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왜 그랬을까? (2)

왜 그랬을까?
식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길이 없다. 입으로 흘러나오는 서러운 통곡 소리 역시 멈추질 않는다. 이 눈물이 멈추면 어떻게 고개를 들지? 고개를 든다 해도 엄마, 아빠 그리고 윤진이를 어떻게 쳐다볼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 치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아침이었다. 오늘같이 상쾌하고 가벼운 아침은 오랜만이다. 집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방문 밖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윤진이가 주도한 나들이 준비로 모두들 바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일어났니?”
부엌에 있던 엄마가 인사를 건넨다. 엄마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시느라 분주해 보였다. 거실에서는 아빠가 베란다 문을 열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청소에 집중하고 계셨다.
“뭐 하세요?”
“아침 밥하지. 이따가 나들이 가면서 먹을 간식도 만들고.”
“간식이요? 나가서 사 먹으면 되죠, 고생스럽게.”
“고생스럽긴, 이런 게 나들이 가는 재미지. 그나저나 윤진이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겠다.”
“왜요?”
“어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거든.”
“많이 마셨어요?”
“휘청휘청 거리는 게 많이 마신 것 같던데···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으니까, 할 이야기가 많았겠지. 그래도 그렇지. 다 큰애가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시면 어떡하니? 요즘같이 무서운 세상에. 그것도 늦은 시간까지.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그래도 무사히 들어왔으면 됐지 뭐.”
윤진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엄마, 아빠와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젓가락,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와 음식 씹는 소리만이 고요히 식탁위를 오가고 있다. 조용한 분위기가 미세하게 불편하다.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것이 아직도 눈치를 보고 계신 모양이다. 나도 덩달아 두 분의 눈치를 보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서 엄마, 아빠와 거실에서 같이 텔레비전에 의지해 시간을 보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할 수가 없다. 고향에 내려오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리어 취업 준비가 잘 안되는 거냐? 앞으로 뭘 할 계획이냐? 라고 걱정스럽게 물으시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이 쉽게 띄어지지가 않는다. 아직은 별 탈 없는 부모님과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까지 들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도 윤진이는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미 엄마, 아빠, 나 모두 나들이 갈 준비를 마쳤는데도···
“승준아, 서울 언제 올라갈 거야?”
기다림에 지친 아빠가 먼저 말을 꺼냈다.
“며칠 쉬었다가 가려고요.”
“그럼, 오늘은 다 같이 나들이 못 갈 것 같은데··· 내일 갈까?”
“상관없어요.”
“아니면, 윤진이 놔두고 우리끼리라도 갈까?”
엄마는 식탁위에 올려져 있는 간식 가방을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도 상관없어요.”
“그럼, 내일 갑시다. 승준이도 어제 내려오느라 피곤할 텐데 집에서 좀 쉬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빠가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아침에 준비해 놓은 간식거리는 어떡하죠?”
“그거야, 지금 먹으면 되지. 안 그래도 점심 시간이라 출출했는데 점심 준비 안 해도 되고, 잘됐네. 승준아, 너도 괜찮지?”
“네.”
엄마는 가방에서 간식들을 식탁에 풀어 놓았다. 유부초밥의 온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껍질이 벗겨진 사과와 잘 씻겨진 방울 토마토도 아직 싱싱하다. 막 젓가락으로 유부초밥을 들어 입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굳게 닫힌 윤진이의 방문이 열렸다.
“일어난 거야? 술은 좀 깨?” 아빠가 윤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진이는 아직 속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간식을 다시 가방에 챙겨 넣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빠의 젓가락 질에 오늘 나들이는 다음으로 완전히 밀어졌구나 하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윤진이는 식탁으로 다가와 유부초밥 하나를 손으로 집어 입에 쑤셔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씻지 않은 몰골로 봐서는 윤진이도 오늘 나들이를 머리에서 지운지 오래 인 것 같다.
“야, 뭐야! 바람 쐬러 가자며!”
나들이를 못 가게 돼서 서운하거나 짜증이 난건 아니지만 윤진이에게 한마디는 해주고 싶었다. 어제 혼자서만 효녀인 척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이 떠올라, 말로만 효도 하지말라는 경고성 발언이었다.
