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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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과몽
작품등록일 :
2024.05.14 13:06
최근연재일 :
2024.06.13 17:05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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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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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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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5. 찬희의 첫사랑 (2)

DUMMY

자정이 되었다. 그리고······

기숙사 문이 닫혔다.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찬희야, 어디야?”

“밖이야···”

“혹시··· 혼자 있는 거야?”


승준이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장난끼가 일순간 사라져버렸다.


“방에는 왜 안 들어왔어?”

“못 들어가겠더라고···”

“지금은 어딘데?”

“카페테리아··· 벤치···”

“잠깐만 기다려.”


10분 뒤. 기숙사 점호가 끝나고 아무도 나올 수 없는 기숙사 안에서 승준이가 다급하게 뛰어나오고 있었다.


“너 누구야!”

“몰라요!”


승준이 뒤를 경비 선생님이 쫓아 나오고 있다.


“찬희야! 뛰어!”

“뭐야?”

“일단 뛰어!”


기숙사와 학교를 잇는 급경사를 정신없이 뛰어내려왔다. 경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허겁지겁 달렸다. 거친 호흡으로 기도가 타 들어 가는 것 같았다. 입안에서 피 맛까지 맴돌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덧 학교 정문이 눈앞에 보였다.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우리는 거칠게 내쉬어지는 호흡을 먼저 가다듬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혼자 내버려두면 안될 것 같아서···”

“그래서? 기숙사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거야?”

“어!”

“강제 퇴실 조치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몰라! 어떻게 되겠지?”


이렇게 무모한 녀석은 아닌데···


“싫대?”

“어?”

“고백했을 거 아니야?”

“···어.”

“그러니까! 싫다고 했냐고?”

“······어.”

“이유가 뭐래?”

“이유···?”


이유가 뭐였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거절인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 한 걸까?


클럽을 나온 은영이와 야외 테라스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어? 여기도 있네!”


우물쭈물 거리는 날 대신해 은영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은영이의 말에 은영이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포스터다.


“이거 몇 년 전 광고를 따라한 거 아니야?”

“맞아. 이름만 바꾼 거 같아.”

“이거 보고 은영이라는 사람이 고백 받는 줄 알았다니까! 클럽 이벤트일 줄 누가 알았겠어! 거기에다가 ‘은영이에게’ 노래까지. 아이디어가 기발한 것 같아.”

“어, 어.”


차마 내가 준비한 거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 쑥스러웠다. 며칠간 고심해서 세운 계획들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이들 장난같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근데, 은영아···”

“왜?”

“그게··· 말이야··· 너도··· 눈치챘겠지만···”

“뭘?”

“···나 ···너··· 좋아해.”


순간 우리 사이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판결을 기다리는 피의자처럼 가슴을 졸였다. 그것보단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 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이 졸여지는 건 매한가지다.


“···미안해.”


미안해···? 거절을 말하는 거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온몸이 굳어버렸다. 감기에 걸린 것 마냥 온몸에 열까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아니면 기숙사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한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은영이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다른 사람이 이미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걸까? 아직은 모르겠다는 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벤치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숙사 문이 닫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경비 선생님이 안 들어갈 거냐고 몇 번 물어봤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숙사 문이 닫혔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 승준이에게 해줄 만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냉소와 사랑 양극단 사이 어디쯤에 은영이의 마음이 있는 걸까?


“이제 끝난 것 같아.”

“뭐가 끝나? 이제 시작인데!”

“시작···? 미안하다잖아···”

“아직은 잘 모르겠다잖아!”


새벽 6시가 되면 아침해가 건물들 사이로 얼굴을 삐죽 내밀기 시작한다. 기숙사 문이 열릴 시간이다. 승준이와는 기숙사 문이 열릴 시간까지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로 서로의 답이 맞다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며 술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기숙사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경비 선생님에게 찾아가 사정을 설명 드리고 사죄를 구했다. 하지만 사죄만으로는 승준이의 기숙사 무단 이탈이 전부 수습되진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여기저기 부려온 오지랖 덕분에 승준이의 강제 퇴실 조치까지는 막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일은 과거가 되었고 한동안 기숙사 식당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가 없었다. 은영이와 마주치는 것도 싫었지만, 그날의 무모했던 일들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더 싫었다. 심란한 마음은 내 발걸음을 기숙사 로비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 이곳도 더 이상 내게 안식을 주지는 못했다. 소파에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은영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토록 찾아 헤맬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왜 이제서야 내 주변을 맴도는 위성처럼 은영이가 매번 나타나는 것일까?

