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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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과몽
작품등록일 :
2024.05.14 13:06
최근연재일 :
2024.06.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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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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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좋을 텐데··· (2)

DUMMY

한강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펼친 우리는 자리에 앉아 한동안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의 윤슬을 감상했다. 기분이 묘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조급해지지가 않았다. 무료함이 없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다가 지겨우면 강물에 실려오는 따스한 바람을 느끼면 됐고, 그것도 지겨워지면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됐다. 현주 역시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고 있는 듯 평온해 보인다.


“근데, 집에는 왜 가기가 싫었던 거야?”

“어?”


문득 현주가 수업이 끝나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동아리 방에 찾아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왠지 나와 같이 무의식 중에 동아리 방으로 찾아온 것이라면 어쩜 우린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행복회로 같은 것이 작동되었다.


“음··· 그냥··· 너는 가끔 이럴 때 없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 나도 그냥, 오늘은 기숙사에 바로 들어가기가 좀 그렇더라도.”

“정말? 나도 오늘은 그냥 집으로 바로 가기가 좀 그랬는데. 헤헤”

“오늘 뭔가 서로 통했나 보다.”

“다행이다. 혼자였으면 뭐 하지, 하면서 고민만 하고 있었을 텐데.”


이대로 분위기 좋게 현주와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오늘은 현주와의 관계가 예전보다 진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는 어릴 때부터 다녔던 거야?”


그나마 교회이야기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자연스러운 대화거리라고 여겨졌다.


“그렇지, 모태 신앙이니까. 너는 교회 다니는 거 어때? 재미있어?”

“교회를 어디 재미로 다니나? 그냥 열심히 다니는 거지.”


사실 신앙보단 다른 목적이 있어 교회에 나가는 거지만··· 농담조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꼭 집사님처럼 말하네.”

“너는 어때? 재미있어?”

“그냥···. 나도 열심히 다니는 거지, 뭐? 헤헤.”


내가 알고 있는 교회 이야기로는 현주와의 대화를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현주도 어색해지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검은 봉지에 담긴 캔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술을 마시고 있는 현주의 모습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상상했던 현주의 모습에는 술을 마시는 모습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색함도 잠시, 그런 현주의 모습에 거리감이 좁혀진 기분이다.

현주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후 조용히 한강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한강에 시선을 고정시키기를 반복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현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점점 짙어지는 게 신경 쓰인다.


“······그냥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서.”

“고민? 뭔데?”

“···”

“나 보기보다 입 무거워.”


현주가 날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고민을 말해주는 대신 손에 쥔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고민을 말해줄만큼 가깝다고 여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도 봉지에 담긴 캔 맥주를 꺼내 현주와 같이 한 모금을 마셨다.

피부에 와닿는 바람과 몸속으로 퍼지는 맥주의 시원함이 안팎으로 어우러져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올 만큼 상쾌했다. 하지만 현주는 이런 상쾌함에도 답답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 모양이다.


“혹시 오랫동안 누군가를 혼자 좋아해본 적 있어?”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현주가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오랫동안? 혼자?”


왠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듣기전부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누구일까? 짐작대로 성윤이 형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걸까? 현주의 말에 나는 무슨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남자가 있었는데 이제 그만하려고···”


그만한다는 현주의 말에 안도보다 현주의 표정에서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더 신경이 쓰였다.


“왜? 고백이라도 해봤어···?”

“아니···”

“오랫동안 좋아했다면서··· 고백이라도 해보지···”

“······”


다시금 현주는 침묵했고, 숨 한 모금을 깊게 내뱉었다. 현주는 한숨으로 비어진 공간을 채우기 위해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침묵 속에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현주에게 어떤 위로도 격려도 해줄 수가 없었다. 단지, 오랫동안 현주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그 사람을 내가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들었다.

한강공원에 노을이 지고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점점 자취를 감추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강 공원을 빠져나와 올 때처럼 학교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와중에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 사람이 나였으면··· 하는 생각과 현주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마냥 속상해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현주 옆을 나란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현주가 혼자 좋아했던, 그것도 오랫동안···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 현주는 그렇게 좋았던 걸까? 그리고······ 왜 그만하려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잘 가, 교회에서 보자!”