“아, 몰라! 피곤해!”
“어제는 혼자서 효도 다하는 척하면서 사람을 그렇게 몰아붙이더니. 뭐냐?”
윤진이는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흘겨봤다. 그리고 너나 잘하라며 고함을 질렀다. 순간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커다란 불덩어리 같은 게 머리와 가슴에 쿵 하고 부딪히는 것 같았다.
삐~~~~~~~~~~~
윤진이가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찌할 바를 몰라 놀란 표정으로 윤진이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만 보고 있다.
왜 내 오른쪽 손바닥이 얼얼하지? 뭔가 잘못됐다.
“왜 때려!”
윤진이가 내게 소리를 지른다. 고개를 든 윤진이의 왼쪽 뺨이 빨개져 있다. 오른쪽 손바닥에 눈길이 간다. 설마 내가 오른쪽 손바닥으로 윤진이를···? 내가 윤진이를 때린 건가···?
“뭐 하는 짓들이야!”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윤진이와 아빠의 연속되는 고성에 정신이 든다.
너나 잘하라는 윤진이의 말에 정신을 잃고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 오른 손으로 윤진이의 뺨을 때린 것 같다. 기억하고 있지만 현실이라고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너나 잘해, 라는 말이 도대체 뭐 길래. 욕도 아닌데. 한두 번 들은 말도 아닐 텐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설움이 복받쳤다. 왜 그랬던 걸까? 눈물은 왜 나오는 거지? 무서웠던 걸까? 모든 게 삐걱되는 것 같다. 설움에 입으로 통곡 소리까지 새어 나온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몸뚱이를 식탁에 의지했다. 식탁에 팔을 개고 엎드려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울기 시작했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몸이 반응하는 대로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그래? 뭐가 그리 힘들어서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거야?”
엄마가 등을 토닥이며 말을 걸어왔지만 눈물과 통곡 소리 외엔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다. 뭐가 이리 서러웠을까?
너나 잘해, 라는 그 말···.
잘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렇게 윤진이의 말이 뇌관을 건드린 거겠지?
우울증이다. 취중생 우울증···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받아드려 지지가 않았을 뿐 그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눈물이 잠잠해지자 내 주변으로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사내 자식이 왜 울고 그래!”
아버지의 부드러운 일갈··· 아버지의 목소리에 촉촉함이 묻어 있다. 다 큰 자식의 서러운 눈물과 곡소리에 아버지 역시 놀라고 속상했겠지···
“왜 그래?”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 윤진이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맞은 건 윤진인데 오히려 내게 미안해하는 것 같다. 미안하다.
“많이 힘들어?”
엄마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엄마를 끌어 안고 다시 한동안 대성통곡을 했다.
한동안 울고 나니 속은 시원해져 있었다. 윤진이와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와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돌아와 윤진이가 일러준 대로 좀 더 밝은 모습을 되찾기 위해 등산, 운동, 청소, 공부 모든 닥치는 대로 했다. 덕분에 잠도 이른 시간에 들 수 있었다. 컨디션 또한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시간이 좀더 걸리긴 했지만 취업도 하게 되었다.
테니스 코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자 모두 테니스 코트를 빠져나왔다. 4학년 선배가 자기자 쏠 테니 오랜만에 맥주나 한잔하고 모두를 불러 세웠다. 호프 집으로 향하던 중 은행이 보인다.
“선배님, 저 잠시 은행 좀 갔다가 갈게요.”
은행 ATM 기계에 체크카드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잔고를 체크했다.
[잔액 67,800원]
용돈을 받으려면 일주일 정도 남았다. 만원이면 일주일은 충분히 버티겠지? 모자라면 찬희에게 빈대라도 붙어야겠다.
휴대폰에 메모해 놓은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송금액을 눌렀다.
* 받는 사람 최윤진
* 보낸 금액 57,800원
몇 년 후에 일어날 일이겠지만, 윤진이에게 미리 사과하고 싶어졌다. 아니, 윤진이에게 다시 사과하고 싶어졌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윤진아, 그땐 정말 미안했어···
*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
은행 부스를 빠져나오자 두개의 시공간이 오러랩되어 느껴진다. ···순리를 역행하며 미래를 회상하는 과거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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