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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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과몽
작품등록일 :
2024.05.14 13:06
최근연재일 :
2024.06.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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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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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차안에서

DUMMY

플랫폼을 떠난 기차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기차를 양옆으로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벚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손짓해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하늘의 따뜻함과 맑은 강물의 싱그러움이 살갗으로 느껴지는 듯 포근해진다.

한 시간여가 지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다. 도착한 곳은 시골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기차역이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제일 먼저 싱그러운 풀잎 향과 따사로운 봄햇살이 함께 우리를 반겨주었다. 온몸에 기분 좋은 온도가 감돈다.

오늘은 동아리 야유회가 있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단장에 정신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이 단 한번만이라도 날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 단장을 마친 나는 서둘러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혹시나 그녀도 미리 나와 있다면 잠시라도··· 짧더라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약속시간 20분전. 아직 약속장소에 나온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하긴,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동아리방에서 잠깐 인사한 사람들이 전부일 테니 이미 나와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운명처럼 멀리서 현주가 보인다. 이제 막 기차역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폭주한 것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가슴에 통증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다행히 현주 주변으로 아무도 다가가질 않는다. 조심스럽게 현주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뭐라고 하면서 인사를 건네지? 안녕, 이라고 말할까? 너무 어색한데··· 일찍 나왔네, 라고 할까? 날 알아보기는 할까?

현주 앞까지는 몇 걸음 남지 않았다.

날 알아본 걸까? 현주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수줍게 오른손을 들어 현주에게 흔들었다.


“현주야!”


어디선가 현주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남자 한 명이 불쑥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현주를 향해 걸어간다. 나에게 흔들었던 게 아니었던 건가? 수줍게 들어올린 오른손이 민망해졌다.


“승준아, 일찍 왔네!”


우식이 형이다. 다행히 민망함을 감춰줄 구세주를 만났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꺼낸 내 핀잔에 우식이 형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뭘 늦게 와? 아직 약속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구먼.”

“일찍 일찍 다니면 좋잖아요?”


약속 시간이 되자 동아리 사람들이 칼같이 전부 모였다. 총무님이 명단을 보며 인원수를 체크한 뒤 티켓팅까지 마치자 동아리 사람들이 친한 사람과 짝을 지어 기차 안에 일제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차가 출발하자, 다들 야유회로 들떠 있는지 창가에 비춰진 봄날의 풍경을 감상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기 바빠 보였다. 그 사이로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그 남자가 눈엣가시처럼 거슬린다. 현주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던 그 남자··· 왜 하필 현주 옆에 앉아 있는 걸까? 현주에게 아직 남자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불안하다. 현주에 대한 기억들이 머리속에 남아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우식이 형! 우식이 형!”

“왜 그래?”


옆에서 태연하게 자고 있는 우식이 형을 깨웠다.


“저 사람 누구예요?”

“누구?”


우식이 형은 눈을 비비며 내가 턱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현주 옆에 앉아있는 애?”

“네.”

“현주한테 관심 없다면서?”

“그게 아니고··· 저 사람 누구예요?”

“현주한테 관심도 없다면서, 제가 누군지 왜 궁금해해?”

“저 사람이 누군지 알기는 해요?”

“알지. 성윤이라고 내 친구야.”

“형 친구라고요?”

“어어. 나랑 같은 교회 다녀. 건축과 2학년이야. 잘 생겼지? 교회에서도 자매님들한테 인기가 아주 많지.”

“뭘 잘생겨요? 그냥 그렇구먼.”

“왜? 현주랑 같이 앉아 있으니깐 질투 나냐? 헤헤”

“무슨 질투예요···”

“현주랑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일걸? 현주도 같은 교회 다니거든. 부모님들끼리도 서로 친하시고.”

“형이랑 현주랑 같은 교회 다녀요? 근데 왜 말 안 해줬어요?”

“현주한테 관심 없다며.”

“그렇다기보단···”

“그럼 뭐?”

“그러니까··· 그게··· 관심있어요···”

“진즉 그럴 게 말할 것이지. 그럼 앞으로 우리 교회 나오겠네. 헤헤”

“무슨 전도를 그런 식으로 해요?”

“그런 너는? 무슨 종교를 여자 때문에 결정하냐? 어찌됐든 이제 나올 거지?”