현주와 짧은 인사를 끝으로 학교 앞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결국 어떤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다. 수많은 의문과 의구심만 한 아름 안아버렸다. 어쩌면 배신감 같은 감정에 휩싸였는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보자는 현주의 말에 종교에는 관심도 없는 내가 교회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간들 뭐가 달라지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의식이 희미해졌다. 현주와 헤어지고 무의식 중에 우식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형······”

“뭐야?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

“끝난 것 같아요···”

“뭐가 끝나? 혹시, 고백했다가 차였냐?”

“아니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봐요?”

“그래? ···그래서?”

“오랫동안 좋아했었나 보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뭐가 그래서예요?”


무의미하게 반복적으로 내뱉는 그래서, 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래서 현주가 그 사람한테 고백이라도 한데? 아니면 사귄데?”

“···아니요, 그만 한데요.”

“뭘?”

“이제 혼자 좋아하는 거 그만하고 싶데요···”

“뭐야? 나는 또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줄 알았잖아. 그럼 너한테 기회인 거 아니야?”

“현주가...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니까요!”

“그게 뭐? 좋아하는 사람이야 있을 수 있지.”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오랫동안이라니까요.”

“그게 뭐?”

“아니,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만하고 싶다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겠냐고요.”

“그게 뭔 소리야?”

“아니···”

“됐고, 현주는 왜 그만한데?”

“모르겠어요···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사춘기 애들도 아니고 참네. 답답한 건 둘 다 똑같네. 둘이 어울리긴 하겠다. 그건 그렇고, 그럼 지금까지 기껏 현주랑 한강가서 겨우 그 이야기만 듣고 온 거야?”

“···.”

“다음에 밥이라도 한번 같이 먹자고 이야기는 해봤어?

“아니요···”

“뭐하냐? 어떻게 온 기회인데 그렇게 날려버리냐! 이건 뭐 창의력도 없고, 실행력도 없고. 쓸데없는 상상력만 많아 가지고, 쯧쯧. 당장 문자라도 보내!”


우식이 형의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앗, 알았어요. 그런데요··· 형! 혹시 현주가 좋아하는 사람이 성윤이 형이 아닐까요?”

“성윤이? 성윤이라··· 맞다! 얼마전에 성윤이 여자친구 생겼는데.”


역시 그랬던 걸까? 현주가 짝사랑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성윤이형이 먼저 떠올랐고 성윤이 형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념한 게 아닐까요?”

“아닐 것 같은데? 걔는 어릴 때부터 여자친구가 계속 있었어. 현주도 그걸 모르진 않을 거고. 그리고 지금도 둘이 사이만 좋아 보이더라!”

“그래요···”

“그러거나 말거나 성윤이가 여자친구 있으면 너한테 더 유리한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남자가 누구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해? 어차피 이제 접는다는데. 이 참에 현주한테 고백이라도 한번 해봐!”

“그게 그리 쉬워요?”

“실패하는 게 무서우면 아무것도 못한다.”


우식형의 거만한 말투가 귀에 거슬린다. 연애도 한번 못해 본 사람의 말을 들어도 되는지 의심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또 없으니···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알았어요. 우선 밥부터 먹자고 해볼게요.”

“그나저나 현주가 인기가 좀 많아야지. 교회에, 동아리에, 경쟁이 치열할 건데. 현주가 너랑 밥이라도 먹어줄지 모르겠다. 기대할게, 헤헤.”


우식이 형의 사탄 같은 비웃음소리가 의욕을 자극시킨다. 우식이 형과 전화를 끊고 현주에게 바로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보내지 못했다. 현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때문에··· 현주의 안중에 내가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이대로 흘려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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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좋을 텐데··· (1) 24.06.10 24 0 10쪽
21 21. 스며든다. 24.05.31 31 0 10쪽
20 20. 기차안에서 24.05.30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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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첫눈에 반하다. 24.05.28 5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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