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그동안 고마웠어.

경찰서로 이동하는 택시 안.
태양은 뒷자리에 앉아 유난히 길었던 하루를 되돌아봤다.
과거로 돌아온 지 하루도 채 안 됐구나.
노을이를 다시 만났어. 노을이를 살렸어. 그래.. 성공한 거야.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있는데,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노을이에게 있는 시스템이 곧 사라진다는 것.
“야. 야.”
옆에 앉아 있는 노을을 급하게 부르는 태양.
“왜?”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둘이 나란히 정신병원에 갈 수 있기에, 귓속말을 속삭였다.
“조금 있으면 너한테 있는 시스템이 사라질 거야.”
태양의 말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떠 보인 노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고 있었어.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
“어? 예상을 했다고?”
“내가 너한테 줬다고 했잖아. 그럼 나한테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에 오히려 태양이 놀랄 정도였다.
“아무렇지도 않아?”
“당연히 서운하지. 그런데 내 목숨과 바꾼 거라고 생각하면.. 아쉬워하면 안 될 것 같아. 혹시 언제 사라지는지 알아?”
태양은 시간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아마.. 두 시간도 안 남았을 거야.”
“그렇구나.. 여기서는 대화하기 어려우니까 내리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겠다.”
“내가 대화해 보니까 거의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더라. 몰랐어?”
노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태양을 바라보았다.
“어? 사람처럼?”
“어. 단순히 퀘스트를 주는 역할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더라고. 지금 너랑 나랑 하는 대화처럼 말이야.”
노을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태양을 멀뚱히 바라봤다.
“이따가 한번 대화해 봐.”
“어.. 어.”
노을은 시선을 창밖으로 던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시스템이 처음 떠오른 날부터 오늘까지의 일을 되돌아보며 조용히 이별을 준비했다.
***
경찰서 앞에 도착해서 노을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옮겨 흡연구역 반대편, 비교적 오가는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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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노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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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넨 것도 처음이었고. 인사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노을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은 채 대화를 계속했다.
“정말 대화가 되는구나. 왜 그동안 퀘스트나 필수로 알아야 할 사항들이 아니면 말을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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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물어보는 사항에만 대답할 수 있을 뿐, 먼저 대화를 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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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지나가는 말로 몇 번 질문도 던지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아무런 말 없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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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을 님이 제가 말하는 걸 원치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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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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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25,664시간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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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 아득한 시간에 노을은 화들짝 놀랐다.
“뭐? 12만 시간? 그게 몇 년이야? .. 나 17살 때 나한테 온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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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을 님이 17살 때 다시 나타나 달라고 하셨기에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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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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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을 님이 어렸을 때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기억이 지워진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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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무렵의 기억이 없긴 해.. 그럼 그때 나랑 처음 만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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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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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진짜 그렇게 오래전부터 나한테 있었다고? 하.. 전혀 몰랐어.”
노을은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느라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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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순간의 데이터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기억을 되찾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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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할 수 있어? 그럼 부탁해. 너와 처음 만난 날을 보여줘.”
시스템 창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는데 잠시 후, 영상이 나타났다.
***
노을 9살. 장례식장.
“노을아. 아저씨랑 여기에 있을까?”
옆집 사는 사이로 집안끼리 자주 왕래가 있던 아저씨가 노을에게 상주 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랑 엄마는 어디 있어요?”
학교를 마치고 옆집에서 부모님이 오기를 기다리며 놀고 있었는데, 다급하게 자신을 찾는 아저씨를 따라오게 된 낯선 곳.
눈에 불안함을 담고 애처롭게 물어오는 노을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옆집 아저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집에 올 때 내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 사 온다고 했는데..”
노을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 거실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처져 있던 걸 보고는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졸라댔던 노을이었다. 생일이 며칠 남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보챔에 케이크를 사 온다고 약속했던 부모님.
“아, 케이크 먹고 싶구나? 여기에 아저씨랑 같이 있으면 아저씨가 초코케이크 사다 줄게.”
그렇게 먹고 싶었던 초코케이크를 사다 준다는 말에도 노을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빠가 사 가지고 올 거예요.”
자신이 옆에 있지 않으면 아저씨가 곤란한 건가 싶어서 노을은 아저씨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엄마가 보던 드라마에서 몇 번 봤던 곳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검은 옷을 입은 여자 두 명이 하얀 꽃이 가득 있는 곳에 아빠와 엄마 사진을 올렸다.
“어? 아빠랑 엄마 사진이다.”
반가움도 잠시. 왜 부모님의 사진이 저기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저씨를 향해 물었다.
“아저씨. 왜 우리 아빠, 엄마 사진을 저기에 올려요?”
이대로 대답을 피할 수만은 없겠다 싶었는지 노을이를 마주 보고 앉아 어렵게 입을 연다.
“노을아. 여기는 말이야. 장례식장이라는 곳이야.”
“장례식장?.. 그러면..”
“그래.. 노을이네 부모님이.. 사고를 당했어.”
“.. 사고요?..”
아저씨가 말하는 분위기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노을의 눈에는 빠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이내 툭- 밑으로 떨어지는 눈물.
