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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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과몽
작품등록일 :
2024.05.14 13:06
최근연재일 :
2024.06.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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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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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마트 워치

DUMMY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돌 담장과 철문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서있는 재복입은 남자들.

약속한 시간에 맞춰 OO 경찰서에 도착한 모양이다. 익숙지 않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정문 앞에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눅이 든다. 예전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나도 TV에서 봤던 피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나 보다.

입구를 지나 본관 건물로 들어왔다. 건물의 연식을 가늠케하는 바닥에 깔아진 오래된 테라조 타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계속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고개를 들어 건물 출입구 오른편에 있는 안내 데스크를 바라봤다. 이 곳에도 재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서있었다. 겁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재복 입은 남자의 묻는 말에 성실하게 답변해주자, 내가 가야할 곳을 재복 입은 남자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생각보다 재복입은 남자의 적대적이지 않은 태도에 긴장감이 풀리는 듯했다. 덕분에 찾고 있는 사무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자 차갑고 낯선 광경에 나도 모르게 다시 움츠러들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경찰 몇명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용건을 물어봐 주었다. 그렇게 홍수에 떠내려가듯 통화했던 경찰관을 만날 수가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담당자의 말투에서 친절함이 묻어나오자 마음이 좀 놓인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말씀드렸던 대로입니다.”


경찰관은 남자의 신상을 확인하기 위해 다리에 설치된 CCTV를 전부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고 말했다.


“분명 쉰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인상착의 같은 거 기억하시나요?”

“인상착의요···? 그건 그때 출동하신 경찰분에게 전부 말씀드렸었는데요.”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말씀 못해주신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하시고 다시 한번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절차요···?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딱히 더 생각이 나거나 헷갈렸던 부분은 없습니다··· 아무튼 쉰은 넘어 보이는 남자 분이었습니다. 검은 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계셨었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키는 정확하진 않지만 170cm 정도의 왜소한 체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고는 딱히··· 그리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경찰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시나요?”

“혹시나 해서 그 주변에 설치된 CCTV까지 전부 다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긴 다리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확인하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요.”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실종신고도 접수된 게 없고······ 허위 신고로 밖에 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허위 신고라니요? 그런 장난을 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시겠죠······ 혹시 그때 많이 취해 계셨었나요? 출동했던 경찰들이 술 냄새가 났다고 하던데······”


경찰관이 매서운 눈초리로 흘겨봤다.


“그날 밤 모임이 있어서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정신은 멀쩡했습니다.”

“그럼 그 시간에 그곳엔 왜 가신 거죠?”

“그··· 그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헤어진 첫사랑이 그리워 걷다 보니 거기까지 가게 됐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봐야 술 취한 사람의 주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술에 취해서 허위 신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관성 있게 진술해 주시기도 하시고··· 다만··· 실종신고도 없고 보여지는 자료들도 그렇다 보니 허위 신고로 처리할 수밖에 없네요.”


조만간 즉결심판이 있을 거라고 했다. 대부분 벌금형에 처해지고 금액도 크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경찰서를 빠져나오자 유난히 햇살이 눈부셨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만 내면 모든 게 끝 난다. 더 이상 죄책감 같은 감정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한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며칠간 잠을 설쳐서 인지 졸음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심적으로 꽤나 편안해진 모양이다.


얼마나 누워있었던지 허리가 아파온다. 눈을 뜨고 휴대폰을 먼저 집어 들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다음날 아침이다. 12시간을 넘게 잠들어 있었다. 휴대폰엔 친구들이 보내온 메시지이며 광고, 업데이트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보통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다. 많은 메시지 중에 유나에게 온 메시지도 섞여 있다.


[엄마가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오래.]


얼마만에 받아본 유나의 연락이지?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언제까지 가면 될까? 내가 뭐 준비할 건 없어?]

[진짜 올 거야?]


조금전에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으면서 지금에 와선 진짜 올 거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가야지. 어머님 꽃 좋아하시니까 꽃다발 사 들고 갈까?]

[올 거면 6시까지 집으로 와.]

[알았어. 그럼, 아버지님 좋아하시는 양주랑 어머님 좋아하시는 꽃다발 사가지고 갈게.]

[그러던지 말던지···]


화가 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집에 초대한 걸 보면 파혼할 마음까지는 없나 보다. 상견례 이후 한동안 유나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결혼 준비를 할 짬도 못 냈으니 뭐···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인만큼 선물 같은 것들로 가족들의 환심을 사 유나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겠다.

먼저 유나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기 위해 옷장문을 열었다. 몇 벌 되지는 않았지만 그 중 유나가 좋아했던 깔끔하고 단정한 옷들을 고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다 며칠 전 동창회때 입었었던 검은색 자켓에 손이 갔다.

아직도 잠이 덜 깬 걸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검은색 자켓의 오른쪽 호주머니가 볼록하다. 믿을 수가 없다. 분명 그곳엔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그럼 호주머니 속에 있는 건 뭐지? 조심스럽게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호주머니에서 묵직한 무엇인가가 만져진다.


스마트 워치······


익숙지 않은 물건이다. 손목에 땀 차는 게 싫어 어릴 적부터 손목 시계를 멀리했다. 더구나 휴대폰이 있는데 굳이 스마트 워치를 돈 아깝게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나가 스마트 워치를 커플룩으로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반대를 했었다.

······이게 왜 내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거지? 헛것을 본 게 아니다. 그런데 CCTV에는 왜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던 거지? 설마··· 다리 위에 있던 아저씨가··· 머리끝이 쭈뼛쭈뼛 솟는 것 같다.

정말 아저씨가 강물에 빠진 거라면···? CCTV가 고장이라도 났던 거라면···?

서둘러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그때 그 아저씨한테 받은 스마트 워치를 찾았어요.”


전화를 받은 경찰은 단호하게 고장 난 CCTV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곤 귀찮다는 듯 어디서 주운 건지 잘 생각해보고 분실물 보관소에 신고하라고 일갈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서운함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감정이 느껴졌다.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당혹감에 등줄기와 이마엔 식은땀까지 흘렀다. 어제 경찰서에서 봤던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경찰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날 난 술에 많이 취해 헛것을 본 것 일지도 모르겠다. 스마트 워치도 술에 취해 길에서 주운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처럼 권위에 대한 복종일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찌되었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씁쓸한 마음에 스마트 워치를 자켓 호주머니에 다시 구겨 넣고 집 밖을 나섰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유나의 집에 도착했다. 냉랭하게 대하는 유나와는 달리 유나의 부모님은 날 환대해 주었다. 어머님은 어떻게 알고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보라색 꽃을 다 사가지고 왔냐고 좋아해 주셨고, 아버님은 비싼 양주 선물에 무리한 거 아니냐며 오늘 같이 전부 마시고 집에 가라며 스스럼없이 맞아 주셨다. 그 광경이 나쁘지 않았는지 유나의 굳은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는 듯 느껴졌다.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더 마시면 여기서 자고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가족이 될 건데 자고 가도 되지. 안 그러냐?”


아버님께서 유나와 어머님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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