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순식간에 여러 대를 맞은 사내는 주저앉았다.
그는 분명히 카타나를 휘두르려 했으며 리볼버를 뽑으려고도 했다.
또한 섬광탄도 날리려 했으나 섬광탄은 애꿎은 허공에서 펑하고 터져버렸고, 리볼버는 뽑지도 못하고 손목이 부러져 버렸다.
그가 이를 갈며 독을 쓰기 위한 행동을 하려는 찰나 이미 그의 패배가 확정됐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 위에 있는 봉을 보며 정신을 퍼뜩 차렸다.
확연한 실력 차이.
“손속을 봐줬군.”
“....?”
“일부로 아이템을 착용하시지 않으신 것인가? 그것 또한 훌륭한 계책. 한 수 배웠습니다.”
한준형은 승리했다.
게다가 너무나 압도적으로.
이 정도로 압도적으로 끝낸 건 조에서 처음이었다.
당연히 고준철과 염동진인도 한준형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한준형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강현우가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옆에 막기도 황당한 듯 한준형을 바라봤다.
“현우가 의례 치켜세웠거니 했건만, 상당한 실력자셨군요. 제가 아까 했던 행동을 사과드립니다.”
그가 정중히 다시 인사했다.
“두 번이나 구해주셨다니까요.”
막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래도 이건 많이 강하신데?”
강현우는 붉은 가면의 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굳이 입을 열진 않았다. 그의 목에 대한 처리는 나름 은밀하게 해결해야 할 내부의 일.
한준형은 이어서 이어지는 대전들을 지켜봤다.
물론, 중간중간 정지시켜가면서.
다양한 헌터들이 싸우는 모습을 눈에 담아뒀다.
적어도 파주에서 각성을 노리는 실력 꽤나 있는 자들이 모인 장소.
그 자체가 정보들이었다.
그들의 능력과 어떻게 싸움을 해 나가는지를 남들보다 확연히 넓은 시간 폭으로 한준형은 배워나갔다.
그렇게 몇 차례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
반반한 여비서가 한준형을 찾아왔다.
“한준형 헌터님이시죠?”
“아, 예.”
“잠시, 올라와 주실 수 있습니까?”
강현우와 막기가 궁금하다는 듯 쳐다봤다.
“한준형 헌터님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염동진인께서 잠시 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 말에 둘이 얼어붙었다. 한준형만 보고 싶다니 막기가 엄청 궁금한 모양이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준형은 그대로 여비서를 따라 올라갔다.
대기실 안쪽 방문을 열고 한준형이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다 보이는 전광판 거기의 한 가운데에 노인이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평범한 노인처럼 보이지만 한준형은 아까의 위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염동진인 최기규는 진각을 이뤄낸 자였다.
게다가 저 나이까지 헌터 활동을 했으니 경험도 많겠지.
“오, 왔는가. 한준형이라고 했나?”
“예.”
“가까이 한 번 가보셔요.”
여비서가 말했다.
최기규가 흥미로운 얼굴로 한준형을 바라봤다.
한준형은 생각했다.
‘나보다 뛰어나 보이는 자들이 많이 보이긴 했는데.’
한준형도 각 경기를 볼 수 있는 대로 전부 큰 시간 폭으로 학습한 상황. 한준형이 적어도 그 경기에서 보여준 정도로는 염동진인의 눈길을 끌기엔 부족하지 않았나가 현재 그의 결론.
그러나 염동진인은 바로 옥석을 가려냈다는 듯이 말했다.
“가까이서 봐도 긴가민가 하는군.”
“무엇을 말입니까?”
염동진인은 손자 보듯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먼 후배에게 장난 하나 쳐볼까? 별건 아닐세. 해보겠는가?”
한준형은 그다지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이럴 땐 예의 바르게 말하는 게 좋겠지.
한준형이 정중히 하겠다고 하자 그가 기분이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좋아, 그러면 내 장난을 피하면 선물을 하나 주겠네.”
“무슨 장난입니까?”
“음. 이거지.”
그가 손을 이리저리 돌리자 문구에서 뭔가가 집약되는 게 보였다.
“10초 뒤에 저게 자네를 붙잡으려고 할 거네. 정확히 두 번 움직일 것이야.”
“그렇군요.”
“자네는 그걸 피하기만 하면 되네.”
