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왜 그랬을까? (1)

계절은 향기로운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으로 접어 들고 있다. 이제 신입생의 첫 학기도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이마에 흐르는 땀이 알려준다. 훈련이 끝나자 티셔츠며 바지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코트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열이 오른 얼굴에 와 닿는다. 시원하다. 상쾌함이 온몸으로 기분 좋게 퍼져 흐른다.
테니스 코트 안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코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코트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아리 사람들도 한 눈에 들어온다. 게임을 즐기는 선배들. 선배들에게 보충 레슨을 받고 있는 동기들. 다들 하루의 끝을 아쉬워하며, 테니스 코트에 희미하게 비춰진 노을 빛에 의지해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아직 그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학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밀린 방학숙제라도 하듯 동아리 사람들이 분주해져 보였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서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랑 쟁탈전이라도 벌이듯 치열하게 고백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 무리에서 열외 된 찬희와 나는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관망하며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동주 형, 호영이, 수찬이 모두 희진이와 사이가 괜찮은 걸로 봐서는 아직 희진이에겐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앉아서 뭐해? 공 한 개라도 더 쳐야지? 칠수 있을 때 많이 쳐 놔!”
게임을 마친 4학년 선배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빈코트가 없어서요. 안 그래도 잠깐 쉬면서 비집고 들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평소 코트에 잘 보이지 않는 불편하고 어려운 선배지만 친한 척 너스레를 떨어봤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테니스 칠 만한 여유가 없어.”
“왜요? 취업 준비 때문에요?”
“그렇지.”
“그래도 한두 시간 정도는 운동할 여유가 있지 않나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는 만들면 있겠지···”
“그러면··· 왜···?”
“마음적으로 여유가 없는 거지.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고 죄책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죄책감까지나··· 정말 힘든 시기네요. 그럼 취업하기 전까진 계속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과거라고 해야 할지, 미래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이미 선배가 처해있는 상황을 경험한 터라 선배의 마지막 말이 오래된 슬픈 기억 하나를 들췄다···
졸업을 한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날 받아 줄 만한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 찾지 못했다, 라는 말이 맞는 말일까? 선택 받지 못했다는 말이 좀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다. 선택 받지 못한 자.
어젯밤도 없는 돈을 털어 집에서 술을 마셨다. 내일 아침이면 불편한 숙취에 눌려 늦게 눈을 뜰 게 뻔하지만, 마시지 않는다면 오늘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울 게 뻔하다. 그런 생각으로 어젯밤도 소주병의 봉인을 풀어버렸다. 이러나 저러나 늦게 일어나는 건 매한가지다. 막상 일어나도 할 일이 없으니 늦잠을 자도 상관없다. 마음만 좀 더 불편하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눈을 떴지만 할 일이 없다. 습관처럼 채용 사이트를 뒤지다 이력서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할 일이 없으면 불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을 꺼내 공부를 시작한다. 딱히 공부가 되진 않지만, 이게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지만 마음이 좀 덜 불편해지는 건 사실이기에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치료로 반복하고 있는 루틴이다.
오늘따라 숙취 때문에 속이 유독 쓰리다. 라면으로라도 해장을 하기위해 싱크대 위 수납장을 열었지만, 남아있는 라면도 없다. 어제 저녁 술 안주로 먹었던 라면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지갑에 든 돈도 싱크대 위 수납장처럼 휑하다.
오늘은 어떻게 버티지···?
휴대폰을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다 말고 휴대폰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겨우 이런 짓이나 하자고 부모님이 어렵게 벌어서 보내주신 돈을 낭비하며 혼자 서울 남아있는 게 아닌데··· 월세며 전기세, 수도세 모든 게··· 다 아깝다. 당장 짐을 챙겨 원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군데 군데 남루한 옷차림의 노숙자 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숙자 분들은 하나 같이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아 땅에 닿으리 만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마치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며 고뇌하듯이···
내 옆을 지켜줄 가족이 없다면··· 내게 갈 수 있는 고향 집이 없다면··· 나 역시 이 자리에 앉아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다. 도망치듯 짐을 싸서 나온 게 후회가 된다. 성급했던 게 아닐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금 내겐 좋은 선택지란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뭘 선택하든 늪에 빠진 것 마냥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플랫폼에 서있는 기차에 오르는 일 조차 버겁다.
