟은 후, 머리를 깨끗이 잘라냈다.
입이 거친 것에 비해, 깔끔한 솜씨였다.
둘은 이반의 전위에 서서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막아섰다. 검은 안개가 자리를 차지한 언덕을 피해, 마을 아래에서 올라온 고블린들이 이반을 향해 돌진했다.
고블린다운 제멋대로의 행진이었다.
“저놈을 죽여라. 케륵.”
“달려들어.”
세 마리가 언덕 위를 뛰어 올라, 이반을 향했다. 짧은 소드를 든 두 마리와 창을 든 한 마리였다. 홀스와 미하일이 상대하는 사이에 창을 든 고블린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굴렀다.
홀스의 소드가 고블린의 머리를 노렸지만, 땅을 찍었고, 재수좋게 그것을 피한 고블린은 누가 검은 안개를 뿌려대고 있는 건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케륵.”
고블린은 한번의 도약으로 저 어린 마법사의 심장을 뚫는 창을 던지려 했다. 옆에 있던 거구의 기사가 던지려던 창과 함께 고블린을 베어 내려 했다.
고블린은 창을 놓고 뒤로 굴렀다.
수많은 전투의 경험이 자연스레 피하게 했다.
허리춤의 단검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기사의 발을 노렸다. 기사는 소드를 창처럼 찔러 고블린의 복부를 꿰뚫었다.
입에서 내장의 쓴 피들이 역류했다. 기사는 꼬치에 꽂은 염통을 빼는 모양으로 검을 휘둘러 고블린을 빼내었다.
세 기사들은 아직까지 고블린들이 이반에게 닿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만,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었다.
안드레이는 자신의 한번 뿐인 마법을 언제 펼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반이 한손으로 안드레이의 마법 시전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탐욕의 눈초리를 번들거리며, 해골을 머리 높이 들고 외쳤다.
“나의 새들이여. 먹을 것이 천지구나. 가서, 수확해라.”
더턱.
파닥. 파다닥.
뼈턱이 열렸다. 수 없이 많은 참새들의 그림자가 그 안에서 튀어 나갔다. 새들은 자유낙하 하듯이 그리모어에서 뛰어나왔고 검은 안개로 다이브 했다.
그리고, 시야를 잃은 고블린들의 창과 검을 피해, 바닥을 날았다. 그 비행은 드라칸이 매달린 봉 앞에서야 전함을 찾은 어뢰들 처럼 솟아 올랐다.
드라칸들은 복부의 출혈과 배고픔, 목마름 등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그 순간에 이반의 새들이 찾아왔다.
벌들이 꽃을 찾아 맴도는 것 처럼, 이반의 새들은 살아있는 드라칸들에게 달려 들었다.
숨이 멈출락 말락하는 드라칸의 피가 터져 흐르는 창자를 헤집고, 얼굴을 쪼았다. 사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잘 벼린 창칼이 아니라, 작은 부리 만으로도 가능했다.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있던 드라칸들의 목숨이 하나씩 밀려 떨어졌다.
“크악. 스으응.”
“고블린들에게 저주를···. 으아악. 스으응.”
“드래곤이여···. 캬악. 스으응.”
왜인지 모르지만, 매달린 드라칸들은 그것이 고블린의 탓인양 여겼다. 그리고 죽으면서까지 드래곤의 영광을 부르짖었고, 저주를 퍼부었다.
수십의 드라칸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이반의 소환수로 다시 태어났다. 소환수들의 어깨와 머리에는 이제는 동료가 된 참새들이 부리를 다듬었다.
“주군. 이제 한계입니다. 물러나야 합니다.”
미하일이 전방의 고블린 두 마리를 베어내고 세번째 고블린을 무기채로 차버린 후에 숨을 고르며 소리 질렀다. 홀스와 토메르도 밀려드는 고블린들을 쳐내느라 바빴다.
그들은 점점 뒤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언덕 위의 병력까지 마저 몰려 온다면 이제는 침엽수림 안으로 도주를 생각해야 했다.
안드레이는 전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언덕 위는 검은 안개로 덮혀있었고, 이반은 그들을 소환수로 만들려 했다.
언덕 아래에서는 고블린 주술사를 지휘관으로 하는 다수의 고블린들이 진격 중이었다. 고작 세명의 기사들로는 그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다만, 지대의 이점으로 이반으로 향하는 공격만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제 반격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반은 죽고 소환수들은 사라질 것이다. 신호가 오면 현재의 최대 전격을 적들에게 날리려 준비 하고 있었다.
이반이 미하일의 부름에 응하여 아래를 봤다.
“히익. 저렇게 몰려왔어. 언제 부터냐?”
“주군. 아까부터 말했습니다. 언제쯤이면 됩니까? 으윽.”
미하일이 동시에 세명의 고블린들로 부터 공격을 받으며 뒤로 밀렸다. 토메르가 잽싸게 하나의 손목을 끊어 내자, 미하일이 두번의 칼질로 다리에 부상을 입혔다. 죽일 틈은 없었다.
“후퇴. 뒤로.”
홀스가 외치며 한 발 뒤로 물러나자, 미하일이 그 다음, 토메르가 그 다음 뒤로 물러났다. 점점 물러나는 모양새였다.
언덕은 아직도 검은 안개로 뒤덮혀 있었다. 안개들 사이로 거대한 암석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드라칸 전사들이 제각각 자신의 무기들을 들고 무릎을 꿇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들은 파도치듯 그들의 모습들을 보여 주었다가 감추며 움직였다.
소환수가 된 드라칸의 수는 거의 삼십여명 정도였다. 그 이외의 드라칸들은 이미 죽었거나, 너무 심한 상처와 고통으로 소환수가 될 수 없었다.
큰 부상을 입더라도 죽기 전이라면 이반의 소환수가 될 수 있었지만, 혼이 붕괴된 경우에는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취급 되었다. 따라서, 소환 계약은 실패했다.
소환수가 된 드라칸들 위로, 참새들이 의기양양하게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하듯 때를 지어 날아 다녔다.
그 중의 몇몇은 편대 비행을 하며 위용을 자랑했다. 모두 이반의 애착 소환수들이었다.
“이쁜이들 돌아와.”
해골을 들고 새들을 소환 했다. 새들은 항공모함에 수납되는 전투기들처럼 이반의 그리모어 안으로 쏙쏙 들어왔다.
이반은 마치 황제라도 된 냥, 언덕 위의 자신의 군대를 향해 외쳤다.
“드라칸 전사들이여. 일어나라. 고블린들을 죽여버려.”
“복수. 복수. 고블린들에게 피의 복수를···드라칸.”
눈에서 시뻘건 안광을 흘리며, 드라칸들이 안개 속에서 일어섰다.
자신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은 글을 쓰는 기쁨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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