한준형은 입구에 있는 여비서 옆에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굴곡을 쳐다봤다.
그리고 10초뒤.
그것이 쏜살같이 한준형을 향해 날아왔다.
한준형은 곧바로 시간을 정지했다.
잠깐, 정말 잠깐 사이였는데 벌써 코앞까지 도달해있는 굴곡진 공간.
‘아까보단 의식의 압박이 작군.’
한준형이 시간 정지를 일으키고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반대 요인은 염동진인의 압박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런 조짐이 일정한 게 아니고 장난 이라는 염동진인의 말마따라 압박이 약했다.
한준형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 생각을 하고 굴곡진 손아귀가 노리는 곳을 비켜서서 몇 걸음까지 걸어간 뒤 시간 정지를 풀었다.
손아귀가 빈 허공을 움켜쥐었다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한준형은 다시 시간을 정지했다.
여비서의 눈동자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첫 번째 피한 것을 여비서는 봤기 때문이겠지.
여비서도 한준형 생각엔 제법 솜씨가 있는 헌터로 보였다.
어쨌든 두 번째 굴곡의 돌격도 한준형은 손쉽게 거리를 벌려냈다.
이번엔 완벽히 피한다기보단 살짝 연기를 하기로 했다.
몸을 날리면서 정지를 풀었다.
‘잘 됐겠지?’
바닥을 굴렀다가 일어나는 한준형.
염동진인이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이런. 이런 희귀한 것을 봤나.”
“....”
“긴가민가했는데 역시나 특질계로구나. 게다가 견식하기 어려운 특질계라니.”
“그 말은 제가 특질계 중에서도 특이하단 건가요?”
한준형이 되묻자 그가 기억에 잠기며서 말했다.
“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공간을 다루는 특질은 분명 극소수지.”
‘먹혔군.’
한준형의 연기? 때문인지 염동진인은 공간을 다루는 특질이라고 확진을 내린 모양이었다.
“아, 그렇지. 그렇지. 선물을 주기로 했지.”
염동진인이 약속한 선물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를 뒤졌다.
확연한 크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상대하기 어려운 크기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염동진인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한 가지를 잡고 손아귀에 놓았다.
옥처럼 깨끗한 비늘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공중에 붕 뜨더니 한준형의 코앞에 왔다.
한준형이 손을 내밀자 툭 하고 떨어졌다.
“옥령사황편(玉鈴蛇皇片)이야. 거대한 놈이었지?”
노인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모양이었다.
여비서가 재빨리 나섰다.
“옥과 같은 거대한 구렁이 옥사의 비늘 조각입니다.”
“오, 그래. 맞아. 성능은..”
노인이 다시 기억이 안 난다는 듯이 말하자 여비서가 덧붙였다.
“좋지 않은 자가 은신으로 몰래 접근할 시에 그 비늘이 변할 거에요. 그리고 이 비늘 조각에 공력을 집어넣으면 잠시 강력한 방어막이 생깁니다. 위험한 순간에 요긴하게 쓰실 수 있을 거에요.”
한준형은 옥령사황편을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보는 희귀한 재능이니까 말이야. 내 예전 생각도 나고 말이지.”
염동진인은 다시 기억에 잠긴 듯 했다.
“솜씨를 보아하니 능력을 최대한 숨기고 무공을 연습했구나. 그리고 그 무공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정도라면 필시 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의 말엔 특질계가 무공을 배우기 힘들고 정진하기 어렵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 정도였나?’
노력을 상당히 하긴 했지만 염동진인이 말하는 것만큼은 아니었던 게 맞았다.
하기야 저게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해도 한준형이 아까 보여줬던 압도적인 무력은 결국 그의 시간 정지를 일부 이용해 만들어낸 결과.
그러니 그의 생각엔 한준형이 보기와 다르게 생사를 숱하게 넘어왔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였다.
“그래. 한 가지 더 부탁을 할 수 있을까?”
“.....”
“너무 얼굴 굳히지 말게. 그래도 내가 선물을 하나 주지 않았는가.”
“일단 듣고는 보겠습니다.”
“좋은 강단이야.”
염동진인이 다시 미소 짓고는 말을 덧붙였다.
“조를 바꿔서 내 손녀와 한번 붙어보도록 하게.”
“그 말씀은 제가 지라는..?”
“아니지. 이겨보라는 거지.”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