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저기요, 아저씨!

어느새 강의 북쪽과 남쪽을 잇는 다리까지 걸어왔다. 학교에서 여기까지는 꽤나 먼 거리인데··· 한 동안 아무 생각없이 걸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도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겠다. 술기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 모임에 희진이는 왜 오지 않은 걸까? 희진이도 아직 내가 불편한 걸까? 한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취업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였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취준생 생활로 매일 같이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밤이 되면 증상은 더 심해져 잠을 설치기 일수였다. 그럴 때면 오늘처럼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배회했다. 쓸쓸한 밤 풍경이 사람들로 활기찬 낮보다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면 불안과 초조함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날과 같이 잠이 오지 않아 길을 배회하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자고 하던 그쯤 희진이도 나와 같이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일까···? 잠조차 이루지 못했을 정도로···?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던 것일까? 몇 년이나 지났지만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당시의 희진이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야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홀로 감성에 취해 만취 상태에서도 해 본적 없는 일을 저질렀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리움을 담아 희진이에게 메일을 보내 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답장이 없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하나같이 힐난할 줄도 알고 있었지만··· 한번은 보내 보고 싶었다.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다음 날이 되자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희진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하지만 내심 기대했던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읽는 내내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북한 내용들이었다. 때때로는 날 한심한 사람처럼 여기는 것 같아 보였다. 손등을 찍고 싶을 정도로 비참했다. 남아 있는 미련마저 모두 버리길 원했던 거라면 희진이의 의도대로 됐다.
······그땐 그런 줄 알았다.
전부 지운 줄 알았는데··· 그때처럼 다시 희진이를 그리워하며 쓸쓸히 다리 위를 걷고 있다. 높은 다리 밑으로는 검은 강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슬쩍 보기에도 아찔해 보이지만 걸음이 멈춰지질 않는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그리움이 끈질기게도 내 마음 이곳 저곳에 남겨져 있나 보다.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 줄 알았는데··· 전부 지우기엔 무리였던 것일까? ······계속 걷고 싶다.
완공된 지 몇 십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 다리는 심하게 손상된 곳이 있는지 공사로 도로 하나를 통째로 통제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다리 중간쯤에 건설 현장 같은 곳이 보인다. 다리가 생긴지 꽤 지났을 테니 군데 군데 보수 공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다리위는 한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늦은 시간이라 하루 종일 다리위를 가득 매웠을 차량들도 보이질 않는다. 다리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조차 쓸쓸하다. 가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불어오는 강바람만 아니라면 생각에 취해 있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제각기 다른 안타까운 사연들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리 난관을 따라 쓰여있는 자살 방지 글귀들을 보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만 같다.
다리 중간쯤 다다랐을 때였다. 공사현장 근처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이 사람도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실루엣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실루엣의 정체가 쉰 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아저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좀처럼 미동도 없는 것이 불안해 보인다. 잘못 본 것이길 바라보지만 몰려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다.
아저씨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일정도로 가까워졌다.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설마 아니겠지? 119에 전화를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112···? 이러다 정말 뛰어내리면 어떡하지? 두 팔로 난관을 붙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확실하다. 지금 아저씨는 자살을 기도하려 하고 있다.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 소방차보단 경찰차가 더 빨리 올 것만 같았다.
“저기요, 아저씨!”
전화를 끊고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만 붙들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이다.
“저기요, 아저씨!”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저씨는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미소라니······ 오해했던 걸까? 이미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
아저씨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아저씨는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듯 아무 말없이 계속 미소만 짓고 있다. 그러길 잠시, 주먹을 쥔 왼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이것 좀 받아 주시오!”
가족에게 유품이라도 전달해 달라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아저씨에게 다가가 아저씨가 건네 주는 물건을 받아 들었다.
“이게 뭡니까?”
다시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죠?”
“필요할 겁니다.”
“저한테요?”
마치 아저씨는 내가 여기 올 줄 알았다는 듯, 다음 차례는 나라는 듯 아무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간 소름이 돋았다.
당황해할 사이도 없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듯 아저씨는 난관밖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저씨!”
본능적으로 아저씨의 팔을 붙들었다.
아저씨는 괜찮다는 듯 불안에 떨고 있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봐 주었다. 작은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저씨의 눈빛은 단호했다. 오히려 내가 아저씨의 필연적인 의식을 방해하고 있는 존재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저씨는 아저씨의 팔을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을 천천히 풀었다. 그리곤 망설임없이 난관 밖으로 넘어간 뒤 아무렇지 않게 난관을 잡은 두 손을 놓아버렸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거 마냥 그 광경을 그저 목도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두려워하는 내색이 전혀 없다니··· 두려움은커녕 바라던 바를 이뤄 행복해하는 표정이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 바닥나 있어서였을까? 무엇이 아저씨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저씨의 모습은 금세 아득히 검은 강물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물결이 이는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리와 강물 사이 중간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건 같아 보였다. 망연자실 다리 밑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있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도착했고 경찰관 두 명이 차에서 내렸다.
“선생님께서 신고하셨습니까?”
경찰이 날 부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뛰어내렸어요.”
“네? 누가요? 얼마나 지났습니까?”
아저씨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펼쳐 다리 밑을 가리키는 게 전부였다.
“김순경 빨리 구조대에 연락해!”
선임으로 보이는 경찰관 중 한 명이 다른 경찰관에게 소리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대가 도착했고, 다리 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현장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한동안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가까스로 오물거리며 알고 있는 만큼 경찰에게 설명했다. 경찰에게 모든 걸 쏟아내자 죄책감이 몰려왔다.
왜 붙잡고 있질 못했을까? 그래봐야 경찰이 올 때까지 만이었는데······
경찰관에게 내 연락처까지 알려주고 나서야 혼란스러운 현장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주말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최승준 씨 맞으시나요?”
“네, 맞는데요. 어디시죠?”
“여기 OO 경찰서입니다.”
아저씨를 찾은 걸까? 살아는 계실까? 아니면······ 어떻게 된 걸까? ······두려웠다.
그 일이 있은 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릿속으로 다리 위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그리곤 돌이킬 수 없는 내 행동들 하나하나를 후회하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아저씨가 살아있어야만 나 역시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남자분 찾으셨나요?”
“그래서 말인데요··· 경찰서로 잠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아저씨를 왜 붙잡아 두지 않았냐고 추궁하면 어떡하지? 방조죄? 그런 일이 죄가 되는 것일까? 아저씨는 죽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살 궁리만 하다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그게 말입니다··· 그 시간에 다리위에는 최승준씨 밖에 없었어요.”
“네?”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오후에 출석하셔서 이야기하시죠.”
최소한 방조죄로 경찰에게 추궁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기적이게도 경찰의 말에 안도감부터 먼저 느껴졌다.
그럼 내가 목격한 건 뭐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