오늘은 승준이가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며 오랜만에 아침 먹으러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래 이제 곧 겨울 방학이다. 고작 해봐야 한달도 안 남았는데··· 이제 학교를 떠나면 한 2년쯤 후에나 다시 오게 되겠지··· 이것도 모두 추억이다··· 방학을 하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은영이의 얼굴을 한번쯤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승준이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식판을 들고 배식대 앞에서 줄을 섰다. 여전히 은영이가 배식대 앞을 지키고 서있었다.


“안녕···”

“어, 찬희야.”


예전보다 어색한 인사가 오고 갔지만,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보면 은영이에 대한 내 마음이 정리가 덜 된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올 때였다.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은영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시간 괜찮아?]


아침에 건넨 인사가 너무 어색했던 탓일까? 그래서··· 좋은 친구로라도 남고 싶다는 말을 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오늘은 수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로 차 있는 날이다. 온통 은영이에게 온 문자 생각으로 수업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대신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약속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정문 앞으로 먼저 나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6시가 넘어가자 학교 앞에 있는 건물들이 하나 둘 오색찬란한 불빛들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부러운 건 아니지만, 운명일지도 몰랐던 그 아이와 연인이 될 확률이 0에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게 느껴졌다.

정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은영이가 보인다. 이제 7시가 되었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은영이가 있는 정문으로 걸어갔다.


“언제 왔어?”

“좀 전에···”

“어디 갈까? 저녁 먹었어?”

“아니 아직···”

“이 시간까지 저녁도 안 먹고 뭐했어? 저녁 먹으러 갈래?”

“너는 먹었어?”

“나는 기숙사 식당에서 먹었지. 근데 요즘 기숙사 식당에는 왜 안 오는 거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얼굴이 붉어졌다.


“밥은 괜찮아, 커피나 한잔 할까?”

“저녁에 무슨 커피야? 칵테일바 갈래?”

“칵테일바? 술 못 마시잖아?”

“칵테일 한두 잔정도는 마실 수 있어.”


적당히 어두운 조도에 네온 조명으로 포인트를 준 실내. 메탈 재질의 쉐이커를 흔드는 바텐더. 한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재즈풍의 음악. 태어나 처음 와보는 칵테일바의 낯선 풍경들이 왠지 마음에 든다.


“나는 피치 크러쉬 마실 건데, 넌 뭐 마실 거야?”

“그게··· 나··· 솔직히 처음 와봐.”

“정말? 어떡하지? 피치 크러쉬 밖에 모르는데?”

“그럼 나도 피치 크러쉬 마실게.”


주문을 마친 후 잠시 침묵이 오갔다. 이미 은영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어서인지 조급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은영이의 말에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로 반응해야 할지를 잠시 고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찬희야, 요즘 기숙사 식당에는 왜 안 오는 거야?”

“그냥···”

“그때··· 내가 거절해서? ···그래서 그런 거야?”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다.


“주문하신 피치 크러쉬 2잔 나왔습니다.”


피치 크러쉬와 함께 은영이와 나 사이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멍하니 핑크빛 칵테일만 바라볼 뿐이다.


“그때 말이야··· 포스터도, 음악도, 장미 꽃도 전부 너한테 고백하려고 내가 준비한 거다··· 물론 계획대로 되진 않았지만···”

“알고 있어.”

“어떻게···?”

“승준이한테 전부 들었어.”

“승준이가?”

“어, 오늘 보자고 한 건··· 그땐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한 거야.”

“어?”

“한동안 안 보이니깐 궁금해지더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아무튼 그랬어··· 그래서 승준이한테 널 만나고 싶다고 말했어. 왠지 내가 연락하면 답장 안 할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면······ 그땐 몰랐던 걸 이제 알게 됐다는 말이지.”


승준이의 유치한 아이디어, 그리고 그 아이디어에 동화된 나, 그렇게 기숙사 축제 마지막 날에 맞춰 준비했던 계획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던 모든 것들이··· 0으로 수렴하며 끝날 줄 알았던 계획의 결과가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

한동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포스터의 글귀가 떠오른다.


[은영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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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기차안에서 24.05.30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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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찬희의 첫사랑 (2) 24.05.24 7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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