“알았어요··· 그럼··· 저 남자···”

“성윤이하고 현주가 무슨 사이인지 궁금한 거지?”

“······네.”


예리하게 눈을 뜬 우식이 형이 둘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남매 같기도 하면서 연인처럼 다정한 것 같기도 하고, 연인 사이 같으면서도 친한 남매사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도 잘 모르겠다. 원체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라··· 내가 쟤내들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냐? 헤헤. 아무튼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


얼핏 보기에도 남매 같은 사이라고 하기엔 그것보다 좀더 특별해 보였다. 혹시 저 남자 때문에 현주에게 고백 한번 못해보고 단념했던 건 아닐까?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것 같다.

기차는 어느덧 작은 시골마을 기차역에 멈춰 섰다. 벚꽃은 대부분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봄날의 풍경은 아름답기만 했다. 내 앞으로 현주와 그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다. 이 풍경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아직은 모르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다시 허탈한 감정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때때로 종교를 이용해 사심을 채우겠다는 내 이기적인 심보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강이 보이는 잔디밭 공터가 나오자 동아리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를 깔고 앉아 기타를 치며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게임 같을 것들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보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로 단체 사진이며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어떤 걸 해도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려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물위에 겉도는 기름방울 같은 존재같이 느껴졌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노을이 질 무렵이 되자 야유회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불행히도 그때까지 나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몇 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기차가 플랫품으로 들어오자 출발할 때와 같이 동아리 사람들은 친한 사람과 짝을 지어 자리에 앉았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식이 형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우식이 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의자 등받이 위로 내밀어 열차안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우식이 형이 그 남자 옆에 앉아있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론 현주가 서있다. 그리곤 우식이형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킨다. 무슨 일일까?

현주가 날 바라본다. 그리곤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점점 더··· 점점 더 가까이···


“여기 앉아도 돼?”

“어? 어.”

“우식이 오빠가 성윤이 오빠랑 할말이 있다고 여기에 앉으라고 하네. 불편한 건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여기 앉아.”


현주가 내 옆에 앉았다. 우식이 형이 앉았을 때와는 다르게 향기로운 향기가 난다. 꽃 향기인가 싶으면서도 달콤하다. 달콤한가 싶으면서도 비누 향기 같이 부드럽다. 무슨 향수를 쓰는 걸까?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다.


“혹시 내 이름 기억해? 저번에 동아리 방에서 인사한 것 같은데···”


이름 뿐이겠어?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지.


“어, 어. 현주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지? 중어중문학과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기억력 좋은데? 넌 승준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우식이 오빠랑 같은 과.”


날 기억하고 있었어.


“너도 기억력 좋은데···”

“사실 기억력이 그렇게 좋진 않아.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났거든. 조금전에 우식이 오빠가 승준이 옆에 앉으라고 해서, 그제서야 기억났어.”

“그랬구나······”


그 다음엔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교회는 이제 다녀?”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 하긴, 교회도 안 다니는 애가 기독교 동아리 방에 앉아있었으니 이상하기도 했겠지.


“교회··· 어, 어 아직··· 이제 우식이 형하고 같이 갈 거야.”


결국 이거였나?

어쩌면 우식이 형이 현주와 자리를 바꾼 이유가 이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우식이 형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정말? 나도 우식이 오빠랑 같은 교회 다니는데. 앞으로 교회에서 보겠다.”

“그래? 잘됐다.”

“교회오면 연락해.”


이게 무슨 일이야? 현주가 내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고 있다.


“성윤이 오빠도 같은 교회 다니는데! 이제 동아리에 우리 교회 사람이 너까지 4명이네.”


그 남자와 무슨 사이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현주에게 물어볼만한 명분이 내게 없다. 오늘은 내 폰에 현주의 번호를 저장한 것으로 만족하자.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행복하다.

기차는 이제 막 빌딩숲 품속으로 돌아왔다. 노을 빛으로 붉게 물든 도시의 풍경이 창밖으로 보인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유독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창에 기대어 잠든 현주의 얼굴도 노을에 비쳐 붉게 물들어 있다.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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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차안에서 24.05.30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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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첫눈에 반하다. 24.05.28 5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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