“우리 아빠 엄마.. 사고 났대요? 그래서.. 그래서..”
울먹이는 노을을 보자 아저씨도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노을이네 부모님이 아주.. 먼 여행을 떠나셨어..”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노을.
“나만 두고.. 나만 두고 멀리 갈 리가 없어요.. 우리 아빠 엄마는 안 그래요..”
“그래.. 절대.. 너만 두고 떠나고 싶지 않으셨을 거다..”
노을은 결국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엄마..! 아빠..! 으아아앙!!”
결국 울다가 지쳐 잠든 노을을 방안에 재울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당시에 잠든 노을은 꿈에서 아빠를 만나고 있었다.
아빠는 늘 노을에게 당부했던 말을 꿈에서도 똑같이 들려주었다.
“노을아, 나중에 나중에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혼자서 쓸쓸해지면 이렇게 외쳐봐, 시스템!”
“웅? 시스템? 그게 모야?”
“노을이한테 엄마 대신, 아빠 대신. 평생 함께할 가족 같고 친구 같은 그런 존재가 되어줄 거야.”
“시러! 난 엄마, 아빠가 좋아! 대신 같은 거 없어도 돼!”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야. 아주 만약에. 알았지? 꼭 기억해. 시스템! 알았지?”
“시러! 엄마! 으아아앙.”
꿈에서 깬 노을이 작게 웅얼거리며 말했다.
“시스템..”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이상한 화면.
**
목소리 확인.
성문 인식 완료.
반갑습니다.
한노을 님.
지금부터 시스템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한노을 등록 완료.
**
“... 어?..”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날카롭게 말했다.
“네가 엄마 아빠 대신이야? 우리 엄마 아빠 데려다줘!”
**
한노을 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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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대신 맞잖아! 대신은 싫어! 엄마 아빠 데려다줘!”
**
한노을 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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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싫어! 말도 이상하게 하고! 가!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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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권리를 포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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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집에 고등학생 형 있어! 내가 그 형만큼! 고등학생만 되면 너 무찌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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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등학생이 되면 다시 나타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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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침착하던 노을이 부모님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과 처음 보는 존재의 등장에, 불안감에 의한 흥분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시스템은 그렇게 모습을 감췄다.
노을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낯설고 무서운 것이 사라지자 놀랐던 마음에 뒤늦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알 수 없는 상실감도 함께 느껴졌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였기에 상실감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울음을 토해낼 뿐이었다.
밥도 거르며 깨어있으면 울고, 울다 지치면 잠들고를 반복하는 동안 장례가 모두 끝이 났다.
노을의 거취 또한 정해졌는데, 보육원행이었다. 주위에 돌봐줄 만한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노을을 챙겨주었던 옆집 부부가 노을을 맡을까 장례 기간 내내 고민했지만 역시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게 동정심에 선뜻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보육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늘 보육원 앞.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의지하고 있던 옆집 부부와도 이별을 하게 된 노을.
“노을아, 가서 씩씩하게 잘 지내야 한다?”
“나.. 안 가면 안 돼요?”
“아저씨랑 아줌마가 미안해. 노을이를 오래오래 보고 싶었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아.”
옆집 부부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본 노을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도 잡고 있던 옆집 아저씨의 손가락을 더 꽉 쥐었다. 놓아버리면 정말 자신만 두고 가버릴 것 같았기에..
“노을아, 아줌마랑 아저씨가 자주 노을이 보러 올게.”
노을을 안았다가 놓아주고는 눈을 마주치며 상냥하게 건네는 아줌마의 말에 그러기 싫었지만, 아저씨 손가락을 천천히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옆집 부부는 원장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노을은 혹시라도 다시 돌아와 줄까 싶어 보육원 정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노을은 상처받고 또 상처받았다. 그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부모님 사고 무렵의 기억이 희미해졌다. 그렇게 시스템과 첫 만남은 잊혔다.
그리고 17살 여름.
‘.. 어?’
시스템과 재회했다.
***
허공에 떠오른 화면을 숨죽여 바라보던 노을은 영상이 끝나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스템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정말이었구나.. 우리는 훨씬 전부터 함께 있었구나.”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진작부터 시스템을 받아들였다면 원장에게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어렸으니 원장의 말에 더 쉽게 휘둘렸을 거야.
생각에 잠길 듯하다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또 내가 잊은 거나, 알아야 할 거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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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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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헤어진대.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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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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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앞에서는 아쉬워도 별수 없단 듯이 말했지만, 노을은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시스템은 자신의 일부였으며, 혼자여도 혼자가 아닐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나한테도 태양이한테도 양쪽에 존재할 수는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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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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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한테는 내가 줬는데.. 나한테는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알려줄 수 있어?”
노을은 마지막에서야 늘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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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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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답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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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였던 자신에게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다는 대답을 보고는 순순히 궁금증을 접었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였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았기에.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시스템. 그동안 고마웠어. 덕분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도 해보고.. 돈도 많이 모았어.
함께 있어 줘서 외롭지 않았어. 그리고.. 내 말대로 태양이에게 가 준 덕분에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됐어..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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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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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마지막 한마디를 보며 노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댓글,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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