“저 왔어요.”
“오느라 고생했다.”
검은 철문을 열자, 평소와 같이 제일 먼저 아빠가 맞이해주었다. 인사말고는 별말씀이 없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 취업준비는 잘되고 있냐? 궁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닐 텐데··· 아버지는 인사를 끝으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왔어?”
현관문을 열자 여동생이 소파에 앉아 인사를 건넨다. 한동안 해외 어학연수로 여동생을 볼 수가 없었다. 여동생과는 오랜만에 조우하는 거지만 반갑다거나 어색하다는 느낌보단 항상 그 소파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사람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승준아, 배고프지? 윤진이랑 이야기 좀 하고 있어. 엄마가 저녁 차려줄 게.”
“엄마, 난 잡채나 불고기 먹고 싶어.”
여동생이 엄마의 질문을 가로챘다.
“승준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잡채 아니면 불고기 먹고 싶다고! 아들만 챙기지 말고!”
“오빠는 오랜만에 왔잖니. 그리고 오빠 얼굴 좀 봐라. 취업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면 얼굴이 말이 아니다.”
“엄마가 오빠 스트레스 받는다고 취업에 ‘취’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으면서 엄마가 먼저 말해 버렸데요. 헤헤.”
“내 정신 좀 봐! 집에 소고기가 있는지 모르겠네.”
엄마는 무안함에 뒤돌아 서서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 눈치를 보셨던 거였다. 내가 스트레스 받을까 봐서 아빠도 엄마도 내게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이었다. 한때는 자랑스럽지는 않을지언정 부모님에게 꽤 잘 큰 아들 정도는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미안했다. 나는 왜 이정도까지 밖에 안 되는 걸까?
“취업 준비하기 많이 힘들지?”
“아무래도···”
여동생이 내 얼굴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한다.
“정말 얼굴이 많이 상했다. 얼굴 좀 돌려봐! 어디 아파?”
“안 아파!”
숙취 때문일까?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야. 공부한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가끔 바람도 쐬고 그래.”
“스트레스 안 받아. 그리고 바람 쐬러 갈 시간도 없어.”
시간은 있지만··· 마음적으로 그럴만한 여유가 바닥 난지 오래다.
“취준생 우울증 이야기 못 들어봤어? 스트레스도 풀고 기분전환도 하고 해야, 사람이 긍정적으로 바뀌어서 취업도 더 잘되고 하는 거야. 어느 회사에서 보기만해도 우울해 보이는 사람을 뽑고 싶어 하겠냐? 오빠 얼굴만 보고 있어도 우울해져. 좀 웃어라!”
진짜 내 문제라는 게 그런 걸까? 우울해 보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텐데···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더 우울해진다. 힘 잃은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만큼 쓸모없는 말이 없듯이, 우울한 사람에게 우울하지 말라고 하는 말만큼 쓸모없는 말이 없다.
“오빠, 말 나온 김에 내일 엄마, 아빠랑 같이 바람 쐬러 가자!”
“싫어.”
“왜 싫어? 최근에 엄마, 아빠랑 어디 가본적 없지? 맨날 집에 오면 밥 먹고 자고 바로 서울 가버리면서.”
“그거야··· 머니까···”
여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한달에 몇 번씩 집에 온다고, 가끔 부모님과 여행도 간다고 날 압박했다. 집에서 가까운 광역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가능한 거라고 여동생에게 반박해 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건 거리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말로 되받아친다. 말로는 여동생을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둘 다 커서 어릴 때처럼 이기기 위해 육박전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빠, 내일 오빠랑 같이 어디 바람 쐬러 가자!”
여동생은 아빠에게 내일 가고 싶은 곳을 속사포 같이 쏟아내고 있다. 그런 여동생을 아빠는 마냥 귀엽다는 듯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다. 처음 보는 모습도 아닌데 이런 모습이 왜 이리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동생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나가버렸다. 여동생이 집에서 사라지자 집 안에 불편한 적막이 찾아왔다.
“저 들어가서 쉴 게요.”
부모님이 불편한 건 아니지만··· 혼자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것일까? 내 눈치를 보는 엄마, 아빠를 뒤로하고··· 이기적이게도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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